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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조정법 국회 통과

3월 11일 ‘의료분쟁조정법(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1988년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건의 이후 23년 만의 일이다. 이는 공표 이후 1년의 유예기간을 거치고 이르면 내년 4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의료분쟁의 유일한 해결책은 소송으로, 평균 26개월이나 걸리는 소송 기간과 만만치 않은 변호사 선임비용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조정을 통해 4개월 안에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환자가 조정을 신청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고 1회에 한해 기간을 30일 연장할 수 있어 길어야 4개월 안에 결론이 난다. 만약 조정 결과에 동의하지 않으면 소송으로 이어진다. 환자가 조정 절차를 원하지 않을 경우 바로 소송으로 가는 것도 가능하다.

법안의 핵심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설립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의 무과실 보상(무과실 의료사고 보상) △업무상과실치상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적용(형사처벌특례) △손해배상 대불제도 △의료배상공제조합 설치 등이다. 해당 법안은 의료사고에 따른 피해는 신속ㆍ공정하게 구제하고 보건의료인에게는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는데 큰 뜻을 두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어떤 기관일까

의료분쟁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기관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중재원)이다. 중재원에는 ‘의료분쟁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와 ‘의료사고감정단’(이하 감정단)이 설치된다. 조정위는 5분의 2는 판사·검사·변호사로, 5분의 1은 비영리 민간단체 추천, 5분의 1은 보건의료인이 아닌 대학 부교수급 이상인 사람으로 구성된다. 의원들 중 실질적인 조사 활동을 위해 판사1명 그리고 변호사 또는 검사 1명을 반드시 포함한 5명이 조정부를 이룬다. 조정위는 의료분쟁의 조정과 중재, 손해액 산정 등을 맡는다. 감정단은 전문의 자격 취득 후 2년 이상 경과한 사람 또는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면허 취득 후 6년 이상 경과한 사람, 변호사 자격 취득 후 4년 이상 경과한 사람, 민간단체에서 2년 이상 임직원을 맡았던 사람들로 꾸려진다. 감정단은 의료분쟁 사실조사와 과실 유무, 인과관계 규명, 후유장애 발생 여부 등을 확인하는 일을 한다.

입증책임 전환 조항은 삭제,
형사처벌특례 조항은 포함돼

한편 시민단체는 의료분쟁조정법이 핵심은 빠진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소송을 할 경우 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원고인 환자에게 있지만 의료소송에서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병원이 폐쇄적이다 보니 증거자료 수집이 어렵고 병원에서 행해진 진료의 전체 과정, 의무기록의 내용 등을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단체 등은 진료 과정에서 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의사가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 조항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재원과 같은 독자적인 감정기구를 둔다고 해도 진료를 행한 의료인이 아니고서야 병원에서의 의료행위 과정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과실 유무와 인과관계를 규명하기는 어렵다는 것.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입증책임 전환 조항이 빠진 상황에서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의료사고 감정단의 주 역할을 맡을 의사들이 환자 보다는 동종업계인 의사에게 유리한 감정을 할 개연성이 크다”라 우려했다.
하지만 입증책임 전환 조항은 진료기피 현상이나 과잉진료를 불러올 우려가 있다는 판단으로 폐기되었다. 의료계는 적극적으로 진료에 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며 환영하고 있지만, 시민단체는 의료인과 환자의 불균형적인 상황이 악화될 뿐이라 반발하고 있어 향후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쟁점 중 하나였던 형사처벌 특례 조항이 최종 법에 포함되었다. 조정이 성립되거나 합의에 성공한 경우 보건의료인을 형사처벌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단 ‘피해자가 신체 상해로 인해 생명에 대한 위협이 발생하거나 장애 또는 불치·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된 경우’는 형사처벌특례 대상에서 제외했다. 피해자들이 고소를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이 해당 조항이 포함된 사장 큰 이유. 형사 고소의 증가는 사고 위험이 큰 산부인과·흉부외과 등의 전공의 기피, 방어진료 경향 등의 현상으로 이어졌기에 형사처벌 특례 조항이 포함된 것에 대한 의료계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금전적인 보상의 기회 확대될 듯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는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자가 배상금을 지급받지 못했을 경우 미지급금에 대해 조정중재원이 이를 대신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비용은 의료기관이 부담하고 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급여비의 일부를 중재원에 지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고 보상에 의한 책임을 의사 개인이 모두 떠맡게 한 제도로 이는 안정적 의료 환경 조성에 악영향을 줄 뿐 아니라 환자가 안정적으로 보상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들은 “운전자보험이나 산재보험처럼 종합보험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법은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했다고 의료사고보상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 ‘분만에 따른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중재원이 그 피해를 보상해 주는 것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 분담비율, 보상 범위, 지급 기관 추가여부, 지급 절차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질 예정. 현재 재원은 복지부와 의료기관이 분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1천억원 정도의 예산을 편성해 놓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재원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편  대한병원협회는 “피해보상이 가능한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의 범위를 ‘분만’으로 한정한 것은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며 “의료인의 과실과 무관하게 발생한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차원에서의 피해보상이라는 책무성을 고려할 때 ‘분만’ 이외의 의료행위까지도 확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문지현 기자/중앙
<jeehyunm@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