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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까닭은?

사법연수생 반대 성명에 이어 변호사들 집단 시위
사법고시와 로스쿨, 그 과도기에 선 법조계

법조계가 한창 뜨겁다. 법무부의 ‘로스쿨 졸업생 검사 임용안’을 둘러싸고 사법연수생들이 반대 성명을 낸 것에 이어, 변호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시국 관련 사안이 아닌 것으로 시위를 벌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로스쿨 학생들 역시 동맹 자퇴의 결의로 맞서는 등, 상황은 점차 가열되고 있다. 법조계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로스쿨 도입부터 한번 살펴보자.

시대적 흐름과 법조 일원화를
위한 선택, 로스쿨

로스쿨은 1920년대에 미국에서 자리 잡은 법학 교육 기관으로, 그 설립 요점은 법학을 배우기 전의 학부 4년간 다른 전공과목을 배운다는 점이다. 의료 소송에서는 의료에 전문가인 법조인이 필요하듯이, 사회의 다양화와 함께 새로 생겨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전공의 법조인을 만드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약 6~7년 전부터 로스쿨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하여 2009년 첫 신입생을 받았으며, 내년에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 1기가 탄생한다. 한국 역시 사회의 다양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기 위함이었으며, 국가 인력 낭비를 초래하는 ‘고시 낙오생’을 줄이자는 취지도 있었다. 또한 변호사를 양산하여 대기업이나 부자 뿐 아니라 모두가 쉽게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의 문턱을 낮추려는 계획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법조계 내부에서는 지금까지도 큰 갈등요소가 되어온 법조일원화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면도 있다. 현재 한국의 법조양성제도에서는 법과대학, 사법고시, 사법연수원을 거치며 성적이 좋은 소수의 연수생들만이 판검사로 임용되고 나머지는 주로 변호사 개업 쪽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이는 판사-검사-변호사 간의 벽을 만들 뿐 아니라, 법조 경험이 없는 판검사의 무리한 재판이나 수사, 사법기관의 폐쇄적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를 낳는 등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그래서 판검사 임용 시 재조(사법부 및 검찰)와 재야(변호사) 등 법조계를 일원화 하는 것이 ‘법조일원화’이다. 법조일원화가 되면 풍부한 경력을 가진 변호사들이 판검사에 임용됨으로써, 다양하고 전문화된 사회적 요구가 사법과정에 반영될 뿐만 아니라 사법기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간접적 통제로 기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법조계는
어디까지 왔을까.

 먼저 로스쿨 졸업생의 실무능력을 생각해 보자. 대개 사법고시생들은 4년의 법과대학 과정을 거치고, 평균적으로 3년 가량을 사법고시 준비에 집중하게 된다. 이후에도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의 강도 높은 실무교육을 받은 후 법조계로 나아간다. 하지만 로스쿨의 경우 법학과는 전혀 무관한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 3년을 거쳐 변호사 시험을 치면 된다. 9년과 3년, 양적으로도 차이가 나지만, 사법연수원보다는 법과대학과 비슷한 로스쿨을 졸업한, 기초법학도 배우지 못한 그들의 실무능력을 크게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도 다양한 전공분야의 사람들이 온다는 장점은 있지 않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도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지난 3년간 로스쿨 입학생 중 법학계열이 차지하는 비율은 34.38%, 37.65%, 심지어 올해에는 49.14%를 차지하여, 로스쿨은 사법고시 탈락자들의 패자부활전이라는 말마저 있을 정도다.
반절뿐인 비법학계열 출신도 자신의 전공을 얼마나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부분 전공 관련 경험이 많지 않은 학부 졸업자일 뿐이며, 많은 경험을 쌓고 로스쿨에 지원한 자에게는 “나이가 많은데 3년 후 변호사 시험까지 다 외워서 통과할 수 있겠느냐”와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 로스쿨 입장에서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전공에 경험이 많아도 나이가 많다면 애초에 로스쿨 합격 자체가 힘든 것이다.

그런데 법조일원화까지
지키지 않겠다고?

이런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로스쿨화가 계속 진행되어 왔던 것은 그 도입 취지 때문이었다. 다양성의 추구와 법률의 문턱 낮추기 등, 시대적 흐름을 충실히 반영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결국 사법연수생과 변호사들을 거리로 불러낸 것은 법무부의 ‘로스쿨 졸업생 검사 임용안’이었다. 지난 2월 14일, 법무부는 로스쿨 원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을 검사로 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젊고 우수한 인력을 판검사로 미리 선점하려는 법무부의 이 생각은 법조일원화에 위배될뿐더러, 원장의 추천을 받는다는 것은 권력이나 집안 등에 따라 추천되는 ‘현대판 음서제’로 전락할 수도 있다. 비판이 거세지자 원장 추천제 대신 상위 10%로 기준을 바꾸었지만, 사법연수생들과 변호사들은 로스쿨 졸업생의 판검사 임용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아직 5년 이상 지속될 갈등

로스쿨 졸업생 배출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이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로스쿨의 도입은 노무현 정권 말기에 정해졌지만, 사법고시와 로스쿨의 공존기간 동안 임용은 어떻게 할지, 새로이 생기는 변호사 시험은 어떻게 할지 등 세부적이지만 중요한 사항은 관련 당국이 모두 눈을 감았던 것이다.
의료계의 의전원화의 경우 2014년 이후 대학의 자율화에 맡김으로써, 사실상 의과대학으로의 회귀가 예상되고 있다. 그에 반해 아직 한창 전환이 진행 중인 법조계. 사법고시가 폐지되는 2017년까지는 사법고시 합격자가 나올 것이고 그 이후에도 2년간은 사법연수원생이 배출될 것이다. 동시에 내년부터는 로스쿨 졸업생이 나올 것이며, 결국 언젠가는 판사, 검사, 변호사 모두 로스쿨 출신이 맡게 될 것이다. 변화 후의 법조계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

의료계 여풍당당, 그러나 현실은

의료계에 여풍이 불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전공의 중 여전공의의 비율은 35.5%에 육박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의사협회 회원의 20% 이상을 여의사가 점유하고 있고,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의 여학생 분포 또한 30%를 넘어서고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의료계 여성인구, 그러나 그들은 안녕한 것일까?

