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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준비하는 해외서브인턴

 

다른 나라를 경험해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쉽게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여행이지만 여행은 꼭 학생이 아니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학생의 신분으로 외국을 경험해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 그것이 바로 해외서브인턴이다. 해외서브인턴이라고 하면 외국 거주 경험이 없거나, 외국을 나가 본 경험이 별로 없는 학생들에게는 막연한 남의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외국이라고 하면 당장 언어 문제부터 골치가 아파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사람, 경제적인 이유로 미리 마음을 접는 사람, 다른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자체가 너무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의대생 중에 꽤나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의과대학 중에는 이미 자매결연 협정이 체결되어 있는 외국 의과대학이 있어서 학교에 신청만 하면 쉽게 해외서브인턴을 나갈 수 있는 학교도 있지만 또 많은 학교들은 그런 제도 조차 학교에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정말로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나 혼자 준비하는 해외서브인턴방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것이 모든 고민의 답이 될 수는 없지만 꿈만 꾸다 시도도 못해보고 포기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구원의 손길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 지원 시기를 정하고 학교와 의논하기

 

일단 내가 가고자 하는 시기를 정해야 한다. 자유선택실습과정이 있는 학교라면 그 기간에 해외서브인턴을 갔다 올 경우 학점을 인정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꼭 확인을 해 보고 학교에서 선 허가를 받아놓도록 한다. 그런 과정도 없는 학교라면 학기 중에 학점 대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과정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 학점 대체 인정을 위해서 서브인턴을 하는 곳에서 받아와야 하는 서류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꼼꼼히 체크해 둔다. 학기 중에 가는 것이 불가능 하다면 방학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다만 보통의 해외 의과대학은 본3, 본4 학생들을 조건으로 받고 있으며 이들 학년의 경우 국내 의과대학에서는 방학을 길게 주지 않으니 시기를 잘 조정해 보도록 한다. 참고로 외국대학의 경우 3주 이내의 실습은 신청을 좀처럼 받고 있지 않고 있다.

 

<체크리스트>

 

학점 인정을 해 줄만한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가?
어느 학년에 해외서브인턴을 지원할 수 있는가?
방학 일정에 갔다올 만한 시간이 확보되는가?

 

 

둘, 지원 전 구비 서류

 

일단 어느 나라를 갈지, 어느 학교를 갈지에 대해서부터 막막한 경우가 많다. 무조건 특정 나라의 특정 대학을 가겠다고 굳게 마음 먹은 경우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언제든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두고 국가와 학교를 선택해나가는 것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서브인턴을 할 기간을 대충 정했다면 적어도 그 기간부터 1년전부터 지원서를 내고 신청을 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1년전에는 지원을 위한 서류들이 이미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거의 공통적으로 준비되어야 하는 서류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어학 성적 (토플, HSK, JPT 등 해당 언어의 공인어학성적, 지원 시기 당시에 꼭 유효한 성적이어야 하므로 1년 전까지 성적을 확보해 둘 것, 따라서 2년 전부터는 어학 성적도 준비해 놓아야 함)
추천서 (보통 지도교수님의 추천서나 의과대학 학장의 추천서를 요구한다. 추천서의 경우 학생이 써서 교수님께 확인받는 경우도 있고, 교수님이 직접 써 주시는 경우도 있으나 어느 경우든 검토하고 확인받는 데 시간이 소요되니 시간 날 때 추천서를 미리 써 두는 것을 추천한다. 영문 추천서를 본인이 써야 하는 경우 막막할 수 있으나 구글에 medical school recommend-ation 등의 검색어로 검색을 하면 예시 샘플이 많이 나와 있으니 그 형식을 참고하여 본인의 스펙에 맞게 고쳐 작성하면 좋다. 외국의 경우 근거가 있는 활동들을 중요시 하므로 자신이 학생 때 했던 활동들을 잘 활용해서 쓰기를 권한다. 추천서는 반드시 작성한 교수님의 날인과 학교 봉인이 들어가 있어야 하므로 확인 꼭!)
예방접종 확인서 (국가에 따라 요구하는 것이 다르지만 대부분 간염, 파상풍, 결핵 등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여학생의 경우 풍진접종 확인서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니 꼭 확인하고, 맞지 않은 예방접종이 있다면 미리미리 맞아두고 확인서를 받아두어야 한다)
감염관리 교육 확인서 (아무래도 직접 병원에서 실습을 하는 서브인턴이다 보니 감염관리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는 학교들이 꽤 있다. 해당 학교에서 형식을 주는 경우도 있고, 알아서 본인의 학교에서 포맷을 만들어서 제출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pk 실습때 꼭 한 번은 하게 되는 교육이니 기간을 명시하여 확인서를 만들어 달라고 학교에 요청해야 한다.)
USMLE (많은 학생들이 미국 서브인턴을 생각하는 만큼 여력이 된다면 USMLE step1 까지는 따 놓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step 1만 있더라도 지원할 수 있는 학교의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 있으니 가능하다면 미리미리 공부해서 지원 1년전까지는 점수를 확보해 놓을 수 있도록 한다.)
기타 (성적증명서, 재학증명서, 재학 중 수료한 실습과목 확인서 등이 있으며 이는 학교에 요청만 하면 바로바로 나올 수 있는 서류들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셋, 국가와 학교 정하기

