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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와 신경과, 좌광우도1) 구별법

다음 두 증례 중, 하나는 신경과의 증례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과의 증례다. 일반인들과 예과생들에게는 정신과와 신경과가 무엇을 다루는 과이고, 두 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애매하게 다가오기 쉽다. 두 증례 중 어느 쪽이 정신과 증례이고, 어느 쪽이 신경과 증례일까?


A. 21세 여자가 한 달에 한두 번 갑자기 눈앞에 헛것이 보이면서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발생하는 것을 주소로 내원하였다. 이러한 증상은 수 분간 지속된다고 하였다. 면담 중 갑자기 한 곳을 응시한 채 입맛을 다시더니 무언가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뺨과 팔을 때리다가 곧 쓰러지면서 의식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뇌파 검사상 왼쪽 측두엽에 극파가 보였다.

B. 32세 남자가 8개월 전부터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이 신경이 쓰여서 직장생활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고 TV에서 자신의 얘기가 나오는 것 같아 TV를 잘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환자는 모르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욕을 한다고 상황에 맞지 않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신경정신과? 정신과? 신경과?
그 길고도 짧은 역사

일반인들이 흔히 정신병을 치료하는 과로 알고 있는 ‘신경정신과’는 존재하지 않는 명칭이며, 현재 ‘정신과’와 ‘신경과’라는 독립된 두 과가 있다. 그러면 ‘신경정신과’는 어디에서 나온 말일까? 우리나라 정신과와 신경과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45년에 조선정신신경학회가 창립되었고, 1955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그 후 외국에서 신경과학을 수학한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1981년에 대한신경과학회를 창립하여 대한의학협회에 준회원으로 등록하였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의 논의 끝에 정신과와 신경과를 분리·독립하기로 했다. 결국 1982년 대한신경과학회가 창립되었다. 이런 연유로 신경정신과라는 명칭이 오래 남아있었고, 신경과와 정신과는 가깝지만 먼 사이가 된 것이다.

신경과와 정신과,
공통점과 차이점?

그렇다면 신경과와 정신과는 각기 어떤 부분을 다루고 있을까? 과거, 신경과와 정신과가 함께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과가 다루는 ‘정신(mind)’과 신경과가 다루는 ‘신경계’가 교집합으로 겹치는 부분인 ‘뇌’ 때문이다. 곧, 두 과 모두 ‘뇌’를 다룬다는 큰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신경과와 정신과에는 여러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우선 주된 치료대상에서 차이를 보인다. 신경과에서 다루는 부분은 주로 뇌와 신경에 두드러진 기질적 병변이 있는 경우다. 이를테면 뇌경색이나 뇌출혈 같은 뇌혈관질환, 뇌종양, 신경 세포가 죽어가는 신경변성질환, 비정상 뇌파가 관찰되는 간질 등이다.
이에 비해 정신과는 정신(또는 행동)장애를 치료한다. 정신 장애에는 정신분열병, 우울증과 조울증이 속한 기분장애, 스트레스 장애, 사회 공포증 같은 불안장애 등이 있다.
치료대상이 다른 만큼 진단법과 치료법 역시 차이가 나는데, 각기 독특한 진단법과 치료법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의과대학생들이 신경과와 정신과에 매력을 느낀다. 먼저 진단법을 살펴보면, 정신의학은 정신장애를 ‘증상’에 따라 분류하며, 진단도 임상병리검사나 특수검사보다는 병력청취, 정신상태 검사 등 임상기술과 면담기술에 의존하여 행한다. 이와 달리 신경과는 근육긴장도 측정, 근력 검사, 해머를 사용하는 각종 반사 검사 등의 신체검사와 뇌파검사, 근전도 검사가 진단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치료법으로, 정신과는 약물(항불안제, 항우울제 등)을 처방하는 생물학적 치료와 정신 분석적 정신치료, 인지치료, 행동치료로 이루어진 정신사회적 치료기법이 특징적이다. 신경과에서도 약물치료는 이루어지지만, 정신과보다 외과적인 시술이 훨씬 흔하고, 원인 질병에 따라 면역 치료도 한다.

A? B?, A! B!

공통적으로 뇌를 다룰 뿐 아니라, 점점 생물학적, 영상학적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서로 영향을 크게 주고받고 있는 신경과와 정신과. 사실 그 둘을 뚜렷이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신경과와 정신과에 대한 간단한 상식을 통해 A, B가 각각 어느 과의 증례인지 짐작해보자.
정신과와 신경과를 배운 일부 학생들은 기사를 읽기도 전에 A는 간질발작(복합부분발작) 증례이고, B는 정신분열병 증례임을 눈치 챘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처음에 몰랐더라도 기사를 다 읽은 뒤 A가 신경과, B가 정신과 증례라는 것을 맞춘 학생이라면 더 이상 정신과와 신경과 사이에서 애매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김다혜 기자/대구가톨릭
<anthocy@e-mednews.com>

1) 광어와 도다리를 구별할 때 머리가 왼쪽을 보고 있으면 광어, 오른쪽을 보고 있으면 도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