전공의 선발과정과 수련에서부터 출산, 육아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의사의 증가 비율에 비해 기본적인 시설, 처우 등 근무 환경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9년 11월부터 3개월 간 대학병원 여전공의 3805명과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3·4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 1905명을 대상으로 한국여자의사회에서 실시한 전국 ‘의학전공 여학생과 여 전공의의 환경개선과 진로 결정을 돕기 위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 같은 문제를 절실히 보여준다.

기본적인 생활공간 조성 미흡…
성추행 위험까지

‘재학 및 수련 중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병원생활에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70~8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여자 화장실, 수술실 내 여자탈의실, 여자 샤워실, 여자 당직실 부족 등 기본적인 생활공간 조성 미흡에 따른 것이었다.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일부 지방에서는 남녀 전공의의 생활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환경은 여성이 수련과정중 성희롱 또는 성추행에 노출되게 하는 위험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성희롱과 성추행에 대한 예방 교육 혹은 사후 상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서나 제도가 부실한 것도 문제이다. 조사 결과, 학생의 26% 그리고 전공의 20%가 본인이 성추행 피해 경험이 있다고 대답하였고, 다른 사람이 성추행을 겪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역시 학생과 전공의 중 ‘그렇다’는 대답이 약 25% 내외였다.‘여성’과 ‘전공의’의 기로에 놓이는 여성 의료인 법정 출산휴가 사실상 지켜지지 않아, ‘다산=유급?’

‘여성’과 ‘전공의’의 기로에
놓이는 여성 의료인
법정 출산휴가 사실상
지켜지지 않아, ‘다산=유급?’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마취과 전공의였던 C씨(2년차)는 신경차단술이나 신경외과 수술 중 C-arm 등 방사선 노출이 심한 작업을 반복하는 일이 태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임신 4개월 무렵 병원에 스케줄 변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의국에서는 대체인력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거부했고 C씨는 건강한 출산을 위해 결국 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전문의에게 주어지는 과중한 업무와 결원 발생에 대한 조처의 부재는 여성 의료인이 결혼과 임신, 출산이라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는 법정 출산휴가기간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법정 출산휴가기간인 3개월을 모두 채운 사람은 18.9%에 불과했고,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은 45~90일 미만의 휴가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도 채 쉬지 못했다는 응답 또한 6.7%나 됐다. 출산 휴가제도의 적용 횟수에도 문제가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출산을 장려하는 우리나라에서 ‘여성 의료인의 다산은 곧 유급’을 의미한다. 대한병원협회가 2009년 제정?공포한 현행 '전공의 수련규칙'에서는 여성 전공의의 출산휴가를 명시하면서도, 해당 여성이 피교육자라는 점을 감안해 1회 출산 휴가(90일) 기간만을 수련기간으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2회 이상 출산한 경우에는 1회 출산 휴가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만큼(최소 90일 이상) 추가 수련을 받아야만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현재의 이 같은 제도는 여성 의료인의 출산을 저해 하며, 이는 인구 부족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덴마크에서는 출산 휴가로 인한 공백으로 수련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른 병원의 상급연차로 이동하는 등 유동적인 전공의 수련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유동적 전공의 수련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여의사의 양육을 지원하는 병원,
약 7%에 불과해

출산 후에도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병원에서의 주 1회의 당직 근무, 주말 출근, 진료 시간 외에 강의와 연구로 결국 지금은 입주 아주머니, 주 1회 살림만 하시는 아주머니, 주 3회 대학생 베이비시터 알바까지 동원해서 겨우 겨우 육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라는 여의사의 말은 병원에서의 과중한 업무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준다. 과중한 업무가 계속되는 병원 환경에서 개인이 양육에 대한 부담을 전부 지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에 따라 사회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보육 시설 관련 복지 정책을 진행 중인 병원은 단지 7%에 불과하다.  이들 병원에서는 병원 내에서 보육 시설을 직접 운영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타 업체에 위탁 또는 수혜 직원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형태로 지원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북 마음 사랑 병원에서는 병원 내 ‘아이사랑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고, 대체 인력을 10% 마련하는 등 육아에 대한 뒷받침 노력을 시행 중이다.

제도 부실에 의해 나타나는
성차별 극복돼야

“출산포기 각서를 써도 좋으니 뽑아만 줬으면 좋겠어요.”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제도 미숙은 더 나아가 여성 의료인에게 ‘유리천장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 여성의 전공의 선발과정에서 느끼는 성차별에 대한 조사에서 학생의 경우 94%가, 전공의의 경우 92%가 ‘그렇다’ 는 대답을 할 정도로 전공의 진입 시 성차별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전공의 선발 시 시험 성적이 좋다 하더라도, 면접시험에서 여성 응시생에게 결혼과 출산계획 등을 집중적으로 캐어묻기도 하며, 이미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전공의 선발 시 열외 시키기도 한다.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일부 수련 병원에서는 업무 공백을 우려해, 전공의 선발 시 여전공의들에게 ‘결혼 및 임신 금지 서약’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성적이 좋아도 재수를 하고, 정원 미달인 소아과, 산부인과에 여성 의료인이 많은 것 또한 여성 기피로 인한 현상으로도 설명된다.

