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된 한의약 육성법,
의료계-한의료계 분쟁소지 제공
지난 7월 14일 한의약 육성법 개정안이 국회회의의 의결을 거쳐 최종 공포되었다. 한의약 육성법의 변화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현행법 :: 1. “한의약”이라 함은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이하 “한방의료”라 한다)와 한약사(韓藥事)를 말한다.
■ 개정안 :: 1. “한의약”이라 함은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 및 한약사를 말한다.
개정안에는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 및 한약사’라는 어구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이지만, 이 작은 돌멩이 하나가 의료계에 퍼트릴 파장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된 배경을 한의약 육성을 위한 정부의지의 결과로 설명했다. 한의약의 범위를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까지 확대함으로써 해당 산업의 발전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고,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한의약 분야를 신규유망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한의약 육성법의 본래 목표에도 부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정부는 지난 5년간 1차 한의약 육성계획에 4천억원을 투자했고 다가올 5년간 1조 원을 재투자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노벨상 집중육성 지원금액인 200억을 훌쩍 뛰어넘는 매머드급 투자계획이다.
화답하는 한의료계와
반발하는 의료계사이
극명한 대비이뤄
이러한 법률 개정에 대해 한의료계는 모처럼의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익명의 한 한의대생은 "개정 결과가 네거티브 언론 전략의 결실이며, 로컬 현실 개선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았다. 한편 김정곤 대한한의사협회장은 예상되는 의료계의 비난에 대해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넘보고 있다고 의료계가 주장하지만, 이번 법안은 한의학적 근거로 개발된 의료기기나 약제를 사용하기 위해 개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의사는 이미 한의학을 기초로 현대과학을 응용, 개발한 전자침술, 레이저침 등과 맥진기, 사상체질 진단기를 비롯한 여러 진단기기를 진료에 활용해 왔다고 설명하면서, 이번 개정 결과로 한의약의 현대적 응용과 신약 개발, 탕약의 제형 변화 등이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여전히 한의약 육성법에 대해 명백한 반대의사를 비추고 있다. 지난 6월 16일 한의약 육성법 폐기를 위한 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의 일인시위가 있었고 21일 신민석 의협 상근 부회장도 시위에 뒤따랐다. ‘한의약육성법’은 두 집단 간의 갈등만 불러올 뿐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며, 의료 일원화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것이므로 한의약 육성법은 그 뒤에 추진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 시위내용의 골자였다.
의료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의사들의 현대의료장비 사용 가능성이다. 의료법상 한의사는 혈액검사기, 초음파진단기, CT, MRI 등의 장비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많은 한의사들이 현대의료장비를 불법 사용해오고 있다. (표 참조)
겉으로는 개정안의 목표가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아니라 하지만, 막상 한의사들이 CT나 MRI등의 의료기기들을 사용하다 적발되었을 때 이번 개정안이 빠져나갈 구멍 역할을 하지 않겠냐는 문제제기다. 실제로 의료계의 우려에 대해 전면부정하고 나선 김정곤 대한한의사협회장은 한의약 육성법 통과 후 한의신문에 올린 인사말에서 “X-ray, 초음파, CT, MRI 등과 같은 현대 의료기기를 한의학적 치료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법률인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과 의료법, 약사법 개정 추진에도 박차를 가하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그전의 언행과 상반되는, 노골적인 현대의료기기 사용의지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한의사들의 의료기술사용권을 둘러싼 법정공방 또한 새 기류를 타고 있다. 지난 6월 한의사들의 초음파진단기 사용권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초음파진단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한의사들이 헌법소원심판 청구에 나선 것이다. 한의사가 진단기기 사용방법을 교육 받아 알고 있고, 한방이론에 근거해 (초음파)기기를 사용하면 적법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또 6월 28일 보건복지부의 한의약정책관이 IPL(Intense Pulsed Light, 피부 표피층에 빛을 방출함으로써 주근깨와 잡티, 안면홍조 등을 개선시켜주는 치료방법)이 한방의료행위라고 발언함으로 인해 대한 피부과 학회에 비상이 걸렸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한의사 IPL 의료법위반소송’ 공판에서 이 같은 정부 관계자의 발언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싹을 튼 것이다.
이 외에도 지난 2006년 한의원의 CT기기 사용문제를 두고 법정공방까지 간 사례를 포함해서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권을 둘러싼 논란이 오랜시간 진행되온 만큼, 이번 개정안을 좌시해서는 안된다는 의료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협,
“한의사들의 월권행위에
강력히 대응하겠다.”
결국 지난달 27일 대한의사협회는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한의약육성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그에 앞서 개정 방향과 추진 계획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알려 줄 것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6월 30일 열린 의협 상임이사회에서는 “최근 한의약육성법 개정과 IMS 및 IPL 소송·초음파기기 관련 헌법소원 등 입법과 소송을 통한 한방의 의료영역 침범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강력하고 종합적인 대응을 위해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한방대책특별위원회·IMS특별대책위원회를 통합, (가칭)범한방 특별대책위원회를 신설키로 의견을 모으는 등 대응책을 마련중에 있다.
한동석 의협 대변인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한의약을 육성 발전시키겠다는 발상은 국민 건강과 재산을 담보로 특정 직역에 이익을 주겠다는 의도로밖엔 비쳐지지 않는다"며 "한의약육성발전계획이 얼마나 많은 국민 혈세를 축내고 있는지 국민에게 고발하고, 비과학을 용인하고 있는 이원화된 의료체계를 바로잡는 데 역량을 경주하겠다”고 말했다.
전영준 기자/중앙
<yjipnida@e-med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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