 

국가와 학교를 정하는 데에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체류비를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수업료에 대해서 낼 만한 가치가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하는지, 서브인턴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생길 수 있다. 국가와 학교를 정할 때 정말로 오래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국가나 학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여유있게 생각하고 찾아보는 것이 좋다. 일단은 크게 서유럽, 동유럽, 중동, 동아시아, 미주, 호주 이렇게 크게 나눠서 하나를 정하고, 이 중에 하나를 정하면 그 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조건과 스펙을 고려하여 고르는 것이 좋다.

 

 

<지원과정에 도움이 되는 웹사이트들>

 

www.usmlekorea.com

: CLERKSHIP 메뉴에 가면 관련 질문들과 그에 대한 답들이 있으며 지원 과정에 상세한 정보들도 제공하고 있다.
https://services.aamc.org/eec/students/index.cfm

: 미국 내 clerkship 할 수 있는 의과대학과 지원 조건을 검색해 볼 수 있다.
http://www.han-eol.net/index.php?location=ko

: 한국계 의대생을 대상으로 방학 동안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재단

 

넷, 지원하기

 

지원서는 보통 우편으로 받는 경우가 많으며 때에 따라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경우 전화로 사전 인터뷰를 담당자와 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해당 홈페이지를 꼼꼼히 확인할 것을 요한다. 지원서를 제출하면서 보통 지원수수료나 학비를 내게 되며 이는 ‘외환수표’의 형태로 우편에 동봉하여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환 수표는 모든 은행에서 발행하게 되며 발행을 위해서는 해당 학교명, 받는 부서나 학교내 주소, 정확한 금액, 지원 학생의 신분증이 필요하다. 외환 수표의 경우 분실이 되거나 반송이 되어올 경우 문제가 복잡해지고 수표의 금액의 약 50% 이상을 환전 수수료로 지불하게 되니 꼭 주의해서 취급하도록 한다. 지원서류가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아예 서류 진행이 불가한 경우가 많으니 보내기 전에 두 번 세 번 확인 후 보내도록 한다. 서류 도착에 대해서 불안하다면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서류가 잘 도착하였는지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섯, 체류를 위한 준비

 

서브인턴 확정이 되기까지 체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서브인턴에 합격하지 못하여 못 가게 될 경우도 있겠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비행기 표 및 거주할 곳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좋다. 해당 학교에서 기숙사를 제공해 준다면 단연 최고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고, 기숙사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한정적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숙소를 잘 알아보도록 한다. 숙소에 대한 문제는 이미 이전에 학교를 정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조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체류를 하는 동안 필요로 하는 비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하고 미리 마련해 둘 수 있도록 한다.

 

조을아 기자/을지
<eulahzuma@gmail.com>

한국 의료 발전의 숨은 역사, ‘미네소타 프로젝트’

 

 

 

1954년 9월, 6·25전쟁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인 그 때, 훗날 한국을 의료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 하나의 프로젝트가 한국과 미국 양국 간의 협의 하에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미네소타 프로젝트’이다.


