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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의사 ‘Dr. Watson’의 A to Z


2012년 실리콘밸리의 투자자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는 “미래에는 의사의 80%가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옛날이라면 코웃음을 치고 넘겼을 발언이지만, 이제 점점 이러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작년 구글의 알파고(Alphago)가 엄청난 주목을 받은 이후, ‘닥터 알파고’에 해당하는 IBM의 왓슨(Watson)이 미래에 의사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년 가천대학교 길병원에 이어 올해 부산대병원에서 왓슨을 도입하며, 더 이상 왓슨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왓슨,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왓슨이 처음부터 ‘닥터 왓슨’으로서 데뷔했던 것은 아니다. 알파고가 바둑을 통해 유명해졌듯이 왓슨은 2011년 <Jeopardy!>라는 퀴즈쇼에서 인간 챔피언을 압도적으로 이기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퀴즈 문제는 컴퓨터 언어가 아닌 사람이 사용하는 ‘자연어’로 출제되었기 때문에, ‘사람처럼 이해’하고, ‘사람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보여준 인공지능 왓슨의 승리는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이후 IBM 왓슨은 암 진단 및 치료법 제시에 도전하겠다고 밝혔고, 방대한 의료 지식을 학습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 IBM은 왓슨이 60만 건의 의학적 근거, 42개의 의학저널과 임상시험 데이터로부터 2백만 쪽 분량의 자료를 학습했다고 발표했다. 왓슨은 세계 최대 사립 암병원인 뉴욕 MSKCC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수련도 받았으며 의사들은 왓슨을 가르치는 데 수천, 수만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방대한 의료 빅데이터를 학습한 왓슨이 미국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다가 최근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불안한 의사들


이러한 인공지능의 의료에의 도입을 보는 시각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섞인 반감을 가진 시각이 많다. MD 앤더슨 암센터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왓슨이 부정확한 치료법을 내어놓은 경우는 2.9%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매일 새로 발표되는 수 백 개의 논문을 읽고 ‘이해하는’ 왓슨의 성능이 점차 개선되면 곧 인간 의사를 훨씬 뛰어넘지 않겠냐는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과거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기계가 인간의 신체한계를 넘어서며 신체를 사용하며 일하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대량으로 잃었듯이, 이제 인간의 두뇌한계를 넘어선 인공지능이 ‘화이트칼라’ 지식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길병원이 지금까지 왓슨을 이용하여 진료한 백여 명의 환자 중 의사와 왓슨의 판단이 다른 경우가 4건 존재했는데, 놀랍게도 이 네 번의 사례에서 환자들은 모두 왓슨의 판단을 따랐다고 한다.

사실 의사가 하는 역할의 상당 부분은 대체될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에 이러한 걱정이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암묵지나 직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데이터나 근거에 기반하여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내리는 진단, 판독 등의 의사결정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공지능이 제시한 치료법 중에 무엇을 선택할 지는 인간의 몫으로 남을 테니,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고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역할까지 인간이 뺏기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점점 의사의 역할을 인공지능에게 내주게 된다면 나중에 의사가 하는 일에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이 커져 가고 있다. 'Swedish Cancer Institute’의 잭 웨스트(Jack West)와 같은 전문가들은 ‘결국에는 왓슨의 권고안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때가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주장한다.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다