여성 의료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 필요해

물론 현재의 병원 시스템 하에서 나타나는 도제식 의료 노동, 당직 등 초과 근무에 따라 여성이 갖는 체력적, 신체적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여성 의료인에 대한 기피 현상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임신, 출산 시 제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 전문의에게 주어지는 병원 업무도 과중하며 임신, 출산 등으로 여성 의료인이 부재할 경우 업무를 맡을 대체 인력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는 곧 다른 의료인들의 상대적인 업무양 증가로 이어지며, 해당 업무의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지 않도록 한다. 이러니 병원 임원진이나 다른 의료인들이 신체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제약이 없는 남성 의료인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여성 기피현상에 대하여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공의 업무량의 축소와 대체 인력 확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에서 여의사들의 근무 환경 개선, 설자리 마련을 위해서는 다양한 집단에서의 공감대 형성과 적극적인 의견 교환도 중요하다. 최근 제 3회 전국 여의사 대표 간담회에서는 ‘여의사 권익을 위한 결의문’을 통해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관련 단체들의 여성임원을 30% 이상 확충하도록 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한국여자의사회에서는 여의사의 진로, 결혼, 학술활동 여건, 인권사항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설문조사 실시 후 대안 마련과 멘토링 제도 등을 실시할 예정에 있다. 소통에서부터 정책적 지원까지, 해마다 가하는 여성 의료인의 기본권 보장과 사회 유지를 위한 체계적인 국가적 보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유라 수습기자/서남
<youzr-_-a@e-mednews.com>

구제역 대란,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바이러스 기초연구에서부터 국내 축산업까지, 남겨진 과제 많아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126일 만인 지난 3일 사실상 종료됐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날 충남 홍성군을 끝으로 각 시·군 단위로 내려졌던 가축이동제한이 모두 해제됐다고 밝혔다. 이번 구제역은 국내에서 사상 최장 기간 동안 발생했으며, 350만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 되고 3조원의 재정이 소요되는 등의 기록을 세웠다.
무엇이 이런 최악의 사태를 만들었을까. 이번 구제역의 전개 과정 속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을 되짚어 보았다.

바이러스 습격사건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국내에서는 구제역 뿐 아니라 신종인플루엔자, AI 등 바이러스성 전염병들이 전국을 강타했다. 그로 인해 전국민이 불안에 떨었고, 그 피해 또한 엄청났다. 가히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 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구제역 발생 기간이 길어진 원인 중 하나로 국내 바이러스와 백신 관련 연구 시스템의 부재가 지적되었다. 구제역 백신 생산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긴급 대응을 하려다 보니, 국내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와 16% 정도 염기서열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 외국 백신(O1 마니사)을 들여와서 사용한 것이다. 이 경우 바이러스 돌연변이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백신의 효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따라 바이러스 감염인자들의 효율적인 예방, 통제, 진단, 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연구 시스템과 독자적 백신생산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NIH(미국국립보건원) 관련예산 약 6조3000억원(2006년)인 반면, 한국은 239억원(2008년)에 불과하다. 또 고위험 바이러스연구에 필요한 Biosafety Level-3 시설의 경우 미국이 1400여개, 한국이 10개 내외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바이러스 관련 연구기관 간의 R&D(Research and Development) 수행의 연계성 부족 및 바이러스 전문 연구기관 부재도 지적받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작은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다. 지난 22일, 대한개원의협의회는 구제역 및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구제역 등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한 국가적인 연구지원이 필요하며, 특히 바이러스학 연구를 위해 Bio-safety level-4의 실험실과 ‘국립중앙미생물학 바이러스 연구소’를 건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대정부 건의안을 채택하였다.

생매장, 그것이 최선입니까?

지난 달 CNN에는 우리나라에서 수천, 수만 마리의 돼지를 생매장 하는 영상이 보도되었다. 누리꾼들은 국가적 위상이 추락했다며 무자비한 살처분 정책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었다. 국민들의 정서 뿐 아니라 이렇게 마구잡이로 살처분된 가축들은 2차, 3차 오염을 일으키며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매몰지 143곳에서 침출수가 주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악취를 발생시키며, 동물 기름은 지표로 떠올라 토양을 검게 오염시키고 있다.
이에 수의과학검역원 주이석 질병방역부장은 “감염동물을 신속히 제거하는 것(살처분)이 현재까지 알려진 안타깝지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80여 개의 지역으로 구제역이 확산된 후에야 살처분이 최선일 수 있다. 하지만 축산농가의 자율방역의식과 일관된 방역체계, 그리고 신속한 백신접종이 이루어졌다면 이렇게 많은 가축이 생매장 되는 일은 없을 것임은 분명하다. 지난 12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구제역 및 AI 현황과 대책,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긴급 정책토론회를 열고 ▲축산 농가의 자율방역의식 정책수립 ▲살처분 및 백신접종의 상황별 병행 ▲구제역 확산 저지를 위한 군병력 조기투입 ▲검역검사청 설립 등 방역시스템의 일원화 ▲검역 검사청 내 전문연구소 설치 ▲가축 전염병 예방법 등 관련 법규 개정 ▲살처분 가축 매몰지에 대한 철처한 환경오염 관리 등의 사항을 강력히 건의키로 했다.

축산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이번 구제역 사건으로 뭇매를 맞은 곳은 또 있다. 바로 우리나라 축산업계이다. 문제가 제기된 가장 큰 이유는 가축 간 전염의 위험성을 높이는 벌집형 사육방식에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닭 한 마리를 키우는 평균 면적은 A4용지 3분의 2, 새끼돼지 1마리의 공간은 A4용지 2장 크기다. 어미 돼지들은 쇠파이프로 짠 케이지에 꼼짝도 못하고 갇혀서 새끼를 낳는 출산기계처럼 생활하고 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비좁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몰아 기르다 보니, 축사 환경은 최악이다. 축사 바닥에서는 가축들의 분변으로 인한 악취와 가스가 올라오고 축사 내의 온도도 높다. 이런 환경에서 운동을 하지 못한 가축들은 질환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 전염병이 한 번 돌면 떼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농가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점차적일지라도 꾸준한 축산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구제역이 남긴 사회적 메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구제역은 ‘인재(人災)’이며 그러므로 예방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음에도 예방, 예방이 최선이다. 어리석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그만 두고 바이러스 기초연구, 방역체계, 우리나라 축산시스템 등에 꾸준히 점검해 나가야 한다.

