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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펜을 들다

73호(2010.03.02.)/의대의대생 2010. 5. 5. 12:25 Posted by mednews

수(秀)상한 의대생 1회

 시간이 흐를수록 homogeneous(균질, 동일)해져 가는 우리들. 하지만 남다른 생각으로 자신의 끼와 재능을 펼치는 heterogeneous한 의대생들도 강의실에 존재합니다. 2010년, 의대생 신문이 6회에 걸쳐 빼어난(秀) 재능과 남다른 생각을 가진 그들을 지면에 소개합니다. 이름하여 수(秀)상한 의대생! 그들의 생각의 좌표를 함께 따라가 봅시다.

의대생, 펜을 들다

서정문학 등단 시인, 의대생 홍정표씨와의 만남



 작가 안톤 체호프, A.J 크로닌, 서머싯 몸. 이들의 공통점은?
 해답은 세 작가의 프로필 속에 있다. 이들 세 작가는 모두 대학시절 의학을 전공한 ‘의학도’였다. 의학교를 졸업하고 면허를 얻지만 작가수업을 위해 의업을 포기한 서머싯 몸. 학부 졸업 후 군의관을 거쳐 개업의로 활동한 ‘크로닌’. 이들이 의사로 활동한 경력은 제각기 다르지만 의학을 전공한 후 작가활동을 했다는 점은 모두 동일하다.  
 21세기 한국으로 시간을 옮겨와 보자. 한국의 의학도 중에도 특별히 문학에 조예가 깊은 이들이 존재한다. 제4회 의대생 문예대회에서 시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문예지 『서정문학』에 등단한 서울대 의예과 2학년 홍정표씨도 그중의 한 명이다.

20살, 대학 초년생

 입춘이 지났는데도 추위는 여전했던 2월의 어느 날, 홍정표 학생을 만났다. 학교 밴드에서 베이스를, 오케스트라에서 트럼본을 하고 있다는 그는 공연 준비로 바쁜 방학을 보냈다고 했다. “중학교 즈음부터 의대에 가고 싶었어요. 정신과 쪽에 관심이 많아 한때는 심리학과에 갈까 고민하다가 정신의학을 배워보고 싶어 의대에 가는 길을 선택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문예대회에 참여할 정도로 문과적 재능이 있었지만 ‘수학을 잘 하는 죄’로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고 의대에 진학했다. 작년에 들었던 수업 중 공연 관람 티켓을 보여주면 출석을 인정해주는 ‘국악수업’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웃는 그는 여느 대학 초년생과 다를 바 없었다.

또 다른 축, 시인 



 그는 보통 대학생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시인'으로 등단한 것. 문예창작과 학생들에게도 등단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정통 작가수업을 받지 않은 19살의 의대생이 문예지에 시인으로 등단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 글을 잘 쓰는 걸 보니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나 봐요. 언제부터 글을 썼나요?
 시나 단편소설을 주로 읽어요. 장편 소설 같은 긴 호흡의 글은 잘 따라가지 못하는 편이에요. 글쓰기는 중학교 때부터 관심을 가졌어요. 중·고등학교 때 문과 지망생들을 위한 문예대회에 참가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작년 2학기부터 입니다.

- 문예지에 등단했다고 들었습니다. 등단과정과 등단한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작년 2학기 중에 문예지 ‘서정문학’에서 공모전이 있어 참가했습니다. 11월 말 당선을 확인했고 올해부터 2달에 3편 작품씩 내야 해요. 며칠 전에 서정문학 1, 2월호에 실릴 작품을 제출했구요, 책은 대형서점에 가면 찾아볼 수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인을 전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다른 생활이 있어야 더 풍부한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의대에 진학했어요. 그리고 학생 신분으로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 문예지에 등단했구요.

- 본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인가요?
 음. 주된 동기는 ‘감정의 우회적 표출욕구’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시가 내면의 에너지를 폭력적이거나 회의적이지 않게 흘려내고 기억하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서요.

 그는 시를 쓰기 위한 영감이나 소재는 집에서 학교를 오고가는 시간에 주로 떠올린다.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꼼꼼히 메모해 두고 밤 시간을 이용해 시를 쓴다고. “마음속에 삭힌 이야기들을 우회적으로 시에 풀어내는 경우가 많아요. 소재를 제 외부에서 찾더라도 제 생각과 관점이 들어가야 시가 써져요.” 학업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질문에 ‘시를 쓰며 공부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것 같다’고 웃으며 ‘시 쓰기는 재밌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기자가 자기만의 시 쓰기 비법이 있냐는 우문을 던지자 현답이 돌아왔다. “당장은 외면 받더라도 실험적인 작품을 쓰려고 해요. 그리고 항상 제가 쓴 시들에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사와 시인, 두 가지 미래      

 
 요즘에는 학문 간 통섭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의사와 시인이라는 다른 영역에 속한 두 직업 세계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 궁금해졌다. “제 정체성은 의학도에 가까워요. 의사가 밥이면 시인은 양념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되어 진료를 하면서 생기는 애환들을 시에 담으려구요.” 그는 선행을 베푸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그리고 그 때까지 시 쓰기를 계속 할 거라 답했다.  
 홍정표 학생은 의사와 시인이 아닌 제 3의 미래도 준비하고 있다. 책을 보며 시나리오 작법을 독학한다는 그는 아직 완성된 작품은 없지만 몇 개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등단을 준비하는 다른 의대생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공모전에서 신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실험적인 작품 혹은 고전적이지만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해요. 둘 중 하나를 택해 파고들어 보세요. 서점에 가면 ‘2010 신춘문예 당선집’이 있어요. 이런 책을 읽으며 최신 경향을 익혀야 함을 물론이구요.”

 의사로 사회화 되면서 의대생들은 자기 본래의 관심사와 흥밋거리를 조금씩 잃어가곤 한다. 하얀 가운이 의사의 상징이라지만 가운을 입은 의사의 정서까지 하얗게 메말라 있다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재밌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자신의 재능을 자유자재로 활용 할 줄 아는 의대생 홍정표씨, 그의 비상(飛上)을 빈다.

이예나 기자/순천향 
<lyna@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