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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갑자기 ‘칼값’을 깎은 까닭은

조기위암 내시경수술 중단, 그 이면의 줄다리기

가정) 당신은 30여년 전통의 유명 중국집 사장님이다. 30년 전 자장면 값은 단돈 500원. 그러나 밀가루값, 인건비, 건물세 등의 인상으로 30년동안 자장면 값은 무려 7배인 3500원까지 올렸다. 이것도 고객들을 생각해서 최소한의 가격만을 올린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에서 국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봐야한다며 전국의 자장면값을 30년전인 500원으로 통일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어길 시 영업 정지 등의 강경한 처분을 내린다고 한다. 유명한 자장면 맛집 동호회 클럽장인 김자장씨는 “서민들의 맛과 애환이 담긴 자장면 값이 내려간 것에 대해 환영한다”는 뜻을 기자회견에서 밝혔고, 자장면 판매 중지 등의 집단행동을 보이려던 중국집들은 상호 및 전화번호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었다. 이제 당신의 선택은?

지난 9월 전국의 많은 대형 병원들이 ‘내시경적 점막 하 박리술(Endos-copic submucosal dissection)’의 시술을 거부하고 나섰다. 9월 1일부터 크기가 2cm 이하인 조기 위암을 치료할 경우 박리절제술도 건강보험 적용 항목으로 인정되고, 기존 250~300만원에 이르던 치료비가 상급종합병원을 기준으로 평균 30~50만원가량으로 낮아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기존에 40만원 가량이던 재료비도 9만원으로, 의료진들의 시술비용은 무려 이전의 10%대로 떨어진 것이다.
재료값이 무려 78%나 떨어지자 시술용 재료를 공급하는 해당 업체인 올림푸스한국은 이 절제술을 하는 각 대학병원에 지난 8월 30일 공문을 통해 재료값이 너무 낮게 책정돼 재료를 공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올림푸스한국 관계자는 “형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20만~40만원대에 수입된다”며 “하루아침에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값에 공급할 수는 없어 공문을 보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조기 위암 내시경 수술의 적응증을 2cm 이하로만 제한하면서, 2cm 이상의 환자들은 복강경이나 개복수술을 하도록 했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그동안 림프절 전이가 없는 3~4cm의 조기 위암 치료에도 유효성이 입증된 시술인데 이런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의학계의 반발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시술비가 크게 떨어진 것에 불만을 품은 의사들도 의료기기 업체와 동조해 결국 환자들이 시술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비롯하여 환자단체연합회는 “병원이 정말 환자들을 생각한다면 수술을 중단할 것이 아니라, 내시경 시술용 칼의 공급을 거부한 올림푸스에 즉시 공급 재개를 요청했어야 했다”며 “의료계는 겉으로는 환자를 앞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자신들의 이익과 건강보험 적용 반대를 통한 병원 수익 창출에 더 관심이 많다"고 꼬집었다. 현재 의료계는 수가를 이유로 수술을 거부했다며 각종 환우회 등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상태다. 이에 백혈병 환우회 관계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돈을 받지 않더라도 진료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견해를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의료계 내에서는 이번 사태가 그동안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던 수가 책정에 결국 곪은 부분이 터진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08년 4월 당시 보건복지부에서는 향후 2년간 ESD 시술의 유효성을 본 뒤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에서는 2년이라는 위암수술 연구기간으로는 너무 짧은 기간이라며 조금만 더 연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보건복지부측은 정해진 기간만을 강조하며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2년간 6천건 이상의 시술이 있었기 때문에 안전성을 위하여 제한할 수 밖에 없다’라는 이유로 시행령을 내었고 현재의 사태까지 오게 되었다. 현재는 올림푸스가 조정 신청을 한 가격을 보건복지부 측에서 상당부분 수용하여 올림푸스한국 측에서 병원에서 원할 경우 칼 재료를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 9일 오후 2시 주요 병원장과 관련 협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ESD 시술 재개를 위한 긴급대책회의를 개최했다. 국민들의 진료에 차질이 빚어진 이번 사태에 대해 정부와 의료계 모두가 반성하고 주요 병원들은 수술에 필요한 재료인 칼 공급이 재개되면, 현재 고시된 시술 범위에 적합한 환자를 대상으로 시술을 조속히 재개하기로 했다. 또 향후 시술 범위에 대한 확대 요구, 수가 인상 등의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정부와 심평원은 열린 자세로 관련 학회의 전문가 등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조치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와 같이 환자를 담보로 시술을 중단하는 사태가 향후 재발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승현 기자/을지
<toypotato@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