하진경 수습기자/계명
<hajinkyeong@e-mednews.com>

이야기 치료를 이야기 하다

수많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현대의학이지만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은 의학만의 영역이 아니다. 시 치료, 미술 치료, 음악 치료와 같은 대안 치료법이 많이 제시되는 요즘,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분야는 ‘이야기’ 치료. 경북대학교 문학치료학과에서 이야기치료를 가르치고 있는 권희영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Q. 이야기 치료란 무엇인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이야기 치료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어요. 왜냐하면 그 패러다임이 기존 상담 이론과 굉장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담자가 상담자를 찾아왔을 때 자기 삶이나 문제에 대해 얘기할 거 아니에요. 이 때 내담자가 얘기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런 방식에 집중을 하는 것이 이야기 치료입니다.
Q. 보통 ‘이야기’라고 하면 동화를 상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이야기 치료를 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까 이야기 치료에 대해 관심도 많지만, 오해도 많았어요. ‘이야기’라는 단어 자체가 중의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내담자에게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읽게 하고, 해석하게 하는 것은 독서 치료에 가까운데, 이야기 치료를 그런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사실 이야기 치료는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고, 현재 유럽 쪽에서 호응을 많이 얻고 있는 편이에요.

Q. 그렇군요. 그렇다면 치료 이름이 왜 ‘이야기 치료’인건가요?
아까 소개할 때 잠깐 언급했지만, 이야기 자체에 집중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상담 이론 같은 경우에는 인간의 성격 구조나 인간관에 대한 이론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론에 근거해서 내담자의 성격구조나 심리상태를 평가하고 분석하는데, 이야기 치료에서는 그런 이론이 아니라 내담자가 말해주는 이야기자체가 가장 중요한 소스가 됩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담자가 사건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거죠. 그래서 이야기 치료입니다.

Q. 내담자의 이야기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만약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데, 내가 그 사건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을 하면 나는 행복한 겁니다. 반면에 내가 그 사건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나는 불행해집니다. 이렇게 불행해진 사람들이 내담자가 되어 찾아 왔을 때, 그 사람들이 그 사건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야기 치료입니다.

Q. 그렇지만 그 사건 자체가 너무 불행해서 내가 힘들어질 수도 있지 않나요?
이야기 치료에서는 모든 사건에는 양면성(긍정, 부정)이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이야기 치료에서는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 문제가 생긴다기보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문제라고 해석하는 것은 내가 그 사건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Q. 그럼 방금 말씀하신 ‘강화’시킨다는 것이 뭐죠?
내가 그 사건에 특별히 집중하고 큰 의미를 부여해서, 그 사건이 나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강화에요. 보통 문제가 생겼다고 느끼면 이 사건과 비슷한 과거의 다른 사건들을 계속해서 수집하고 연결하게 됩니다. 이렇게 문제를 더욱 확대시키다 결국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하게 되죠.
예를 들어, 어떤 일들 때문에 힘들고 우울한 경우, 내가 그 사건에 대해 우울하다고 의미를 부여한 겁니다. 그렇게 우울하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에 계속 빠져있으면 우울한 것이 나의 삶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돼요.
‘문제’라는 건 어떤 사건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인데, 사람들은 내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때, 이야기 치료에서는 그 사건과 나의 관계를 파악하고, 나와 사건을 따로 떼어놓고서 그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파악하는 데 중요성을 둡니다.

Q. 그러니까 ‘문제’가 사실은 내담자의 ‘해석’일 뿐이라는 거네요. 심리학과는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심리학에서는 내담자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게 진짜 문제인지 의문을 제기 하기보다는 문제에 집중해서 그 사람 내면을 들여다보잖아요. 이를테면 과거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그것이 성격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쳐서 이런 문제를 발생시켰는지 말이에요. 그런 방식이 익숙했는데 문제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건 굉장히 새롭습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문제가 문제다.” 이야기 치료에서는 가장 유명한 문장이에요.
문제와 사람을 별개로 생각하는 것은 이야기 치료가 내담자가 가져온 문제를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그 사람 인격과 성격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던 관점을 바꾸어주는 것입니다.
이야기 치료는 분석하는 것이 정형화된 틀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거부합니다. 본인만의 이유가 있을 텐데도 심리학 상담자는 이론을 기준으로 해석을 하죠. 물론 그것이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잖아요. 사람마다, 종교마다, 문화마다 다 다르니까요. 그걸 다 고려해서 전문가인 상담가가 내담자의 위치에서 똑같이 삶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치료를 할 때, 내담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고 권유하는 식인가요?
내가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게 아니에요. 우선 내담자와 같은 관점을 가짐으로써, 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바라보는지 파악합니다. 그런 뒤 그 사건을 내담자와 분리시켜 내담자가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하거나, 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도록 계속 질문을 던져요. 그렇게 해서 내담자 스스로 그 의미나 다른 해석의 방향을 찾도록 해줍니다. 만약 내가 어떤 식으로 생각해보라고 권유하거나 지시하면, 그건 내담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내담자가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어 결국 그 사건을 문제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유도합니다.

Q. 관점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어떤 큰 일이 생겼을 때,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보다는 이게 정말 힘든 일인가하는 의문을 가져보는 것이 좋아요. ‘왜 나는 이렇게 생각할까?’ 이런 식으로 자꾸 ‘왜?’라고 질문하다보면 사건을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까요.

