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내게도 주치의가 생길까
주치의 제도가 일반화 된 선진국들… 한국엔 무성한 소문만 흐를 뿐
“관행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죠. 오래 되어서 수정하고 발전시켜야 될 관행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들이 너무 오랫동안 고착되어 있으면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그 관행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그것이 바람직한 건지 여부를 떠나서 그것을 바꾸기를 꺼리는 경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인터뷰 시작 전부터, 하는 중에도, 그리고 끝나고 나서도 이재호 교수는 이 점을 강조 했다. 과연 우리는 기존의 관행에 대해 얼마나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고 수용하고 있을까? 특히, ‘주치의’가 없는 한국 의료계에 대해서는 어떨까?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가정의학과 부교수이자, 대한가정의학회 정책이사, 일차의료연구회 회장, 이재호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 일차의료, 현 주소는?
1978년 9월, 소련의 알마아타에 139개국 대표 등이 모여 ‘일차보건의료 선언’이 이루어졌다. 보건의료의 형평성 문제 해결을 위하여, WHO에서 전 인류를 위한 보건의료의 새로운 접근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기존의 ‘일차진료’에서, 환자는 질병을 인식했을 때 전문의를 찾아가 진료를 받았다. 환자는 수동적으로 시술받았고, 치료가 끝나면 다시 질병이 생기기 전까지 의료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일차보건의료’에서는 질병이 아닌, 건강이 초점이다. 보건 의료인으로 구성된 그룹이 한 환자를 지속적이고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 체계의 수준을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생각해 보자. 일차진료를 1단계, 일차보건의료를 10단계라고 둔다. 일차진료 보다도 더 낮은 단계가 ‘Vertical Programmes’으로, 의사 수나 보건 의료인도 매우 부족한 오지 등의 의료 상태이다. 일차보건의료 조금 전 단계로는 COPC(Community Oriented Primary Care, 지역사회중심일차의료)가 있다.
그렇다면 이 스펙트럼에서 한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일차진료에서 한두 걸음 정도 나아갔을까?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 의과대학 부속 병원은 있다. 하지만 의과대학 부속 일차의료 기관은 없다. 우리나라가 의료 시스템을 해방 이후 계속 민간 부문에 맡겨놓고,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면이다.
“주치의 등록제는 일차진료에서 일차보건의료로 나아가는, 상당히 획기적이고 중요한, 뼈대와 같은 제도라고 할 수 있어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많은 선진국에서 주치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주치의 등록제는 어느 정도 논의 되고 있을까?
“논란은 있지만 추진되는 모습은 전혀 없어요.”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주치의 등록제를 실시하면 개원의들이 힘들어진다, 환자의 등록비는 적지만 의사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도 많지 않다, 등록 환자 수도 2500명으로 제한되는데 한국의 낮은 수가에서 환자수도 제한되면 수입이 적어진다, 등록 환자에 대해서는 24시간 전화 상담을 해 주어야 하고 환자가 부르면 가정방문도 해야 한다, 한국 의사 중 90%가 전문의이지만, 전문의는 주치의가 될 수 없다.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주치의 등록제에 관한 무성한 소문들의 일부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 불합리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질문 했을 때, 대답은 간단했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1996년 보건 복지부의 한 부서에서 주치의 등록제에 관한 안을 내어 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제시된 것이 2만원의 환자 등록비와 2%의 의사 인센티브였다. 현재 주치의 등록제에 대해 찬성입장을 보이는 가정의학회도 그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즉, 지금 논의 되고 있는 주치의 등록제와는 차이가 있었다.
등록 환자수를 2500명으로 제한한다는 이야기는 뉴스 등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 속에서 환자수를 2500명으로 제한하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은 이 교수도 동의했다. 행위별 수가제와 인두제(환자 1인당 정해진 일정액을 받음), 그리고 PFP(Pay For Performance, 성과급제) 등이 섞인 새로운 제도가 필요할 것이라 지적했다.
“그런 직업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죠.” 주치의가 직접 24시간 전화 상담을 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런 걱정들이 다, 기존의 관행에 익숙해져 있는 나머지 일단 먼저 거부감이 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2020년, 내겐 주치의가 생길까
1998년 프랑스에서 주치의 등록제를 위한 시도가 있었다. Referring Doctor System이라는 이 제도는 프랑스 일반의 협회(MG 프랑스)와 건강보험 간의 국가 협약을 통해 도입되었다. 희망하는 일반의로 주치의를 한정하였고, 환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
MG 프랑스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이 제도는 결국 10%의 일반의와 1%의 환자만이 참여하는 저조한 기록을 남기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국민의 낮은 인식도와 전문의들의 반대에 부딪친 것이다. 주치의 등록제 시행에 있어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의료인들의 동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사례이다.
한국의 주치의 등록제를 위해 대한가정의학회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고, 보건 복지부의 한 부서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조금 부족하죠. 정치 지도자의 의지표명, 적어도 보건 복지부 장관 선에서의 추진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현재 집권 여당은 주치의 등록제에 관한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다. 2020년, 우린 주치의를 가지게 될까.
이재호 교수는 약간 안타깝다는 듯이 이야기 했다.
“장담하기 힘들죠.”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
'73호(2010.03.02.) > 커버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격의료를 둘러싼 공방, 급한 정부 ‘체할라’ (0) | 2010.05.05 |
---|---|
첨단의료기술, 축복인가 재앙인가 (0) | 2010.05.05 |
의사는 로봇처럼, 로봇은 의사처럼 (0) | 2010.05.05 |
의료분쟁법 개정, 국회 본회의 상정 앞두고 논의 활발 (0) | 2010.05.05 |
미래의 의료환경, 어떻게 달라질까 (1) | 2010.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