지금까지 언급한 시선들은 인공지능을 잠재적으로 ‘의사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의사와 인공지능은 바람직한 협력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적지 않다. 인공지능 의료영상 스타트업 뷰노코리아(VUNO)의 이예하 대표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언제까지나 진단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의사를 도와주는 보조수단으로서 존재할 것입니다”라고 하며, “청진기, 엑스레이로만 진단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CT, MRI 등의 진단법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MRI가 생겼다고 의사가 대체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환자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고 진단이 정확해졌죠. 인공지능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또 다른 새롭고 정확한 진단방법이 등장한 것일 뿐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의사의 진단을 도우며 그 혜택은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왓슨을 인간을 대체할 존재로 보거나 경쟁 구도 양상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서울의대 의학과 김주한 교수는 “물론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더 발달하겠지만, 의료 서비스에서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따라서 의료 분야만큼은 인공지능을 사람의 경쟁상대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IBM 왓슨의 CTO, 롭 하이(Rob High) 조차 “왓슨의 목적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강화하는 것이지 결코 의사결정과정에서 인간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왓슨은 어떤 측면에서 의사와 바람직한 협력관계를 형성하여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될 수 있을까? 한 가지 측면은 왓슨의 방대한 데이터 처리 능력이 의사의 진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뛰어난 인간 의사도 방대한 양의 의료 정보, 쏟아져 나오는 최신 연구 결과들을 모두 소화하고, 진료에 응용하기는 힘들다.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는 데이터가 사이버공간에 범람하는 빅데이터의 시대에, 일반 컴퓨터 2880대에 해당하는 성능을 가진 왓슨을 활용하는 것은 매일 발표되는 최신 연구 결과와 임상데이터를 의료 현장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왓슨은 근거 중심 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을 구현을 도와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IBM 소속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마티 콘(Marty Kohn)은 소수의 정보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닻내림 효과’가 진료실에서 항상 발생하며 의사의 실수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왓슨은 방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단 하나의 답만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가능성 있는 답을 도출해 주기 때문에 이런 실수의 발생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 외에 왓슨이 하루에 수십명을 진료해야 하는 종양내과 의사들의 과중한 업무부담을 줄여 의료의 질 개선에 기여하리라고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만의 ‘왓슨’이 필요하다


왓슨의 유용성에 대한 이야기와 별도로, ‘인공지능 의사 = 왓슨’의 수식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떠오른다. 인공지능 기술을 의학에 적용하는 사례가 IBM말고 국내에서는 없는 것일까. 최근 산업통상부에 의해 서울아산병원은 ‘폐, 간, 심장질환 영상판독 지원을 위한 인공지능 원천기술개발’ 책임기관으로 선정되어 ‘인공지능 의료영상 사업단’을 발족했다. 사업단의 단장 서준범 교수는 “의료에도 주권(主權)이 있다. 외국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기술을 국내에도 도입해 잘 활용하면 안되냐는 발상은 성급하고 위험하다”라고 하며, 국내에서도 독자적으로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플랫폼을 구축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보가 곧 힘이 되는 미래시대에 의료 빅데이터에 대한 국가 간의 경쟁이 심해질 것은 자명해 보인다. 국내 환자들의 의료데이터를 지키고 미래 의료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정부, 학계, 연구 분야가 협력하여 제 2의 ‘닥터 왓슨’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뇨기과 의사 신태영 교수는 인공지능 왓슨이 국내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며 “나는 더 이상 국내 병원에서 왓슨 도입 기사를 보고 싶지 않다. 늦었더라도 국내 기업에서 왓슨에 버금가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완성했다는 기사가 훨씬 기다려진다.”라고 남겼다.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암 분야의 왓슨 말고도 의학의 여러 다른 분야로 인공지능은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 의대생들이 미래에 의사가 되었을 때 인공지능과 어떤 방식으로든 큰 영향을 주고받을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 윗세대는 인공지능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고 은퇴해버리고 우리 아래 세대는 달라진 인공지능 의료 시대의 교육을 제대로 받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이에 낀 불운한 ‘과거의 교육을 받고 미래를 살아가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의료인으로서 당당히 의료계를 이끌고 미래를 개척해나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의학의 모든 영역의 어제 나온 논문까지 모두 검색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간 의사를 뛰어넘는 분석능력을 가지게 되더라도, 인공지능이 활용하는 재료가 되는 새로운 의학지식을 연구 및 생산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다. 연세의대 전우택 교수는 “미래 의사는 완전히 두 종류의 직종으로 나뉠 것임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이 지시하는 대로 환자에게 진료를 제공하는 의사 집단과 그 인공지능에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입력시키는 의사 집단”이라고 예측했다. 제대로 된 좋은 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 능력과 더불어, 인간 대 인간으로 환자를 대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필요하다. 미래의료학자 최윤섭 박사는 “연구에 따르면 종양내과 의사는 평생 2만 명의 환자에게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의대에서는 환자에게 이를 어떤 방식으로 전해야 할지는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기계 의사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 의사에게 인간적인 측면이 더 강조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적었다. 질병과 죽음을 마주하고 나약해질 수 있는 환자의 불안한 심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지금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왓슨을 대표로 하는 인공지능 때문에 의사의 역할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지금과 달라질 것임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남을 인간의 고유한 역할, 그리고 인공지능의 활용으로 인해 새롭게 생겨날 역할이 무엇일지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에 의해 달라지는 이러한 미래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미래인 의료인인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선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기계와 함께 달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김경훈 기자/울산

<gutdoktor@naver.com>

예과에서 본과로! 본과에서의 첫 한 달 적응기

- 예과생이었던 기자가 경험한 골학부터 시작된 본과 생활...