Q.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상은 사실 50-60대 인생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모습입니다. 그런데 다들 조급하게 그때 모습을 지금 빨리 이루길 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차근차근 발전해서 마지막에 그 모습을 갖추면 되는 건데 지금부터 그 목표의 그림자라도 보길 원하는 거죠. 그러니까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뭘 해내야겠다는 초조함을 느낄 필요가 없어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느냐가 중요하지 그 모습을 지금 꼭 갖출 필요는 없잖아요. 인생은 기니까 다 할 수 있어요.

김다혜 기자/대구가톨릭
<anthocy@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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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한 걸음 더

80호(2011.04.11)/문화생활 2011. 5. 6. 22:19 Posted by mednews

진실에 한 걸음 더

‘장자연 리스트’를 통해 돌아보는 기자 정신

"저는 힘없고 나약한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일주일전 장자연씨가 2월 28일 전 매니저 유장호 씨에게 남긴 글이다. 그녀를 둘러싼 연예계비리에 대한 진술서와, 유장호씨에게 심경을 토로한 편지였지만 사실상 이 글은 29살 젊은 여배우의 유서가 되고 말았다.

2009년 3월 7일.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장씨의 죽음이 보도되고 나서, 경찰은 다른 연예인들의 죽음처럼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종결지으려했다. 하지만 장씨의 유서가 KBS에 의해 공개되고 나자 여론이 폭발했다. 장씨의 유서에는 장씨가 소속사 대표 김종승씨로부터 강요받아야했던 술 접대, 성 접대 그리고 김대표가 그녀에게 가했던 폭행들이 낱낱이 적혀있었다.

경찰은 재수사에 나섰다. 41명의 대규모 수사팀, 27곳 압수 수색, 통화 내역 14만여 건 조사, 들춰본 계좌와 신용카드 조회 건수도 955건, 참고인도 총 118명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조사는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였다. 핵심은 향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아주 이상한 수사였다. 장씨가 성 접대를 했다고 지목한 일간지 사장에 대한 경찰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뜬금없게도 사건을 보도한 취재기자와 기자를 취재장소로 데려다준 조카, 조카의 친구까지 불러서 조사했다. 당시 경기경찰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워낙 힘이 있는 분이어서 성 접대 의혹만으로 쉽게 부를 수만은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유력 인사를 포함한 수사 대상자의 신원과 혐의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해놓고는 나중에는 "실수였다"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이 문건에 등장하는 유력 언론사의 전 대표로부터 두 차례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여배우의 죽음 앞엔 ‘성역 없는 수사’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경찰의 수사는 같은 시기 언론을 뒤덮었던 ‘박연차 리스트’와는 판연히 다른 자세였다. 장자연 리스트와 박연차 리스트는 사회고위층이라 불리는 유력인사가 불법적인 상납을 받았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였다. 하지만 박연차 리스트를 조사하는 검찰은 박근혜계 인사와 친노인사들을 열심히 물고 늘어지고, 장자연 리스트를 조사하는 경찰은 잘 차려준 밥상마저 물리려했다. 검찰과 경찰이 보좌해주는 권력실세가 누구인지 잘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이렇듯 ‘장자연 리스트’의 수사엔 진척이 없었고, ‘박연차 리스트’라는 거대 정관계 스캔들과 맞물려 여론의 추진력도 얻을 수 없었다. 3월에 시작한 경찰의 수사는 7월 10일 마무리되었지만 성접대에 대한 혐의는 사라진 채 김종승와 유장호씨만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되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 처리되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등 술자리에 참석했다고 문건에 언급된 10여 명의 이름 또한 모두 빠져있었다. 통상 유언은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인데,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장씨가 죽음으로 말하려고 했던 술 접대·성 접대 의혹은 아예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이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2011년 3월 6일 SBS가 ‘장자연 편지’를 입수했다는 단독 보도를 하면서 사건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SBS가 입수한 편지는 2009년 스포츠 칸에서 공개한 ‘왕첸첸(편지를 보유했던 전씨의 가명)의 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으나 공인된 전문가가 ‘장씨의 필적임을 확인했다’는 것이 전과 다른 점이었다. 하지만 3월 16일 국과수는 이러한 SBS의 주장을 뒤엎고 이 편지가 장자연씨의 필적이 아님을 발표했다.

국과수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장씨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추잡함은 분명 있었다. SBS의 보도가 있고난 3월 9일 배우 문성근 씨는 조선일보사 앞에서 ‘정말 미안합니다. 장자연님’이라는 팻말을 들고 조용히 1인 시위를 했다. 장씨와의 친분은 없어도 함께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종사자로서, 그러한 추잡한 관행들이 아직도 간간히 지속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문성근씨는 장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술접대와 성접대라는 상납의 대상이 된 언론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언론 본연의 의무는 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파헤쳐 더불어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이 정치 권력, 즉 로비의 대상이 되었단 말이죠. 많은 시민들은 언론사가 관계가 되면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권력의 감시자가 되어야할 언론이 오히려 권력실세가 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권력의 비호자가 된 현실. 감시자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력의 비호자가 된 것은 비단 언론 뿐 만이 아니다. 장자연 리스트를 사실상 방관했던 경찰과 검찰도 마찬가지 이다. ‘힘있는 자는 보호받아야한다’는 이상한 명제 속에, 스타가 되지 못한 힘없는 여배우는 사후에도 명예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인가?

장씨의 명예는 공식적으로 회복되지 못했지만 그녀의 죽음에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남긴 유서를 통해서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장자연씨의 유서를 공개한 KBS와 장자연씨가 쓴 것이라 추정되는 편지를 공개한 SBS는,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권력이 감추는 진실을 파헤치는 이들의 노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것과 비슷한지도 모른다. 아무리 계란을 던진다 한들, 이 바위는 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흔적은 남는다. 이것이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진실에 계속해서 다가가야 하는 이유이다.