휴전을 선언한 후, 약 6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한민국은 사회, 경제적으로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발전을 이룩해냈다. 더불어 의료 분야에 있어서도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냈다. 사실 필자는 이러한 발전의 원동력은 한국인 특유의 근성과 집념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와 더불어서 미국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해볼까 한다.

 

전쟁 속 폐허가 된 서울대학교 병원
미네소타 대학과 협력하여 재건에 착수

 

19세기 말, 조선시대 고종 22년(1885년) 왕립병원이 세워지면서 서양의 의학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서양 의학이 제대로 뿌리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으로 모두 밑바닥에 있었던 시기에 미국의 국제 협동조합 연맹(ICA;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의 주도로 공학, 의학, 농학에 관련된 지식과 선진기술을 한국에 전달할 것을 약속한 협약이 이루어졌다. 이 협약을 바탕으로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University of Minnesota)과 서울대학교의 적극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다.
의료적인 측면으로 국한해서 본다면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의 의학 교육과 연구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었으며, 총 세 개의 세부 목표(교육,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물품과 장비의 구비, 서울대학교 시설의 전반적인 재건)를 세워서 예산을 책정하였다.
미네소타 프로젝트 중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했던 점은 전란 속에 파괴된 기본적인 시설을 복구하는 일이었다. 겨울에는 난방으로 이용할 연료조차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부 병동은 문을 닫아야 했고 교육과 연구에도 차질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의료시설에 투자할만한 자본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69만 달러가 의과대학 재건에 사용되었으며, 이 예산으로 난방 시설, 급, 배수 시설, 수술실 그리고 강당 등이 만들어졌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 되었던 것은 미국 의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적인 접근(scientific method)”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여러 실험과 병실 실습을 바탕으로 학생과 교수진 모두에게 그 당시 새롭게 알려진 의학(medical science)의 원칙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으며,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습관을 키우도록 독려했다. 이와 더불어 세미나, 컨퍼런스 등 새로운 교육 방식을 통해 학생들과 젊은 의사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학업에 임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의 임상 실습, 인턴, 레지던트 교육의 토대가 마련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총 73명의 스태프들이 미네소타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왔으며 의료 교육의 성과는 단 몇 개월 만에 나타났다고 한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고 돌아온 스태프의 공헌으로 한국의료는 기존의 일본식에서 미국식으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당시 미국 의료의 기술과 지식은 최고의 자리에 있었고 이것이 한국 의료가 도약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한국 의료에 있어 모두 긍정적으로만 작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1980년대 들어서 일부 사람들은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교수는 그 당시 한국의 젊은 의료진들이 의료 지식을 습득하고 현실에 적용함에 있어서 더욱 비판적인 시선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각 질병의 유병률과 환자군은 다르기 때문에 미국에서 배운 지식을 깊게 공부하고 전달하는 것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이 의료 선진국
몽골,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 의료기술 전수

 

현재 한국은 의료분야에 있어서 다른 국가에 의료기술을 전달하는 의료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지난해 의료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의사는 1000여명 정도로 집계되었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이제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위암, 간이식 분야에서는 선진국 의료진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방문한다는 점이다. 또한 몽골,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갈트 박사(Dr. Gault, Jr)는 이 프로젝트가 그의 경력과 삶에도 분명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그는 다른 의료진 그리고 학생들과 자신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했던 한국에서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또한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경험을 토대로 그는 일본과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의 의학 교육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우리도 여러 의료 기술 지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삼는다면 더욱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이윤민 기자/건국
<tigerenergy@naver.com>

 

군사의학(Military medicine)의 세계

107호/의료사회 2015. 10. 23. 15:07 Posted by mednews

군사의학(Military medicine)의 세계

 

 

 

