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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다시 이슈화된 이유는?

영리병원, 각 집단의 이윤 확보를 위한 각축장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20주년을 맞았던 2007년, 이 회장은 한국의 제조업 위기를 선언하며, ‘샌드위치 위기론’을 제시했다. 한국 제품은 품질에서는 일본에 뒤쳐지고 가격에서는 중국에 밀려 국제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이 회장이 제시한 방향은 그동안 키워왔던 제조업이 아닌, 금융과 서비스 산업이었다. 그리고 지난 2월 삼성은 세계적인 바이오제약 업체인 미국의 ‘퀸 타일즈’와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이들 합작사가 만들 바이오위탁생산시설은 바로 인천 송도에 들어설 예정이다.

정부 또한 제조업 위기를 지적하는 삼성에 목소리를 같이 했다. 2005년 1월, 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교육과 의료 등 고도 소비사회가 요구하는 서비스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전략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서비스산업 관계 장관회의’에서 영리병원 허용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의료 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이명박 정부에 이르자 훨씬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10월까지 추진 계획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계획안은 2007년 2월 삼성 경제 연구소에서 내놓은 ‘의료서비스 산업 고도화 과제’와 매우 유사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의 영향으로 의료 민영화에 경각심이 높았던 여론은 서명운동과 촛불 시위로 계획안 추진 반대 의사를 강력하게 표출했다. 이에 정부의 계획은 무산되었고 이 대통령은 두 차례 사과문을 통해 ‘의료 민영화는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론이 잠잠해진 틈을 타 정부는 2009년 초 다시 ‘미래 한국을 이끌 신 성장 동력’에 ‘글로벌 헬스 케어’ 라는 변형된 이름으로 개별 법안을 추진시켰다. 네 달 뒤,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민관 합동회의’에서는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 여부, 의료채권 발행, 의료기관 인수합병 근거 마련, 건강관리서비스의 산업화 등이 논의됐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인 송도와 제주특별자치도에 도입 예정인 영리병원은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의 본격적인 시발탄이 되고 있다.
 
정부가 이토록 강력하게 영리병원을 추진하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경제 성장에 있다. 영리병원을 통해 산업 부가가치와 GDP 향상이라는 경제 성장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는 ‘영리병원 도입 배경과 대응 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1년에 국민건강보험 총 진료비가 40조 원인데, 의료산업이 1년에 25% 성장하면 10조 원의 추가 매출이 발생해 GDP 1% 추가 성장으로 반영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은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이루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병원이 시장 논리 하에 놓이게 되면 의료 행위는 사고파는 거래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수익이 낮은 보험진료는 2류 진료로 전락하게 되고, 병원이 권장하고 투자하는 일반진료가 주 진료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국민들에게 고액의 진료비로 돌아오게 된다. 영리병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바도 바로 이 같은 의료비 폭등이다. 실제로 외국 324개 병원을 연구한 결과 영리병원 의료비가 비영리병원보다 19% 높았고, 메디 케어를 비교한 대표적 연구에서도 영리병원 의료비가 16.5% 높았다. 뿐만 아니라 영리병원의 운영을 통해 매출이 성장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수혜는 국민이 아닌 대기업에 가장 먼저 돌아간다. 의료 민영화 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가장 특혜를 받게 되는 것이 삼성이다. 현재 송도에 입성중인 삼성국제병원(삼성증권·삼성물산) 외에도 각 곳에 포진해 있는 삼성 계열사들은 민간보험(삼성생명), 원격진료 정보망 구성(삼성SDS), 원격진료 단말기(삼성전자) 등 영리병원의 귀추를 향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SK, 현대 등 다른 대기업들 또한 헬스 케어 사업에 뛰어듦에 따라 정부의 법안은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강한 추진력을 얻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의 사과문으로 잠잠하던 영리병원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시 이슈화 시킨 것은 ‘보수 언론’이다. 2004년 참여 정부의 정책에 <조선일보>가 의료 관광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중앙일보>가 영리병원의 필요성에 대해서 본격적인 물꼬를 텄다. <중앙일보>는 지난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메디컬 코리아 해외서 배운다’라는 제목으로 영리병원 허용을 옹호하는 기획기사를 매일 1면에 배치했다. 이 기획기사는 영리병원의 필요성과 IT·BT 산업의 융합 그리고 원격진료와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의 시급한 통과를 핵심으로 한 내용이었다. 언론의 보도에 화답이라도 하듯 같은 달 19일 청와대는 “제주도와 송도 영리병원의 차질 없는 실시”를 지시 했다.
이 같은 언론의 영리병원 옹호 기사에 대하여 각 시민 단체들은 “삼성의 홍보지 노릇을 하고 있다.”며 <조선일보>에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언론의 영리병원 지지에는 기업뿐만 아니라 종합편성채널사업자들의 이해관계도 얽혀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제주도 특별법’ 개정안에는 제주도에 영리병원 설립과 함께 방송에 의료 광고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업자들은 영리병원 허용을 통해 전문의약품·의료기관 광고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광고시장에서 병원이나 전문의약품 광고 분야는 마지막 블루오션이 아닐 수 없다.
중, 대형 병원들의 의료시장 변화 욕구도 영리병원 도입에 한 축이 되고 있다. 기업 병원의 도입 이후, 기업 병원에 대한 제도적 규제나 병원의 수가 인상도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환자들마저 재벌 병원으로 향하자 일반 병원은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기업 운영 형 병원의 경우 기업의 자본으로 병원의 시설, 장비 투자가 자유로운 데에 반해 일반 병원에서는 국민건강보험으로 책정되는 낮은 수가로 투자를 위한 자본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런 일반 병원들에게 영리병원은 주식과 채권 발행을 통해 자본 확충과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구미가 당기는 대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병원의 요구를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영리병원 도입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료 공급 시장이 자유 경쟁화 될 경우 병원들은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하여 보다 안정적인 자본 확보를 요구하게 되는데, 현재 시행되고 있는 당연지정제로는 그런 요구에 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병원의 눈은 자연히 민간 의료 보험으로 돌아가게 된다. 즉, 병원의 자본 확충을 위해서는 영리병원 도입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 폐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또한 필수적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의료 산업화’, ‘의료관광 활성화’라는 명분하에 추진된 의료민영화를 위한 핵심정책이고, 이명박 정부에서 강력한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각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힌 의료 민영화 사업의 시작에 현재 인천 송도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시험대에 올려져있다. 여, 야당의 치열한 공방으로 매 임시 국회마다 흐지부지 되었던 영리병원 도입. 오는 9월 정기 국회에서 논의될 도입 방향을 각 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고유라 기자/서남
<youzr-_-a@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