박민정 기자/성균관
<cindy29@e-mednews.com>


장하준과 함께 반추해보는 신자유주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다

2010년 12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장하준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원래 취지는 한나라당에서 자신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교수의 강연을 듣고 생각해보자는 것이었지만 강연 막바지에는 장 교수와 의원들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이 강연회에서 장하준 교수는 한미 FTA와 현 한나라당의 주요 정책들을 비판했다. 현 정부의 모든 것들을 비판하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하준 교수는 1963년에 태어나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으로 유학을 가 캠브리지대학교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장 교수의 가족들도 비슷한 수준이다. 장 교수의 동생 장하석 교수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CALTECH)에서 물리학 학사를, 스탠퍼드대학교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땄다. 아버지 장재식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으며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라면 장하준 교수는 일반적인 기득권층으로 보수적인 사고를 갖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의 정책 기반으로 쓰이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무리의 선봉에 서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경제공황이 찾아왔는데 이때 대두된 경제이론이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이다. 대공황 이전의 자본주의는 결점이 많았는데 이를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케인즈경제학, 즉 수정자본주의이다. 하지만 이 수정자본주의도 1970년 세계 경제공황 이후 반론이 제기되었는데 이때 새롭게 나온 것이 지금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다. 신자유주의를 몇 단어로 설명하자면 자유시장, 정부의 규제완화, 재산권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적극적인 개입은 경제상황을 매우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봤을 때 이들 주장에는 여러 허점이 많다. 그리고 이들을 비판하는 것이 장하준 교수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다.

2008년에 전 세계적으로 경제공황이 찾아왔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신자유주의는 현재의 선진국들에게는 잘 들어맞는 경제이론인 것 같이 보인다. 실제로 대표적인 경제대국인 미국과 일본은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고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도 공산주의 정부이지만 어느 정도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경제정책들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의 경우를 보면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선진국들만의 경제이론으로 보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도 이를 비판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선진국에서도 완벽한 경제이론이 아니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더더욱 경제발전을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책에 소개되는 대표적인 예들은 놀랍게도 현재 선진국들이 과거에 채택했던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들이다. 심지어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정책들도 포함되어있다.

산업혁명 시절 영국, 프랑스 등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 엄청난 경제발전이 있었다. 이 경제발전을 단순히 산업혁명 때 나온 많은 과학기술덕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약 단순히 기술 때문이라면 전 세계적으로 경제발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발전이 몇몇 특정 나라에서만 나타났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영국에서 과학발전이 일어났을 때 영국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기술의 유출을 철저히 막았다. 그리고 정부차원에서 농업을 위축시키고 공장을 지었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여러 방법을 통해 농업을 발전시키도록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이를 바탕으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영국의 압박에 의해 농업으로 시작했지만 정부의 주도 하에 많은 선진기술들을 이용한 공장들을 지었으며 현재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높은 관세를 이용해 자국 산업을 보호해 여러 산업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의 경제발전도 비슷하다. 박정희 정권 때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울산, 포항 등 국내에 많은 중화학 공업단지를 건설했으며 엄청난 사회자본을 투입해 경부고속도로 등 인프라 구축에도 기여했다. 그리고 높은 관세를 이용해 우리나라의 산업이 다른 선진국들로부터 피해를 입는 것을 막아 국내 기업들의 발전을 도모했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의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었고 한국은 전 세계에서 2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렇게 전 세계 선진국들은 과거에 신자유주의와는 정반대되는 경제정책을 이용해 많은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이들은 현재 개발도상국들에는 자국에서 쓰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고 있고 이것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요지이다. 이런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는 주요 세 기관으로 IMF, 세계은행, WTO가 이 책에서는 소개된다. WTO는 국제 거래 시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규정을 어기면 제재를 가하며 IMF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듯이 경제위기의 국가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그 나라의 모든 경제정책을 수정해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책으로 바꾼다. 당연히 이런 국가들이 더 이상 큰 경제발전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 책의 제목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이해가 될 것이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나온 제목이다. 성경에 따르면 한 유대인이 강도를 당하고 길에 쓰러져있었는데 제사장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이를 보고 그냥 지나쳤지만 유대인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마리아인 한명이 그를 데려가 보살펴주었고 예수가 칭찬을 한다. 요지는 진정한 이웃은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나를 사랑해주고 힘들 때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현실에 비추어보면 지위가 높은 선진국은 지위가 낮은 개발도상국에 강요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인 것이다. 물론 장 교수의 비판이 100%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정책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나라들이 개발도상국의 가하는 이중잣대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잔인한 짓인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 하다.

장진기 기자/울산
<showbu@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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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의 최후

