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의사는 로봇처럼, 로봇은 의사처럼

컴퓨터의 ‘진단’과 의료분야의 ‘초전문화’



 현미경과 항생제, 마취가 발견된 지 100년 남짓, 현대의학은 지난 수천 년 간 인류를 보살펴왔던 전통의학을 거의 모두 대체했다. 또 정보기술이 현대적 의료에 도입된 지 불과 40년도 안되어, 이미 컴퓨터가 없는 병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혈액검사, 영상검사 등 진단에 사용되는 각종 검사와 그 데이터의 처리, 외과적 시술과 환자의 관리까지 컴퓨터나 로봇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영역은 거의 남지 않았다.
 한 가지 인간의 성역처럼 남아있는 분야가 있다면 바로 ‘진단’이다. 검사와 시술은 컴퓨터와 로봇이 한다고 해도,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술을 지시하기까지의 중간과정, 진단은 인간 의사의 몫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의 진단능력은 컴퓨터 보다 뛰어날까?
 스웨덴 룬트대학교와 랄스 에덴브란트 교수는 이미 15년 전에 그런 의문을 품었다. 그가 5년간 개발한 인공지능시스템과 관상동맥전문의 한스 오린은 2,240건의 똑같은 심전도를 판독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오린이 620건을 맞춘 반면 컴퓨터는 738건을 맞추어, 심전도 진단에 있어서 20% 이상의 정확도를 보여주었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컴퓨터는 진단에 필요한 각종 요소들을 똑같은 크기로 판단하는 반면, 인간은 선입견과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 해 각각의 인자들을 같은 크기로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장점이라고도 생각될 수 있는 ‘직감’조차 정확한 진단을 방해하는 요소로 평가되었다.
 심전도뿐만이 아니다. 병리조직의 진단은 이미 컴퓨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 흉부 엑스레이, 핵의학 사진 등 영상소견을 판독하는 시스템도 고안이 되었으며, 심지어 맹장염, 치매, 성병, 정신과적 응급상태까지 진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개발되었다.

로봇이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한 편, 의사의 역할은 점점 기계화되고 있다


 컴퓨터와 로봇이 인간 의사의 역할을 점점 잠식하는 반면, 의사와 병원은 점점 기계화 되고 있다. 100년전 만 해도 전문의의 개념조차 없고 모든 의사가 일반 의사였지만, 지금은 전문의 중에서도 세부 전공이 있고, 세부 전공 안에서도 특정 진료만 맡고 있다. 세부 전공이 호흡기인 내과 전문의가 천식 환자만을 치료하는 식이다.
 토론토의 숄다이스 병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초전문화’가 실현된 병원이다.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12명의 의사는 오로지 탈장수술만을 시술한다. 시술 횟수만 일인당 평균 연 800회. 다른 병원에서 평균 90분이 소요되고 10이상의 재발율을 보이는 탈장수술은 이 병원에서는 1%의 재발율로 30분 만에 해결된다.
 이 병원은 수술실의 구조, 식당의 위치 등 병원의 구조도 탈장수술과 환자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이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의사들은 4년간의 레지던트과정을 밟지 않았다. 하지만 탈장수술 만큼은 어떤 외과 전문의보다 잘 할 수 있다. 병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공장이고, 의사라기보다는 기계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초전문화’병원은 없지만, 가까운 예로는 심장질환만을 다루는 세종병원이 있다.
 로봇은 의사의 역할을 점차 대체하고, 의사는 고도의 전문화를 통해 기계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로봇과 인간이 다를 바가 없는 영화 ‘스타워즈’ 같은 세상이 오지 않는 한 ‘스타워즈’ 속 아미달라 여왕의 분만실처럼 사람이 없는 분만실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학이 나타나기 수천년 전부터 환자가 의사에게 바라는 것, 의사-환자관계 만큼은 아직 영혼이 없는 기계에게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김민재 기자/순천향
<editor@e-mednews.com>

※ 참고문헌_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아툴 가완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