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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심사평

 

<한국의사시인회>
유 담 시인, 김연종 시인, 홍지헌 시인

 

종합심사평 (유 담 시인, 한국의사시인회 초대회장)
 먼저,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보내며, 64명 모든 응모자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의대생들의 시를 대하는 일은 추억 되살아나기 등의 표현만으로는 일컬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각 1편씩 총 3개의 작품만을 선정하는 곤혹이 없었다면 그 즐거움은 더하였을 것이다.
 총 예순 네 편의 응모시를 읽으며 내내 떠오르는 것은 『괴테와의 대화』에 나오는 말이었다. ‘그저 허술한 주관적 감정만을 토로한다고 해서 결코 시인이라 할 수 없다. 이 세상을 제 것으로 만들어 표현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는 바로 진정한 시인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메시지와 이미지와 리듬이 자기사유(自己思惟)의 바다를 헤엄쳐 가로지르며 독창적 비율의 시어(詩語)로 시를 빚어내는 일은 영원히 꿈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져 표현되어진 것을 시라 한다.
 물론, 약간의 허술함이 의과대학생들의 시를 읽는 즐거움을 줄이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시적 감각과 진정성이 풍부한 시의 가능성이 그 허술함을 넉넉히 삭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풍부한 가능성의 성장과 진지한 구현을 기대하며 다시 한 번 축하와 격려를 표한다.
 
심사평 1(홍지헌 시인, 한국의사시인회 이사)
 의대생 신문 문예공모전에 출품된 64편의 시를 읽으며 즐거웠다. 30여 년 전 의대 재학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부에 쫓기면서도 문학반 활동을 계속하였고, 타 대학의 문예부와 교류하던 그 시절은 영원한 추억의 저수지다. 이번에 응모한 작품에서도 나타났듯이, 해도 해도 끝이 없던 공부, 시험, 유급 걱정, 동아리 선배나 고등학교 선배들에게서 기출문제를 받아 공부하던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기억이 난다.
 64편의 시를 검토해 본 결과 힘든 의학 공부를 다룬 시, 부모님에 대한 시,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 가족 이야기, 실습 돌며 목격한 환자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졌고, 시의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시가 눈에 띄어 기뻤다. 세 명의 심사위원이 5편씩 선정하였는데 ‘지점토’ 와 ‘무말랭이’가 심사위원 전원이 공통으로 선정하였다.
 지점토는 시를 시작하고 전개해 가다가 끝맺는 솜씨가 눈길을 끌었다. 지점토를 재미있게 주물럭거리며 자유롭게 작업을 하다가 어느덧 손때가 묻어 색이 검게 변하고 점점 굳어져 돌이 되고, 스스로도 감동을 느낄 수 없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러워 독자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동참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시의 배열도 마치 전체로 공예품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시각적 효과도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의도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시의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좌측에 맞추어 배열했다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무말랭이는 시를 많이 읽고 습작을 많이 해본 솜씨라는 느낌을 준다. 무말랭이 무침을 반찬으로 집어 들며, 고향에 계신, 혹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손가락을 떠올리고, 오독오독 씹으며 할머니의 목소리와 콧등이 매콤 시큰하도록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이 선명한 그림처럼 그려지는 완성도 높은 시다. 작가와 관계없는 일이겠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제목의 안도현 시인의 시가 연상되어 감동을 경감시키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시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
‘ 바람과 나무의 탄식’ 은 제목도 좋고 시의 분위기가 정돈되어 있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심성의 소유자가 썼다고 생각된다. 다만 시를 좀 더 끌고 가는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호흡이 너무 빨리 끝났다는 아쉬움이 있다. 시적 화자가 나무인 이유, 제목에서만 나타난 바람이 내용에 더 보태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짧은 시 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그 외에 눈길을 끄는 작품으로는 실습도중 관찰한, 환자들이 맞고 있는 수액제를 소재로 한 ‘물방울’, 의대생들의 절박한 심리상태를 노래한 ‘버텨라’, 부친에 대한 애틋한 정을 노래한 ‘아빠를 말할 수 있는 것’ 등이 있었다.
의학공부를 하면서도 느꼈겠지만, 문학도 쉬지 않고 정진해야 어느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응모한 모든 의학도들이 문학과 더불어 성장하기를 또한 문학과 함께 행복하기를 기원하다.

 

심사평 2 (김연종 시인, 한국의사시인회 총무)
 <의대생 문예공모전>이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설레었다. 의대생이란 말 속에 포함된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조심스런 마음으로 한편씩 작품을 읽었다. 질병도 세태를 반영하지만 문학도 세상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의학도로서 학업에 대한 고충과 젊은 청춘들의 사랑과 고뇌, 힘든 가족사 등이 주를 이루었다.
 전체적으로 강렬하게 심사위원들의 눈길과 마음을 붙잡은 작품은 적었지만 그 중에서 관심 깊게 본 작품은 <지점토>와 <무말랭이>이었다.
 지점토는 아쉬움과 함께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어렸을 적 누구나 종이 찰흙으로 공예품을 만들며 매우 만족한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한다. 하지만 어느 샌가 세상의 잣대에 맞추어 지점토를 만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얗던 색은 점점 때가 끼어 검게 변해가고 말랑말랑하던 지점토는 점점 굳어 버린다. 사고의 유연성이 사라지고 마침내 딱딱한 돌로 굳어 버린 자신을 보며 한탄한다. “나의 지점토는 돌이 되었다”는 깨달음은 역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여 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적 긴장감, 여운처리, 너무 친절한 설명 등으로 독자들의 상상력까지 독차지한 느낌이다. 詩란 적절한 묘사를 통해 대상과의 교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사고로 사유를 전개하는 노력은 또 다른 가능성으로 비쳐졌다.
 지점토와 똑같은 이유로 선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작품은 무말랭이다.
 처마에 걸린 달을 보다가 시골집 마당 한편에 널브러졌던 무말랭이를 떠올린다. 이어 무말랭이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가락으로 앙상한 등허리로 치환된다. 마침내 무말랭이는 “시큼한 햇볕으로 절여진 짭짤한 목소리”라는 아름다운 시어로 재탄생하게 된다. 신산한 삶의 이력들이 더 있을 것 같지만 서둘러 종결하고 만다. “매콤한 정을 음미하여 꿀꺽 삼킨다.”로 절치부심의 흔적이 엿보이지만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다. 조금 더 노력하면 좋은 시를 쓸 자질이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끌었던 작품은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다.
 새까만 정장과 새하얀 국화를 잘 대비시킴으로서 제목에 대한 효과를 적절히 살렸다. 부모의 영정 사진 앞에서 경건하지 못할 자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부모에게 받은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충분한 애도의 기간을 거친다 하더라도 슬픔은 남아있게 마련이다. 바람과 나무로 대변되는 불효자라면 그 탄식 소리는 더 깊을 수밖에 없다. 비록 소품이긴 하지만 역시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심사위원들의 합의에 이른 작품에 대해서만 간단히 피력해 보았지만 선한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들과의 갭은 크지 않았다. 문학에 관심 있는 의학도가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