한 영상의학과 의사가 자신의 발표를 위해 길을 가던 중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의사로써의 직무를 떠올리며 환자에 필요한 처치를 하고 119에 신고를 하였다. 의사는 자신의 일도 미룬 채 구급차에 타서 환자를 보았지만 결국 환자는 이송 중에 죽고 말았다. 이 의사는 어떤 결과를 맞았을까. 그는 호흡곤란에 관한 전문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루카는 성서에까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기록했지만 요즘은 이렇게 판단 기준이 다르기도 하다.
지난 달 말일, 서울지방경찰청은 ‘비밀’ 홈페이지를 만들어 의사국가시험 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전국 의과대학 4학년 협의회’ 전 회장을 비롯해 전 집행부 10명을 불구속 입건하였다. 그들은 자격 미달인 의대생들을 의사로 만들어 국민건강권을 침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음은 물론이고 국시원의 고귀한 업무를 훼방 놓을 의도도 없었음에도 이 같은 최후를 맞았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무한경쟁시대에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 뿐일 것이다.
사안의 부당성은 이미 지난 호 기사(79호 “국가시험 문제 복원, 무엇이 문제인가”)를 통해 지적하였다. 실기 시험 문제가 복원이 아니라 설령 정말로 유출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은 처음의 SBS 보도 다음 날 국시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시험일자에 따른 합격률을 나타는 그래프가 그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하지만 언론은 그런 사실에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명백히 사전 유출이 아니라 문제 복원 혹은 정보 공유의 수준임에도 SBS에서 최초로 보도할 때 사용한 '유출'이라는 표현을 고수하고 ‘비밀 홈페이지’라는 표현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불구속 입건 후의 기사들은 더 심해서 ‘수법’, ‘조직적’, ‘치밀한 계획’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유출’, ‘비밀’ 따위의 선정적인 용어를 써가며 의대생들을 매도하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전사협 관계자를 실제로 만나보거나 의사국가시험 과정에 대해 제대로 취재해 본 기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특히 실망스러운 곳은 ‘청년의사’다. 그들이 독자로 삼은 ‘청년의사’들이 어떻게 의사가 되었는지 정녕 모르는 것일까. ‘청년의사’라는 제호를 사용하면서 다른 기성 언론들과 하나도 다름없이 선정적인 기사를 써대는 모습은 참으로 넌센스이다. 그런 기사를 쓰기 전에 차가운 사회에 발을 내딛자마자 위기를 맞게 된 청년의사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내는 게 먼저가 아니었을까.
국시원은 지금껏 시험 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의대생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급기야 지난 6일에는 이번 사건의 중심에 선 전사협 집행부들에 대해 합격 취소 등의 강력한 행정처분을 하겠다는 공식입장을 표명하였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그 입장표명에 이어 실기시험센터 증설 및 필기 기출문제 공개 등을 골자로 국가시험 운영 개선 계획을 발표한 국시원의 이중적인 태도이다. 지금까지의 국시 운영에 문제가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학우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 자구책을 마련하고자 한 이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고자 하는 것은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저작권 침해라는 명백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출판사보다 그 혐의가 애매해 보이는 전사협 쪽을 먼저 입건한 경찰과 검찰, 그걸 신나서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어디 하나 믿을 곳은 없어 보인다. 우리 후배들을 위해 힘쓴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최후를 맞기 위해서라도 또 불합리하게 매도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고래는 생선일까

80호(2011.04.11)/오피니언 2011. 5. 6. 22:14 Posted by mednews


고래는 생선일까

경남 울주군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새겨놓은 그림이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 그림에는 각종 사냥도구와 토끼, 사슴, 물개와 같은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어 먼 옛날 우리네 조상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림의 중심에 고래들이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끼니 해결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고래사냥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바위에 고래를 새겨 두었습니다.

‘고래는 생선이다’라는 명제를 두고 어느 자연대 교수와 인문대 교수가 두 시간동안 입씨름을 했지만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사전적인 분류를 따르자면 포유류에 속하는 고래는 어류에게만 허용된 물고기나 생선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기가 어째 좀 부자연스럽습니다. 멸종위기에 처해 포획이 금지된 동물인 고래를 식탁에서 늘 마주하는 고등어나 꽁치 같은 아이들과 동일선상에 놓기가 미안해서일 수도 있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고래는 엄밀히 말해 생선으로 치지는 않습니다.

일견 그리 복잡해보이지는 않는 이 질문을 두고 두 교수가 엎치락뒤치락한 것은 어째서일까요? 어깨에 작살을 멘 채 통나무배를 타고 고래를 잡으러 바다로 내달리던 오천년 전 조상들은 고래가 생선일지 아닐지 그 구분을 헷갈려 했을까요?
문제의 핵심은 ‘이름붙이기’의 이면작용에 있습니다. 대상에 이름을 다는 약속행위는 ‘스펙트럼’에 대한 인식을 전제합니다. 빨강을 두고 빨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빨강 이외에 다른 색깔들도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처럼, 유개념에 종차를 적용함으로써 정의(definition)가 성립한다는 점에서 이름붙이기는 태생적으로 분류나 구분과 맞닿아 있습니다.

‘포유강 고래목의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약속에 준해 고래를 바라본다면 어류에게만 허용된 ‘생선’이라는 이름은 자동으로 배제되는 반면, 다소 자기중심적이긴 하지만 기능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물에서 살고 먹을 수 있는 동물인 고래를 생선으로 간주하는 데 거리낄 게 없습니다. 고래에 ‘포유강’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고래가 가진 생선으로서의 속성이 무너져내리듯,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그 대상을 파괴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아마도 그 인문대 교수는 식탐만 강한 사람이기보다는 고래를 고래 자체로 볼 수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름을 붙이고 분류를 하는 것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 언어가 세상을 재단해내는 힘은 가공할만합니다. 백혈병을 네 가지로 나누고 그 중 한 가지를 또 일곱 가지로 쪼개어 곧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현대의학을 비롯해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 중 99%는 언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바디감’이라는 단어를 접한 후 커피 맛을 조금 더 잘 느끼게 된 바리스타처럼, 언어가 없었다면 애당초 대상을 인식조차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어는 본질적으로 파괴를 통해서만 기능할 수 있는 까닭에, 우리 무의식에 교묘한 함정을 파 넣기도 합니다.

‘전문직’이라는 단어는 세상의 직업을 전문직과 전문직이 아닌 것으로 나누지만 그 기준은 애매하며,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책임을 강요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비전문성을 강요합니다. 외(外)할머니는 (친)할머니에 대해 바깥쪽에 위치하는 존재로 규정되며, ‘예과생’이라는 단어는 의학을 공부하기 위한 예비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라는 뜻의 ‘의예과 학생’의 줄임말일 뿐이지만 ‘본과생’에 대비되어 권력관계의 함의를 주입받습니다.

