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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결여된 의대생의 윤리의식

 

 

※ 해당 글은 기사가 아닌 사설임을 밝힙니다.

 

조선대학교 데이트 폭력 사건은 지난 주 의대생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야깃거리였다. 필자도 기사를 접하고 녹취록을 들으며 소름이 끼쳤다. 여태 살면서 일방적인 폭행 행위를 그렇게 적나라한 모습으로 보거나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초기에 수업시간에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는 피해자의 요구에 대해 ‘연인 사이의 일’이라며 안일한 태도를 보였었다. 하지만 세상에 일이 알려지고 여론의 뭇매를 맞자 부랴부랴 사과문을 내놓는 한편, 가해 학생에 대한 제적 조치를 내렸다. 이렇게 사건이 일단락되었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도 해당 조치가 내려진 이후로 점점 시들시들해져가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그저 하나의 폭력이 가미된 ‘해프닝’으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사회 전체적으로도, 의과대학 내부적으로도 드러난 문제점이 많아 보인다.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어떤 이가 누군가를 때렸다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으니깐 때렸겠지.’라는 추측을 한다. 왠지 모르게 그러한 가정이 인과관계를 만족시켜 우리의 ‘과학적인’ 자세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인식 구조가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게 어려서부터 이러한 상황을 자주 접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서 둘이 사과해.”
“선생님, 저 녀석이 먼저 때렸어요.”
“하지만 너도 때렸잖니? 어서 서로 미안하다고 해.”
“선생님, 저는 계속 맞기만 하다가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도 네가 먼저 기분 나쁘게 하거나 잘못을 했으니깐 널 때렸을 거 아니야?”
“…”
“어서 서로 미안하다고 해.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미안해.”
“나도.”
“그래, 그럼 앞으로 둘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렴.”


허나 이러한 논리를 폭력, 특히 전치 3주짜리 상해를 입힌 어른 세계의 폭력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까?


피해 학생이 직접 작성한 글에 따르면 학장에게 찾아가 가해자와 떨어져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에도 학장은 “둘이 싸운 것 갖고 학교에 왜 그러냐.”며 오히려 짜증을 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동기들 사이에서는 피해자에 관한 질 나쁜 소문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SBS 뉴스 브리핑’에 공개된 가해자 지인과의 짧은 인터뷰만 보더라도 그렇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평소 모습에 관한 질문에 관해 그 지인은 가해자는 원래 이미지가 젠틀하다, 오히려 피해자의 평소 이미지가 더 좋지 않았다고 답변하였다. 이후에 공개된 단체 카톡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을 퍼부으며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내용이 담겨있다. 가부장 사회의 성향이 아직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의학전문대학원과 같은 폐쇄적인 사회에서, 남자가 여자를 때렸다면 ‘여자가 맞을 만한 짓을 했겠지.’라는 논리가 만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 고려대학교 의대생 성추행 사건 때에도 이와 비슷했다.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남학생 3명이 동기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도 의대 교수들 중 일부가 “가해 학생들이 다시 돌아올 친구니 잘해줘라.”라고 말하며 가해자들을 두둔했다. 가해자 부모들은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며 협박까지 하였다. 가해학생 중 한 명은 교내에 피해자의 성생활이 문란했는지에 관한 문항 등이 담긴 설문지를 돌렸다. 피해자는 그 당시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설문지 때문에 ‘전에 학교를 갔을 때 내가 인사해도 애들이 눈도 안 마주치는 등 왕따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작 설문지 하나 때문에 마치 성추행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피해자의 간절한 호소를 무시하고, 가해 학생을 감싸며, 4시간의 폭력 혹은 성추행을 타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게 과연 스승으로서, 동기로서, 같은 의료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태도일까. 두 사건의 사후 이야기들은 의과대학 내의 윤리의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윤리 교육을 더욱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의사국가고시에 윤리 관련 문항 수를 대폭 늘리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표면적인 해결책은 될 수 있겠지만 근본 원인을 뿌리 뽑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점점 더 고도화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한 치라도 더 ‘똑똑한’ 의대생을 배출해내기 위한 의과대학의 노력이 멈추지 않는 한 앞으로 의대생의 윤리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어갈 것이다. 과연 수업 계획서나 시간표에서나 보이는 형식적인 교육, 시험장에서나 마주하는 윤리 상황들이 현실 사회에서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을까에 대해 큰 의구심이 든다.


의대생의 윤리는 어디까지 추락하는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굳이 언급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생명을 지켜야 하는,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도 어떻게든 다시 살려내고자 애써야하는 미래의 의사가 그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에 같은 의대생으로서 수치심을 느끼는 바이다. 이 글을 읽게 될 모든 의대생 독자 분들에게 본인의 윤리의식은 안녕한지 물어보고 싶다.


최상준 조선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총장이 조선대학교 양성평등성상담 사이트에서 상담원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탄식이 절로 나왔다.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의료인 양성이, 인도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인격도약·윤리관·도덕관을 가진 의료인의 양성이 과연 폭력 사건 피해자의 호소에 대한 짜증 및 묵살로 가능한 일인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무시무시한 가정을 하나 해보며 글을 끝마치려 한다. 이번 사건은 동기 연인 사이에서 생긴 일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약 수평 관계가 아니라 수직관계였다면 사건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아니, 이 세상에 공개되긴 하였을까? 분명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혹은 누군가의 용기 부족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한 수많은 ‘조선대’가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이 사건을 어쩌다 일어난 ‘의대 사회의 수치스러운 해프닝’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윤리적 폭력은 그 어떠한 이유를 갖다 대어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의대생신문은 윤리에 어긋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함을 명확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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