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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새 생명의 선물, 기증


지난 7월 12일,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지 6일 만에 뇌사 상태에 빠진 주대철(17) 군. 주 군의 가족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지만, 충분한 대화를 나눈 끝에 주 군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심장, 간, 신장 2개, 각막 2개를 기증하게 되었고 이로써 새 삶을 선물 받은 사람은 무려 6명.

 

신장 이식 릴레이의 첫 선두주자로 나선 왕희광(44) 목사. 왕 목사의 신장은 오랫동안 신부전증을 앓아왔던 박 모씨(54)에게 이식되었고 그 바톤을 이어 받아 박 씨의 아들 최 모씨 또한 다른 환자에게 신장을 이식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최 씨의 후배가 그 릴레이를 이어 나가 이식 의사를 밝혔다.
 

뉴스나 신문에서 우리는 훈훈한 장기기증과 이식의 성공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장기를 살아서든 고인이 되어서든 다른 사람에게 기증한다는 것은 이처럼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담으로 넘기고 말, 어떤 대단한 용기를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일 또한 아니다. ‘장기이식, 장기기증’. 많이 들어봤지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을,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사랑의 실천.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장기기증,
꼭 내가 해야 하나?

치료가 불가능한 병증 말기의 환자들 가운데서는 장기를 이식 받으면 회복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대의학에서 인공장기를 개발하고 실용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사람의 장기를 대체할 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생명에 꼭 필요하지 않거나 이 세상을 떠날 때 자신에게는 필요 없어진 장기가 죽어가는 여러 생명을 구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의료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또 하나, 의대생이라면 누구나 접하게 되는 해부학 실습만 생각하더라도, 어찌 보면 우리는 기증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깊게 생각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의학의 발전을 위해 한 몸을 기꺼이 기증하여 희생하신 고인으로부터 직접적인 도움을 받으며 공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약 절차의 간소화,
제도적 보완,
그리고 꾸준한 홍보

스페인, 프랑스의 뇌사자 장기 기증율은 각각 100명 당 34.3명, 25.8명으로 우리나라의 약 10배에 달한다. 장기 기증율이 높은 나라는 공통적으로 기증 서약 절차가 간단하다. 캐나다에서는 건강보험증에 서명만 하면 되고, 영국, 미국 등에서는 운전면허증을 교부받을 때 기증 의사를 표시하도록 한다. 또한 스페인이나 프랑스,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의 경우를 살펴보면, ‘옵트-아웃’이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기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기증의 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특히 뇌사자 장기 기증 1위인 스페인의 경우에는 전문적인 코디네이터를 양성, 각 병원에 1명씩은 꼭 배치하여 치료가 한계에 부딪쳤을 때나 환자가 뇌사 상태 판정을 받았을 시 곧바로 설득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공모전을 통한 각 국의 수준 높고 기발한 광고들도 한 몫을 한다. 무슬림의 심장을 가진 힌두인, 백인의 각막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흑인을 나타내는 광고(인도), 죽기 직전에 저토록 다급하게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장기기증 서약이라는 광고(벨기에), 그리고 늙어서가 아닌 젊을 때 기증을 결심하는 것의 중요성을 나타낸 광고(영국) 등 각 나라마다 장기기증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의식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공모전을 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약 2년 동안 각막 기증과 이식을 다루어 방송되었던 ‘눈을 떠요’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장기기증과 그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과 장기기증 의사를 밝히고 실천하신 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기점으로 각각 2005년, 2009년에 장기기증 서약 등록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미디어와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처럼 최근 서약자는 크게 증가한 반면, 실제 기증자는 오히려 감소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 이유로는 우리나라의 뇌사 판정 절차가 까다로워서 뇌사 상태의 사망자가 많지 않고, 현 법률상으로는 본인이 기증 의사를 밝혔더라도 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실제 기증 절차를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가족 2인 동의’에서 ‘서면상 1인 동의’로 그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이 지난 5월 통과되었고, 각 시 의회에서도 장기기증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조례를 통과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 장기이식 대기자로 등록된 사람만 1만 8000천여 명이 넘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실제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부모가 주신 몸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孝)’라 여겨왔다.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의 몸에서 장기를 떼어 내는 것을 무척 꺼려하는 것이다. 기증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인식 때문에 기증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
반면, 기증률이 높은 서양인의 기본적 인식은 육체는 ‘환원주의적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 이후의 장기 기증에 거부감이 적다. 인간의 몸은 신이 주신 것이므로 자신의 사적 소유로 여기지 않는 기독교 문화도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생명의 나눔을 원하신다면

크게 2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사랑의장기기증본부로 전화하여 절차를 밟는다면 열흘 이내에 자택에 우편으로 서약서가 도착할 것이고, 그것을 작성하여 가까운 우체통에 넣어 반송하면 된다. 그리고 같이 배부된 스티커는 신분증에 부착하여야 한다. 이보다 더 간단한 두 번째 방법은 인터넷 (www.donor.or.kr)에 접속하여 회원가입 후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약을 했더라도 실제 장기 기증 시에는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므로, 가족이나 친척에게 평소에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매년 9월 9일, 장기 기증의 날이라고 한다. 장기 기증으로 9명의 생명을 9(求)하자는 뜻이라고 하니,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나 사탕을 주고받는 기념일도 좋지만 더 넓고 깊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념일인 이 날, 가족, 친구, 연인의 손을 잡고 함께 장기 기증을 서약하는 것은 어떨는지.

하진경 기자/계명
<jinkyeong@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