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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본 옛날옛적 의학이야기

<de_waag> 암스테르담의 해부학극장.
현재 1층에서는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미술관을 찾았을 때 네모반듯한 그림 수백 점을 보며 지루해했던 기억, 다리는 점점 뻐근해지는데 별로 볼 만한 것도 없었던 기억. 그런 기억 때문에 미술관은 종종 ‘재미없는 곳’으로 낙인찍히고는 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미술관은 거대한 도서관과도 같다. 그림 한 장에는 화가 한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 뿐 아니라 당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어떤 집에서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까지, 여러 이야기들이 빼곡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 의사들은 어떤 모습이었을 지,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이 그림은 1632년에 그려진 것으로 집단초상화라는 장르에 속한다. 집단초상화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초상화의 양식으로, 여러 사람을 화폭에 담으면서 그 집단의 특성을 드러내는 그림을 말한다.
그림을 살펴보자. 밝은 빛은 인물들의 얼굴과 시신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튈프 박사의 손끝에 온 정신을 집중한 사람, 시신의 발치에 있는 책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 필기노트를 들고 감상자와 눈을 마주치는 사람 등 일곱 명의 인물은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면서도 그림의 분위기와 공기로 한 그룹에 소속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앞에서 진지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해부학 실습이 이뤄지고 있을 것만 같다.
이 그림에서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화면 한가운데, 대각선으로 누워 있는 시신이다. 그의 창백한 피부색은 인물들의 얼굴색과 대조를 이루고, 감상자의 시선은 근육이 드러난  팔로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고개를 든다. 당시의 전통대로라면 해부는 복부부터 진행하는 것이 정석이었을 터인데, 튈프 박사는 팔을 먼저 해부하고 있다. 전통과는 어긋나지만 튈프 박사가 팔에 먼저 매스를 대고 있는 이유는 16세기 해부학의 대가 베살리우스에 대한 존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베살리우스는 팔이 의학도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놓여 있는 책은 아마도 베살리우스의 <인체해부에 대하여>일 것이다.

<rembrandt>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 캔버스에 유채, 마우리츠호이스 왕립미술관

영화보다 해부 실습

왜, 그리고 어떻게 렘브란트는 끔찍한 해부학 강의 장면을 화폭에 담았을까? 네덜란드에서는 16-17세기부터 1년에 한번정도 해부학 강의를 진행했다. 이 때 제공되는 시신은 대부분 사형당한 죄수의 것이었다. 1년에 한번이라니 너무 적은 거 아닌가 싶지만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해부가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던 것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나아진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해부학 실습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외과의사가 전문가의 손길로 능수능란하게 시신을 해부하는 모습이, 일반인들이 입장료를 내고 지켜볼 정도로 흥미진진했던 모양이다. 암스테르담에 가면 이 ‘해부학 극장’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해부학도 예술이다

화방의 쇼윈도를 보면 유화물감, 파스텔, 색연필 같은 우아한 화구들 사이에 펼쳐져 있는 해부학 책을 발견할 수 있다. 미술학도들을 위한 해부학 교과서도 존재한다는 사실. 르네상스 시기에도 해부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의사들보다는 화가들이었다. 이 시대의 해부학자는 대부분 미술가들이었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경우 인체를 해부할 때 뼈, 근육, 혈관, 내장 등 구조별로 실시했던 것으로 보이고 신체의 세부적 구조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하지만 정작 의사들은 이런 부분에 무지했고,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해부학이 의학에 별 효용이 없었던 것이 그 까닭이다. 환자가 죽기 전에는 체내의 변화를 알 수 없었고, 그것을 고칠 수도 없었기에 의사들은 해부학적 사실들을 치료에 응용하지 못했다. 베살리우스 이후 1세기 반 동안 해부학은 탐구의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해부학은 18세기 들어서야 학문 대접을 받을 수 있었고 의과대학의 반 정도가 정규 과목으로 지정했다. 

<the operation> 수술, 1631, 판넬에 유채, 알테 피나코테크

브라우버(Adrian Brouwer)의
<수술>

이 그림은 17세기에 그려진 장르화다. 장르화란 17세기 플랑드르지역에서 유행한 미술 양식으로 일상의 장면들을 꾸밈없이 화폭에 담아낸 그림들을 말한다. 아드리안 브라우버는 주로 농민들을 그림의 소재로 삼아 그들의 익살스러운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림의 전면의 인물이 한 농민의 발에 외과적 치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환자의 표정에서 그의 고통을 읽을 수 있다. 오른쪽 뒤의 인물은 면도를 하는 것으로 보아 저 허름한 집은 외과와 이발소를 겸업하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브라우버의 다른 작품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미화하지 않고 드러냈다. 당시 사회에서도 농민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었지만 화가는 그들을 경멸하거나 비웃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 연민을 보내고, 그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소박하고 허름한 집을 비추는, 밝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햇살이 작가의 마음을 감상자에게 잘 전해주고 있다.

외과의사는 칼을 쓰는 기술자

중세는 물론이고 학문이 부흥을 이룬 르네상스 이후까지도 유럽의 의학은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대학의 의학부에서 가르치는 것은 여전히 갈레노스와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을 답습하는 추상적인 이론이었다.
이런 수업을 듣고 의학부를 졸업한 이들은 대부분이 내과의사였고 이들은 상처를 봉합하거나 피를 흘리게 하는 것 등 환자에게 직접 처치나 수술을 하는 것을 천하게 여겨 기피했다. 이 영역은 외과의사가 담당했고 이들은 기능직으로 분류되었다.
당시에는 ‘칼’로 영업하는 이발사와 외과의사가 같은 업종이었다. 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칼 조작 면허가 필요했는데 이 면허를 보유한 사람들이 바로 이발-외과의사(barber-surgeon)이었다. 이들은 거기에 치과의사까지 겸하는 경우가 흔했다 하니 ‘면도, 이발, 방혈, 종기 짜기, 발치’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달아 놓고 영업하는 이발소가 곳곳에 있었을 것이다. 대학의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외과의사들의 간판은 피와 고름을 받는 그릇 모양이었다고 한다.

