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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대란,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바이러스 기초연구에서부터 국내 축산업까지, 남겨진 과제 많아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126일 만인 지난 3일 사실상 종료됐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날 충남 홍성군을 끝으로 각 시·군 단위로 내려졌던 가축이동제한이 모두 해제됐다고 밝혔다. 이번 구제역은 국내에서 사상 최장 기간 동안 발생했으며, 350만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 되고 3조원의 재정이 소요되는 등의 기록을 세웠다.
무엇이 이런 최악의 사태를 만들었을까. 이번 구제역의 전개 과정 속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을 되짚어 보았다.

바이러스 습격사건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국내에서는 구제역 뿐 아니라 신종인플루엔자, AI 등 바이러스성 전염병들이 전국을 강타했다. 그로 인해 전국민이 불안에 떨었고, 그 피해 또한 엄청났다. 가히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 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구제역 발생 기간이 길어진 원인 중 하나로 국내 바이러스와 백신 관련 연구 시스템의 부재가 지적되었다. 구제역 백신 생산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긴급 대응을 하려다 보니, 국내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와 16% 정도 염기서열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 외국 백신(O1 마니사)을 들여와서 사용한 것이다. 이 경우 바이러스 돌연변이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백신의 효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따라 바이러스 감염인자들의 효율적인 예방, 통제, 진단, 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연구 시스템과 독자적 백신생산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NIH(미국국립보건원) 관련예산 약 6조3000억원(2006년)인 반면, 한국은 239억원(2008년)에 불과하다. 또 고위험 바이러스연구에 필요한 Biosafety Level-3 시설의 경우 미국이 1400여개, 한국이 10개 내외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바이러스 관련 연구기관 간의 R&D(Research and Development) 수행의 연계성 부족 및 바이러스 전문 연구기관 부재도 지적받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작은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다. 지난 22일, 대한개원의협의회는 구제역 및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구제역 등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한 국가적인 연구지원이 필요하며, 특히 바이러스학 연구를 위해 Bio-safety level-4의 실험실과 ‘국립중앙미생물학 바이러스 연구소’를 건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대정부 건의안을 채택하였다.

생매장, 그것이 최선입니까?

지난 달 CNN에는 우리나라에서 수천, 수만 마리의 돼지를 생매장 하는 영상이 보도되었다. 누리꾼들은 국가적 위상이 추락했다며 무자비한 살처분 정책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었다. 국민들의 정서 뿐 아니라 이렇게 마구잡이로 살처분된 가축들은 2차, 3차 오염을 일으키며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매몰지 143곳에서 침출수가 주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악취를 발생시키며, 동물 기름은 지표로 떠올라 토양을 검게 오염시키고 있다.
이에 수의과학검역원 주이석 질병방역부장은 “감염동물을 신속히 제거하는 것(살처분)이 현재까지 알려진 안타깝지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80여 개의 지역으로 구제역이 확산된 후에야 살처분이 최선일 수 있다. 하지만 축산농가의 자율방역의식과 일관된 방역체계, 그리고 신속한 백신접종이 이루어졌다면 이렇게 많은 가축이 생매장 되는 일은 없을 것임은 분명하다. 지난 12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구제역 및 AI 현황과 대책,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긴급 정책토론회를 열고 ▲축산 농가의 자율방역의식 정책수립 ▲살처분 및 백신접종의 상황별 병행 ▲구제역 확산 저지를 위한 군병력 조기투입 ▲검역검사청 설립 등 방역시스템의 일원화 ▲검역 검사청 내 전문연구소 설치 ▲가축 전염병 예방법 등 관련 법규 개정 ▲살처분 가축 매몰지에 대한 철처한 환경오염 관리 등의 사항을 강력히 건의키로 했다.

축산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이번 구제역 사건으로 뭇매를 맞은 곳은 또 있다. 바로 우리나라 축산업계이다. 문제가 제기된 가장 큰 이유는 가축 간 전염의 위험성을 높이는 벌집형 사육방식에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닭 한 마리를 키우는 평균 면적은 A4용지 3분의 2, 새끼돼지 1마리의 공간은 A4용지 2장 크기다. 어미 돼지들은 쇠파이프로 짠 케이지에 꼼짝도 못하고 갇혀서 새끼를 낳는 출산기계처럼 생활하고 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비좁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몰아 기르다 보니, 축사 환경은 최악이다. 축사 바닥에서는 가축들의 분변으로 인한 악취와 가스가 올라오고 축사 내의 온도도 높다. 이런 환경에서 운동을 하지 못한 가축들은 질환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 전염병이 한 번 돌면 떼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농가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점차적일지라도 꾸준한 축산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구제역이 남긴 사회적 메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구제역은 ‘인재(人災)’이며 그러므로 예방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음에도 예방, 예방이 최선이다. 어리석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그만 두고 바이러스 기초연구, 방역체계, 우리나라 축산시스템 등에 꾸준히 점검해 나가야 한다.

하진경 수습기자/계명
<hajinkyeong@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