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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의 화병

103호/의대의대생 2015. 5. 7. 13:19 Posted by mednews

의대생의 화병



타 전공에 비해 취업걱정도 적고, 입학과 동시에 어느 정도의 생활이 보장되는 의학과라고는 하지만, 스트레스의 정도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적지 않은 듯하다. 학부 때는 엄청난 학습량과 잦은 시험, 선후배 관계등으로 스트레스 받고, 인턴과 레지던트 때는 의사가 되었다는 자부심이나 성취감보다는 자고 싶다는 수면욕에 휩싸여 살기 쉬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주어지는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의대생 개인이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화병 내지는 그에 준하는 분노성 정신질환을 겪을 수 있다. 흔히들 스트레스를 받고 풀 곳이 없을 때 “화병 날 거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화병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화병이란?


화병 또는 울화병은 한국의 문화와 관련되어 한국인에서만 나타나는 질환으로 국제적으로 공인된 문화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 중 하나이다.  화, 분노, 억울함, 우울 등의 감정이 억눌려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지속되어 정신적 증상이나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질환을 일컫는데, 의학적으로 진단기준이 확립되어 있지는 않다.

화병의 증상에는 정신적 증상인 불안, 초조, 가슴 두근거림, 우울, 불면, 짜증, 귀찮음, 놀람, 공황, 임박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신감 저하, 의욕 저하, 흥미 저하 등이 있으며, 신체적 증상으로는 두통, 얼굴 화끈거림, 침침한 눈, 입마름, 피로, 메스꺼움, 어지러움, 손발 떨림, 전신동통, 가슴 통증, 목이나 상복부에 덩어리가 있는 듯한 느낌, 소화불량, 식욕부진, 호흡곤란, 빈맥 등이 포함된다.

얼핏 보기에는 주위 의대생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도 화병 정도에 이르지는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벼랑 끝에선 의대생


서울대 의대 정신과 함봉진 교수팀이 6개월간 전국 37개 의대 본과생 7135명(본과생의 50%)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한 명 이상이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앓은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100명 가운데 8명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으며 이 중 한 명 이상이 실제로 자살을 계획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습량도 많은데다가 선후배관계와 교수님과의 관계가 고압적인 경우가 많은 의대의 특성상 스트레스의 원인이 개인보다는 시스템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서 본질적인 해결이 어려우며, 바쁜 일정 탓에 별도의 여가를 통해서 풀기도 어려운 실정인 탓에 의대생에게 화병은 위험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별도의 여가생활 없이도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과 화병 치료법은 무엇이 있을까. 


스트레스 조절과 화병 치료법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전임 강사이자 분노 때문에 삶과 관계를 망치는 사람들을 수 없이 연구해온 조셉 슈랜드 박사는  자신의 저서 <분노 해소의 기술 디퓨징>에서 ‘분노란 참거나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하는 것’이라고 한다. 분노 및 유사감정(질투,의심,불쾌감)은 변연계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인간으로의 진화 이전부터 생존을 위해 발달한 감정인데, 뇌의 운영센터인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변연계의 작용을 억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전전두엽을 활용하는 것이 분노해소의 기술이라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첫째. 분노를 느낄 때에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그 원인을 분석해보자. 전전두엽은 수리계산이나 언어활동과 같은 고등정신활동을 담당하는데, 원인을 분석하는 ‘추리’를 하는 동안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어 변연계의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

둘째. 1에서 분석한 화가 난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간단한 메모에 글로 적어보자. 앞서 말했듯이 언어활동 중에 전전두엽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셋째. 화가 난 상태에서 뭔가 결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반드시 1,2 과정을 통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힘이 돌아온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하자.

넷째. 분노는 모든 사람에게 발달해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인정하자. 누군가에게 질투를 느끼거나 의심하게 될 때, ‘내가 너무 속 좁은 사람인가. 저 사람이 나한테 잘해줬었는데 질투해도 되는 건가’와 같이 자신의 감정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변연계의 진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 분노인만큼 감정을 솔직히 인정하되, 이를 더 높은 단계의 뇌인 전전두엽의 힘으로 해체하려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다. 

끝으로 화병의 치료법에 대해 알아보자. 화병은 신체증상을 동반하는 우울증으로 볼 수 있다. 화병이 생기기전에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화병이라고 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면 개인의 의지로 치료될 수 없음을 알아야한다. 우울증도 마찬가지이지만 대개 사람들이 가장 잘못 생각하는 것이 우울증이나 화병을 정신력이나 개인의 의지로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미 환자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저하된 상태이다. 환자에게 ‘의지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여 치료를 미루게 하는 것은 환자를 방치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할 수 있다. ‘나는 왜 의지로 이거 하나 못 이겨내지’라며 절망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제 때 푸는 것만큼이나 주변에 환자가 있을 때 치료를 권유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장원 기자/중앙

<wonwon9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