내과 vs 외과, 견제와 대립

대학 출신 의사 중에서도 외과를 주업으로 삼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발사와 같은 돌팔이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파랑, 빨강, 흰색의 나선형 무늬봉 간판을 진료소 앞에 세워두고 일했다. 외과의사들은 우아하게 의사노릇을 독점하던 내과의사들에 대항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의과대학 과정을 개설하여 제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라틴어로 수업을 하고, 해부학도 교과과정에 들어가 있었다. 졸업생들은 내과의사들과 같이 긴 가운을 입었는데 짧은 가운을 입는 이발외과의사들과의 다르다는 것을 환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과의사들은 권위있고 귀족적인 지식인 의사는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환자의 피와 고름을 만지는 더러운 일을 해줄 기술직이 사라져서는 곤란했다. 따라서 내과의사들이 주도하던 의과대학에서는 단기간에 외과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이를 통해 외과의사를 양산한 것이다. 한편 이발-외과의사들은 이 혼란을 틈타 자신들의 간판을 피와 고름을 받는 그릇에서 청,홍,백색으로 된 삼색 나선 표시로 바꾸어버렸다. 결국 사람들은 대학을 나온 정규 외과의사와 돌팔이 이발외과의사를 구별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 때 이발 외과의사들의 영업장 앞에 자리 잡고 있었던 삼색봉은 오늘날 이발소 앞에서도 돌아가고 있다.

<외과도구> 당시 외과의사들이 사용하던 도구들

팔꿈치 마취 후 4분내 절단완료

외과의사를 찾은 응급환자의 경우 딱히 치료법이 없어서 대부분 팔이나 다리를 절단했다. 마취는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한다고 해도 매우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술을 아주 많이 먹이거나 때려서 기절시키는 것이 마취의 전부. 수술시에는 환자를 쇠사슬로 묶어놓거나 조수들이 팔다리를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 의사가 수술용 망치나 톱으로 절단했다. 이런 치료에도 나름의 기술이 필요했으니, 뼈를 자를 때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한 번의 칼질로 원하는 부위를 잘라낼 수 있도록 기술을 연마했다. 수술 중에 환자는 극도로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치고 소리를 지르는데다가 환자가 수술 중에 통증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으므로 수술은 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끝내는 것이 외과의사의 미덕. 수술이 끝난 후 수술부위는 봉합하는 대신 인두로 지져서 지혈했다. 이런 치료를 하면서도 환자에게 엄청난 액수의 치료비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환자들은 외과를 잘 찾지 않았다고 하는데, 반은 치료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서, 반은 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없어서 그랬을 것으로 보인다. 전쟁 중 총상을 입은 경우에는 뜨거운 기름을 발라 치료했다. 치료 중에 사망하는 환자가 많았음에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낡은 치료법만을 고수했다.
18세기 초가 되어서야 파리대학에서 외과를 다시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여 근대적인 외과가 시작되고 외과가 천한 직업이라는 인식은 사라지게 된다. 19세기에 들어서서야 마취법과 소독법이 발전하여 외과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해부학극장> 해부 장면을 관람하던 해부학극장의 내부

문지현 기자/중앙
<jeehyunm@e-mednews.com>


 

보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이 곧 의학이다

미셀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

“언어적 표상과 대상의 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 언어가 사물을 포착하려는 순간부터 그 대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하는 언어의 음흉한 계략, 즉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 속으로 끌어들여 대상의 모습을 변질시키려 하는 언어적 횡포다.”

미셀 푸코는 1926년 10월 15일 프랑스 중서부 푸아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폴 푸코는 유명한 외과 의사였고 아들이 의학의 길을 걷기를 원하였다. 푸코는 처음에 공립학교 다니다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카톨릭 학교로 옮기고 그곳에서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한다. 그는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박사를, 1950년 심리학 학사, 1952년 파리에서 정신병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푸코는 정신의학과 의학, 인문학 그리고 감옥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유명한 학자이다. 인용된 푸코의 말은 그의 대표적 저작 중 하나인 『임상의학의 탄생』에 있는 것이다. 푸코는 이 책에서 ‘의학적 시선’에 대해서 논한다. 그에 따르면 임상의학은 의학적 시선의 변화에 따라 발전해왔으며, 그 이면에는 수많은 정치적·사회적 권력게임이 존재한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보아 4단계로 이루어진다. 1장과 2장에서는 의학에서 ‘분류’라는 개념이 어떻게 도입되었고 의학이 임상의학의 시대로 변화되어 가는 부분을 다룬다. 그는 “병의 종류가 무엇인지 확신하지 않고서는 질병을 치료하지 말라”는 질리베르의 진술을 인용하며, “분류하기란 질병의 형태를 결정하고 병에 대한 암호를 푸는 일”이라고 요약했다. 따라서 질병을 인간의 육체라는 공간 위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바로 18세기 의학이 임상의학으로 발전해가는 시기에서 주된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3장~5장에서 의학 이론과 의료 기관의 정립을 놓고 벌이는 정치적·사회적 권력의 암투를 다룬다. 의사·환자·병원 등 의료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정치권력에 의해서 위상이 변화하거나 사라지기도 했다. 한 예로, 책에서 병원이라는 거대한 의료 기관은 의료 수준의 국가적 통제라는 목적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음에서는 초기 단계의 고전적 임상의학이 병리 해부학의 시대로 넘어가는 움직임을 다룬다. 이 시기부터 의사들은 ‘시선’이 진리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다시 말하면 임상의학 안에서 도입된 여러 가지 언어모델이 질병을 정의하고, 질병을 읽는 방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을 읽을 수 있는 의사의 시선은 곧 말하는 시선이 되어 질병에 대한 권력을 쟁취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촉각과 청각의 새로운 감각이 도입됨에 따라 질병 읽기는 다양한 면모를 띠게 되면서 의학적 시선은 그 입지를 강화하게 되었다.
푸코의 글은 18세기를 다루었지만, 현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현대의학은 어떤 학문이며, 그 이면에는 어떤 작용들이 존재하는가? 현대의학에서 다루는 질병들은 과거와 어떻게 다르며, 어떤 이념에 근거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차후 의학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허기영 기자/서울
 <zealot648@e-mednews.org>

선택의원제 내년 1월부터 도입 확정

엇갈리는 셈법 속 뜨거운 감자 부상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선택의원제도가 내년 1월부터 시행되기로 확정되었다. 이번에 실시되는 선택의원제는 환자가 1차병원을 선택하고 해당 병원에서 지속적인 관리를 받을 경우 진료비 감액혜택을 제공하고 해당 의원에는 별도의 보상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당뇨병,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 환자에 우선적용한 뒤 추후 중간평가를 걸쳐 대상범위를 확장시켜가겠다고 밝혔다.

복지부의 선택의원제 실시 배경에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고 만성질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다. OECD가입국의 평균에도 못미치는 수준의 보험료,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 등의 이유로 건강보험은 그동안 만성적자를 면치 못했다. 또한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혈압 유병률과 당뇨병 유병률은 지난 8년간 약 1%이상 증가해왔다. 그러나 고혈압과 당뇨병 환자의 치료율은 각각 59.4%와 52.3%(이상 2008년 기준), 조절률은 42.4%와 27.1%에 불과했고, 인구 10만명당 고혈압과 당뇨로 인한 입원 건수는 2005년 324건에서 472건으로, 인구 10만명당 당뇨로 인한 사지절단 건수도 같은 기간 5.2건에서 7.1건으로 증가하는 등 만성질환 합병증환자의 증가와 지속적인 관리부족으로 진료비의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실제로 고혈압과 당뇨로 인한 진료비는 2002년 4천억원에서 2009년 3조1천억원으로 8배에 육박하는 수준의 증가가 이루어졌다.

