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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마익흘

83호(2011.10.10)/문화생활 2011. 10. 18. 19:50 Posted by mednews

내 이름은 마익흘

세계적인 동영상 사이트 Youtube에 서울 지하철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동영상이 있다. 서울에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역마다의 특징과 서울 지하철의 우수성을 노래하는 그는    순수한 미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 ‘마익흘’(본명 Michael Aronson, 29세)이다. 얼마 전 KBS 9시 뉴스에 소개되면서 그의 인기는 치솟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의 뮤직비디오들을 한 번 보게 되면 의아해한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한국에 와서 한국 예찬론을 펼치며 창작열을 불태우는지. 그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라는 강남역 카페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그건 사고였어요.”
왜 한국에 오게 되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매우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었죠” 라며 기자의 표정을 살폈다. 잠시 후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고 좋아하면서 당연히 농담이었다고 웃었다.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해 하지 않는 모습이 천성 미국인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고 또 이곳에서 터를 잡기 시작했을까. “대학교 1학년 때 온라인상에서 한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는 ‘한국인’이라고 하는 데 솔직히 그 때는 ‘한국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고 뭔지도 몰랐어요.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동아시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더라고요. 그 때부터 한국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고 노래를 들어보았는데 미국에선 접할 수 없는 음악에 푹 빠지게 되더라고요. 결국 뉴욕대학교(NYU)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연세대학교에 오게 되었고, 그 때의 기억이 정말 강렬하고 오래 남아서 오히려 뉴욕에 마음을 못 붙였어요. 그리고 다시 한국행 티켓을 끊었죠.”

한국의 20대 청년들에게 오히려 뉴욕은 동경의 도시이고 한 번쯤 뉴요커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하는 곳이다. 마익흘은 되려 그 반대였다. 서울 같은 도시가 어디있겠냐면서 뉴욕의 집이 그립지 않을 정도란다. “제게 느껴지는 가장 큰 매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편리한 대중교통체계입니다. 뉴욕도 지하철과 버스가 많지만 너무 복잡하고 정신없고, 시설도 쾌적하지 않아 최악이예요, 서울의 버스는 2~3분이면 한 대 씩 오고 도시 구석구석에 모두 닿기 때문에 굳이 차를 몰고 다니지 않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가격도 정말 저렴해서 학생들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타고 다닐 수 있잖아요. 다른 도시를 가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아요. 또 하나의 매력은 독특하고 다채로운 ‘길’문화가 있다는 거예요. 다 비슷한 길인 것 같아 보여도 거리를 지나다보면 새로운 거리 디자인을 배경으로 로드샵들이 즐비하고 있어요. 혼자 길을 거닐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정말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라고 생각되요.”

이미 그는 서울 시민보다도 더 서울을 구석구석 알고 있었다. 심지어 부산, 인천, 춘천, 수원에 이르기까지 전국곳곳을 돌아다녀보기도 하였다. 평생을 대한민국에서 보낸 기자에게 수원 화성 주변의 맛집을 말하며 가 본적이 있냐고 꼭 가서 먹어보라는 말도 덧붙여주었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한국의 문화를 오롯이 혼자만의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익흘은 다른 외국인보다 특별하다. “사실 뮤직비디오를 만든다고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하는 것은 없어요. 오히려 제가 시간과 돈을 투자를 해야되는 게 더 많죠. 하지만 보통 한 달 정도가 걸리는 제작 기간동안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고 한국 친구들을 만나며 사전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이 있어요. 그리고 이전에 없었던 것을 새로 창작해낸다는 즐거움은 해 보지 않고는 모르실거예요. 한국은 패션이든 음악이든 모든 면에서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저도 다음 작품을 구상하려면 그 속도를 항상 따라가려고 노력해야해요. UCC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짜고, 노래 가사를 작성하고, 노래를 녹음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흥미롭기 때문에 계속 작품을 만들어내는 거죠. 아마 그렇지 않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솔직히 저도 왜 하는 지 이유를 찾지 못했을 거예요.”

마익흘의 뮤직비디오는 단순한 촬영과 편집을 넘어서서 특별한 그 만의 영상미가 있다. 도저히 방안에서 일반 캠코더와 컴퓨터를 가지고 아무 기술도 없는 일반인이 했다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수 십편의 UCC를 제작하는 동안 그를 도와준 이들은 없었을까. “밴드 음악을 할 때 기타를 쳐 준 친구, 카메라를 들어준 친구들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또 저를 옆에서 정신적으로 지지해주는 친구도 있고요. 하지만 직접적인 도움을 준 친구들보다도 늘 제게 아이디어를 주는 수 많은 한국인 친구들이 있어요. (핸드폰 주소록을 뒤적이면서) 제 친구들의 80~90%는 다 한국인이네요. 제가 아직 한국어가 짧기 때문에 영어로 소통하지만 친구들이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 문화 같은 것을 대화 속에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저는 그걸 듣고 다음 작품을 구상합니다. 제겐 소중한 한국인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만큼의 인기도 얻기 힘들지 않았을까요.”

강남에 있는 어학원에서 연구개발팀에서 일하면서 한국생활을 해 온지 어언 5년째이다. 아무리 한국을 사랑한다고 해도 외국인의 시선으로 이해되지 않는 한국의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던져줄 메시지는 무언인지 물어보았다. “제가 보기엔 과도하게 쓰이는 영어들이 있어요. 굳이 영어로 쓰지 않아도 한국말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어로 다 쓰더라고요. 대학교에서 ‘MT간다’고 하잖아요. 그런 말 영어에서 쓰지도 않지만 굳이 그걸 꼭 MT라는 영어로 써야하는 지 이해가 안 되요. 물론 서양 문화권에서 온 제도나 물건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겠죠. 하지만 때론 너무하다 싶을 때가 있거든요. 저는 한국인이 아니지만 점점 한국어가 없어지는 게 슬퍼요. 영어가 과도하게 쓰이는 건 슬프지만 또 한쪽으로는 전세계 어디를 가도 전 국민이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나라가 없다는 점에서 저는 또 편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심지어 한국에서는 슈퍼마켓에 가도 아주머니가 영어를 하시더라고요.”

가족을 떠나 홀로 생활하는 것은 끝없는 외로움과의 싸움일 것이리라. 하지만 마익흘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에서 어려움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집에 있을 때 보다 편해서 요즘에는 미국도 1년에 한 번 ‘겨우’ 간다고 한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서 어려움은 없을까. “제가 한국말을 더 잘하면 조금 더 편하기는 하겠죠.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저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제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만약 모두 알아듣게 되면 그런 걸 듣고 상처를 받을 수 있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데 저는 알아듣지 못하니 혹여 제 뒷담화를 한다고 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런 것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한국어 실력을 확 늘리고 싶지는 않아요.”
인터뷰 내내 참 독특한 외국인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국 국적의 백인에 대한 편견도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익흘같은 국민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불꽃이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익흘이 먼저 한국의 20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공부와 진로 문제에 치여 답답한 가슴에 그의 말이 향기로운 박하사탕 같은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 “인생의 큰 목표를 하나를 세우면 그 이후에 소소한 계획들에 너무 얽매이지 마세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또 하나 20대가 젊음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60대, 80대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스스로가 젊다고 생각하면 젊은 거예요. 하지만 비록 20대라도 스스로가 너무 늦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이미 그 사람은 80대를 걷고 있는 거나 다름없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아직도 20살 인 것 같아요.”

★ 마익흘의 UCC를 감상하고 싶다면 www.youtube.com/p00lman을 방문하면 된다.

조을아 기자/을지
<lovelyeac@e-med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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