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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의사들

77호(2010.10.11)/문화생활 2010. 10. 10. 21:34 Posted by mednews

세계 재난지역에 파견된 의사들, 그 주역에는 쿠바의 의사들이 있다.
국민 1인당 의사비율 최고, 1세미만 영아사망 1000명당 4.8명(미국 6.7명), 국민평균수명 살78.7살(미국 78.4살). 미국을 뛰어넘는 이 기록들의 주인은 쿠바이다.
쿠바는 체게바라와 카스트로가 주도한 혁명으로 1959년 1월 1일 사회주의 국가가 된 나라이다. 혁명당시 쿠바의 의사 6000명 중에 절반은 미국으로 망명한다. 그 때 쿠바에는 의과대학 1개가 있었고 교수는 단 16명이었다. 이런 부정적 상황을 극복하고 선진 의료국가가 되는 과정에서 쿠바의 의료는 1차 의료를 중심으로 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쿠바의 의료는 3단계로 구성된다. 1차 가정의, 2차 지역진료소, 3차 종합병원이 그것이다. 가정의는 약 150가구, 600명을 배정받아 책임지고 돌본다. 오전에는 병원으로 오는 환자를 진료하고 오후에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가정방문을 한다. 가정의 제도는 질병치료중심의 의료에서 질병예방중심의 의료로 중심이 옮겨간 방법이다. 가정의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환경적, 정서적 문제도 파악하고 있으며 질병의 약 80%를 치료한다. 가정의가 감당하지 못하는 나머지 20%는 2차 지역진료소가 감당하며 여기서 감당할 수 없는 질병은 3차 종합병원이 담당한다.

쿠바의 빈틈없는 의료시스템을 누리기 위해 국민들은 한 푼의 돈도 내지 않는다. “모든 국민은 무상의료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국민들에게 의료를 무료로 제공할 의무가 있다” 쿠바헌법 제 50조에 명시된 이 권리는 쿠바 국민의 99%가 골고루 의료해택을 누리게 한다. 특히 쿠바가 영아들에게 무상 제공하는 의료는 인상적이다. 쿠바의 건강한 어린이들은 태어나서부터 열네 살까지 총 162회의 의사의 방문 진료 서비스와 무료 예방접종을 받는다. 임산부는 지역산전센터에서 규정상 최소 12회 이상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가난하거나 위험요소가 있는 임산부들은 산전센터에 머물며 영양관리를 받는다. 이 제도는 낮은 영아사망률을 이끌었다.

쿠바가 뛰어난 의료수준을 가진 이유는 제도 때문만은 아니다. 쿠바 의사들의 봉사정신은 높은 의료수준의 또 하나의 기둥이다. 1963년 이후 세계 101개 나라에 10만이 넘는 의사들이 무료 의료봉사에 참여했다. 쿠바의 의사들은 그들의 손길이 필요한 어는 곳이든 나타난다. 2005년 8월 파키스탄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그 어떤 구호단체도 지진의 위험을 감수하고 히말라야 산맥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쿠바의 의사들은 그곳에 병원을 세우고 수많은 사람을 살렸다. 베네수엘라 빈민촌에도 그들은 있다. 베네수엘라 빈민지역 무상의료운동 ‘바리오 아덴트로’에 참여하는 의사는 대부분 쿠바 의사들이다. 돈이 없어 백내장 수술을 할 수 없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 다시 세상을 보여주는 일도 한다. ‘기적의 작전’으로 불리는 이 유명한 프로젝트는 수만의 빈민들에게 시력을 돌려주었다. 또한 다른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 무료로 의료교육을 시킨다. 의료 봉사대를 파견하는 것은 그 나라의 자체적인 의료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 의사들의 봉사정신은 이런 실적들로 다 표현해 낼 수 없다. “아이의 순수한 미소, 부모의 감사하는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한 쿠바의 의사의 말에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쿠바의 의료수준은 높고 의료 관광국으로의 명성은 두텁다. 이런 높은 의료수준은 근본적으로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이고 국방비의 55%를 삭감해 교육, 의료에 투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의료는 무상의료가 힘든 시스템이고 의사들이 무료봉사를 활발히 하지 않는 것도 사실 사회시스템상의 열약함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쿠바의 의사들은 돈, 편안한 삶,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선택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많은 의사에게 혹은 의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바람직한 의사의 모습을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이현도 기자/연세
<loverboy@e-mednews.com>

국내 최초로 의료진 악단을 창립한 심승철 박사님을 만나다

전국 의과대학에서 의대생들이 가장 많이 기본적으로 가입하게 되는 동아리라 하면 대부분은 오케스트라 동아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오케스트라 동아리일까? 라고 자문해봤을 때, 클래식 음악이 우리 스스로가 존경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지덕체(智德體) 중 덕육(德育)을 쌓는데 지대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그저 음악 자체가 좋아서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여기 의대생이라는 관문을 넘어 의사의 신분으로도 아직까지 바이올린을 키며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사람이 있다. 그 분은 바로 2004년 국내에선 최초로 의료진으로만 구성된 악단을 결성하신 심승철 박사님(현 대전을지병원 내과과장).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자문의 해답이 의료인으로서 스스로 고심하고 또 다짐해야 할 과제와 함께 눈앞에 제시되었다.    

