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이야기 치료를 이야기 하다

수많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현대의학이지만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은 의학만의 영역이 아니다. 시 치료, 미술 치료, 음악 치료와 같은 대안 치료법이 많이 제시되는 요즘,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분야는 ‘이야기’ 치료. 경북대학교 문학치료학과에서 이야기치료를 가르치고 있는 권희영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Q. 이야기 치료란 무엇인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이야기 치료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어요. 왜냐하면 그 패러다임이 기존 상담 이론과 굉장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담자가 상담자를 찾아왔을 때 자기 삶이나 문제에 대해 얘기할 거 아니에요. 이 때 내담자가 얘기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런 방식에 집중을 하는 것이 이야기 치료입니다.
Q. 보통 ‘이야기’라고 하면 동화를 상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이야기 치료를 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까 이야기 치료에 대해 관심도 많지만, 오해도 많았어요. ‘이야기’라는 단어 자체가 중의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내담자에게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읽게 하고, 해석하게 하는 것은 독서 치료에 가까운데, 이야기 치료를 그런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사실 이야기 치료는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고, 현재 유럽 쪽에서 호응을 많이 얻고 있는 편이에요.

Q. 그렇군요. 그렇다면 치료 이름이 왜 ‘이야기 치료’인건가요?
아까 소개할 때 잠깐 언급했지만, 이야기 자체에 집중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상담 이론 같은 경우에는 인간의 성격 구조나 인간관에 대한 이론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론에 근거해서 내담자의 성격구조나 심리상태를 평가하고 분석하는데, 이야기 치료에서는 그런 이론이 아니라 내담자가 말해주는 이야기자체가 가장 중요한 소스가 됩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담자가 사건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거죠. 그래서 이야기 치료입니다.

Q. 내담자의 이야기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만약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데, 내가 그 사건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을 하면 나는 행복한 겁니다. 반면에 내가 그 사건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나는 불행해집니다. 이렇게 불행해진 사람들이 내담자가 되어 찾아 왔을 때, 그 사람들이 그 사건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야기 치료입니다.

Q. 그렇지만 그 사건 자체가 너무 불행해서 내가 힘들어질 수도 있지 않나요?
이야기 치료에서는 모든 사건에는 양면성(긍정, 부정)이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이야기 치료에서는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 문제가 생긴다기보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문제라고 해석하는 것은 내가 그 사건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Q. 그럼 방금 말씀하신 ‘강화’시킨다는 것이 뭐죠?
내가 그 사건에 특별히 집중하고 큰 의미를 부여해서, 그 사건이 나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강화에요. 보통 문제가 생겼다고 느끼면 이 사건과 비슷한 과거의 다른 사건들을 계속해서 수집하고 연결하게 됩니다. 이렇게 문제를 더욱 확대시키다 결국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하게 되죠.
예를 들어, 어떤 일들 때문에 힘들고 우울한 경우, 내가 그 사건에 대해 우울하다고 의미를 부여한 겁니다. 그렇게 우울하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에 계속 빠져있으면 우울한 것이 나의 삶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돼요.
‘문제’라는 건 어떤 사건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인데, 사람들은 내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때, 이야기 치료에서는 그 사건과 나의 관계를 파악하고, 나와 사건을 따로 떼어놓고서 그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파악하는 데 중요성을 둡니다.

Q. 그러니까 ‘문제’가 사실은 내담자의 ‘해석’일 뿐이라는 거네요. 심리학과는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심리학에서는 내담자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게 진짜 문제인지 의문을 제기 하기보다는 문제에 집중해서 그 사람 내면을 들여다보잖아요. 이를테면 과거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그것이 성격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쳐서 이런 문제를 발생시켰는지 말이에요. 그런 방식이 익숙했는데 문제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건 굉장히 새롭습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문제가 문제다.” 이야기 치료에서는 가장 유명한 문장이에요.
문제와 사람을 별개로 생각하는 것은 이야기 치료가 내담자가 가져온 문제를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그 사람 인격과 성격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던 관점을 바꾸어주는 것입니다.
이야기 치료는 분석하는 것이 정형화된 틀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거부합니다. 본인만의 이유가 있을 텐데도 심리학 상담자는 이론을 기준으로 해석을 하죠. 물론 그것이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잖아요. 사람마다, 종교마다, 문화마다 다 다르니까요. 그걸 다 고려해서 전문가인 상담가가 내담자의 위치에서 똑같이 삶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치료를 할 때, 내담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고 권유하는 식인가요?
내가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게 아니에요. 우선 내담자와 같은 관점을 가짐으로써, 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바라보는지 파악합니다. 그런 뒤 그 사건을 내담자와 분리시켜 내담자가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하거나, 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도록 계속 질문을 던져요. 그렇게 해서 내담자 스스로 그 의미나 다른 해석의 방향을 찾도록 해줍니다. 만약 내가 어떤 식으로 생각해보라고 권유하거나 지시하면, 그건 내담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내담자가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어 결국 그 사건을 문제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유도합니다.

Q. 관점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어떤 큰 일이 생겼을 때,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보다는 이게 정말 힘든 일인가하는 의문을 가져보는 것이 좋아요. ‘왜 나는 이렇게 생각할까?’ 이런 식으로 자꾸 ‘왜?’라고 질문하다보면 사건을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까요.

Q.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상은 사실 50-60대 인생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모습입니다. 그런데 다들 조급하게 그때 모습을 지금 빨리 이루길 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차근차근 발전해서 마지막에 그 모습을 갖추면 되는 건데 지금부터 그 목표의 그림자라도 보길 원하는 거죠. 그러니까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뭘 해내야겠다는 초조함을 느낄 필요가 없어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느냐가 중요하지 그 모습을 지금 꼭 갖출 필요는 없잖아요. 인생은 기니까 다 할 수 있어요.

김다혜 기자/대구가톨릭
<anthocy@e-mednews.com>

'80호(2011.04.11) > 문화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실에 한 걸음 더  (0) 2011.05.06
장하준과 함께 반추해보는 신자유주의  (0) 2011.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