지난 8월 4일, 경기 파주시 인근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이 심어놓은 목함지뢰에 우리 군 부사관 2명이 발목을 절단되는 등 크게 다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의 문제 등으로 비화되는 등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를 지키다 부상당한 장병들에 대한 보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것이 이슈가 되었고, 또 어떤 이들은 부상 장병들이 어떤 치료를 받게 되는지, 최선의 치료를 받게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우리 군에서는 그들에게 의학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군대는 근본적으로 부상에 대한 위협을 내재하고 있는 집단이다. 총탄과 포탄이 오고가는 전쟁터에서 외상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고, 부대 내에서의 생활은 진지 작업 등의 업무, 행군 등의 훈련, 축구 등의 취미생활까지 모든 면에서 다양한 안전사고의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 나아가 많은 인원이 높은 밀도로 집단생활을 하는 만큼, 전염병에 대한 위험도 또한 높은 편이다. 심지어 장병들은 부조리한 폭력에 의한 외상 위협에도 노출되어 있다.


이처럼 군대는 여러모로 의학적으로 주의 깊게 다뤄야 할 특수한 집단이며,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군인들에게 국가는 마땅히 그들에게 맞는 맞춤형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보건위생부터 외상까지 군대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의학적 상황에 대한 학문이 바로 군사의학(Military medicine)이다.

 

 

의학 발전의 역사, 군사의학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느 편에서는 항상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쟁이 생소한 우리 세대들에게 군사의학이라는 개념은 다소 낯설게 여겨진다. 그러나 근대화와 군대, 그리고 의학의 발전은 사실 떼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열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의 발전이다. 군사력을 앞세운 식민지 건설이 횡행하던 근대화 제국주의 시대, 압도적인 열강의 침략을 가로막았던 것들 중 하나가 현지의 풍토병이다. 반대로 군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 원주민들을 전멸시키는 일도 있었지만, 원인 모를 병으로 쓰러지던 병사들의 상황은 열강들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19세기 후반, 세균학의 정립과 군사적 욕망의 결합은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이해도를 급속히 증가시켰다.


또한 제1차,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없이 쏟아지던 외상 부상병들에 대한 처치는 외과학을 급속히 발전시켰다. 현재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외상에 대한 응급의학적 처치법, 정형외과 수술 술기, 수혈 기법은 그 당시에 급속도로 발전하여 현재와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 뿐만 아니라 지금은 미용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진 성형외과학, 그리고 노인의 치료가 주가 된 재활의학의 발전 또한 전쟁이 없었다면 적어도 수십 년은 더 늦었을 것이라 예측할 정도이다.

 

 

북한 의대 본과 4학년은 통째로 군사의학 과정

 

군의관 수요의 대부분을 민간에서 수련받은 전문의의 의무복무로 채워내는 우리나라에서 군사의학은 다소 생소한 개념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500만의 인구에 적어도 100만, 여러 기관의 추정치로는 120만 명이 군인이며 복무 기간이 10년에 달하는 북한이라면 어떨까? 군사의학은 북한뿐만 아니라 베트남 등 군사력으로 국가를 통제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가장 중요한 의학의 갈래다.


북한의 의대 교육과정은 국가적으로 교육과정을 강력히 통제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다소 중구난방이다. 예과가 1년 반인 학교도, 2년인 학교도 있으며, 총 교육기간이 5년 6개월인 학교가 있는 반면 7년인 학교도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운영되는 북한의 11개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어느 학교라도 졸업 전 마지막 1년은 군사의학 교육과정이라는 점이다.


북한 군사의학의 자세한 교육과정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다'라는 훈시와 군인들의 매우 불량한 영양상태, 콜레라와 결핵, 말라리아 등이 횡행하는 북한 군 부대의 실태를 생각해볼 때 부대 내의 보건위생과 질병 통제와 관련된 내용들이 주를 이룰 것이라 추측된다.

 

 

세계 7위 군사력에도 군사의학은 미흡한 수준

 

우리나라의 군사의학 수준은 어떠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경우 의무복무를 통해 군 내에 충분한 다양한 분과 전문의를 수급하고 있어 전체적인 수준에 있어서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비상상황에서 빛을 발해야 할 외상 치료에 대해서는 심각한 맹점들이 눈에 띈다.


