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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법 개정, 국회 본회의 상정 앞두고 논의 활발

입증책임 전환 백지화 가능성… 의료인에게만 유리한 법 될 우려

 ▲ 보호자의 출입이 제한된 구역, 분쟁 해결의 단초가 되는 정보에 환자측이 접근하기란 사실상 힘들다

 최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법)안’에 의료계와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의료분쟁 관련 법 개정에 대한 논의는 20여 년 전부터 있었지만 그동안 이해당사자의 입장 충돌이나 예산 문제, 국회 임기 종료 등 여러 이유로 흐지부지되어 왔다. 이번 법안은 작년 말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통과하고 최근 국회 본회의 의결이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점차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의료분쟁법을 둘러싼 소용돌이의 핵심을 차지하던 입증책임 전환 조항이 빠지면서 반쪽자리 법안이 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 ‘입증책임 전환’, Why or Why Not?

 민사소송의 일반적인 원칙에 따르면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이 상대측의 과실을 입증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의료분쟁에 있어서 일반인의 상식으로 의사의 진료과정 상에 과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매우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의료와 같이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의사가 본인의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입증책임 전환이라고 한다.
 입증책임 전환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의료가 행해지는 환경이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등 접근이 제한된 곳으로서 환자나 보호자가 정황을 잘 알기 어렵고, 진료기록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아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환자 측은 정보의 절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쟁점이 되는 의료상황에 대해 의무기록을 취득하더라도 용어 하나하나부터 자료해석, 판독 등 모든 요소가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에서 일반인이 전문가인 의사를 상대로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전문분야라는 이유만으로 민사소송법의 일반적 원칙에서 예외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나, 입증책임을 전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별로 없다는 무용론도 있다. 또, 현실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입증책임을 의사가 떠맡게 되면 환자 측이 고소를 남발하게 되고 환자-의사 관계가 더 불안정해지는 점, 의료행위 자체에 내포된 위험으로 인해 의료인이 고위험 의료행위나 진료과를 기피하게 되고 소신 진료를 하지 못하게 되는 점, 의료인의 위험부담 증가에 따른 의료비용 상승 등 여러 문제점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앙꼬 없는 찐빵, 안 먹느니만 못해?
입증책임 전환 빠진 의료분쟁법안, 역효과 우려

 판례상으로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의사가 입증책임을 지도록 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아직 이 문제에 관해 명시된 법률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 정황이나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그때그때 입증책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수준이다. 이번에 발의된 의료분쟁법안의 초안에는,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요구하는 판례가 최근 늘어나는 추세임을 반영하듯 입증책임 전환을 규정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후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신설하여 정보약자인 환자를 돕기로 하면서 입증책임 전환은 백지화된 것이다.
 입증책임 전환과 함께 보건의료인에 대해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는 형사처벌 특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을 시행하여 의료인의 책임도 분명히 하고 안정적인 의료 환경도 조성하려던 것이 당초의 입법 취지였으나, 입증책임 전환이 빠지자 이제는 오히려 의사들의 책임이나 진실은 불분명하게 하고 환자 측에는 합의나 국가 차원의 보상만을 선택지로 제시하여 의사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법안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환자와 의사의 입증책임 분배, 어떻게 흘러갈까?

 법률적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닮은 부분이 많은 독일이나 일본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의료분쟁에서의 입증책임 분배 문제에 대해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한 상태이다. 의료채무는 결과채무가 아닌 수단채무라는 점이나 의료의 고도전문성 등 의료 자체가 가지는 여러 가지 특수성, 의료 현실을 둘러싼 현실적 여건들, 입증책임 분배의 형평에 관한 법리적 고려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 문제는 단순히 민사소송의 일반적 원칙만 따를 일은 아니라는 의견이 점차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기존에는 소송법에 따라 환자 측이 의사의 진료상의 과실을 입증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과실과 발생된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입증해야 했다. 그에 비해 독일 라이히법원과 연방대법원, 우리나라 대법원의 최근 판례를 보면, 의사의 의료행위에 상식적 차원에서 과실이 있었고 그 의료행위 이후에 환자의 신체에 나쁜 결과가 발생했을 경우 피고인 의사가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것으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최성욱 기자/울산
<palpitation@e-mednews.com>

1)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2) 의사의 진료행위는 질병의 완치와 같은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치유를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현재의 의학 수준에 비추어 필요하고 적절한 진료조치를 다해야 할 책임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