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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의학도여, 우리의 미래를 논하자

‘제 1회 젊은의사 포럼’ 현장 스케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1월의 어느 날, 서울대입구역에서 5513번 버스를 타고 28동으로 향했다. 건물 앞에는 거대한 화환이 준비되어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자 포럼 준비위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신문사 기자임을 밝히고 명찰을 얻어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실은 낡았지만 그곳에 있는 의학도들의 마음만은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넓은 강의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곡차곡 채워지고, 연사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전국의 의학도들의 눈이 연사가 강단에 서는 순간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제 1회 젊은의사 포럼이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제 1회 젊은의사 포럼은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연합에서 주최하고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28동 강의실에서 11월 5일과 11월 6일 이틀에 걸쳐 열렸다. 11월 5일 행사에서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비롯하여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기업은행 이성득 팀장, 연세대학교 전우택 교수 등이 연사로 초빙되었다. ‘의학적 상상력’, ‘젊은 전문직의 미래와 역할’ 등을 비롯한 의료 관련 강좌뿐만 아니라 ‘우리시대의 장인정신’ 등 교양강좌도 열린 것이 특징이었다.

두 번째 날에는 더 화려한 연사들이 초빙되었다. 이면우 울산과기대 석좌교수, 김윤근 포스텍 교수, 의원 겸 카페 ‘제네럴닥터’ 김승범 원장,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원 센터장, 배현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저명인사들이 열정적인 강의를 했다. 특히 정몽준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전현희 민주당 국회의원 등 정치적인 명사들도 초청된 것이 시선을 끌었다. 강연 중간에는 이명길 데이트 코치의 연애 강좌도 섞여 있어서 지속되는 강연으로 지쳐가는 학생들이 유쾌하면서도 알찬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전국의 의학도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의료계에서 정치계로 진출한 전현희 의원의 강연 시간에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질문들은 정치적인 이슈에서부터 국회의원으로서 힘든 점, 의료 문제에 대한 정치계의 실상 등 광범위하면서도 시의성이 있는 것들이었다. 전현희 의원은 의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힘든 정치적 현실을 지적하면서 정치나 행정 분야로 진출하는 의학도들을 응원한다고 했다.

포럼에 초빙된 연사들을 보면 변화하고 있는 의료계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최근 대선 주자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이나 시대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철 원장들은 더 이상 의료인들이 의료계에만 국한된 사고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적 분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의사의 개념이 병원에서 환자만 보는 사람에서 사회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지성인으로 바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젊은 의학도들의 걱정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만 집중된 각종 인프라 하에서 지방에서 공부하는 수많은 의학도들의 안타까움과 갈망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행사가 모두 끝나기 전에 기차 시간 때문에 서둘러 나서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사회의 지성으로 활동하려는 의학도들의 열정이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언가 하고 싶지만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의학도들의 절규는 젊은의사 포럼이라는 창구를 통해서 그대로 분출되었다.

그것은 이 행사를 후원한 대한전공의협의회 김일호 회장의 말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김일호 회장은 “의사들의 95%는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다. 정규직은 그 직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해주고 수가인상과 월급인상 등의 시스템에도 역할을 해주지만 의사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서 이러한 시스템이 없다”며 “의사들이 고용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형적 구조가 됐다”고 언급하면서 “젊은 의사들의 단결과 관심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젊은의사 포럼은 의학도들의 고민을 정확히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국민들은 의료계를 불신하고, 언론에서는 연일 의료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들로 가득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성적에 맞추어’ 의대를 선택한다는 사회의 통념이 가세하여 의사들은 더 이상 인술을 펼치는 사람이 아닌 천민자본주의적 속물로 낙인찍히고 있다. 사회에서 뭇매를 맞으면서도 해야 할 일은 많고, 미래는 들어왔던 것만큼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학도들은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학도의 사회 진출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참가자는 ‘의료인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의료인들의 과도한 정치 참여를 우려했다.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입되는 수많은 이익 집단들의 경제적 혈투에 의료인들이 나팔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점심 때 시작해서 저녁 늦게 끝난 제 1회 젊은의사 포럼은 전국의 의학도들이 운집한 유례없는 행사였다. 그 열기만큼이나 불안정한 의료인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가지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돌아오는 길에 마신 과일주스 한 잔에 하루 내내 느꼈던 고민의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허기영 기자/서울
<zealot648@e-med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