과거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이 오만에서 긴급이송될 당시, 군에는 총상 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결국 석 선장은 이국종 교수의 수술을 받아 의식을 회복하긴 했다. 의사의 잘못도 아니다. 그들은 총기 소유가 금지된 나라에서 종양이나 외상 환자를 맡아 몇 년이나 고생해 수련을 쌓은 뒤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군대에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나 떠들썩하고 넘어간 뒤 4년이나 지나 이번 목함지뢰 사건이 터졌을 때까지도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중앙일보의 9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발목 부상을 입은 하재헌 하사가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되었을 당시 특수외상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는 1명 뿐이었고, 폭발로 입은 상처에 신속히 재건성형술을 수행할 수 있는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국군수도병원은 환자를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했다.


의무복무 국가에서 전문의를 차출해 군의관으로 활용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그 휴전중인 의무복무 국가에서 장병들에게 제대로 된 치료 하나 제공할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의무라는 미명하에 차출된 군의관들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려 하지 말고, 국방비를 제대로 활용해 이런 일이 있을 때 적절한 대처를 해낼 수 있는 전문의를 수급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준형 기자/가천
<bestofzone@gmail.com>

 

2016년도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 시행

 

 

 

 

응시자 3318명, 9월 9일부터 50일간 실기시험 시행....
진료 6개문항 수기 6개문항 시험

 

제80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이 9월 9일부터 시작하여 11월 25일까지 50일간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 의사실기시험 2개 센터에서 시행한다. 이번 실기시험 접수자수는 총 3318명으로 대학별로 배정된 시험일 중 응시자 본인이 선택한 시험일에 치른다.


이번 제 80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 항목은 병력청취, 신체진찰, 환자교육 및 환자의사관계에 대한 진료문항 54개 항목과 기본 기술적 수기, 신체진찰에 대한 수기문항 32개 항목으로 시행된다. 응시자들은 정해진 시험 시작 및 종료 신호에 따라 표준화환자를 활용한 진료 6개 문항과 모형이나 모의환자를 활용한 수기 6개 문항을 12개 시험실을 이동하면서 각 시험실에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 어떻게 진행될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 응시자들은 준비물로 가운, 청진기, 펜라이트, 검은색 볼펜, 응시표, 신분증을 준비해야 하며 실기 시험 시행에 앞서 동영상촬영동의서 및 기밀유지서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의사 실기시험은 문제은행방식으로

운영되므로 비공개되고 문항의 정보가 담긴 동영상자료는 응시자 본인의 시험과정에 대한 노화자료라 하더라

도 제공받을 수 없다.


실기시험시간은 약 2시간 40분 소요가 되며, 시험 중 화장실은 사용할 수 없다. 시험장에는 12개의 시험실이 존재하며 진료문항 시험실은 1번, 3번, 5번, 7번, 9번, 11번호실로 홀수 방이고 수기문항 시험실은 2번, 4번, 6번, 8번, 10번, 12번호실로 짝수 방이다. 진료문항 문제의 시험시간은 각 시험실당 10분이 주어지며 문제는 시험실 문에 부착된 문제 게시판에 게시되어 있다. 문제문항에는 시험실에 있는 환자의 나이, 성별, 병원에 오게 된 이유, 활력징후(혈압, 맥박수, 호흡수, 체온), 응시자가 수행해야 할 사항이 제시되어 있다. 응시자는 시험실 내 표준화 환자를 실제 환자같이 대면해야 한다. 신체진찰 시 주의사항으로 손이나 도구를 이용하여 환자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주의하고 신체검사나 진찰이 필요한 경우 표준화 환자에게 반드시 사전 동의를 구한 후 실시해야 한다. 종료 2분 전에 응시자는 남은 시간 동안 면담

을 마무리 해야 한다. 진료문항을 마치고 나온 응시자는 5분간 진료문항과 관련된 사이시험을 치르게 되며 사이시험은 컴퓨터 자판을 이용하여 컴퓨터에 답안을 입력하는 전산입력 방식으로 운영된다. 입력한 답안은 대한의사협회에서 발행한 의학용어집 5판에 사용되는 용어를 사용해야 하며 약어사용은 금지된다. 수기문항 시험시간은 5분이며 진료문항 문제처럼 시험실 문 앞 문제 게시판에 문제가 게시되어있다. 시험실 내에는 채점위원이 있으며 채점위원에게 인사를 하거나 질문해선 안 되나 문제에 따라서 채점위원에게 설명하도록 지시되어 있는 경우 지시된 내용을 수행 해야 한다.
응시자는 각 시험 종료 후 즉시 시험실에서 퇴실하여야 하며 시험실 퇴실 후 재입실은 금지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필기시험 이후 최종합격자 발표 2016년 1월 21일

