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를 둘러싼 공방, 급한 정부 ‘체할라’
의협 대변인 좌훈정 공보이사 인터뷰
지난달 14일 원격의료 시행안이 포함된 의료법개정안이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의 심의를 통과했다. 통과된 법안은 작년 보건복지가족부가 제출했던 내용과 거의 동일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원격의료가 가시화된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표명했다. 2주간 홀로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인 한 의료인에게서 마음이 ‘불편한’ 의료계의 모습이 보였다면 과장일까. 지난달 25일부터 약 2주간 정부청사 앞에서 꿋꿋하게 1인 시위를 벌인 의협(대한의사협회)의 좌훈정 공보인사를 인터뷰 했다.
- 작년 8월에 입법예고 되었던 의료법개정안이 지난달 규개위 심의를 통과했다. 이 중 원격의료 관련 사안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사님께선 1인 시위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유는 뭔가.
현 정부에 의협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의협은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현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의사는 의료행위의 주체 중 하나인데, 이번 심의에서 의료계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못했다.
- 본래 조건부 허용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반대로 급선회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회원들의 의견이 바뀌었나.
처음에는 의원급인 1차 의료기관에 한해서 원격진료 도입을 찬성한다고 밝혔었다. 의사는 의료행위의 주체 중 하나다. 때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원격의료의 정착을 주도하자는 의미에서 조건부 허용을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검토가 시작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걸렸었나.
개정안에는 원격의료제도의 시행방안으로 ▲1차의료기관에 한해 시행 ▲재진환자만 대상 ▲섬이나 교도소 등 의료취약지역 주민 대상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복지부가 발표한 원격의료 시범사업대상자는 약 450만명인데, 이는 전 국민의 10퍼센트 수준이다. 시범사업 대상범위로는 너무 많다. 범위가 넓어지면 정부가 전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연스럽게 기업이 개입하게 된다. 이미 삼성과 LG가 u-health 시범산업에 참여하고 있다. 원격의료가 정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주체가 정부에서 기업으로 넘어가게 되면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대형영리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은 개원가를 힘들게 할 것이다. 또 의료비 부담능력에 따라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의 질에 큰 편차가 생길 수도 있다.
- 기술적인 문제점은 없나. 그 외의 다른 문제점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있다.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5-6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주로 낙도 등 섬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했다. 특수한 케이스를 대상으로 한 만큼 이 시범사업에서 얻은 자료만으로는 원격의료 도입의 시기 적합성을 검증하기 어렵다고 본다. 의료계와 상의해서 좀 더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시범사업을 구상해야 한다. 이외에도 통신장비의 안정성, 해킹 위험 등을 고려해야 하고 원격의료의 시행자격, 원격의료사고 시 책임 문제등에 대한 법 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 외국의 경우는 1990년대 중 후반부터 원격의료 실시 중이다. 원격의료가 전자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적절한 법만 마련되면 외국의사나 외국의료기관과 쉽게 연동될 수 있다.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우리나라도 빨리 도입해야 하지 않나.
외국의료계가 우리나라보다 원격의료를 빨리 도입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의료행위가 보편화 된 나라는 없다. 미국 같이 땅이 넓어서 집에서 병원까지 가는데 며칠씩 걸리는 경우에 주로 이뤄진다고 알고 있다. 미국이외에도 영국, 일본 등이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들 법안에서도 적극적인 원격진료를 허용하진 않는다. 통신매체를 통해 환자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화상상담을 통한 진단은 금지하거나, 재진환자에 한해서만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식이다.
-현재 의협 내부의 동향은 어떠한가. 의사들 간, 병원 간 이견은 없나
왜 없겠나. 의사들의 이념 스펙트럼은 일반인과는 좀 다르다.(웃음) 극우부터 극좌까지 다 있고, 시장주의자도 있고 반시장주의자도 있다. 의협은 의료계의 ‘평균치’를 대변한다. 최대한 많은 수의 의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의견을 따르는 것이다. 지금 현재는 의료 산업화 경향 자체는 인정하되, 지나치게 상업화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 그래도 개원가는 특히 반발이 심할 것 같은데. 이사께서도 10여 년 간 개업의로 지내오셨는데, 개원가 입장은 어떠한가.
방직기 처음 만들었을 때 노동자들이 기계를 다 부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잘 사용하고 있지 않나. 원격진료도 비슷한 경우라고 본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니까 지금 당장은 불안할 것이다. 병원 간 협진문제서부터 의료정보체계의 표준화 문제,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현상 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원격의료가 그 나름의 적절한 수요/공급을 창출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도입 자체는 확실하다. 다만 정착 과정에서 의료계가 얼마나 주도하느냐가 관건이다. 원격의료 체제에서 의사들이 어떻게 의학적으로 소신껏 진료할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니까.
의료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 그런데 정부와 의협의 의견이 많이 다른 것 같다. 복지부처는 의협 의견에 개의치 않고 개정안의 국회통과를 추진하겠다 하고, 지식경제부에서도 조만간 u-health와 관련된 스마트케어(smart care)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의사가 아니다. 때문에 의료에 대해 정부가 알 수 없는 점이 존재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틀렸다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한 정부의 임기는 짧다. 그러다 보니 가시적인 성과를 빨리 내고 싶어한다. 우리는 좀 더 천천히 시간을 두고서 추진하자는 쪽이지만, 정부는 십 여 년에 걸쳐서 해야 할 일을 몇 년 안에 완성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 그런데 규개위에서 통과된 이상 빠른 시일 내에 원격의료가 도입될 것 같은데.
규개위에서 통과 했지만 아직 법제처와 국무회의가 남아있다. 올 여름이나 가을쯤에 통과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때까지 정부에 개정안을 유보해 달라는 입장을 계속 전달할 것이다.
우리는 원격의료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성급한 시행을 반대하는 것이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했던 말이지만, 아기얼굴이 보고 싶다고 해서 5개월 만에 꺼낼 수는 없지 않은가. 21세기에는 IT산업과 여타 산업들의 융합이 대세이니 만큼 의료분야가 IT분야와 접목되고, 서비스업화 되는 추세는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일반산업과 의료는 엄연히 다르다. 보통 업계에서 통용되지만 의료에서는 그렇지 못한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고려해서 의료와 IT분야를 융합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 긴 시간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달라.
장기적으로 볼 때 원격의료의 도입 자체는 확실하다. 다만 정착 과정에서 의료계가 얼마나 주도하느냐가 관건이다. 원격의료 체제에서 의사들이 어떻게 의학적으로 소신껏 진료할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니까. 앞으로도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김정화 기자/한림
<eudimonia89@e-mednews.com>
※ 유헬스 u-health : 유비쿼터스 기술을 활용한 질병 치료 및 건강관리를 폭넓게 이르는 말. 좁은 의미로는
의료와 IT를 접목하여 의사가 시간적, 공간적 제약 없이 환자를 진료하는 원격진료 시스템을 뜻한다.
※ 스마트 케어 : 만성질환자들의 ▲경제능력 저하 ▲합병증 예방 등을 위해 U헬스와 건강관리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