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엇에 감염되었나
예방의학에서는 역학적으로 인류의 역사를 질병과 기근의 시대, 범유행 감축의 시대, 만성퇴행성질환 시대, 지연된 퇴행성 질환의 시대 등으로 나누고 현대 사회는 ‘신종 감염 및 기생출 질환의 출현과 기존 감염병의 재출현의 시대’로 보고 있다. 감염이란 말은 병원성 미생물이 동물, 식물 등의 조직에 침입하여 증식하는 것을 말하나, 시대가 지나며 그 뜻이 확장되어 일반 사회에서 어떠한 개념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확실히 감염병 재출현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21세기 들어 SARS, 신종 인플루엔자 등 다양한 질환이 우리나라를 휩쓸었고, 동물로 눈을 돌리면 구제역도 포함된다. 작년에는 나라 전체가 흔들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사태도 있었다. 최근에는 인천에서 레지오넬라 감염자가 발생하고, 거제 인근에서 15년 만에 콜레라 환자들이 발생하여 세간을 시끌벅적하게 하고 있다.
감염의 확장된 의미를 되새겨보면, 이러한 질병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도 감염된 것이 있는 듯하다. 바로 감염 그 자체에 대한 공포다. 예방접종과 항생제를 통해 100년 전만 같아도 목숨이 오락가락할 병원체에게서 해방된 사람들에게 ‘나 어디 가지 않았다’며 불쑥 다시 찾아오는 감염병은 본능을 자극하는 공포로 다가온다. ‘연가시’ ‘부산행’ 등의 전염 관련 소재 영화들이 개봉만 했다 하면 흥행을 휩쓰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관심을 끄는 뉴스가 있다. 서울시립병원이 지난해 10월, HIV 감염 환자 A씨의 치과 진료(스케일링) 전에 진료용 의자를 비닐로 꽁꽁 싸맨 일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이 더럽고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고, 여러 시민단체의 조사를 거쳐 올해 9월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해당 병원이 A씨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직원 인권교육과 예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해당 기사의 댓글은 서울시립병원의 대처를 칭찬하고, 인권위의 권고를 비판하는 내용 일색이다. ‘감염률이 얼마가 되었건 걸리는 사람에게는 100%’, ‘그 의자에서 진료 받는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느냐’ ‘피가 튀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댓글에 이어 ‘기자와 인권위가 직접 저 의자에 앉아서 진료를 받도록 해라’는 댓글까지 있다.
이쯤에서 HIV 감염의 예방에 대해 짚어보면, 일반적으로 HIV 환자에게 사용되었던 주사바늘에 찔렸을 때의 감염 확률은 0.3%, 성교 등 체액에 의한 감염 확률은 0.09%정도로 보고 있다. 주사바늘에 찔렸을 때를 비교하면 B형 간염은 30%, C형 간염은 3%정도다. 기타 수유를 통해 감염될 수 있으나 침, 땀, 소변, 모기를 통한 간접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의인성 경로를 살펴보면, 치과치료나 수술을 통해 전염이 일어난 사례는 보고되고 있다.
의료인의 자기방어 가이드라인도 존재한다. 혈액이나 체액이 묻을 것이 예상되면 장갑과 마스크, 보호용 안경을 착용하고 처치에 사용된 모든 일회용 물품은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고 버리도록 되어 있다. 최신지견에 의하면 혈액, 정액, 체액, 직장분비액, 모유 외의 감염경로는 가능성이 낮아 진료를 거부할 근거는 거의 없다고 보고 있지만 그 때문에 가능한 최소한의 방어수단을 사용하라는 권고는 아직 없다.
종합적으로 보면 결국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셈이다. HIV 환자의 인권, 환자로서 최선의 진료를 받을 권리도 중요하고 최대한 감염을 예방해야 한다는 입장도 맞는 셈이다. 그러나 댓글에 가득한 인권위의 결정에 대한 분노의 기저에 메르스 사태를 겨우 1년 전에 통과해온 이들의 감염에 대한 마음 속 깊은 곳에 대한 공포와, HIV 환자에 대한 혐오가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결국 문제는 정확한 원칙이 없다는 것에 있다. 보통 감염 예방의 가이드라인에서 최대한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라는 말은 있으나, 가능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라는 말은 없다. 하한선을 정하는 것이지 상한선을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환자들의 감염 예방만큼 보건의료인의 감염 예방 또한 중요한 문제인데, 네티즌들의 분노에는 의료인들에 대한 걱정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이래저래 의료인들만 곤란하게 되었다. 2001년 조사에 따르면 HIV 환자를 치료하게 되어있던 당시 14개의 병원 중 12개의 병원에서 48명의 감염인이 발생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현재 당시에 비해 HIV 환자는 3배 정도 증가하였으므로 그보다는 더 많은 의료행위 중 감염자들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의료인들이 과거의 방식만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 HIV 환자들이 합리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무시하고서 어떻게 의료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서울시 인권위를 위시한 시민단체들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의료인과 병원을 규탄하는 삽화적 행위에서 벗어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의료인과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다.
인류를 수없이 많이 죽였던 감염병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합리적인 과학적 사고의 산물인 면역학과 항생제 덕이었듯이, 감염병의 재림 시대에 만연한 감염에 대한 공포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것 또한 합리적인 사고 과정을 통한 결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