복지부는 내달 중순부터 연말까지 환자들의 참여 신청을 받아, 내년 1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한다. 이를 위해 현재 고혈압과 당뇨병 진료를 받는 대부분 환자를 대상으로 이달 말부터 건강보험공단이 선택의원제 참여 신청 방법 등을 확정해 안내할 방침이다.
 
복지부, “1차의료기관 활성화와 만성질환의 효과적 관리 가능”
제도가 계획대로 자리잡게 된다면 환자들은 진찰료 부담률을 30%에서 20%로 줄일 수 있게 된다. 현재 당뇨병과 고혈압 환자가 초진을 받을 경우 진찰료(1만2천500원)의 30%인 3천750원을 내야 했지만, 선택의원제에 참여하면 본인부담액이 2천500원으로 1천250원이 줄어든다. 재진의 경우도 본인부담액이 진찰료(9천원)의 30%인 2천700원에서 20%인 1천800원으로 낮아진다. 만성질환 환자가 연간 12차례 지정 의원을 이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1만1천150원의 진료비를 줄일 수 있는 셈이다. 내년에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진료를 받을 환자 수는 의원급 의료기관 이용자를 기준으로 509만명, 병원급 이용자까지 포함하면 636만명으로 추산되며, 이들 가운데 90%가 선택의원제에 참여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431억원 규모의 진료비 경감 혜택을 받게 된다. 또한 선택의원제에 참여하는 환자는 관할 지역 건강보험공단 지사와 보건소를 통해 건강정보와 상담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전화·우편·이메일 등을 통해 건강관련 정보가 제공되고 맞춤형 건강상담도 받을 수 있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에 대해서는 특화된 건강·교육·정보 제공 계획이 별도로 수립된다.

선택의원제에 참여해 만성질환자를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의원에도 별도의 보상과 함께 의료 서비스의 질을 평가해 상과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우선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의원은 1천원의 보상금을 받게 된다. 단 병원은 대상 환자에 대한 환자관리표를 제출해야 한다. 보상금은 1인당 1년에 10회 이내로 제한되고 환자 본인부담 비용과는 연계되지 않으며 별도의 보상 형태로 사후에 지급된다. 또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비율, 적정한 투약률, 필수검사 실시율 등을 평가해 성과 인센티브도 줄 계획이다. 선택의원제 참여 의원이 만성질환 환자 1천명을 관리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최대 보상액은 연간 1천만원이며, 여기에 성과에 따라 별도의 인센티브도 받게 된다. 전국 1만4천210개 의원 가운데 70% 정도가 선택의원제에 참여한다고 가정했을 때 약 320억원의 보상금과 100억원가량의 인센티브가 제공될 것으로 복지부는 전망하고 있다.

이동욱 정책관은 “의료기관은 자신의 의원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환자에 대해 환자관리표를 작성해 관리하면 된다”며 “이러한 인센티브를 통해 의원의 고혈압·당뇨에 대한 질환관리 노력이 향상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한 복지부는 선택의원제가 일정지역에서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을 제한하고, 의사의 보수를 인두제로 결정하는 주치의제도와는 다르다고 공식 입장을 전달했다. 선택의원제가 사실상 인두제를 기반으로 한 주치의제도의 전 단계가 아니냐는 의료계 반발을 염두에 둔 것이다. 복지부는 “환자는 자신이 원할 경우 이용할 선택의원을 바꾸어 정할 수 있다”며 특히 “행위별수가제를 현행대로 유지하므로 인두제, 총액계약제 등 지불제도 개편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의료계 전면 반대하고 나서,
“주치의제도의 전단계일뿐,
의사의 공무원화 촉진시킬 것”

이러한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한목소리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의협이 각과 전문가 19개과에 선택의원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무려 18개 진료과가 반대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전공의·공보의협회 등 신규개업을 눈앞에 둔 젊은 의사들도 지난 26일 공동 성명서 채택하여 절대 반대의 의사를 내비쳤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가장 큰 선택의원제 반대이유는 신규 개업의의 시장진입장벽 문제이다. 의협 관계자는 “정부는 만성질환자가 언제라도 선택의원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한번 선택한 의원을 바꾸려면 다시 등록을 하는 등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국민의 의료기관 선택권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개원의 시장진입장벽이 높아지면 자리를 잡은 기존 병원들을 제외한 신규 개업의들은 개원대신 봉직의로 일하는 경우가 높아지고 그 결과 봉직의의 봉급은 자연스레 감소하게 된다. 만약 개원을 하더라도 환자 유치를 위해 병원 시설을 더욱 확충해야 하는 등 경쟁을 위한 초기 투자자본이 증가하게 되며 그에 따른 폐업 후 봉직의 진출이 이루어져 봉직의의 페이는 더욱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어 “선택의원제는 의료의 전문성을 훼손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치의제도로 가기 위한 수순이므로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지금도 만성질환자의 80%가 단골의사를 찾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정부가 만성질환관리체계 구축하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게 의협의 입장이다.
한편 의협은 정부가 선택의원제를 즉각 철회하지 않고 일방적인 강행 입장을 고수할 경우 개원의와 교수, 전공의, 봉직의 등을 망라한 범의료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의협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선택의원제 일정에 맞춰 의료계도 단계적으로 대응하는 내용의 4단계 로드맵이 완성됐다”며 “의료계 최대 현안인 만큼 전국 회원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정부 투쟁 참여 동의서를 확보하고 ‘전국의사대표자대회’ 개최하며 11월 초순까지 대국민 안내와 포스터를 제작ㆍ배포하는 등 전국민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또 연말까지 ‘가칭 한국의료수호를 위한 전국의사대회’를 열고 투쟁 열기를 고조시켜서 최종 4단계에 선택의원제가 본격 시행되는 내년 1월경 전국 의사 회원이 참여하는 파업을 추진하는 강경투쟁을 벌이기로 다짐했다.
한편, 의협은 총파업을 추진할 경우 국민 불편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 광고 등을 통해 대국민 홍보를 강화할 방침이다.

