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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 발전의 숨은 역사, ‘미네소타 프로젝트’

 

 

 

1954년 9월, 6·25전쟁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인 그 때, 훗날 한국을 의료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 하나의 프로젝트가 한국과 미국 양국 간의 협의 하에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미네소타 프로젝트’이다.


휴전을 선언한 후, 약 6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한민국은 사회, 경제적으로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발전을 이룩해냈다. 더불어 의료 분야에 있어서도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냈다. 사실 필자는 이러한 발전의 원동력은 한국인 특유의 근성과 집념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와 더불어서 미국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해볼까 한다.

 

전쟁 속 폐허가 된 서울대학교 병원
미네소타 대학과 협력하여 재건에 착수

 

19세기 말, 조선시대 고종 22년(1885년) 왕립병원이 세워지면서 서양의 의학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서양 의학이 제대로 뿌리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으로 모두 밑바닥에 있었던 시기에 미국의 국제 협동조합 연맹(ICA;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의 주도로 공학, 의학, 농학에 관련된 지식과 선진기술을 한국에 전달할 것을 약속한 협약이 이루어졌다. 이 협약을 바탕으로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University of Minnesota)과 서울대학교의 적극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다.
의료적인 측면으로 국한해서 본다면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의 의학 교육과 연구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었으며, 총 세 개의 세부 목표(교육,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물품과 장비의 구비, 서울대학교 시설의 전반적인 재건)를 세워서 예산을 책정하였다.
미네소타 프로젝트 중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했던 점은 전란 속에 파괴된 기본적인 시설을 복구하는 일이었다. 겨울에는 난방으로 이용할 연료조차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부 병동은 문을 닫아야 했고 교육과 연구에도 차질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의료시설에 투자할만한 자본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69만 달러가 의과대학 재건에 사용되었으며, 이 예산으로 난방 시설, 급, 배수 시설, 수술실 그리고 강당 등이 만들어졌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 되었던 것은 미국 의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적인 접근(scientific method)”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여러 실험과 병실 실습을 바탕으로 학생과 교수진 모두에게 그 당시 새롭게 알려진 의학(medical science)의 원칙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으며,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습관을 키우도록 독려했다. 이와 더불어 세미나, 컨퍼런스 등 새로운 교육 방식을 통해 학생들과 젊은 의사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학업에 임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의 임상 실습, 인턴, 레지던트 교육의 토대가 마련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총 73명의 스태프들이 미네소타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왔으며 의료 교육의 성과는 단 몇 개월 만에 나타났다고 한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고 돌아온 스태프의 공헌으로 한국의료는 기존의 일본식에서 미국식으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당시 미국 의료의 기술과 지식은 최고의 자리에 있었고 이것이 한국 의료가 도약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한국 의료에 있어 모두 긍정적으로만 작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1980년대 들어서 일부 사람들은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교수는 그 당시 한국의 젊은 의료진들이 의료 지식을 습득하고 현실에 적용함에 있어서 더욱 비판적인 시선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각 질병의 유병률과 환자군은 다르기 때문에 미국에서 배운 지식을 깊게 공부하고 전달하는 것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이 의료 선진국
몽골,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 의료기술 전수

 

현재 한국은 의료분야에 있어서 다른 국가에 의료기술을 전달하는 의료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지난해 의료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의사는 1000여명 정도로 집계되었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이제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위암, 간이식 분야에서는 선진국 의료진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방문한다는 점이다. 또한 몽골,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갈트 박사(Dr. Gault, Jr)는 이 프로젝트가 그의 경력과 삶에도 분명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그는 다른 의료진 그리고 학생들과 자신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했던 한국에서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또한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경험을 토대로 그는 일본과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의 의학 교육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우리도 여러 의료 기술 지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삼는다면 더욱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이윤민 기자/건국
<tigerenerg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