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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치판, 제가 집도하겠습니다

- 정계로 나간 의사들

 

 

 

지난 7일, 월스트리트 저널의 오너이자 폭스뉴스의 오너인 루퍼트 머독 회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발단의 시작은 그가 올린 트위터 글이었다. “벤 카슨과 그의 부인인 캔디 카슨은 굉장한 사람들이다. 인종 갈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흑인 대통령의 재목으로 어떠한가?” 표면적으로는 카슨을 지지하였지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를 간접적으로 비꼬는 듯 한 발언이 미국 네티즌의 공분을 사고만 것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적법성까지 물고 늘어진 논란 끝에 루퍼트 회장은 ‘누군가를 모독할 의도가 아니었다.’며 꼬리를 내렸지만, 벤 카슨에 대한 높은 지지율과 인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는 해프닝이었다. 언론 재벌이 짚은 ‘진짜 흑인 대통령’이 될 후보, 그는 누구인가?

 

세계 최초 샴 쌍둥이 분리 수술 성공한 벤 카슨,
미국 대선 공화당 유력 후보로 떠올라

 

미국 대선을 1년 여 앞두고 정치권의 돌풍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아웃사이더들이 몰고 왔다. 아버지 허버트 부시(George H. W. Bush)와 형 조지 부시(George W. Bush)에 이어 세 번째 집권에 도전한 젭 부시(Jeb Bush)는 명함도 들이밀지 못했다. 공화당에서 1,2 위를 다투는 후보들이 모두 비 정치인 출신들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은 다시 한 번 집중되고 있다. 자극적인 발언으로 연일 스캔들을 터뜨린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와 영화 <Gifted hands>실제 모델인 외과의사 벤 카슨이 그 주인공이다. ‘막말 제왕’ 트럼프의 노이즈 마케팅 거품이 꺼져가는 이 시점에서, 그를 조용히 위협하는 벤 카슨은 1987년, 머리가 붙은 샴 쌍둥이분리 수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신경외과 의사였다. 절망적인 가난과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개인의 노력과 책임감으로 성공신화를 일구어 낸 카슨은 그가 주장한 공약과 정치적 이념에서도 그의 신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국민 대상 의료보험이 없는 유일한 선진국이다. WHO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OECD 가입 국가 중 의료보험 수가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오바마 케어(건강보험 개혁법)’ 대신, 국민 각자가 개인의 건강보험을 책임지고 지불, 관리하는 ‘건강저축계좌’를 제안했다. 오바마 케어가 합법화되면 노인층 무료건강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와 극빈계층 의료보험 메디케이드(Medicaid)와 같은 사회복지프로그램이 연간 16조라는 천문학적인 정부 채무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합당한 지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2015년 현재 미국에서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는 정부지출액의 1순위 항목이다. 이는 2011년도부터 연방정부 예산 중 8350억 달러를 기록하며 국방비 예산인 7000억 달러를 가볍게 제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오바마 행정이 의료비 관련 예산을 증가시키자,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주 정부에 대해 반발감이 가장 심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자로 돌아섰다. 벤 카슨의 행보에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는 것도 그들이었으며, 여기에 고소득층, 기존 공화당 지지자들까지 합세하여 카슨의 의료 공약은 날로 그 위력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현 의료 체계의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제도의 허점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의사’출신 정치가라는 점에서 유권자들이 갖는 신뢰성이 컸다는 지적이다. 의료전문인과 정치인의 융합이 새로운 의료제도에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국경 없는 의사회 설립자 베르네르 쿠슈네르
‘그는 국경 없는 외무장관이다’

 

물론 정치계로 진출한 의사들이 반드시 자국의 의료 복지에만 기여한 것만은 아니다. 뉴욕 타임즈 매거진이 말한 베르나르 쿠슈네르(Bernard Kouchner)는 인권의 신성함과 절대성을 설파하며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서 주목해야할 점은 쿠슈네르가 ‘국경없는 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와 ‘세계의 의사들(Medecins Du Monde)’을 설립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소화기 내과 의사였다는 점이다. 1968년 당시 프랑스 적십자사 소속이었던 쿠슈네르는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비아프라 내전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대상 국가에 대한 편중된 지원이 불가능하며,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어린아이며 노인 할 것 없이 무자비하게 가해지는 전쟁의 참상 앞에서는 ‘봉사’ 자체가 무의미해질 정도였다. 독립을 선언한 ‘비아프라’국에 대해 나이지리아 정부는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고 동시에 식수 차단, 식량 공급 중단이라는 인권 말살 카드를 내밀었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내전은 종식되었지만, 난민들의 비참한 삶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쿠슈네르의 신념에 맞지 않았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나이지리아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당시 뜻을 모았던 청년 의사들을 모아 1971년 12월 파리에서 ‘국경없는 의사회(이하 MSF)’를 창설하였다. 창립 이념 자체가 ‘중립, 공평, 자원’ 이었던 만큼, 국경없는 의사회는 구호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종교적 이념을 전적으로 배제할 것을 전제로 하였다. 경제적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롭기 위해 재정의 77%를 기부금으로 충당하는 등, 의료진의 구호활동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48시간 내에 투입될 수 있는 기동성이 막강한 의료부대로 발전시켰다.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 당시 내부 갈등을 이유로 MSF를 탈퇴한 이후에도 쿠슈네르의 인권 수호 여정은 계속 되었다. ‘내정 개입 불가’가 원칙인 유엔 측에 끊임없는 로비활동을 하여 특정 국가가 영토 내 잔학행위를 일삼는 경우, 유엔군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1992년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에는 세르비아 군이 점령한 공항에 위험을 무릅쓰고 헬기를 타고 들어가며 유엔군을 투입시키는 등 활동하는 의사 정치인으로서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17년 만에 의사 출신 복지부 장관 선출
지금은 의료계 정치인이 필요한 때

 

흰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맨 후 차트를 들고 돌아다녀야만 의사인 것은 아니다. 수술복을 입고 뻣뻣한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메스를 잡아야만 생명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치료를 해야 할 대상이 환자가 아닐 수도 있다. 벤 카슨의 수술대에 오른 것은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였다. 쿠슈네르의 치료 대상은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권 그 자체였다. 보건, 의료와 가장 근접한 곳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에 보다 적법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 의사출신 정치인일 것이다. 대한민국이라고 하여 예외는 없었다. 전문의 출신 공직자가 부족했던 탓에 초기 대응이 늦어져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사태가 이를 입증했다.
8월 4일, 박근혜 정부는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정진엽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내정하였다. 의사 출신 복지부 장관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주양자 전 장관 이후 17년 만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 관계자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국가 보건의료 체계의 전반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의료 전문가를 발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혹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비판하는 동시에 전직 의사 출신인 정 장관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복지 분야의 경험이 전무한 의료 정치인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국민연금 보험료율 조정과 같은 중대한 현안을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르스 추가 환자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예정된 종식 선언 날짜가 미뤄지고 있는 현재, 역학(epidemiology)의 컨트롤 타워를 진두지휘할 의료계 정치인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신윤경 기자/조선
<psyche12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