 

실기 시험 응시자들은 시험시행종료 후 의과대학 교수로 구성된 합격선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될 문제별 합격선에 의한 문제조합별 총점 기준 합격선과 통과문제 수 기준 합격선에 모두 합격한 경우 의사 실기시험 합격자로 결정된다. 제80회 의사국가시험 합격자발표는 필기시험 시행 이후인 2016년 1월 21일 국시원홈페이지(www.kuksiwon.or.kr) 및 모바일 홈페이지(m.kuksiwon.or.kr)을 통해 발표되며, 필기시험과 실기시험 모두 합격한 자를 최종합격자로 한다.

 

김민 기자/가천
<franky777min@gmail.com>

 

이번 정치판, 제가 집도하겠습니다

- 정계로 나간 의사들

 

 

 

지난 7일, 월스트리트 저널의 오너이자 폭스뉴스의 오너인 루퍼트 머독 회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발단의 시작은 그가 올린 트위터 글이었다. “벤 카슨과 그의 부인인 캔디 카슨은 굉장한 사람들이다. 인종 갈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흑인 대통령의 재목으로 어떠한가?” 표면적으로는 카슨을 지지하였지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를 간접적으로 비꼬는 듯 한 발언이 미국 네티즌의 공분을 사고만 것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적법성까지 물고 늘어진 논란 끝에 루퍼트 회장은 ‘누군가를 모독할 의도가 아니었다.’며 꼬리를 내렸지만, 벤 카슨에 대한 높은 지지율과 인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는 해프닝이었다. 언론 재벌이 짚은 ‘진짜 흑인 대통령’이 될 후보, 그는 누구인가?

 

세계 최초 샴 쌍둥이 분리 수술 성공한 벤 카슨,
미국 대선 공화당 유력 후보로 떠올라

 

미국 대선을 1년 여 앞두고 정치권의 돌풍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아웃사이더들이 몰고 왔다. 아버지 허버트 부시(George H. W. Bush)와 형 조지 부시(George W. Bush)에 이어 세 번째 집권에 도전한 젭 부시(Jeb Bush)는 명함도 들이밀지 못했다. 공화당에서 1,2 위를 다투는 후보들이 모두 비 정치인 출신들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은 다시 한 번 집중되고 있다. 자극적인 발언으로 연일 스캔들을 터뜨린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와 영화 <Gifted hands>실제 모델인 외과의사 벤 카슨이 그 주인공이다. ‘막말 제왕’ 트럼프의 노이즈 마케팅 거품이 꺼져가는 이 시점에서, 그를 조용히 위협하는 벤 카슨은 1987년, 머리가 붙은 샴 쌍둥이분리 수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신경외과 의사였다. 절망적인 가난과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개인의 노력과 책임감으로 성공신화를 일구어 낸 카슨은 그가 주장한 공약과 정치적 이념에서도 그의 신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국민 대상 의료보험이 없는 유일한 선진국이다. WHO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OECD 가입 국가 중 의료보험 수가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오바마 케어(건강보험 개혁법)’ 대신, 국민 각자가 개인의 건강보험을 책임지고 지불, 관리하는 ‘건강저축계좌’를 제안했다. 오바마 케어가 합법화되면 노인층 무료건강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와 극빈계층 의료보험 메디케이드(Medicaid)와 같은 사회복지프로그램이 연간 16조라는 천문학적인 정부 채무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합당한 지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2015년 현재 미국에서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는 정부지출액의 1순위 항목이다. 이는 2011년도부터 연방정부 예산 중 8350억 달러를 기록하며 국방비 예산인 7000억 달러를 가볍게 제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오바마 행정이 의료비 관련 예산을 증가시키자,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주 정부에 대해 반발감이 가장 심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자로 돌아섰다. 벤 카슨의 행보에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는 것도 그들이었으며, 여기에 고소득층, 기존 공화당 지지자들까지 합세하여 카슨의 의료 공약은 날로 그 위력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현 의료 체계의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제도의 허점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의사’출신 정치가라는 점에서 유권자들이 갖는 신뢰성이 컸다는 지적이다. 의료전문인과 정치인의 융합이 새로운 의료제도에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국경 없는 의사회 설립자 베르네르 쿠슈네르
‘그는 국경 없는 외무장관이다’