처음 본과 1학년이 되었을 때는 진짜 의학을 배운다는 설렘과 내가 잘 해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공존했다. 주변에서 본과 1학년이 가장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예과 2년간 공부랑은 담을 쌓고 살아왔기 때문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약 한 달간의 본과 생활을 겪어보면서, 이제부터 본과 새내기로서 느낀 점들과 일련의 생각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본과를 겪은, 혹은 겪고 있는 분들에게는 지나간 추억일 것이고 아직 본과에 올라오지 않은 예과 학생들에게는 머나먼 일이겠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본과생활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1) 골학


보통 대부분의 학교에서 본과 1학년 들어가기 직전 겨울방학에 골학을 실시할 것이다. 학교마다 골학을 하는 방식은 다를텐데, 뼈의 구조, 기능 등에 대해 짧지만 방대한 내용을 배우는 것은 어느 학교나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갑자기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면 힘들겠지만, 나는 결론적으로는 골학을 대충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이유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공부습관 길들이기다. 해부학을 시작하면 매일 타이트하고 반복적인 스케쥴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런 예전과 무지 다르고 힘든 환경이기 때문에 적응할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골학 기간에 공부하는 연습을 한다면 해부학 수업 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둘째, 빠른 이해를 위해서다. 경우마다 다른데 어떤 교수님들은 골학 때 배운 내용이면 당연히 안다고 전제하시고 수업을 진행하신다. 이 때 내용을 잘 모른다면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셋째, 선배님들과의 교류이다. 보통 다른 학년 선배님들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골학 때는 며칠동안 선배님들과 지내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친하게 지낼 기회가 있다. 그렇기에 힘들겠지만 골학을 열심히 하는 것을 추천한다.

 

2) 인간은 적응의 동물


어떤 학생은 바쁜 예과 생활을, 또 어떤 학생은 상대적으로 널널한 예과 생활을 보냈을 것이다. 이외에도 편입을 통해 본과로 진입하거나,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본과진입을 한 사람들도 각자의 생활을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렇게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본과로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고등학생 때 이후로 겪어보지 못했을 엄청나게 바쁜 공부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일반적인 대학생들은 공부를 하면서도 본인의 여가나 취미를 즐길 시간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본과에 진입하는 동시에 최소로 줄여나가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 의대 특성상 한 과목이라도 F가 있으면 학년을 다시 다녀야하는 유급이라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이 ‘유급’이라는 시스템을 피하기 위해 각자 발버둥 친다. 그래서 아침 일찍 시작하여 오후, 심지어 늦은 밤까지 해부실습을 하는 빡빡한 시간표에 맞추기 위해 부지런해진다. 늦잠을 즐기던 사람들도 일찍 일어나고,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꾸준히 공부를 한다. 특히 해부실습 기간이라면 실습과 공부를 병행하는 스케쥴을 소화해야하는데, 정말 힘든 스케쥴이지만 다들 어떻게든 적응하며 산다. 아직 겪어보진 못했지만 선배들 말씀으로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바쁜 때라하니 나도 어떻게든 적응해서 여름을 맞이해야겠다.


