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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평가,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나요


▲ 전산실에서 강의평가를 진행 중인 의대생

지난 겨울방학, 성적 확인을 위해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한 의대생 C씨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잠시 당황하였다. 학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수업평가를 작성해야만 하는 교양과목과는 달리, 전공과목에는 수업평가를 요구하는 창이 개설되어 있지 않았던 것. 그는 학기말에 “전체적으로 어느 과목이 좋았나요?”라는 추상적 물음의 설문지를 받은 것이 기억나 그것이 수업평가에 해당하는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긴 했지만, 후배들에게 더 개선된 강의를 물려주고자 교과목마다 어떤 부분이 좋았고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 곰곰이 생각해 두었던 것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다른 학교의 의대생 B씨는 1년 전,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수업평가 결과를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했다는 학교 측의 발표에 진취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교수들이 인기에 영합하는 강의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그것은 의과대학에서만큼은 괜한 걱정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것에서 의대는 예외로 하기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수업평가에 열심히 참여할 분위기가 안 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수업평가의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두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2007년 의학교육학회지에 실린 <국내 의과대학 강좌평가제 운영 실태 분석>은 총 41개 의과대학 중 38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수업평가 시스템이 평가기준항목, 평가대상과 방법 등 많은 항목에서 대동소이하게 미흡한 것으로 보고했다.

형식적인 수업평가, 뿌리부터 알아볼까

의학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의학이 과학과 접목되기 시작한 17~18세기 이후부터로 의사학(醫史學)자들은 보고 있다. 그 이전에는 과학적인 지식에 근거하지 않은 의학이 학파를 중심으로 전수되는 엉성한 도제식 교육이 의학교육의 전부였으며, 그 교육방식 역시 일방적인 강의에 의한 지식의 복제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다. 극히 제한적으로만 접근이 허용되던 의학지식의 특성과 함께 의사 집단의 폐쇄적·권위적인 성격도 한몫을 하여 의학교육에서 학생에 의한 피드백이란 애당초 남의나라 이야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강의평가를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게 하고 있다.

다른 단과대학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수업평가가 원활히 작동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어느 공대생은 수업평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불쾌해하며 도리어 학생들을 다그치는 교수도 있다고 고발했다. 높은 직업안정성으로 손꼽히는 교수직에 이미 오른 이가 학생들의 평가에 자극을 받기나 하겠느냐고 반문하는 경영대생도 있었다. 학생의 조합인 ‘유니베르시타스’와 교수의 조합 ‘콜레지아’의 줄다리기 속에서 성장한 중세 유럽의 대학 중 교수가 대학운영의 중심이었던 파리대학의 시스템이 옥스퍼드대학을 거쳐 미국으로 이식됨에 따라, 개화기 이래로 미국의 지속적인 영향을 받아 온 우리나라에서는 자연히 학생보다는 교수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대학이 진화해 온 것이다.

무엇이 의대생을 무기력하게 하는가

하지만 의대가 아닌 학과에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한 현재진행형의 노력도 있었다. 전공수업을 비전임강사가 맡기도 하는 어느 학과의 학생은 “강사의 경우 수업평가 결과가 재임용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수업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며 학생들이 수업평가에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고 내세웠다. 어느 대학교에서는 학교의 공식 사이트 외에 총학생회에서 운영하는 수업평가 사이트가 있어 수강신청 시 특정 교수에 대한 평가내용을 참고하기도 했다. 수강해야 할 과목과 교수가 이미 완전히 정해져 있으며 모든 전공과목을 전임교원이 강의하는 의대에서 위와 같은 자발적 움직임이 미약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의대생들이 느끼고 있는 수업평가란 어떤 걸까. S의대의 한 학생은 수업평가 설문지가 교수별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한 강의 전체에 대해서 물음을 묻는 것에서 한계점을 찾았다.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피상적으로만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Y의대에서는 학생들이 건성으로 하는 수업평가를 교수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몇 해 전 단국의대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수업평가에 성실하게 참여하였냐는 질문에 그렇다 20명, 그렇지 않다 24명의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처럼 학생들이 수업평가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 이유로는 평가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답변, 귀찮다는 답변, 평가결과가 제대로 전달되는지와 그 효과에 대한 의심, 교수별 평가가 안 되는 데 대한 불만, 평가시기와 평가항목이 부적절하다는 불만 등이 주를 이뤘다.

교육서비스의 소비자, 나 스스로를 위해서

수업평가에 대한 교수와 학생의 인식차이를 드러낸 연구도 있다. 지난해 아주의대에서는 교수와 학생 각각 백여 명을 대상으로 수업평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 항목을 조사하였는데, 교수들은 학생 자신의 수업태도를 스스로 평가하는 항목(26명)과 강의의 난이도(13명)를 가장 많이 지적한 반면 학생들은 교수의 학생참여 유도와 목소리 크기, 학생을 존중하는 말투 등 교수의 수업전달 능력(29명)과 수업자료의 사전 배부 등 교재 사용에 대한 내용(16명)을 중요하게 여겼다.

수업평가를 둘러싼 두 주체의 인식이 이처럼 다르다는 것은 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신뢰성과 타당성을 갖춘 평가준거의 개발 역시 필요함을 뜻한다. 가령, 막연히 학생의 학습 태도를 묻기보다는 학생이 강의에 성실하게 참여할 수 있었던 계기가 무엇인지나 왜 성실하게 참여하지 못했는지를 묻는 것이 교수와 학생 어느 쪽을 위해서든 건설적이라는 것이다. 획일적이고 추상적으로 구성된 설문지 한 장이 교육의 질을 측정하고 제고하기 위한 도구의 역할을 얼마나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수업평가는 앞으로 그 수업을 이어받을 후배들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생생히 살아있는 수업평가를 통해 학생이 교수와 함께 교육의 한 주체로 당당히 서는 순간 그 혜택은 지금 곧 강의를 듣고 있을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최성욱 기자/울산
<casanovacsw@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