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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심사평 - 지성미 넘치는 젊음

 

<한국의사수필가협회>
박관석  신종찬  정찬경  정명희  정경헌  유인철  김애양

 

 어느새 10회째를 맞은 ‘의대생 문예 공모전’을 지켜보며 감탄을 하게 된다. 올해는 특별히 ‘한국의사수필가협회’에서 심사를 맡게 되어 의대생의 애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선배로서 공감하는 바가 컸다. 빡빡한 수업 일정 가운데에서 글을 쓰는 여유와 성의를 보여준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2만 명의 의대생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열정과 봉사정신으로 ‘의대생 신문’을 만들어가는 학생들이 자랑스럽다. 해마다 문예 공모전을 개최하여 정서를 함양하고 함께 문학의 향연을 펼치려는 노력이 여간 소중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입시제도에서부터 의사란 과학적 지식만 갖추면 되고 여타의 인문학적 지식은 등한히 해도 상관없는 것처럼 여겨지기 마련이지만 의사야말로 문학적 소양을 가져야 하는 직업이다. 문학이 그만큼 인간과 삶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환자의 아픔을 알기 위해 직접 병에 걸려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환자가 겪는 고통을 이해하는 데에 독서만큼 유익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가 “과학은 육체의 확장을, 문학은 마음의 확장을 추구한다.”고 했듯이 육체와 정신의 균형 잡힌 인격으로 태어나기 위해선 문학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충심어린 조언을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의대생들이 글을 쓴다는 건 대단한 혜안을 얻는 일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책읽기는 사람을 충실하게 만들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확하게 만든다.”고 했다. 즉 글을 쓰기 위해선 치밀하고도 정교한 관찰이 필요하고 솔직한 자기감정이 드러나야 한다. 글쓰기란 타인 뿐 아니라 자신에게까지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하고 세상을 돌아다보는 안목을 키워야 가능한 작업이다.
 오늘날 많은 의대생들이 문학에 관심을 갖고 글쓰기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고 우리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응모한 작품들은 거의가 수준급으로서 의대생의 고민을 담은 내용이 많았다. 젊은이답게 신선한 감각을 지녔고 지성미가 느껴지는 점이 가장 좋았다. 전원에게 상을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공모전이니만큼 어쩔 수 없이 평가의 잣대를 들어야만 했다. 심사위원은 모두 7명으로 구성되어 43작품 중 3작품을 선정하였다. 심사는 무난히 마쳤지만 우열을 가리기란 쉽지 않았다. 

 

대상 「이타성의 고리」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위해 봉사한 오동찬 치과의사의 특강을 들으며 어떻게 그런 봉사가 가능한지 이타적으로 사는 삶에 대한 견해를 표명한 글이다. 홉스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에는 폭력성이 존재한다는데 반대로 이타적인 사람들은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한편 수년째 공부만 하고 있는 자신도 약자이라는 점을 떠올리며 스스로의 고통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고통을 승화시키겠노라는 결론을 짓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라는 인용구가 유난히 눈에 뜨였고 이타성의 고리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마지막 결구가 읽는 사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강한 울림을 준다. 세상에서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를 마주대할 때가 많지만 이타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할 것이다. 다소 산만한 점이 없진 않지만 글쓴이의 깊은 사유와 진정성을 느낀 작품이다.

 

최우수상 「거인의 어깨 위에서」
 이 작품의 장점은 의대생의 애환을 잘 그렸다는 점이다. 시험기간엔 공부 빼고는 다 재미있다는 경험으로 시작하는 서두부터 예사롭지 않다. 애환을 잘 그린 점 말고도 뛰어난 비유를 선택했다. 잘 알려진 대로 ‘거인의 어깨’를 말한 사람은 아이작 뉴턴이다.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의 세 가지 법칙을 발표하면서 뉴턴이 겸손하게도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데카르트와 케플러, 갈릴레이에게 공을 돌렸다고 해서 유명해진 구절이다.
 이 작품을 쓴 학생도 마찬가지로 전자도서관에 오르며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간 놀라운 의학지식과 경험의 축적이 있었기에 오늘날 의학도가 되어 공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맥락이다. 뿐만 아니라 피곤에 절은 레지던트 선배도 환자 치료를 위한 자료를 찾는 것이 거인의 어깨 위라 가능하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작가의 생각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키가 작아 시야가 보이지 않는 아이가 아버지의 목말을 타는 경우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른 것이라 생각한다. 그 목말을 탔던 아이도 점점 자라나 누군가 목말을 태워주고 거인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라고 터득하는 것이다.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잘 성찰했다.
 
우수상 「우리 강아지 왔다냐, 잉」
 다소 코믹한 제목의 이 작품은 외할머니와의 교감을 잘 드러냈다. 우리 가운데 부모 없는 사람, 조상 없는 사람이 없는 만큼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에 대한 글이 감동을 줄 때가 많지만 이 작품의 경우 할머니에 대한 애정 표현이 절제되면서도 잔잔히 이어지는 점이 압권이다. 마지막 단락의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살며시 앉아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작고 연약한 등’이란 할머니의 등에 대한 묘사가 읽는 이를 뭉클하게 만든다. 문학성과 감수성을 잘 느낄 수 있어 높은 점수를 받은 작품이다.


 이 밖에도 아주 근소한 차이로 수상하지 못한 작품으로 「제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무자식이 상팔자」 「상시의 시상」 「아버지는 오늘도 불을 끄신다」 등이 있다. 특별히 「Scissorhands & Spirals」는 대단한 물리학 이론을 담고 있는데 독자와의 공감이 어려워 수상작으로 선정하지는 못했지만 남다른 재주가 있다는 걸 밝히고 싶다. 한편 몇몇 글은 제목이 없어 아쉬웠다. 우리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듯 수필에도 제목을 정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번 기회에 당선되지 못한 학생들도 결코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글을 쓰며 문학을 향유하면 좋겠다. 문학에 관심을 갖고 선망하는 점이 이미 문학적 재능을 소유한 사실이란 걸 잊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