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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의료기술, 축복인가 재앙인가

▲ 프렌드 박사팀이 개발한 마이크로 혈관 로봇 설계도

 새로운 핸드폰이 나오면 그것에 적응해야 하듯 앞으로는 매일 쏟아져 나오는 첨단의료기술들을 배우고 적응하는데 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몇 가지에 불과했던 암표지자나 혈액검사 항목들이 수백 개로 늘어나 많은 검사결과들을 해석하는데 적잖은 혼란과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최고의 치료법으로 여겨졌던 방법들이 더 좋은 기술들로 대체되어 현재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는 치료법들은 더 이상 어느 곳에서도 시행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좁아진 관상동맥질환의 치료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은 카테터를 이용한 스텐트 삽입이다. 그러나 이제 곧 스텐트가 아닌 마이크로 로봇이 직접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며 혈관 속 죽상경화반(athero-sclerosis)을 청소하고 다닐 수도 있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나 이미 지난 1월 20일 호주 모나쉬(Monash)대학 나노물리학 연구실 제임스 프렌드(Friend) 박사팀은 원격조종으로 혈관 속을 누비고 다니며 필요하면 간단한 수술도 수행할 수 있는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로봇의 크기는 직경이 약 0.25mm, 머리카락 2~3개 굵기에 불과해 혈관 속을 다니기에 충분히 작다. 이제 막힌 동맥을 뚫기 위한 스텐트 삽입은 주사로 마이크로 로봇을 주입하는 시술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가 다른 분야에 비해 매우 앞서 나가고 있는 로봇수술분야도 괄목할 발전을 이루고 있다. 올 4월부터는 3D영화처럼 3차원 입체영상을 보면서 수술이 가능한 수술 시스템이 도입된다. 로봇 종류도 다빈치 이외에 무릎 관절 수술시 뼈를 가공하는 로보닥(ROBODOC), 신경과 척추수술 보조용으로 개발된 벡터비전(Vector Vision), 뇌수술 보조용 로봇인 뉴로메이트(NeuroMate), 안면이나 뇌와 같이 초정밀 위치제어를 할 수 있는 램스(RAMS) 등 여러 가지가 개발되어 환자치료에 이용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비뇨기과나 산부인과 같이 제한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점차 흉부외과, 신경외과, 이비인후과로 그 이용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다. 가까운 미래에 로봇수술이 바다 한가운데, 혹은 산간 오지나 섬마을과 같은 곳에 설치되어 이제까지 공간적 제약 때문에 치료 받지 못했던 환자들을 원격진료로 살리는 날이 올 것이다.
더욱 놀라운 기술은 의사의 감각과 노하우를 모방하여 병을 진단하는 ‘인공지능 주치의’의 등장이다. 수많은 진단학적 알고리즘과 인간보다 더 정확한 센서를 통해 병을 감지해내고 진단해내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발명된다면 한 미국의 의료산업 투자 애널리스트가 쓴 책의 제목처럼 지구상에서 의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현재 몇 가지 질병들에 대해서는 조기진단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있어 환자의 나이와 성별, 주소와 증상, 가지고 있는 위험요인 등을 체크하면 그 질환에 걸릴 확률이 정확히 계산되어 나온다.
 현재의 한국의사는 좁은 의료시장에서 서로 경쟁하고 다투고 있지만, 미래의 한국의사는 다른 나라 의사들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첨단기술과 접목된 의료기술과도 경쟁해야만 한다. 첨단의료기술은 분명 미래의 의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나 현재 우리의 의학교육현장은 이런 최첨단기술이 어떤 식으로 의료계를 변화시킬지에 대해 아무런 교육도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 지금부터 장차 어떤 모습의 의사가 될 것인지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의사가 원하는 대로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원하는 대로 환자를 보게 되는 의료계의 '디스토피아'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한혜영 기자/이화
<hang2v01@e-mednews.com>


 

의사는 로봇처럼, 로봇은 의사처럼

컴퓨터의 ‘진단’과 의료분야의 ‘초전문화’



