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의료계 여풍당당, 그러나 현실은

의료계에 여풍이 불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전공의 중 여전공의의 비율은 35.5%에 육박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의사협회 회원의 20% 이상을 여의사가 점유하고 있고,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의 여학생 분포 또한 30%를 넘어서고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의료계 여성인구, 그러나 그들은 안녕한 것일까?

전공의 선발과정과 수련에서부터 출산, 육아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의사의 증가 비율에 비해 기본적인 시설, 처우 등 근무 환경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9년 11월부터 3개월 간 대학병원 여전공의 3805명과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3·4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 1905명을 대상으로 한국여자의사회에서 실시한 전국 ‘의학전공 여학생과 여 전공의의 환경개선과 진로 결정을 돕기 위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 같은 문제를 절실히 보여준다.

기본적인 생활공간 조성 미흡…
성추행 위험까지

‘재학 및 수련 중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병원생활에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70~8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여자 화장실, 수술실 내 여자탈의실, 여자 샤워실, 여자 당직실 부족 등 기본적인 생활공간 조성 미흡에 따른 것이었다.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일부 지방에서는 남녀 전공의의 생활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환경은 여성이 수련과정중 성희롱 또는 성추행에 노출되게 하는 위험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성희롱과 성추행에 대한 예방 교육 혹은 사후 상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서나 제도가 부실한 것도 문제이다. 조사 결과, 학생의 26% 그리고 전공의 20%가 본인이 성추행 피해 경험이 있다고 대답하였고, 다른 사람이 성추행을 겪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역시 학생과 전공의 중 ‘그렇다’는 대답이 약 25% 내외였다.‘여성’과 ‘전공의’의 기로에 놓이는 여성 의료인 법정 출산휴가 사실상 지켜지지 않아, ‘다산=유급?’

‘여성’과 ‘전공의’의 기로에
놓이는 여성 의료인
법정 출산휴가 사실상
지켜지지 않아, ‘다산=유급?’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마취과 전공의였던 C씨(2년차)는 신경차단술이나 신경외과 수술 중 C-arm 등 방사선 노출이 심한 작업을 반복하는 일이 태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임신 4개월 무렵 병원에 스케줄 변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의국에서는 대체인력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거부했고 C씨는 건강한 출산을 위해 결국 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전문의에게 주어지는 과중한 업무와 결원 발생에 대한 조처의 부재는 여성 의료인이 결혼과 임신, 출산이라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는 법정 출산휴가기간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법정 출산휴가기간인 3개월을 모두 채운 사람은 18.9%에 불과했고,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은 45~90일 미만의 휴가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도 채 쉬지 못했다는 응답 또한 6.7%나 됐다. 출산 휴가제도의 적용 횟수에도 문제가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출산을 장려하는 우리나라에서 ‘여성 의료인의 다산은 곧 유급’을 의미한다. 대한병원협회가 2009년 제정?공포한 현행 '전공의 수련규칙'에서는 여성 전공의의 출산휴가를 명시하면서도, 해당 여성이 피교육자라는 점을 감안해 1회 출산 휴가(90일) 기간만을 수련기간으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2회 이상 출산한 경우에는 1회 출산 휴가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만큼(최소 90일 이상) 추가 수련을 받아야만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현재의 이 같은 제도는 여성 의료인의 출산을 저해 하며, 이는 인구 부족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덴마크에서는 출산 휴가로 인한 공백으로 수련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른 병원의 상급연차로 이동하는 등 유동적인 전공의 수련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유동적 전공의 수련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여의사의 양육을 지원하는 병원,
약 7%에 불과해

출산 후에도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병원에서의 주 1회의 당직 근무, 주말 출근, 진료 시간 외에 강의와 연구로 결국 지금은 입주 아주머니, 주 1회 살림만 하시는 아주머니, 주 3회 대학생 베이비시터 알바까지 동원해서 겨우 겨우 육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라는 여의사의 말은 병원에서의 과중한 업무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준다. 과중한 업무가 계속되는 병원 환경에서 개인이 양육에 대한 부담을 전부 지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에 따라 사회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보육 시설 관련 복지 정책을 진행 중인 병원은 단지 7%에 불과하다.  이들 병원에서는 병원 내에서 보육 시설을 직접 운영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타 업체에 위탁 또는 수혜 직원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형태로 지원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북 마음 사랑 병원에서는 병원 내 ‘아이사랑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고, 대체 인력을 10% 마련하는 등 육아에 대한 뒷받침 노력을 시행 중이다.

제도 부실에 의해 나타나는
성차별 극복돼야

“출산포기 각서를 써도 좋으니 뽑아만 줬으면 좋겠어요.”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제도 미숙은 더 나아가 여성 의료인에게 ‘유리천장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 여성의 전공의 선발과정에서 느끼는 성차별에 대한 조사에서 학생의 경우 94%가, 전공의의 경우 92%가 ‘그렇다’ 는 대답을 할 정도로 전공의 진입 시 성차별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전공의 선발 시 시험 성적이 좋다 하더라도, 면접시험에서 여성 응시생에게 결혼과 출산계획 등을 집중적으로 캐어묻기도 하며, 이미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전공의 선발 시 열외 시키기도 한다.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일부 수련 병원에서는 업무 공백을 우려해, 전공의 선발 시 여전공의들에게 ‘결혼 및 임신 금지 서약’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성적이 좋아도 재수를 하고, 정원 미달인 소아과, 산부인과에 여성 의료인이 많은 것 또한 여성 기피로 인한 현상으로도 설명된다.

여성 의료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 필요해

물론 현재의 병원 시스템 하에서 나타나는 도제식 의료 노동, 당직 등 초과 근무에 따라 여성이 갖는 체력적, 신체적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여성 의료인에 대한 기피 현상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임신, 출산 시 제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 전문의에게 주어지는 병원 업무도 과중하며 임신, 출산 등으로 여성 의료인이 부재할 경우 업무를 맡을 대체 인력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는 곧 다른 의료인들의 상대적인 업무양 증가로 이어지며, 해당 업무의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지 않도록 한다. 이러니 병원 임원진이나 다른 의료인들이 신체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제약이 없는 남성 의료인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여성 기피현상에 대하여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공의 업무량의 축소와 대체 인력 확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에서 여의사들의 근무 환경 개선, 설자리 마련을 위해서는 다양한 집단에서의 공감대 형성과 적극적인 의견 교환도 중요하다. 최근 제 3회 전국 여의사 대표 간담회에서는 ‘여의사 권익을 위한 결의문’을 통해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관련 단체들의 여성임원을 30% 이상 확충하도록 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한국여자의사회에서는 여의사의 진로, 결혼, 학술활동 여건, 인권사항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설문조사 실시 후 대안 마련과 멘토링 제도 등을 실시할 예정에 있다. 소통에서부터 정책적 지원까지, 해마다 가하는 여성 의료인의 기본권 보장과 사회 유지를 위한 체계적인 국가적 보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유라 수습기자/서남
<youzr-_-a@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