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67호] 각양각색 doctors_1

67호/2009 연재 2009. 7. 19. 00:14 Posted by mednews

각양각색 doctors
의대, 혹은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후 대부분이 임상의로서의 길을 걷는 우리나라 의료현실은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일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해 3000명이 넘는 의사가 쏟아지는 21세기의 의료사회는 의사들이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의대생신문사에서는 보다 용기 있고 소신 있는 길을 걷고 계신 선생님들과의 인터뷰를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가슴으로 차오를 때 까지 기다리세요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와의 만남


기사 끝에 달린 바이라인이 조금 특별한 기자가 있다. 단순히 XX부가 아닌 의학전문기자김철중 씨는 의사출신 기자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했고, 영상의학과 전문의로 임상강사 2년의 경력도 있으며 의학박사학위도 가지고 있다. 중재적(intervention) 시술전공이었던 그는 지금 병원이 아닌 조선일보사의 기자로서 일하고 있다. 지난 2월 11일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처음에 눈을 마주치지 않으셔서 낯을 많이 가리시는가 싶었지만, 곧 유창한 말솜씨로 인터뷰 내내 쉬지 않고 흥미진진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의대를 처음에 어떻게 가게 됐나.

 
적성 검사에서도 제1적성이 소설가라고 나왔을 정도로 문과 적성이었는데, 불행히도 수학을 잘했다. 고1 담임선생님말씀이 수학을 잘하면 이과를 가야 한다고 해서 성적 맞춰서 간 것이 고대 의대였다.

의대생활은 어땠나.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고등학교 생활이 끝나니까 너무 신나서 머리도 어깨까지 기르고 도서관에서 소설책 읽고 술 마시고 놀았다. 그러다보니 예과3년 본과 5년 8년을 다녔다. 적절히 1년씩 배분해서 8년 다녔다. 의과대학은 성적에 따라 인격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지 않나. PK실습을 도는데 내가 성적이 안 좋으니, 인턴인 예과친구들이 날 우습게 보기에 공부를 시작했고 본과 1,2학년은 뒤에서 등수를 세고, 3,4학년은 앞에서 등수를 세서 중간으로 졸업을 했다.

영상의학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원래 퀴즈를 좋아해서 맞히고 풀고 이런 것이 재미있었다. 병원에서 필름을 복도에 붙여놓고 퀴즈를 내면 의사나 학생이 진단명을 응모하는 것이 있었는데, 제일 많이 맞춰서 상을 받기도 했다. 또 의료계에서 가장 기술적인 분야가 제일 빨리 발전할 것이다 싶었고, 그게 영상의학과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의학과는 대표적인 서비스파트인데, 환자를 보지 않는다는 게 아쉽지는 않았나.

쉬운 선택은 아니지만 중재적(intervention) 시술을 했기 때문에 매일 환자는 봤다. 원래 만지고 조작하는 걸 좋아하고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원했기 때문에 (나의 성격과) 딱 맞았다. 아주 재밌게 했다. 머리도 써가면서.

그럼 그때까지도 기자의 길은 전혀 염두에 없었던 것인가.

전혀. 누구나 그렇듯 의대 교수를 꿈꿨다. 큰 계기가 있었는데 3년차에 미국에서 방사선과학회가 있었다. 워낙 유명하고 큰 학회였다. 재미삼아 연구하고 있던 것을 영어로 응모요령대로 써서 보냈는데 편지가 왔다. 와서 발표하라고. 우리병원 스텝들도 거기에서 발표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일개 레지던트가 처음으로 국제학회에서 발표를 한 것이다. 처음으로 해외에 그것도 미국에 시카고로 갔다. 그때 글로벌에 눈을 떴다. 인식의 전환이었다. 그 이후 국제학회에서 레지던트 때 2번, 군의관 때 2번, 일본, 베이징, 홍콩 등 (발표를 핑계 삼아) 여기저기 가보게 됐지. 인식이 확대되던 차에 군의관 시절이었는데 어느 순간 언론대학원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렸을 때부터 신문을 매일 한 두 시간씩 그저 좋아서 읽곤 했었다. 해부학 시험 날 아침에도 읽을 정도였다. 한번 신문방송학을 공부해보자 싶어서 언론대학원을 찾아갔다. 반은 특수직을 인터뷰만으로 뽑는데 처음 갔을 때엔 의사가 온 건 처음이라고, 아마 재미삼아 왔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거절하더라. 6개월 뒤에 다시 오면 생각해 보겠다기에 반년 후 다시 찾아갔더니 수석입학을 했다. 인터뷰만으로! 이제까진 장학금 면제였는데, 입학금 면제로! 내 인생의 앞날을 예견하는 큰 징조였던 것 같다. 의학을 할 땐 장학금 한번 못타봤는데 말이다. 그러던 중 임상강사(fellow과정) 끝날 때 쯤 IMF경제위기 때문에 모든 staff 채용이 동결됐고, 무급일 수도 있는 임상강사과정을 더 하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건 아니다싶고, 신문사 가자 싶더라.

특별히 조선일보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썼던 글들, 자기소개서, 이력서를 신방과 교수님한테 언론사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신기하게 네 군데 중 세 군데서 전화가 왔다. 인터뷰하자고. 그중 SBS와 조선일보는 계약을 하자고 했는데, 친구들 말이 네 얼굴로 방송가면 못 큰다는 것 아닌가. "야야 숨어서 글이나 써."하더라. (웃음.) 사실 방송은 핫 미디어이고 활동적이지만, 신문은 분석적인 콜드 미디어가 아닌가. 내 스타일은 콜드미디어였다. 그래서 조선일보로 갔다.