전영준 기자/중앙
<yjipnida@e-mednews.org>

정부가 갑자기 ‘칼값’을 깎은 까닭은

조기위암 내시경수술 중단, 그 이면의 줄다리기

가정) 당신은 30여년 전통의 유명 중국집 사장님이다. 30년 전 자장면 값은 단돈 500원. 그러나 밀가루값, 인건비, 건물세 등의 인상으로 30년동안 자장면 값은 무려 7배인 3500원까지 올렸다. 이것도 고객들을 생각해서 최소한의 가격만을 올린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에서 국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봐야한다며 전국의 자장면값을 30년전인 500원으로 통일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어길 시 영업 정지 등의 강경한 처분을 내린다고 한다. 유명한 자장면 맛집 동호회 클럽장인 김자장씨는 “서민들의 맛과 애환이 담긴 자장면 값이 내려간 것에 대해 환영한다”는 뜻을 기자회견에서 밝혔고, 자장면 판매 중지 등의 집단행동을 보이려던 중국집들은 상호 및 전화번호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었다. 이제 당신의 선택은?

지난 9월 전국의 많은 대형 병원들이 ‘내시경적 점막 하 박리술(Endos-copic submucosal dissection)’의 시술을 거부하고 나섰다. 9월 1일부터 크기가 2cm 이하인 조기 위암을 치료할 경우 박리절제술도 건강보험 적용 항목으로 인정되고, 기존 250~300만원에 이르던 치료비가 상급종합병원을 기준으로 평균 30~50만원가량으로 낮아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기존에 40만원 가량이던 재료비도 9만원으로, 의료진들의 시술비용은 무려 이전의 10%대로 떨어진 것이다.
재료값이 무려 78%나 떨어지자 시술용 재료를 공급하는 해당 업체인 올림푸스한국은 이 절제술을 하는 각 대학병원에 지난 8월 30일 공문을 통해 재료값이 너무 낮게 책정돼 재료를 공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올림푸스한국 관계자는 “형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20만~40만원대에 수입된다”며 “하루아침에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값에 공급할 수는 없어 공문을 보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조기 위암 내시경 수술의 적응증을 2cm 이하로만 제한하면서, 2cm 이상의 환자들은 복강경이나 개복수술을 하도록 했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그동안 림프절 전이가 없는 3~4cm의 조기 위암 치료에도 유효성이 입증된 시술인데 이런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의학계의 반발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시술비가 크게 떨어진 것에 불만을 품은 의사들도 의료기기 업체와 동조해 결국 환자들이 시술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비롯하여 환자단체연합회는 “병원이 정말 환자들을 생각한다면 수술을 중단할 것이 아니라, 내시경 시술용 칼의 공급을 거부한 올림푸스에 즉시 공급 재개를 요청했어야 했다”며 “의료계는 겉으로는 환자를 앞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자신들의 이익과 건강보험 적용 반대를 통한 병원 수익 창출에 더 관심이 많다"고 꼬집었다. 현재 의료계는 수가를 이유로 수술을 거부했다며 각종 환우회 등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상태다. 이에 백혈병 환우회 관계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돈을 받지 않더라도 진료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견해를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의료계 내에서는 이번 사태가 그동안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던 수가 책정에 결국 곪은 부분이 터진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08년 4월 당시 보건복지부에서는 향후 2년간 ESD 시술의 유효성을 본 뒤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에서는 2년이라는 위암수술 연구기간으로는 너무 짧은 기간이라며 조금만 더 연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보건복지부측은 정해진 기간만을 강조하며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2년간 6천건 이상의 시술이 있었기 때문에 안전성을 위하여 제한할 수 밖에 없다’라는 이유로 시행령을 내었고 현재의 사태까지 오게 되었다. 현재는 올림푸스가 조정 신청을 한 가격을 보건복지부 측에서 상당부분 수용하여 올림푸스한국 측에서 병원에서 원할 경우 칼 재료를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 9일 오후 2시 주요 병원장과 관련 협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ESD 시술 재개를 위한 긴급대책회의를 개최했다. 국민들의 진료에 차질이 빚어진 이번 사태에 대해 정부와 의료계 모두가 반성하고 주요 병원들은 수술에 필요한 재료인 칼 공급이 재개되면, 현재 고시된 시술 범위에 적합한 환자를 대상으로 시술을 조속히 재개하기로 했다. 또 향후 시술 범위에 대한 확대 요구, 수가 인상 등의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정부와 심평원은 열린 자세로 관련 학회의 전문가 등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조치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와 같이 환자를 담보로 시술을 중단하는 사태가 향후 재발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승현 기자/을지
<toypotato@e-mednews.com>

정신과와 신경과, 좌광우도1) 구별법

다음 두 증례 중, 하나는 신경과의 증례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과의 증례다. 일반인들과 예과생들에게는 정신과와 신경과가 무엇을 다루는 과이고, 두 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애매하게 다가오기 쉽다. 두 증례 중 어느 쪽이 정신과 증례이고, 어느 쪽이 신경과 증례일까?


A. 21세 여자가 한 달에 한두 번 갑자기 눈앞에 헛것이 보이면서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발생하는 것을 주소로 내원하였다. 이러한 증상은 수 분간 지속된다고 하였다. 면담 중 갑자기 한 곳을 응시한 채 입맛을 다시더니 무언가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뺨과 팔을 때리다가 곧 쓰러지면서 의식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뇌파 검사상 왼쪽 측두엽에 극파가 보였다.

B. 32세 남자가 8개월 전부터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이 신경이 쓰여서 직장생활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고 TV에서 자신의 얘기가 나오는 것 같아 TV를 잘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환자는 모르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욕을 한다고 상황에 맞지 않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신경정신과? 정신과? 신경과?
그 길고도 짧은 역사

일반인들이 흔히 정신병을 치료하는 과로 알고 있는 ‘신경정신과’는 존재하지 않는 명칭이며, 현재 ‘정신과’와 ‘신경과’라는 독립된 두 과가 있다. 그러면 ‘신경정신과’는 어디에서 나온 말일까? 우리나라 정신과와 신경과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45년에 조선정신신경학회가 창립되었고, 1955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그 후 외국에서 신경과학을 수학한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1981년에 대한신경과학회를 창립하여 대한의학협회에 준회원으로 등록하였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의 논의 끝에 정신과와 신경과를 분리·독립하기로 했다. 결국 1982년 대한신경과학회가 창립되었다. 이런 연유로 신경정신과라는 명칭이 오래 남아있었고, 신경과와 정신과는 가깝지만 먼 사이가 된 것이다.

신경과와 정신과,
공통점과 차이점?