 

물론 정치계로 진출한 의사들이 반드시 자국의 의료 복지에만 기여한 것만은 아니다. 뉴욕 타임즈 매거진이 말한 베르나르 쿠슈네르(Bernard Kouchner)는 인권의 신성함과 절대성을 설파하며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서 주목해야할 점은 쿠슈네르가 ‘국경없는 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와 ‘세계의 의사들(Medecins Du Monde)’을 설립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소화기 내과 의사였다는 점이다. 1968년 당시 프랑스 적십자사 소속이었던 쿠슈네르는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비아프라 내전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대상 국가에 대한 편중된 지원이 불가능하며,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어린아이며 노인 할 것 없이 무자비하게 가해지는 전쟁의 참상 앞에서는 ‘봉사’ 자체가 무의미해질 정도였다. 독립을 선언한 ‘비아프라’국에 대해 나이지리아 정부는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고 동시에 식수 차단, 식량 공급 중단이라는 인권 말살 카드를 내밀었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내전은 종식되었지만, 난민들의 비참한 삶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쿠슈네르의 신념에 맞지 않았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나이지리아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당시 뜻을 모았던 청년 의사들을 모아 1971년 12월 파리에서 ‘국경없는 의사회(이하 MSF)’를 창설하였다. 창립 이념 자체가 ‘중립, 공평, 자원’ 이었던 만큼, 국경없는 의사회는 구호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종교적 이념을 전적으로 배제할 것을 전제로 하였다. 경제적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롭기 위해 재정의 77%를 기부금으로 충당하는 등, 의료진의 구호활동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48시간 내에 투입될 수 있는 기동성이 막강한 의료부대로 발전시켰다.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 당시 내부 갈등을 이유로 MSF를 탈퇴한 이후에도 쿠슈네르의 인권 수호 여정은 계속 되었다. ‘내정 개입 불가’가 원칙인 유엔 측에 끊임없는 로비활동을 하여 특정 국가가 영토 내 잔학행위를 일삼는 경우, 유엔군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1992년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에는 세르비아 군이 점령한 공항에 위험을 무릅쓰고 헬기를 타고 들어가며 유엔군을 투입시키는 등 활동하는 의사 정치인으로서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17년 만에 의사 출신 복지부 장관 선출
지금은 의료계 정치인이 필요한 때

 

흰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맨 후 차트를 들고 돌아다녀야만 의사인 것은 아니다. 수술복을 입고 뻣뻣한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메스를 잡아야만 생명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치료를 해야 할 대상이 환자가 아닐 수도 있다. 벤 카슨의 수술대에 오른 것은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였다. 쿠슈네르의 치료 대상은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권 그 자체였다. 보건, 의료와 가장 근접한 곳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에 보다 적법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 의사출신 정치인일 것이다. 대한민국이라고 하여 예외는 없었다. 전문의 출신 공직자가 부족했던 탓에 초기 대응이 늦어져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사태가 이를 입증했다.
8월 4일, 박근혜 정부는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정진엽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내정하였다. 의사 출신 복지부 장관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주양자 전 장관 이후 17년 만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 관계자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국가 보건의료 체계의 전반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의료 전문가를 발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혹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비판하는 동시에 전직 의사 출신인 정 장관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복지 분야의 경험이 전무한 의료 정치인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국민연금 보험료율 조정과 같은 중대한 현안을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르스 추가 환자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예정된 종식 선언 날짜가 미뤄지고 있는 현재, 역학(epidemiology)의 컨트롤 타워를 진두지휘할 의료계 정치인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신윤경 기자/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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