‘사랑’이라는 한 낱말을 던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감정과 기억의 그물을 혀 밑에 우겨넣어야 할까요. 진정한 정체성은 그를 겨냥한 모든 이름이 사라질 때에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래는 자기 이름을 완전히 버릴 수 없다면 포유류라는 이유로 생선이 아니기보다는 차라리 당신에게 생선이고 싶어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편집장 최성욱
<editor@e-mednews.com>

일본대지진, 어떤 지평에 서서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인간의 내심은 주변 환경에서 비롯된 공포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흔히 인간을 오해와 편견의 동물이라고 한다. 오해와 편견은 인간의 본질인 모순을 이룬다. 이 모순은 주변 환경이 어느 순간 공포로 변했을 때 명확하게 드러나며, 그 공포는 인간의 현실을 위협하는 사회적, 기술적, 정치적 위험에서 비롯된다.
불과 한 달 전에 일어난 일본 대지진 이후 인접국인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혼란상은 인간의 내심이 기술적, 정치적 위험에 의해 공포로 리모델링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지진 직후 한반도 남쪽에서는 유사 이래 최고액의 성금이 기탁되었으며 너나 할 것 없이 깊은 슬픔을 표했다. 그러나 일본사 교과서 개정판에서 독도영유권 주장 문제가 대두되자 일본대지진 피해에 대한 동정적인 여론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여기에 원전에서 쏟아져 나온 방사능 문제가 직결되자 일본 대지진이라는 휴머니즘을 재고하게 해준 사건은 열도에 대한 비난을 야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는 것이 인간의 내심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올곧은 방향으로 경주하도록 노력하는 것 역시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역사를 아울러 보편타당한 진리로 이야기되는 것은 바로 이런 혼란상에서도 중심을 지켜낼 수 있는 준거를 뜻한다. 따라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는 핵심은 그 준거를 무엇으로 잡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떤 지평에서 일본대지진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현시점에서 보면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반성 없음과 당면한 핵물리적 위협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민족 자체를 하나의 적성국 내지는 적성민족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국가 내지는 민족이란 객체를 향한 동정과 비난이 한국이라는 국가 혹은 민족에 자기동일시하고 있는 주체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이것은 분명 사려 깊지 못한 사고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가 정작 의문부호를 기시해야 할 곳은 주체와 객체에 관한 것이며, 이는 결국 층위와 계급의 문제로 귀결된다.
예를 들어보자. 일본대지진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지역들의 인구 중 30% 이상은 60세 이상으로 초고령 지역사회다. 이들 지역에서 원자력발전소를 수 기나 유치한 것도 지역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열도 내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에 기술지배의 총아인 원전을 유치하면서 그 기술이 안고 있는 리스크를 최하위 계층이 고스란히 감당하게 되었다. 이런 마을에 쓰나미가 밀려왔다. 리스크가 현실의 위협으로 변한 지금, 그곳에 살았던 이들은 세계 최강국이라는 지위와 전연 동떨어진 ‘난민’이 되었다. 
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내 세력이나 방사능 대책에 있어 국가 이기주의에 빠진 정책을 주장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우경화 일로의 일본 정치인들, 관료들,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우파 지식인들은 물론이며 이를 방조해온 자유주의 지식인일 것이다. 지역적으로 이들 중 미야기현과 같은 리스크가 큰 빈곤지역에 거주하는 비율은 아마 극히 적을 것이며 계급적으로도 분명 이들은 유산계급 내지는 지식인계급일 것이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원전 위험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원자력산업에 대한 위험 교육은 전무한 채 오직 선순환만 부각시켜 대국민홍보를 하면서도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해체시키고 위안부 피해대책 활동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조해주지 않는 이 나라의 소위 지도층이라 불리는 이들보다 쓰나미에 희생된 일본의 필부필녀들이 더욱 간악한 존재일까? ‘아니다’라는 대답을 했다면 우리의 눈이 어두워지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범주의 오류 때문이다. 민족과 국가라는 범주 앞에서 계급과 계층이라는 범주가 가려질 때 우리는 지정학적인 요인이 얽힌 사건을 옳지 못한 시선으로 판단하게 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일본 시민단체의 경우

얼마 전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로 부조리에 항거하던 이들이 행한 따뜻한 기도는 우리가 어떤 지평에서 사고해야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난 달 16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 962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집회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추모집회’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누구보다도 ‘일본’이라는 상징체계에 대해 분노할 그녀들은 열도에서 자신들과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했을지 모르는 그곳 민중들을 위해 간절한 목소리로 기도했다.
실제로 지진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미야기현에는 일본에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주인공이었던 송신도 할머니다. 쓰나미가 몰려온 날 송신도 할머니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할머니의 대일본정부 재판을 지원하던 일본 시민단체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은 한국 측의 위안부 피해대책 단체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독립영화사 측에 할머니의 실종을 가장 먼저 알렸고 수 십 만의 난민들로 가득 찬 수용시설에서 할머니를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 결과 일주일 만에 난민 수용소에서 할머니를 찾았고 지금은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모신 상태다. 십 수년 간 할머니의 재판을 돕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할머니를 찾은 그들은 한국 정부도, 한국 위정자도, 한국 민족도 아니었다.

연대감과 비판이 향할 지점을
정확히 인식하기 위하여

인간의 내심과 국가주의적 이념을 동일시하는 것은 민주화 이후에도 내화되지 않은 민주주의에서 비롯된 일종의 아노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노미는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물활론적으로 인식하는 동아시아 국가에서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인다. 물론 과거사 왜곡 문제와 방사능 피해라는 문제는 분명 누군가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책임질 대상을 잘못 설정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비판과 비난은 오해와 편견을 부추길 뿐이다. 가없는 죽음에 대한 연대감은 분명 유지되어야 하며 우리가 강력히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연대감과 비판이 향할 지점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묘가 요구된다.

이현석 기자/영남
<h@e-mednews.com>

'80호(2011.04.11) >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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