기사방향이 최근에 바뀌었는데 원래 원하던 방향인가.

2년 정도 된 것 같다. 건강정보도 쉽게 풀어 재미나게 쓰면 나름의 의미가 있긴 한데 기자로서 느끼기에는 별로 매력이 없는 것 같다. 누구나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의료제도나 환경에 대해서 써야 의학전문기자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학전문기자 일상은 어떠한가.

아홉시쯤 출근해서, 보고할 것 있으면 보고하고, 취재하고 만날 사람 있으면 만나고, 기사도 쓰고. 일이 없는 날은 외부 원고를 쓰거나 취재거리를 찾아 인터넷 조사도 한다.

다른 기자들과는 많이 다른가?

(일반 기자들은) 매일 보고하고 써야 하는 것이 아주 많다. 나한테는 (상부에서) 뭐라고 하지 않는다. 고정칼럼은 있지만, (그 외의 칼럼은) 쓰고 싶을 때 쓴다.

의학전문기자라는 직업의 우리나라에서의 비전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지금 아홉 명 인데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싶다. 의사가 임상의를 하지 않고 기자를 한다면 그를 보상하는 수준의 영향력과 적정한 임금을 제공할만한 수준의 매체는 몇 개 없지 않은가. (방송사 3사와 메이저 신문사까지) 일곱 개 정도 매체에 두 명씩 있는 것이 최대치라면 지금의 두 배정도? 100퍼센트 성장.

수적으로 만이 아니라 사회적인식이나 영향력이 지금보다 증가하지 않겠나.

그렇다. 너무나 원칙론적인 얘기지만, 사람들이 신문에서 얻던 정보를 인터넷으로 얻는데 산만하고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공신력 있는 매체 (신문 혹은 방송사)에서 주는 정보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의사도 이제 미디어상품이 되었고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전문가이기에 일정한 역할을 인정받게 되었고 이런 면에서 할 만하지 싶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나 사명이 있는가.

왜 싱가포르가 의료강국으로 됐나하는 내용으로 일면 톱을 3일 동안 쓴 적이 있는데 대단한 반향이 있었다. 영리병원이란 게 있구나, 의료가 산업이구나, 키워야겠구나 하는.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의 프라이드는 그렇게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에 있다. (의대생들의 외과 기피 현상에 대해) 1면에 '간호사가 메스 잡았다' 고 기사를 쓰니 국회에서 공청회하고, 수가를 올리겠다고 하지 않나. 한번 '팍!'하고 지르는 그 맛으로 한다. 미디어는 이슈를 붐 업 시키는 거다. 해결책은 관리직이나 교수직이 제시 하는 거고.

의학전문기자에게 요구되는 적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첫 번째 조건이 의학에 적성이 없다는 것.(웃음.) 두 번째는 앉아서 책보는 스타일보다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 세 번째는 문제에 대해 약간은 할 말이 좀 있는 사람. 너무는 말고 약간은 흥분을 해야 한다. 문제에 대해 흥미를 보이는 사람 말이다.

의학전문기자에게 전문의 수련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전문의를 하라고 하고 싶다. 인생에 퇴로는 있어야 하지 않나. 일단 대한민국사회는 전문의를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의학전문기자라고 쓰려면 전문의여야 한다는 거다. 또 (언론사에서 일을) 그만두면 퇴로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항상 자신감이 떨어지게 될 거고, 또 수련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친구들 보면 아무래도 (당직 등 업무상으로) 너무 고생하는 것 같다. 너무 일찍 한 거다.

의사를 보는 인식이 예전과 다르다.
사람들이 의학정보를 많이 접해서 만이 아니라 의사들의 문제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지식정보화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적응이 느렸다고 본다. 어느 나라든지 프로페셔널리즘(전문 직업에 대한 의식)의 위기는 있기 마련이다. 난 엔트로피법칙을 철학적으로 인용하고 싶은데, 모든 게 안정적 상태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니, 의사 환자, 정부의 삼각관계에서 과거엔 의사의 권익이 강한 불안정상태였으니까 안정한 상태를 향해 갈 수밖에. 당연한 변화라 생각한다. 정보는 공유되고 있고, 결정은 환자의 자기 결정력으로 옮겨 가고 있으니 의사들의 권위가 없어지고 계약적인 관계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거나 윤리적인 측면을 통해 좀 더 우호적인 관계로 변해야할 텐데 의료계파업 등으로 인해 비우호적으로 간 게 안타깝다. 프로페셔널리즘의 위기는 지식보다 윤리의식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가 철저한 직업적 직무수행능력과 윤리의식, 직무체계를 넘볼 수 없게. 지금의 의사들은 직업적 트레이닝을 잘 받고 있으니까 잘 해결해 나갈 거라 생각한다.

                                         ▲ 본지 안지윤 기자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

후배들한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지.

 (흔히들) 머리로만 고민하려고 하는데 가슴으로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고 싶다. (닥치기도 전에) 머리로만 하는 고민을 하지 말고 기다리다보면 어느 순간 차오르게 되어있다. 차오를 때 넘치는 걸 갖고 결정해야 된다. 그렇게 때가 돼서 하면 설사 잘못되어도 후회가 없어. 또 일단 저지르라는 것. 모든 인간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기 때문에 저지르고 나면 이걸 괜히 했다는 생각보다 안했으면 몰랐을 뻔 했는데 새로 경험을 했구나하고 오히려 후회하지 않을 거다.


안지윤 기자 / 관동
<ajy1588@dreamwiz.com>



 

'67호 > 2009 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67호] 똑똑한 즐겨찾기_1회  (0) 2009.08.02
[67호] 다빈치 프로젝트_1  (0) 2009.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