 현미경과 항생제, 마취가 발견된 지 100년 남짓, 현대의학은 지난 수천 년 간 인류를 보살펴왔던 전통의학을 거의 모두 대체했다. 또 정보기술이 현대적 의료에 도입된 지 불과 40년도 안되어, 이미 컴퓨터가 없는 병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혈액검사, 영상검사 등 진단에 사용되는 각종 검사와 그 데이터의 처리, 외과적 시술과 환자의 관리까지 컴퓨터나 로봇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영역은 거의 남지 않았다.
 한 가지 인간의 성역처럼 남아있는 분야가 있다면 바로 ‘진단’이다. 검사와 시술은 컴퓨터와 로봇이 한다고 해도,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술을 지시하기까지의 중간과정, 진단은 인간 의사의 몫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의 진단능력은 컴퓨터 보다 뛰어날까?
 스웨덴 룬트대학교와 랄스 에덴브란트 교수는 이미 15년 전에 그런 의문을 품었다. 그가 5년간 개발한 인공지능시스템과 관상동맥전문의 한스 오린은 2,240건의 똑같은 심전도를 판독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오린이 620건을 맞춘 반면 컴퓨터는 738건을 맞추어, 심전도 진단에 있어서 20% 이상의 정확도를 보여주었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컴퓨터는 진단에 필요한 각종 요소들을 똑같은 크기로 판단하는 반면, 인간은 선입견과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 해 각각의 인자들을 같은 크기로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장점이라고도 생각될 수 있는 ‘직감’조차 정확한 진단을 방해하는 요소로 평가되었다.
 심전도뿐만이 아니다. 병리조직의 진단은 이미 컴퓨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 흉부 엑스레이, 핵의학 사진 등 영상소견을 판독하는 시스템도 고안이 되었으며, 심지어 맹장염, 치매, 성병, 정신과적 응급상태까지 진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개발되었다.

로봇이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한 편, 의사의 역할은 점점 기계화되고 있다


 컴퓨터와 로봇이 인간 의사의 역할을 점점 잠식하는 반면, 의사와 병원은 점점 기계화 되고 있다. 100년전 만 해도 전문의의 개념조차 없고 모든 의사가 일반 의사였지만, 지금은 전문의 중에서도 세부 전공이 있고, 세부 전공 안에서도 특정 진료만 맡고 있다. 세부 전공이 호흡기인 내과 전문의가 천식 환자만을 치료하는 식이다.
 토론토의 숄다이스 병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초전문화’가 실현된 병원이다.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12명의 의사는 오로지 탈장수술만을 시술한다. 시술 횟수만 일인당 평균 연 800회. 다른 병원에서 평균 90분이 소요되고 10이상의 재발율을 보이는 탈장수술은 이 병원에서는 1%의 재발율로 30분 만에 해결된다.
 이 병원은 수술실의 구조, 식당의 위치 등 병원의 구조도 탈장수술과 환자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이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의사들은 4년간의 레지던트과정을 밟지 않았다. 하지만 탈장수술 만큼은 어떤 외과 전문의보다 잘 할 수 있다. 병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공장이고, 의사라기보다는 기계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초전문화’병원은 없지만, 가까운 예로는 심장질환만을 다루는 세종병원이 있다.
 로봇은 의사의 역할을 점차 대체하고, 의사는 고도의 전문화를 통해 기계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로봇과 인간이 다를 바가 없는 영화 ‘스타워즈’ 같은 세상이 오지 않는 한 ‘스타워즈’ 속 아미달라 여왕의 분만실처럼 사람이 없는 분만실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학이 나타나기 수천년 전부터 환자가 의사에게 바라는 것, 의사-환자관계 만큼은 아직 영혼이 없는 기계에게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김민재 기자/순천향
<editor@e-mednews.com>

※ 참고문헌_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아툴 가완디


 

의료분쟁법 개정, 국회 본회의 상정 앞두고 논의 활발

입증책임 전환 백지화 가능성… 의료인에게만 유리한 법 될 우려

 ▲ 보호자의 출입이 제한된 구역, 분쟁 해결의 단초가 되는 정보에 환자측이 접근하기란 사실상 힘들다

 최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법)안’에 의료계와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의료분쟁 관련 법 개정에 대한 논의는 20여 년 전부터 있었지만 그동안 이해당사자의 입장 충돌이나 예산 문제, 국회 임기 종료 등 여러 이유로 흐지부지되어 왔다. 이번 법안은 작년 말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통과하고 최근 국회 본회의 의결이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점차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의료분쟁법을 둘러싼 소용돌이의 핵심을 차지하던 입증책임 전환 조항이 빠지면서 반쪽자리 법안이 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 ‘입증책임 전환’, Why or Why Not?

