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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한 걸음 더

80호(2011.04.11)/문화생활 2011. 5. 6. 22:19 Posted by mednews

진실에 한 걸음 더

‘장자연 리스트’를 통해 돌아보는 기자 정신

"저는 힘없고 나약한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일주일전 장자연씨가 2월 28일 전 매니저 유장호 씨에게 남긴 글이다. 그녀를 둘러싼 연예계비리에 대한 진술서와, 유장호씨에게 심경을 토로한 편지였지만 사실상 이 글은 29살 젊은 여배우의 유서가 되고 말았다.

2009년 3월 7일.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장씨의 죽음이 보도되고 나서, 경찰은 다른 연예인들의 죽음처럼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종결지으려했다. 하지만 장씨의 유서가 KBS에 의해 공개되고 나자 여론이 폭발했다. 장씨의 유서에는 장씨가 소속사 대표 김종승씨로부터 강요받아야했던 술 접대, 성 접대 그리고 김대표가 그녀에게 가했던 폭행들이 낱낱이 적혀있었다.

경찰은 재수사에 나섰다. 41명의 대규모 수사팀, 27곳 압수 수색, 통화 내역 14만여 건 조사, 들춰본 계좌와 신용카드 조회 건수도 955건, 참고인도 총 118명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조사는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였다. 핵심은 향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아주 이상한 수사였다. 장씨가 성 접대를 했다고 지목한 일간지 사장에 대한 경찰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뜬금없게도 사건을 보도한 취재기자와 기자를 취재장소로 데려다준 조카, 조카의 친구까지 불러서 조사했다. 당시 경기경찰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워낙 힘이 있는 분이어서 성 접대 의혹만으로 쉽게 부를 수만은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유력 인사를 포함한 수사 대상자의 신원과 혐의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해놓고는 나중에는 "실수였다"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이 문건에 등장하는 유력 언론사의 전 대표로부터 두 차례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여배우의 죽음 앞엔 ‘성역 없는 수사’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경찰의 수사는 같은 시기 언론을 뒤덮었던 ‘박연차 리스트’와는 판연히 다른 자세였다. 장자연 리스트와 박연차 리스트는 사회고위층이라 불리는 유력인사가 불법적인 상납을 받았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였다. 하지만 박연차 리스트를 조사하는 검찰은 박근혜계 인사와 친노인사들을 열심히 물고 늘어지고, 장자연 리스트를 조사하는 경찰은 잘 차려준 밥상마저 물리려했다. 검찰과 경찰이 보좌해주는 권력실세가 누구인지 잘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이렇듯 ‘장자연 리스트’의 수사엔 진척이 없었고, ‘박연차 리스트’라는 거대 정관계 스캔들과 맞물려 여론의 추진력도 얻을 수 없었다. 3월에 시작한 경찰의 수사는 7월 10일 마무리되었지만 성접대에 대한 혐의는 사라진 채 김종승와 유장호씨만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되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 처리되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등 술자리에 참석했다고 문건에 언급된 10여 명의 이름 또한 모두 빠져있었다. 통상 유언은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인데,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장씨가 죽음으로 말하려고 했던 술 접대·성 접대 의혹은 아예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이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2011년 3월 6일 SBS가 ‘장자연 편지’를 입수했다는 단독 보도를 하면서 사건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SBS가 입수한 편지는 2009년 스포츠 칸에서 공개한 ‘왕첸첸(편지를 보유했던 전씨의 가명)의 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으나 공인된 전문가가 ‘장씨의 필적임을 확인했다’는 것이 전과 다른 점이었다. 하지만 3월 16일 국과수는 이러한 SBS의 주장을 뒤엎고 이 편지가 장자연씨의 필적이 아님을 발표했다.

국과수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장씨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추잡함은 분명 있었다. SBS의 보도가 있고난 3월 9일 배우 문성근 씨는 조선일보사 앞에서 ‘정말 미안합니다. 장자연님’이라는 팻말을 들고 조용히 1인 시위를 했다. 장씨와의 친분은 없어도 함께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종사자로서, 그러한 추잡한 관행들이 아직도 간간히 지속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문성근씨는 장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술접대와 성접대라는 상납의 대상이 된 언론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언론 본연의 의무는 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파헤쳐 더불어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이 정치 권력, 즉 로비의 대상이 되었단 말이죠. 많은 시민들은 언론사가 관계가 되면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권력의 감시자가 되어야할 언론이 오히려 권력실세가 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권력의 비호자가 된 현실. 감시자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력의 비호자가 된 것은 비단 언론 뿐 만이 아니다. 장자연 리스트를 사실상 방관했던 경찰과 검찰도 마찬가지 이다. ‘힘있는 자는 보호받아야한다’는 이상한 명제 속에, 스타가 되지 못한 힘없는 여배우는 사후에도 명예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인가?

장씨의 명예는 공식적으로 회복되지 못했지만 그녀의 죽음에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남긴 유서를 통해서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장자연씨의 유서를 공개한 KBS와 장자연씨가 쓴 것이라 추정되는 편지를 공개한 SBS는,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권력이 감추는 진실을 파헤치는 이들의 노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것과 비슷한지도 모른다. 아무리 계란을 던진다 한들, 이 바위는 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흔적은 남는다. 이것이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진실에 계속해서 다가가야 하는 이유이다.

박민정 기자/성균관
<cindy29@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