그렇다면 신경과와 정신과는 각기 어떤 부분을 다루고 있을까? 과거, 신경과와 정신과가 함께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과가 다루는 ‘정신(mind)’과 신경과가 다루는 ‘신경계’가 교집합으로 겹치는 부분인 ‘뇌’ 때문이다. 곧, 두 과 모두 ‘뇌’를 다룬다는 큰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신경과와 정신과에는 여러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우선 주된 치료대상에서 차이를 보인다. 신경과에서 다루는 부분은 주로 뇌와 신경에 두드러진 기질적 병변이 있는 경우다. 이를테면 뇌경색이나 뇌출혈 같은 뇌혈관질환, 뇌종양, 신경 세포가 죽어가는 신경변성질환, 비정상 뇌파가 관찰되는 간질 등이다.
이에 비해 정신과는 정신(또는 행동)장애를 치료한다. 정신 장애에는 정신분열병, 우울증과 조울증이 속한 기분장애, 스트레스 장애, 사회 공포증 같은 불안장애 등이 있다.
치료대상이 다른 만큼 진단법과 치료법 역시 차이가 나는데, 각기 독특한 진단법과 치료법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의과대학생들이 신경과와 정신과에 매력을 느낀다. 먼저 진단법을 살펴보면, 정신의학은 정신장애를 ‘증상’에 따라 분류하며, 진단도 임상병리검사나 특수검사보다는 병력청취, 정신상태 검사 등 임상기술과 면담기술에 의존하여 행한다. 이와 달리 신경과는 근육긴장도 측정, 근력 검사, 해머를 사용하는 각종 반사 검사 등의 신체검사와 뇌파검사, 근전도 검사가 진단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치료법으로, 정신과는 약물(항불안제, 항우울제 등)을 처방하는 생물학적 치료와 정신 분석적 정신치료, 인지치료, 행동치료로 이루어진 정신사회적 치료기법이 특징적이다. 신경과에서도 약물치료는 이루어지지만, 정신과보다 외과적인 시술이 훨씬 흔하고, 원인 질병에 따라 면역 치료도 한다.

A? B?, A! B!

공통적으로 뇌를 다룰 뿐 아니라, 점점 생물학적, 영상학적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서로 영향을 크게 주고받고 있는 신경과와 정신과. 사실 그 둘을 뚜렷이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신경과와 정신과에 대한 간단한 상식을 통해 A, B가 각각 어느 과의 증례인지 짐작해보자.
정신과와 신경과를 배운 일부 학생들은 기사를 읽기도 전에 A는 간질발작(복합부분발작) 증례이고, B는 정신분열병 증례임을 눈치 챘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처음에 몰랐더라도 기사를 다 읽은 뒤 A가 신경과, B가 정신과 증례라는 것을 맞춘 학생이라면 더 이상 정신과와 신경과 사이에서 애매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김다혜 기자/대구가톨릭
<anthocy@e-mednews.com>

1) 광어와 도다리를 구별할 때 머리가 왼쪽을 보고 있으면 광어, 오른쪽을 보고 있으면 도다리.

내 이름은 마익흘

83호(2011.10.10)/문화생활 2011. 10. 18. 19:50 Posted by mednews

내 이름은 마익흘

세계적인 동영상 사이트 Youtube에 서울 지하철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동영상이 있다. 서울에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역마다의 특징과 서울 지하철의 우수성을 노래하는 그는    순수한 미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 ‘마익흘’(본명 Michael Aronson, 29세)이다. 얼마 전 KBS 9시 뉴스에 소개되면서 그의 인기는 치솟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의 뮤직비디오들을 한 번 보게 되면 의아해한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한국에 와서 한국 예찬론을 펼치며 창작열을 불태우는지. 그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라는 강남역 카페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그건 사고였어요.”
왜 한국에 오게 되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매우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었죠” 라며 기자의 표정을 살폈다. 잠시 후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고 좋아하면서 당연히 농담이었다고 웃었다.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해 하지 않는 모습이 천성 미국인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고 또 이곳에서 터를 잡기 시작했을까. “대학교 1학년 때 온라인상에서 한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는 ‘한국인’이라고 하는 데 솔직히 그 때는 ‘한국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고 뭔지도 몰랐어요.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동아시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더라고요. 그 때부터 한국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고 노래를 들어보았는데 미국에선 접할 수 없는 음악에 푹 빠지게 되더라고요. 결국 뉴욕대학교(NYU)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연세대학교에 오게 되었고, 그 때의 기억이 정말 강렬하고 오래 남아서 오히려 뉴욕에 마음을 못 붙였어요. 그리고 다시 한국행 티켓을 끊었죠.”

한국의 20대 청년들에게 오히려 뉴욕은 동경의 도시이고 한 번쯤 뉴요커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하는 곳이다. 마익흘은 되려 그 반대였다. 서울 같은 도시가 어디있겠냐면서 뉴욕의 집이 그립지 않을 정도란다. “제게 느껴지는 가장 큰 매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편리한 대중교통체계입니다. 뉴욕도 지하철과 버스가 많지만 너무 복잡하고 정신없고, 시설도 쾌적하지 않아 최악이예요, 서울의 버스는 2~3분이면 한 대 씩 오고 도시 구석구석에 모두 닿기 때문에 굳이 차를 몰고 다니지 않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가격도 정말 저렴해서 학생들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타고 다닐 수 있잖아요. 다른 도시를 가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아요. 또 하나의 매력은 독특하고 다채로운 ‘길’문화가 있다는 거예요. 다 비슷한 길인 것 같아 보여도 거리를 지나다보면 새로운 거리 디자인을 배경으로 로드샵들이 즐비하고 있어요. 혼자 길을 거닐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정말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라고 생각되요.”

이미 그는 서울 시민보다도 더 서울을 구석구석 알고 있었다. 심지어 부산, 인천, 춘천, 수원에 이르기까지 전국곳곳을 돌아다녀보기도 하였다. 평생을 대한민국에서 보낸 기자에게 수원 화성 주변의 맛집을 말하며 가 본적이 있냐고 꼭 가서 먹어보라는 말도 덧붙여주었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한국의 문화를 오롯이 혼자만의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익흘은 다른 외국인보다 특별하다. “사실 뮤직비디오를 만든다고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하는 것은 없어요. 오히려 제가 시간과 돈을 투자를 해야되는 게 더 많죠. 하지만 보통 한 달 정도가 걸리는 제작 기간동안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고 한국 친구들을 만나며 사전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이 있어요. 그리고 이전에 없었던 것을 새로 창작해낸다는 즐거움은 해 보지 않고는 모르실거예요. 한국은 패션이든 음악이든 모든 면에서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저도 다음 작품을 구상하려면 그 속도를 항상 따라가려고 노력해야해요. UCC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짜고, 노래 가사를 작성하고, 노래를 녹음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흥미롭기 때문에 계속 작품을 만들어내는 거죠. 아마 그렇지 않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솔직히 저도 왜 하는 지 이유를 찾지 못했을 거예요.”