3) 해부실습


학교마다 교육과정은 다르겠지만 보통 해부학을 통해 의학교육의 첫 걸음을 뗄 것이다. 해부 실습이란 말 그대로 진짜 사람을 해부하면서 몸의 구조에 대해 배우는 교과목이다. 의대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과목이 해부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부학은 상징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부학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 역시 그래왔고, 그래서인지 본과 진입 직전에는 내가 직접 사람을 해부해야한다는 생각에 막연하게 무서운 느낌이 많이 들었었다. 그러다 실습 첫날이 되었고, 내가 느껴왔던 무서움은 고인이 들어가 계신 실습용 철제 관을 열기위해 손잡이를 잡는 순간에 극에 달했다.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열고 직접 마주했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다. 진짜 의사로 되는 길에 들어선다는 생각에 무척 떨렸기도 했고, 내 앞에 사람이 있다는 무서움, 이외에도 피해가 되지 않게 해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첫 해부를 끝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해부를 하면서 또 다른 난관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난관은 바로 실습실에 가득 찬 포르말린 냄새이다. 실습실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밖에 나와서 보니 입고 있는 옷에 실습실의 냄새가 그대로 배어있었고, 이것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겠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 해부를 겪어보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해부실습을 하는 자체와 더불어 실습실의 냄새가 생각보다 강렬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4) 반복된 무기력감


앞서 언급했듯이 본과 1학년, 특히 해부실습 기간에는 정말 생활이 반복적이다. 일어나서 수업을 듣고 해부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서인지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새로운 일들뿐만 아니라 기존에 하던 일들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평소 같았으면 매일 하던 일들이 지친 몸과 마음 탓에 귀찮게 다가오기도 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 집안일 등의 빈도가 점점 줄어들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정말 힘들겠지만 이 때를 잘 넘긴다면 다시 재미있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지금 해부를 하는 나와 다른 본과 1학년 학생들에게 힘을 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양은건 기자/가천

<dmsrjs7835@naver.com>



대통령 박근혜의 파면 그리고 그 이후의 대한민국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 재판소에서 제 18대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파면을 선고하였다. 2016년 12월 9일 탄핵소추안 표결 통과 이후 92일만의 일이다.


엇갈린 희비…


3월 10일 오전 11시, 국민들은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탄핵심판 결정문을 읽는 모습을 TV나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11시 21분에 그가 결정문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를 읽는 순간 가슴을 졸이던 많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나 수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승리의 날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축하겠다’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를 기뻐하는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같은 시각 이를 축하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다. 근 두 달여간 박근혜대통령의 탄핵 기각 시위를 하던 태극기 집회의 참가자들이다. 이들은 탄핵이 결정되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앞에서 태극기 집회를 재개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역사적인 순간에 국민들 간의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안타까운 사망자


10일의 태극기 집회 도중 안타까운 비극이 발생했다.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2명은 당일 태극기 집회 도중에, 다른 한 명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11일 오전 사망하였다. 3명 중 두 명은 집회 도중 갑자기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은 시위대 중 한 명이 경찰 버스를 탈취해 경찰 차벽을 들이받으려다 충돌한 경찰 소음관리차량에서 떨어진 대형 스피커에 깔려 인근 병원으로 수송되었다. 경찰은 경찰 버스를 운전했던 용의자를 내부수배해 체포하였고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는 이미 사망하였고 파면 선고가 난 축제의 날,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시위 기간 중 타인에 의해 사망한 유일한 희생자가 나왔다.

하지만 이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와 같은 반응들도 있었다. 그의 사망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태극기 집회에 나가서 그렇게 된 것이니 자업자득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온전하게 애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연세대학교 정신의학과 신의진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전 국민이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빠진 상황이라고 진단하였다. 국민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 분열된 집회 등으로 인한 분열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탄핵기간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국가 비밀을 누출했다는 점 등이 밝혀지고, 이를 조사하고자 하는 검찰과 특검에도 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이 분노하였다. 이는 겨울 한파에도 끊이지 않고 장장 19차까지 이어진 촛불집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분노가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까지 이어진 것이겠지만, 우리 국민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분노했고, 너무나도 오랫동안 누군가를 미워해왔다. 앞으로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와버린 대선을 맞이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과한 분노와 미움은 독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까지 길고 긴 여정이었지만 앞으로 갈 길은 그것보다 훨씬 길고 험난한 여정이다. 분노로 가득 차있던 대한민국을 도닥이고 마음을 잘 추슬러 우리 앞에 당면한 다음 과제에 다시 집중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촛불집회의 뜨거운 열기가 따뜻한 온기로 바뀌어, 미워하는 사람이었더라도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허재영 기자/인제

<blissbliss123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