 민사소송의 일반적인 원칙에 따르면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이 상대측의 과실을 입증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의료분쟁에 있어서 일반인의 상식으로 의사의 진료과정 상에 과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매우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의료와 같이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의사가 본인의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입증책임 전환이라고 한다.
 입증책임 전환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의료가 행해지는 환경이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등 접근이 제한된 곳으로서 환자나 보호자가 정황을 잘 알기 어렵고, 진료기록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아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환자 측은 정보의 절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쟁점이 되는 의료상황에 대해 의무기록을 취득하더라도 용어 하나하나부터 자료해석, 판독 등 모든 요소가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에서 일반인이 전문가인 의사를 상대로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전문분야라는 이유만으로 민사소송법의 일반적 원칙에서 예외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나, 입증책임을 전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별로 없다는 무용론도 있다. 또, 현실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입증책임을 의사가 떠맡게 되면 환자 측이 고소를 남발하게 되고 환자-의사 관계가 더 불안정해지는 점, 의료행위 자체에 내포된 위험으로 인해 의료인이 고위험 의료행위나 진료과를 기피하게 되고 소신 진료를 하지 못하게 되는 점, 의료인의 위험부담 증가에 따른 의료비용 상승 등 여러 문제점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앙꼬 없는 찐빵, 안 먹느니만 못해?
입증책임 전환 빠진 의료분쟁법안, 역효과 우려

 판례상으로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의사가 입증책임을 지도록 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아직 이 문제에 관해 명시된 법률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 정황이나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그때그때 입증책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수준이다. 이번에 발의된 의료분쟁법안의 초안에는,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요구하는 판례가 최근 늘어나는 추세임을 반영하듯 입증책임 전환을 규정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후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신설하여 정보약자인 환자를 돕기로 하면서 입증책임 전환은 백지화된 것이다.
 입증책임 전환과 함께 보건의료인에 대해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는 형사처벌 특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을 시행하여 의료인의 책임도 분명히 하고 안정적인 의료 환경도 조성하려던 것이 당초의 입법 취지였으나, 입증책임 전환이 빠지자 이제는 오히려 의사들의 책임이나 진실은 불분명하게 하고 환자 측에는 합의나 국가 차원의 보상만을 선택지로 제시하여 의사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법안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환자와 의사의 입증책임 분배, 어떻게 흘러갈까?

 법률적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닮은 부분이 많은 독일이나 일본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의료분쟁에서의 입증책임 분배 문제에 대해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한 상태이다. 의료채무는 결과채무가 아닌 수단채무라는 점이나 의료의 고도전문성 등 의료 자체가 가지는 여러 가지 특수성, 의료 현실을 둘러싼 현실적 여건들, 입증책임 분배의 형평에 관한 법리적 고려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 문제는 단순히 민사소송의 일반적 원칙만 따를 일은 아니라는 의견이 점차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기존에는 소송법에 따라 환자 측이 의사의 진료상의 과실을 입증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과실과 발생된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입증해야 했다. 그에 비해 독일 라이히법원과 연방대법원, 우리나라 대법원의 최근 판례를 보면, 의사의 의료행위에 상식적 차원에서 과실이 있었고 그 의료행위 이후에 환자의 신체에 나쁜 결과가 발생했을 경우 피고인 의사가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것으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최성욱 기자/울산
<palpitation@e-mednews.com>

1)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2) 의사의 진료행위는 질병의 완치와 같은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치유를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현재의 의학 수준에 비추어 필요하고 적절한 진료조치를 다해야 할 책임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