마익흘의 뮤직비디오는 단순한 촬영과 편집을 넘어서서 특별한 그 만의 영상미가 있다. 도저히 방안에서 일반 캠코더와 컴퓨터를 가지고 아무 기술도 없는 일반인이 했다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수 십편의 UCC를 제작하는 동안 그를 도와준 이들은 없었을까. “밴드 음악을 할 때 기타를 쳐 준 친구, 카메라를 들어준 친구들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또 저를 옆에서 정신적으로 지지해주는 친구도 있고요. 하지만 직접적인 도움을 준 친구들보다도 늘 제게 아이디어를 주는 수 많은 한국인 친구들이 있어요. (핸드폰 주소록을 뒤적이면서) 제 친구들의 80~90%는 다 한국인이네요. 제가 아직 한국어가 짧기 때문에 영어로 소통하지만 친구들이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 문화 같은 것을 대화 속에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저는 그걸 듣고 다음 작품을 구상합니다. 제겐 소중한 한국인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만큼의 인기도 얻기 힘들지 않았을까요.”

강남에 있는 어학원에서 연구개발팀에서 일하면서 한국생활을 해 온지 어언 5년째이다. 아무리 한국을 사랑한다고 해도 외국인의 시선으로 이해되지 않는 한국의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던져줄 메시지는 무언인지 물어보았다. “제가 보기엔 과도하게 쓰이는 영어들이 있어요. 굳이 영어로 쓰지 않아도 한국말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어로 다 쓰더라고요. 대학교에서 ‘MT간다’고 하잖아요. 그런 말 영어에서 쓰지도 않지만 굳이 그걸 꼭 MT라는 영어로 써야하는 지 이해가 안 되요. 물론 서양 문화권에서 온 제도나 물건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겠죠. 하지만 때론 너무하다 싶을 때가 있거든요. 저는 한국인이 아니지만 점점 한국어가 없어지는 게 슬퍼요. 영어가 과도하게 쓰이는 건 슬프지만 또 한쪽으로는 전세계 어디를 가도 전 국민이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나라가 없다는 점에서 저는 또 편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심지어 한국에서는 슈퍼마켓에 가도 아주머니가 영어를 하시더라고요.”

가족을 떠나 홀로 생활하는 것은 끝없는 외로움과의 싸움일 것이리라. 하지만 마익흘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에서 어려움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집에 있을 때 보다 편해서 요즘에는 미국도 1년에 한 번 ‘겨우’ 간다고 한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서 어려움은 없을까. “제가 한국말을 더 잘하면 조금 더 편하기는 하겠죠.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저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제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만약 모두 알아듣게 되면 그런 걸 듣고 상처를 받을 수 있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데 저는 알아듣지 못하니 혹여 제 뒷담화를 한다고 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런 것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한국어 실력을 확 늘리고 싶지는 않아요.”
인터뷰 내내 참 독특한 외국인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국 국적의 백인에 대한 편견도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익흘같은 국민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불꽃이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익흘이 먼저 한국의 20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공부와 진로 문제에 치여 답답한 가슴에 그의 말이 향기로운 박하사탕 같은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 “인생의 큰 목표를 하나를 세우면 그 이후에 소소한 계획들에 너무 얽매이지 마세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또 하나 20대가 젊음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60대, 80대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스스로가 젊다고 생각하면 젊은 거예요. 하지만 비록 20대라도 스스로가 너무 늦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이미 그 사람은 80대를 걷고 있는 거나 다름없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아직도 20살 인 것 같아요.”

★ 마익흘의 UCC를 감상하고 싶다면 www.youtube.com/p00lman을 방문하면 된다.

조을아 기자/을지
<lovelyeac@e-med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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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와 챔피언이 된다’

지난 9월 15일 이승복 박사 전남의대 강연 스케치

사지마비 척수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승복 박사는 현재 존스홉킨스병원 재활의학과 의사로 재직하고 있다.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냈으며, 여러 강연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 지금부터 ‘한계와 챔피언이 된다’라는 주제로 펼쳐진 다사다난 했던 그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자.

1부 한계

그에게는 두 개의 꿈이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과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첫번째 꿈 :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1978년, 8살이었던 이승복 박사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약사이셨던 아버지께서는 청소일을 하게 되셨고 어머니는 봉제공장에서 일하게 되셨다. 기회의 땅의 표상이었던 미국은 그가 보기에 빈껍질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화목했던 가정이 그리웠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접한 이질문화는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도시락을 보며 냄새 나는 중국요리라고 기겁하는 미국인들. 그들에게 김치는 붉은색 샐러드, 멸치는 눈알 박힌 물고기로 비춰졌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던 그가 우리말을 하면 돌아오는 것은 무시뿐이었다. 그래서 이승복 박사는 빵과 우유를 먹으면 미국인들처럼 될 것 같아 먹기를 꺼려했다.
미국생활에서 소외감, 외로움을 느끼던 중, 한인교회는 소속감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마음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무엇으로 공허함을 채울 수 있을까?’

어느 날, YMCA에 숨어들어가 보게 된 체조경기가 공허함의 답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기절할 정도로 황홀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더하여, 루마니아의 나니아 코마네치 선수가 체조경기에서 10점 만점을 받으며 그녀의 조국을 빛내는 영웅이 된 장면은 그를 더욱 불태웠다. 사랑하는 조국에 금메달을 선사하면 모든 한국인의 자랑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집을 떠나 체조선수가 되기 위한 긴 여정에 발을 내디뎠다.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잃는 것 뒤에 얻는 것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확신에 훈련에 매진하였다.
마루운동을 하던 어느 날, 그의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발생한다. 평소처럼 도움닫기를 했고 공중동작을 마쳤고 마무리동작만 하면 되는 찰나, 발대신 얼굴로 착지해 버리고 만다. 몇 초간 정신을 잃고 깨어났다. 다시 일어나 연습을 하려는데 일어날 수 없었고 눈 앞에는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갔다. 한국에서의 추억, 미국 생활, 웃는 친구들 모습, 한인 교회의 추억, 올림픽 꿈을 좇기 위해 집을 나선 순간…
어머니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셨고 아버지는 ‘부모님 말을 거역해서 그렇게 된거다’라며 질책하셨다. 부모님, 가족을 위해 택한 꿈이었는데, 아버지께 이런 말을 들으니 자신의 인생이 실패작이 된 느낌이었다. 다신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고 쓰레기가 된 느낌이었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은 사라졌다. 다시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공허함은 커져갔고 희망과 의지는 사라져갔다. 휠체어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끔찍한 악몽이길 바랐다. 회복하여 다시 올림픽 꿈에 매진할 생각뿐이었는데 사지마비를 통보 받은 것은 그를 견딜 수 없게 하였다.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 그는 가장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옷입기, 물마시기, 숟가락질 연습 등 재활치료를 열심히 하였다.

