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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음악이, 음악이 의사에게 속삭이다




음악은 세계의 공용어라고도 한다. TV가 보급되기도 전에 비틀즈에 열광하던 한국 사람들이나, 수십 년이 지나 반대 방향의 전파를 타고 전 세계를 강타한 강남스타일을 생각해보면, 국경도 언어도 넘나드는 음악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대중성에서는 예술의 정점으로 삼을 만하다.

학년이 차오를수록 예체능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의대생에게도 음악은 소중한 동료다. 입시전쟁에서 작은 승전보를 올린 의대생들 각각에게 비록 장르는 다를지라도 얼마나 많은 음악들이 그들과 오랜 시간 함께했을까. 술자리 안주로 삼으면 구성원 전원들이 자신의 고된 시절을 구원해준 영웅들에 대한 간증을 한 트럭씩은 쏟아낼 것이다.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순진한 꿈이 일상에 치여 스러져가도 그 시절에 듣던,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노래를 다시 들으면 무모했던 꿈이 다시 살아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음악은 보통 사람들에게 그렇듯 의사에게도 구원이다. 한편, 개인을 넘어 의사라는 집단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본 의사와 음악의 특별한 관계를 소개한다.


‘Bad case of loving you’


우리에게는 영화 친구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Bad case of loving you'는 2003년 별세한 로버트 팔머의 히트곡이다. 1979년에 발매되어 벌써 35년을 맞는다. 제목은 몰라도 듣고 모르는 사람은 없을 이 노래는 좋아하는 이에 대한 마음 저림을 ’Bad case'로 비유하여 시종일관 Doctor를 찾으며 어떤 약도 자신을 치료할 수 없다는 가사를 담고 있다. 진부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비유로, 이런 컨셉을 가진 노래를 찾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다. 비록 정작 진짜 의사들은 자기 병도 감당 못 하는 경우가 많지만.


Chest compression 

100-120/min. ‘Staying alive’


Bee gees의 히트곡 ‘Staying alive'는 1977년에 발매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30년이 넘은 노래지만 수염 단 호주 친형제들이 흉내도 내기 힘든 고음으로 부르는 디스코는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 곡의 리듬대로 CPR을 수행하면 현대의 흉부압박 기준에 아주 적절하게 맞아 들어간다. 해외의 CPR 교육자료를 시청하면 반드시라고해도 좋을 만큼 이 음악을 언급하고는 한다. 'Staying alive'라는 가사도 응급소생술에 아주 어울리지 않는가? OSCE에서 리듬을 잘 맞추지 못하는 이라도 이 곡을 한번만 들으면 정확한 박자를 찾으리라 자신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CPR 교육에 싸이의 챔피언을 이용하고는 한다고.

   

의학을 등지고 음악에 뛰어든 

천재, ‘윤형주’


세시봉의 일원으로 유명한 윤형주씨는 우리나라 CM송의 제왕이라 할 만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는 ‘손이가요 손이가’의 새우깡,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오 ○데껌’의 껌 광고, 아직도 사용되는 롯데월드의 테마송까지 1,500곡에 달하는 CM송을 제작한 바 있는 포크가수다. ‘별 헤는 밤’의 윤동주의 6촌 동생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얀 손수건, 축제의 노래, 웨딩 케익, 비의 나그네 등의 히트곡을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대중가수지만, 그는 1966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던 의학도였다. 그는 예과과정이 끝날 때인 1968년 송창식과 함께 ‘트윈 폴리오’라는 그룹을 만들어 포크로 한국 가요계를 휩쓸었다. 연세대 의과대학을 자퇴한 뒤 경희대 의과대학으로 전학하였으나 결국 그 곳에서도 중퇴, 의사면허를 취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양 학교 의과대학은 그를 동문으로 대우해주고 있다고. 

사실 의예과에 진학한 것도 아버지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 그를 의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는 국문학과에 진학하여 시인이 되고자 했었고, 그의 아버지 또한 아버지의 5촌 당숙인 윤동주와 같이 시인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점점 활동반경을 넓혀가는 의사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될 만 하다.


재일 한국인 음악가 ‘양방언’


양방언은 1960년 1월 1일생의 재일교포 2세 재일 한국인이다. 제주 출신의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 어머니 아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포함해 모든 형제들이 일본에서 의사를 한 쟁쟁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하던 음악을 포기하고 니혼의과대학에 진학 후 졸업, 마취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동경대 의대로 발령받아 연수를 받던 중 돌연 음악가로 인생을 재시작하게 된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주된 활동은 일본에서 하지만 한중일 세 나라에서 모두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고, 그 또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하여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실제로 아버지의 고향(제주)의 아름다움을 연주한 ‘Prince of Cheju'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고, 서울특별시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으며, 2002 부산아시안게임의 주제곡 ’Frontier'가 그의 작품이다. 당시 한반도를 잠시 휩쓴 곡이라 누구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곡이다.


의사에게 족쇄이자 구원인 음악 


의사에게 도움이 되는 곡도 있고, 의사를 소재로 한 곡도 있으며, 의사 음악가들도 세상에 많다. 쓴웃음을 짓게 하는 것은 대부분의 성공한 의사 출신 음악가들에게 공부를 잘 한다는 것, 의학도로서 발을 들여놨다는 것은 마치 김태희가 서울대 출신인 것처럼 성공의 요인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반대로 족쇄로써 기능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양방언은 음악가로 살기로 했을 때 아버지와 절연했고, 부친이 작고할 때까지 화해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고 한다.

의사에 대한 대우가 점점 하향되고 있는 지금, 다른 길을 모색하는 의사들은 점점 많아지기만 할 것이다. 우리가 그런 선택지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평생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의사에 대한 높은 대우를 인질로 살아갔던 몇몇 과거의 의사들을 생각하면 행운일 것이며, 사람을 살리는 명예로운 일에 대한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우리네 모습을 생각하면 불행일 것이다.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던 프리드리히 니체는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mistake) 삶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가지 않은 길과 앞선 이들이 닦아놓은 명예로운 길 사이에서 평생 고뇌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건 음악은 우리 곁에 다양한 형태로 함께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준형 기자/가천

<bestofzone@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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