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秀)상한 의대생 2회
시간이 흐를수록 homogeneous(균질, 동일)해져 가는 우리들. 하지만 남다른 생각으로 자신의 끼와 재능을 펼치는 heterogeneous한 의대생들도 강의실에 존재합니다. 2010년, 의대생 신문이 6회에 걸쳐 빼어난(秀) 재능과 남다른 생각을 가진 그들을 지면에 소개합니다. 이름하여 수(秀)상한 의대생! 그들의 생각의 좌표를 함께 따라가 봅시다.
의대생, 음악으로 소통하다
2집 뮤지션 미즐리, 의대생 이준형의 이야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아시아드 경기장에 조금은 특이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양방언이 작곡한 크로스오버 피아노 협주곡 <프론티어frontier>였다. 재일교포 출신인 음악인 양방언은 니혼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한 의사로,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활약하는 크로스오버 작곡가이다. 음악과 의학, 두 가지를 공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양방언씨처럼 큰 간극이 존재하는 두 분야에 도전하는 의대생이 있다. 작곡가 겸 프로듀서 미즐리(Misely)이다. 중앙의대 본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준형씨는 미즐리라는 예명으로 2장의 정규 앨범과 1장의 싱글 앨범을 낸 실력파 뮤지션이다. 봄의 문턱에서 뮤지션 이준형씨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Misely, 음악을 시작하다
미즐리는 이준형씨가 사용하는 예명으로 Misty를 어감이 좋게 변형한 것이다. 중학교 시절, 인터넷 음악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지은 닉네임이 미즐리라고 한다. 미즐리라는 이름을 그의 처음 곡에 새기면서 그의 음악적 인생도 시작되었다.
이준형씨가 음악을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이다. 컴퓨터를 좋아해서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만지다가 우연히 접한 음악프로그램이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이 프로그램 상에서 나타나는 것이 신기했어요. 한 음, 두 음 컴퓨터 화면의 오선을 채우면서 음악을 통해 나를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때부터 저의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표현하기 시작했나 봐요.”
음악에 빠져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실용음악을 전공하던 이준형씨는 갑자기 진로를 선회하게 된다. 전문 음악가의 길을 버리고 의대에 진학한 것이다. 자신도 진리라고 믿었던 음악의 길을 잠시 접어두고 의대에 진학한 이유는 무엇일까? “점점 음악을 하면 할수록 음악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많은 프로듀서들에게 현재 음악 시장에는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프로듀서들의 현실적 조언 때문에 다시 수능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하던 만큼만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운 좋게 의대까지 오게 되었네요.”
Misely, 앨범을 내다
남들처럼 예과를 보내던 준형씨에게 새로운 목표가 주어졌다. 아마추어 음악 사이트에 한, 두 곡씩 올리던 자작곡을 모아 앨범을 발매할 결심을 준형씨 스스로 한 것 이다. “예과 때, 놀면서 취미 삼아서 다른 음악 동호회나 아마추어 음악인을 위해 작곡해주면서 적당히 알바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음악적으로 도태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무서웠죠. 음악에게 잊혀진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그때부터 제 자신을 재정비하기 위해 1집 앨범 발매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는 2007년 1집, 2009년 싱글 앨범을 냈다. 그의 완벽주의 성격 때문일까? 두 장의 음반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준형씨 스스로 모든 작업을 다 수행했다고 한다. “보통 작곡가들은 앨범을 제작할 때, 일을 분담해서 합니다. 하지만 저는 첫 앨범이어서 완벽하게 저의 색깔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저 스스로 작곡, 믹싱, 마스터링 등 많은 과정을 수행했습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제 음악을 담았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미즐리 1집은 우리가 듣기엔 조금은 낯선 일렉트로니카로 구성되었다. 거의 모든 곡이 보컬이 없는 미디음악이었다. “1집 앨범이 가장 미즐리스럽다고 해야겠죠. 그래서 사실 대중이 듣기에는 많이 낯설었을 겁니다.”
Misely, 다시 공부하다
본과에 올라가면서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도 조금 줄었다. 여유 시간이 없는 빠듯한 본과 1학년 생활을 하면서, 그는 음악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자꾸 머리 속에 떠오르는 악상을 밀어내고 의학 공부를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힘들었던 해부학기가 끝나자마자, 그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음악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장 기다렸던 순간이었어요. 음악을 한동안 못해서 많이 힘든 시기였어요. 공부도 잘 안되고, 그렇다고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방학 동안 원 없이 음악만 했죠.”
이런 음악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을까? 그는 2009년 성공적으로 디지털 싱글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번 앨범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미즐리스러운 앨범이었지만, 조금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음악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던 그의 음악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제 음악이 알려지게 된 건, 전 씨야의 멤버, 남규리씨 덕분이에요. 제 곡 <Grazie Il Mattino>를 남규리씨가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 음악으로 등록하면서 알려지게 되었어요. 남규리씨와 아무런 친분도 없는데, 제 곡을 자신의 미니홈피에 등록한 것이 무척 신기했어요.”
Misely, 사람과 이야기하다
의대 생활 5년 째, 대학 생활을 하면서 준형씨는 사람과의 소통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의대 밴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여럿이서 하는 음악을 보았다. 미즐리의 음악에서는 주연이었던 준형씨가 밴드 내에서는 주변 세션으로서 역할을 하면서 여럿이 만들어가는 음악을 배웠다고 한다. 이런 느낌을 살려서 준형씨는 2집 앨범을 제작했다고 한다. “이번 앨범은 제 음악 세계에서는 터닝 포인트가 되는 앨범입니다. 그 동안 제 음악적 욕심 때문에 대중에게 낯선 음악을 들려주었지만, 이번 2집 앨범은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자라나는 앨범이었으면 해요”
2010년 3월 발매된 미즐리 2집 <fast& slow>에는 유독 보컬 곡이 많다.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준형씨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되도록 많은 분들이 들어주시고, 저에게 다양한 피드백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타이틀곡인 <DADA Dance>가 보컬곡인 이유도, 가사를 통해 미즐리의 음악에 조금 더 쉽게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그 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냈는데, 이젠 세상에서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하고 싶어요.”
끝으로 이준형씨에게 의대생으로서 음악인의 삶을 물어보았다. “의대생에게 음악은 하나의 탈출구에요. 각박한 의대 사회에서 현실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유일한 출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음악은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입구이기도 합니다. 저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음악을 통한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 ‘의대생 이준형’이 아닌 뮤지션 ‘Misely’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뮤지션 ‘Misely’, 힘든 시기에도 음악의 끈을 놓치 않은 그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그의 음악적 지평이 이번 2집 앨범을 통해 더욱 넓어지길 기대해본다.
※ 미즐리 미니홈피: cyworld.com/misely
취재: 정환보 기자, 문지현 수습기자
정리: 정환보 기자/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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