두번째 꿈 :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의사가 되리라.

-‘Even my parents, “this is impossible to you, go to the medical school”’

SAT를 준비하여 뉴욕대학교에 입학하고, 남들보다 2~3배의 시간을 들여 의욕적으로 공부에 매진하였다. 체조에서 공부위주로 삶을 재편성한 것이다. 하지만 의사를 꿈꾸는 그에게 ‘가능하다’라고 말해 준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건 힘들 것 같다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래도 그는 꿋꿋이 공부하여, 컬럼비아대학교 공중보건학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UN에서 경력도 쌓았다. 그 결과 졸업 때 학교장 추천으로 다트머스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최우수 졸업생이 된다. 그리고 하버드 인턴프로그램을 통해 트레이닝을 받게 된다.
하버드대학병원에서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눈물 속에서 24~36시간이상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내야 했다. 밤에 잠을 못 자도 계속 전진해 나가야 하는 생활은 제 2의 올림픽 레이스와도 같았다. 치열한 전쟁터 속에서도 그는 교수, 동료들의 추천을 받아 올해의 인턴으로 뽑히게 된다. 레지던트와 펠로우 과정도 무사히 마쳐 결국, 미국 최고 병원인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재활의학과 의사로 일하게 된다.
이승복 박사는 사지마비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꿈을 이뤄냈다. 같은 처지의 환자들에게 좌절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는 환자와 의사관계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먼저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이점으로 꼽았으며, 이는 자신의 한계와의 싸움으로 얻어낸, 심장 내 태극마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새로 시작한 제2의 올림픽에서 그는 한국인으로서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는 자신이 만듭니다. 자신의 한계에 대한 답은 본인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한계를 한계로 받아들이지 않고 뛰어 넘어 왔습니다.’

2부 챔피언이 된다.
- ‘All of you, future of KOREA’

챔피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한계와 불가능을 이겨내어 자신의 성취를 이루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자이다. 이것이 바로 이승복 박사의 챔피언에 대한 정의이다.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한국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그를 통해 좌절이 결코 절망이 아니라는 것,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열정과 꿈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주길 바란다. 덧붙여, 뼈를 깎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 30년 전에는 미국생활이 하기 싫었으나, 이제는 저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준 미국생활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을, 의사로서 환자들을,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주변인들을 사랑하세요.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받을 대한민국을 위해서 열정이 넘치는 목표가 희미해지기 전에 그 꿈을 다잡고 이룰 수 있도록 해요. 진정한 챔피언을 위해…’

마지막으로 이승복 박사는 질의응답을 통해 다음을 전하였다. 그는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언젠가 한국에 와서 의료계 리더를 가르치는 것이 또 다른 목표라 한다. 더불어 장애인으로서 모든 분야가 도전이었던 그는 한국인들이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그들을 정상인으로 대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또한, 의사를 향한 꿈에 유혹의 손길이 있다면 왜 의사가 되려 하는지 매일 자문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더욱 꿈은 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강수진 기자/전남
<pi1125@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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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에게도 필요한 예방접종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의학 상식

의대생이라고 하면 ‘내가 요즘 어디가 좀 아픈 것 같은데~’하시며 진료를 받으시려는 분들이 있다. 적어도 한번쯤은 난감한 건강 관련 질문으로 당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 같은 웰빙시대에는 워낙 다들 건강에 관심이 많다보니 고혈압기준이나 당뇨병의 갖가지 종류 등을 꿰차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적지 않다. 언제까지 ‘저는 아직 학생이라서요 잘 모르겠습니다’로 일관할 것인가. 아는 척은 못해도 쪽팔리진 말자. 피가되고 살이되는 의대생 기본상식으로 성인에게 필요한 예방접종을 정리해보았다.
특히 대한감염학회에서는 의료인에게 필요한 예방접종을 따로 구분하고 있는데, B형간염, 수두, MMR 등이 속한다. 실제로 울산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및 몇몇 의과대학에서는 의대생들에게 병원 실습 전에 B형간염 항체여부를 검사하기를 추천하고 있다. 간혹 매우 신중한 학생들 중에는 A형간염 백신을 챙겨 맞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A형간염은 진료비를 제외한 백신 값만 한번에 8만원이기 때문에 실습 전에 필수적으로 챙겨야할 백신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사람 유두종 바이러스(HPV) 예방접종의 경우에는 더욱 논란이 많다. 암중에 유일하게 예방이 가능한 백신이고 국내 암사망원인 4등을 차지하는 자궁경부암을 예방한다하여 최근 크게 유명세를 타고 있다. HPV-16, 18이 자궁경부 발생원인의 70%를 차지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백신을 고안해 낸 것인데, 가다실(HPV-6, 11, 16,18)과 서바릭스(HPV-16,18) 두 종류가 있다. 가다실은 자궁경부암 뿐 아니라 자궁 내 사마귀나 질암 등에도 효과가 있는 반면 서바릭스는 자궁경부암에 집중한 대신 높은 안정성으로 승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성에서도 HPV 백신이 구인두암 예방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 제일 싼 가격을 알아봐도 최소 12만원(총 3번 접종하므로 결국 36만원의 거금이 든다)이라는 고가의 백신 가격 때문에, 또 자궁경부암의 발생을 100% 예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명세에 비해 널리 접종되고 있지는 않다. 대한감염학회에서도 서양보다는 비용대비 효과가 낮을 것으로 생각되어 낮은 권장정도로 분류되어 있다.

※ 나이나 거주지 등의 위험인자에 따라 권장되는 예방접종 종류는 다를 수 있으므로 대한감염학회홈페이지<http://www.ksid.or.kr/>를 참고 바랍니다.

문정민 기자/중앙
<jmmoon@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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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

83호(2011.10.10)/문화생활 2011. 10. 18. 19:47 Posted by mednews

▶ 7개 저축은행 영업정지 조치
지난 9월 18일 제일, 토마토, 프라임 등 7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됐다.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미만이거나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저축은행이 퇴출되었는데, 저축은행 업계 2위의 토마토 저축은행이 퇴출대상에 포함되어 파장이 컸다.

▶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압축
지난 3일 열린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에서 박원순 변호사가 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누르고 야권 단일후보로 확정됐다. 이로써 선거는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의 대결로 압축됐다.

