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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누는 기쁨, 배우고 돌아왔죠”

국제협력의사, 올해로 16년째 아름다운 나눔

 올해 초 아이티에서는 강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습니다. 한 어린이는 두개골이 드러날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었는데 열흘 가량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드러난 사례 이외에도 수많은 고귀한 생명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었을 겁니다.
 한편 같은 시각 한국의 한 군부대, 대위 계급장을 단 군의관 K씨는 라면을 끓여먹으며 만화책을 보고 있습니다. 힘들게 연마한 자신의 의료 지식과 술기를 정말 필요한 순간 필요한 곳에서 발휘하지 못하고, 부대에 발이 묶인 채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이 군의관은 바로 우리의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한국국제협력단 KOICA의 ‘국제협력의사 제도’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사, 치과의사 등 의료 전문 인력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국가에 파견하여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병역을 대체해 주는 것입니다. 올해로 16회째를 맞는 국제협력의사 제도는 최근 들어서는 비교적 널리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이름조차 생소한 이들이 많습니다. 사업이 시행된 초기에는 선발 인원 자체가 한 해에 채 열 명이 안 되는 소수였을 뿐만 아니라 현지 사정의 불확실성이나 프로그램 운영의 정비 등을 이유로 KOICA 측에서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제협력의사, 어떤 사람이 갈 수 있나요
 의사의 경우 전문의(내과, 외과, 흉부, 마취, 소아, 정형, 가정의학과)만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1차 서류전형과 2차 면접을 거쳐 선발되는데, 그 구체적인 배점요소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협력의사를 다녀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석박사 학위 등 학력이 높을수록, 미혼보다는 기혼과 같은 안정적인 생활조건을 갖추었을수록, 영어 인터뷰나 봉사 경력 등에 있어 준비가 철저할수록 역할 수행에 적합하고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춘 것으로 간주하여 선발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경쟁률 역시 KOICA측에서 원칙적으로 밝히지 않아 요즘의 자료는 없지만, 약 10년 전에 외과 전문의 3명 정원에 12명이 지원한 적이 있다고 하니 만만치 않은 경쟁이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국제협력의사의 가치가 더욱 인정되고 요청이 점차 확대되어 요즘은 20~30명 정도로 인원을 확대선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만합니다. 신체검사 등급은 병역 면제에 해당하는 정도로 특별한 경우만 아니라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국제협력의사, 어떤 과정을 거쳐 어디로 가게 되나요
 국제협력의사의 복무기간은 일반 군의관과 마찬가지로 기본 군사교육 기간을 제외하고 36개월입니다. 이 36개월 중 7개월은 국내에서 직무교육을 받고 협력지원 업무를 하면서 보내게 되고, 29개월은 국외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1개월 간 현지 언어를 비롯해 교통, 문화, 지리, 안전 및 복무와 관련된 규정 등 적응 교육과 훈련을 거친 뒤 28개월간 의료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지요.
 국제협력의사는 방글라데시, 페루, 에티오피아, 스리랑카 등 지구 곳곳으로 파견되어 근무하게 됩니다. 대개 한 파견지에 한두 명 정도의 국제협력의사만이 배치되는데, 지역에 따라 지리적, 문화적 특성도 다르고 생활여건도 다르기 때문에 어디로 갈 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경쟁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합니다.

 -국제협력의사,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언청이는 600명 당 한 명 꼴로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발생합니다. 간단한 수술을 통해 삶의 질을 많이 개선할 수 있는, 비교적 흔한 병이지요. 하지만 수많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언청이를 ‘하늘의 저주’라 생각하고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채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성형외과의 영역인 언청이 수술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어요. 대사관에 연락을 취해 언청이 수술과 관련된 책을 구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현지 대학병원 성형외과 교수와 함께 방글라데시를 돌며 수술을 해 주었지요. 나중에는 ‘언청이 입술의 저주를 풀다’라는 제목으로 방글라데시의 가장 유명한 잡지에 1면으로 실리기도 했어요. 떠나기 전에는 후임 협력의사와 현지 의료인에게 언청이 수술에 관련된 지식과 술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제가 떠난 빈자리가 크다면 그것은 제 소임을 제대로 못한 거거든요.”
 외과를 전공한 뒤 KOICA 7기로 방글라데시에 다녀온 박진영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 현지 의료인, 후임 국제협력의사와 함께 수술을 진행 중인 박진영 선생님

 국제협력의사의 역할 중 가장 일차적인 것은 파견지역의 사람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환경은 대체로 열악합니다. 진단이나 치료에 필요한 장비도 부족하고, 현지 의료인의 지식과 기술 역시 미비한 점이 많습니다. 의사의 수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의 전공 분야를 넘어서는 의료행위를 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또 자신이 떠난 뒤에도 그 지역의 의료 수준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지에 나가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현지 의료인들을 교육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네팔의 경우에는 수술 시 집도는 반드시 현지 의사가 하고 파견된 국제협력의사는 보조(assist) 역할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존심의 문제도 있거니와, 그 지역 의료의 발전과 자립을 위해서도 이것이 더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국제협력의사는 파견된 지역마다의 법적 문화적 테두리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생활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국제협력의사는 민간외교관에 준해서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포교나 정치 활동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점은 배우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하니 그 엄격함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문화생활 등 개인적 활동은 특별히 제한되는 바가 없습니다. 또, 파견 후 1년까지는 파견 국가 내에서만 머물러야 하지만, 1년이 지나면 휴가를 이용해서 주변 국가로 여행도 가능합니다.

 -국제협력의사, 예후가 궁금해요
 36개월의 복무기간을 채우고 나면 거기서 끝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동기들 뿐만 아니라 선후배들과도 연락저와 같은 기수에 의사가 8명이 있었는데, 그 중 5명이 교수가 됐어요. 나머지 세 명은 봉사를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녀오면서 나누는 자의 기쁨을 배워 온 거죠.” 박진영 선생님의 말입니다. “8명 모두가 지식이든 능력이든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길을 택한 건 우연은 아닐 거예요. 봉사란 게 그렇잖아요, 주러 가서 받아 온다고…. 교수가 된 것도 그래요. 요즘 교수 하려고 한다고 다 되나요? 국제협력의사 활동을 통해 많이 성장하기도 했고, 병원 측에서도 그 경력을 인정한 거겠죠.”
 의사들을 비롯해 현지인들과 교분을 쌓는 일이 특히 즐거웠다는 박 선생님, 그는 국제협력의사를 마친 지 6년이 지난 지금 나눔의 즐거움을 찾아 또다시 방글라데시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최성욱 기자/울산
<palpitation@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