▶ IT 업계의 신화 스티브 잡스 사망
스티브 잡스가 2004년 얻은 췌장암과의 투병 끝에 지난 10월 6일 사망했다. 1976년 애플을 공동창업하여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연 잡스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제품으로 IT 업계에 바람을 남기고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 곽노현 교육감 구속기소... 서울시교육감 직무 정지
검찰이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후보단일화의 대가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로 곽노현 교육감을 구속기소했다. 구속 기소와 함께 곽 교육감의 직무집행이 정지돼 서울시교육청은 부교육감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 전국서 사상초유 정전사태
9월 15일 전국에 대규모 정전사태가 일어났다. 늦더위에 따른 전력 수요 급등으로 발생한 이번 사태로 전국 곳곳에서 정전사태가 속출했다. 정전사태로 인해 많은 피해가 속출했으며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정전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 영화 ‘도가니’ 충격실화... 인화학교 논란
공지영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도가니’가 흥행에 성공한 가운데 실제 영화와 소설의 배경이 된 광주 인화학교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당시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논란이 되고 있으며 인화학교의 폐교 여부를 두고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은 양형기준도 재검토할 방침이다.


조영탁 기자/울산
pokytjo@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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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83호(2011.10.10)/문화생활 2011. 10. 18. 19:45 Posted by mednews

책/영화
책 ‘행복의 정복’, 마음을 적시는 시원한 물 한잔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복은 마치 무르익은 과실처럼 운 좋게 저절로 입안으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 16장 노력과 체념 사이 中

서점에 나와 있는 행복을 위한 처세술을 보면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목표달성을 위한 경쟁을 부추기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족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 첫 번째 책은 대개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쓴 책이다. ‘성공하려면 나처럼 해보세요.’ 그들이 이룬 업적은 존경할만하나 그들이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엔 나와 맞지 않은 부분이 많고 왠지 모르게 피곤해진다. 두 번째 책은 나 자신을 억눌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경쟁의식, 질투, 이기심... 모두 제거할 수는 없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의 정복’은 위의 처세술 공식을 모두 벗어난 책이다. 경쟁을 부추기거나 포기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앞의 처세술이 달콤해도 마실수록 갈증이 나는 탄산음료라면, ‘행복의 정복’은 우리에게  필요한 신선한 물이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태어난 버트란드 러셀은, 실은 아주 유명한 철학자이다. 19세기 말부터 영국에서 유력한 학설이었던 관념론에 대한 실재론을 주장했었다. 지적인 탁월함으로 분석철학에서 큰 활약을 했지만, 사실 그의 활동력의 원천은 ‘현실사회와 인간에 대한 진솔한 관심’에 있었다. 그는 철학자임에도 사회와 인간에서 벗어난 학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앞에서 소개한 철학들은 모두 고독의 철학이다. / 내가 보기에 이러한 철학들은 모두 그릇된 것이다 ... 인간은 협력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2장 이유없이 불안한 당신 中)
학자였던 그는 인간의 본성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줄 알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걱정에 비해 크게 나을 것이 없다. 게다가 그것은 소유욕의 위장된 형태인 경우가 많다.” (12장 사랑의 기쁨 中)
그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팁을 제시한다.“훌륭한 책들은 모두 지루한 부분이 있고, 위대한 삶에도 재미없는 시기가 있다.”
“지나치게 많은 자극은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근본적인 만족감을 표면적인 쾌감으로, 지혜를 얄팍한 재치로, 아름다움을 생경한 놀라움으로 바꾸어 버린다...어느 정도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행복의 필수조건은 우연히 이웃이 되거나 알고 지내게 된 사람들이 지닌 비본질적 취미나 욕망에 견주어 자신의 생활방식을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충동으로부터 비롯한 생활방식을 확립하는 것에 있다.

이 책은 인생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아서 누가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서 인상적인 부분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본인이 직접 인상 깊은 부분을 줄 그어가며 읽어보기를 바란다. 과장되거나 왜곡된 관점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를 관조하는 작가의 통찰력에 놀라게 될 것이다.


공연/전시
가을바람에 어울리는 음악 페스티벌!

시월에 눈 내리는 마을
관객과 함께 만드는 공연을 지향하는 시월에의 열 한번 째 공연. 홈페이지 투표를 통해 아티스트가 부를 곡을 결정할 수 있고, 관객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연출이 구상된다. 매년 4~5명의 뮤지션이 4시간 동안의 무대를 채우는데 올해는 이소라, 김연우, JK 김동욱 굵직한 가수 3명이 초대되었다. 무대 중간에 시월에 홈페이지에 올려진 관객들의 사연이 소개되기도 하고, 앞에 앉은 관객 중 한명을 불러내어 가수가 그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마치 하나의 마을이 조성된 듯한 은은한 조명과 피날레에 뿌려지는 하얀 눈가루는 시월에의 보너스! 하지만 연인들을 위한 공연을 표방하는 만큼 연인들이 관객의 80%를 차지하고 공연막바지에 키스타임이 있으므로 솔로분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셔야할 듯하다. 마지막으로 슈퍼스타K 팬들을 위한 정보하나! 시월에가 Mnet에서 주최하는 공연이라 작년엔 슈퍼스타K2 Top 4 사인방이 출연했었다고 하니 올해도 잘하면 슈퍼스타K3 Top4가 공연장을 찾아올지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GMF)
올해로 5주년을 맞이한 GMF! 수많은 페스티벌의 생성과 소멸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국내 페스티벌의 명실상부한 자존심. 올해는 페스티벌 레이디 장윤주씨를 필두로 국내 최고의 뮤지션들이 의기투합했다.
GMF는 가을에 열리는 공연에 걸맞게 차분하면서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랑한다. 조금 더 가까이서 가수를 보기위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도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고, 아예 공연장 주위에 여유롭게 앉아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이 방방 뛰어다니는 여름의 락페스티벌을 생각한다면 오산! 공원에서 즐기는 가을소풍을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인기있는 가수의 공연엔 사람들이 몰리므로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묵어서 가는게 좋을 듯 하다.
GMF를 즐기기 위한 팁을 제시하자면 첫째, 표는 예매하고, 절대 현장수령은 하지 말라는 것. 오랫동안 줄을 서야하기 때문이다. 둘째, 인스턴트 음식은 반입금지이므로 도시락을 싸가는 것이 좋다. 안에서 음식을 팔기도 하지만 이것도 역시 1시간 이상 줄을 서야한다. 셋째는, 타임 테이블을 확인하고 보고 싶은 공연을 계획해서 보라. 공연장사이의 거리가 꽤 있으므로 이것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에버그린 뮤직 페스티벌 (EMF)
“음악과 가족이 함께 하는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이틀” 모처럼 부모님과 시간을 내고 싶다면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난지 한강공원 EMF를 추천한다. 봄여름가을겨울, 세시봉, 부활, 이승환, 스키조, 정성하 등 젊은층과 중장년층의 취향이 골고루 반영된 출연진이 눈길을 끈다. 금년에는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소속 회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 온 대한민국 대표 싱어송라이터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악을 매개로 선후배 음악인이 하나가 되는, 다양한 무대를 선보일 계획이다.

박민정 기자/성균관
<cindy@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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