- 먼저 이 오케스트라를 결성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습니다.
“아, 우선 우리 악단의 경우에 '오케스트라'라는 말은 틀린 것 같네요. 우리는 소규모로 연주를 하기 때문에 ‘챔버(Chamber)’가 더 맞는 말이에요. 그리고 처음에는 분명 의료진으로만 구성된 악단이었지만 요즘은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약사, 환자 등 하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굳이 가릴 것 없이 함께 연주하고 있습니다.
동기라.. 모로코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 줄 아세요?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왼쪽 윗부분에 있는 나라죠. 그 나라가 예전에 사하라의 서쪽 사막을 침략해서 그곳에 사는 소수 부족에게 그들의 영토-사막-을 뺏는 대신 다른 좋은 아파트에 거주하게 해주었죠.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 소수 부족은 더 깨끗하고 쾌적한 아파트에서 살게 되면 훨씬 좋아할 것 같지 않나요? 하지만 그들은 아파트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황폐한 사막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죠. 마찬가지에요. 우리 대전을지병원이 이 곳(둔산동, 대전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옮겨 새 단장을 한 후 환자들은 새 병원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예전 병원과 분위기가 너무 달라진 거죠. 또 나는 예전 병원에 있을 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환자의 입장에서는 나란 사람까지 병원 분위기와 덩달아 멀리 느껴지게 된 거죠. 그래서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어떻게 다시 친근한, 오고 싶은 병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러던 도중에 나온 아이디어가 우리 의사들이 직접 연주하는 작은 음악회였습니다. 아무래도 하얀 가운을 입은 어렵게 느껴지기만 하는 의사가 자신들을 위해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걸 보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라 생각했죠.”

- 처음 결성된 후로 요즘도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계신가요?
“결성 된 당시 초기에는 3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공연을 했어요. 그 때 우리 공연에 대한 호응이 꽤 좋았지요. 그래서 요즘은 그 음악회가 계기가 되어 매주 병원 로비에서 수요 음악회가 열리고 있어요. 우리는 항상 보는 업무가 또 따로 있기 때문에 매번 참석하기는 사실상 어렵죠. 그래서 병원 측에서 외부악단을 초청하기도 하고 외부에서 자발적으로 신청도 많이 해주셔서 수요 음악회가 그렇게 매주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종종 특별한 날 행사가 있을 때 연주를 하고 있어요.”

완벽을 가하는 ‘연주회’가
아닌 모두 함께하는
‘음악회’를 추구한다

- 악단에 들어가는 특별한 자격 조건이 있나요?
“얼마 전에 했던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오디션을 봤다죠? (웃음) 하지만 저희는 특별히 오디션을 봐서 단원을 뽑거나 자격 조건이 갖추어져서 뽑히거나 그런 건 없어요. 그저 하고 싶으면 들어와서 함께 연습하고 연주를 하는 겁니다. 우리는 보여주기 위한 완벽한 ‘연주회’를 열고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환자들과 교감하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음악회’를 하는 것이죠.”

실제로도 작년 12월 연주회 때는 희귀 난치병인 베게너 육아종증과 싸우고 있는 환자분이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하였고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병원에 늘 모시고 다니는 환자의 딸분이 재즈 싱어를 맡기도 했다고 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 그리고 공연 중 일어난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라 하면 .. 아무래도 첫 번째 공연이겠죠? 그 날 마침 병원에서 첫 돌을 맞은 아기가 있었어요. 그래도 명색이 태어나서 첫 번째 맞는 생일인데 갑갑한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아이를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연주했던 기억이 나네요.
잊지 못할 에피소드라... (고심하다가) 아. 저기 액자 속에 피아노 치시는 분. 저 분이 우리 병원 환자신데, 저 분과 로비에서 음악회를 준비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연주회 당일 날 저 분이 서울에서 대전으로 ktx를 타고 내려오시던 중에 나한테 전화가 온 거에요. 지금 기차를 탔는데 악보를 서울역에 두고 온 것 같다고.. 전 바이올린을 하다 보니 악보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그 분도 당황하고 저도 순간적으로 당황했었죠. 여차저차 인터넷에서 피아노 악보를 다운 받아서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음악회를 시작했던 적이 있었어요. (웃음)”
 
병원을 환자들이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곳으로

- 앞으로 악단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아무래도 악단이 처음 만들어진 동기가 환자와의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였다보니 당연히 앞으로도 그런 쪽으로 쭉 나아가야 겠죠.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환자의 병실에 직접 찾아가서 공연을 해주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 같네요. 그런데 이 모든 것 에 앞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의료진으로써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가 의학은 과학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요즘은 어느 병원이든지 컴퓨터가 있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어서 의사가 환자를 잘 바라보지를 못해요.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할 때 행여 실수를 할까봐 모니터만 보죠. 환자의 눈을 쳐다보는 시간은 기껏해야 30초 정도 될까요. 그건 분명 한국 의료 실정이 미국과 같은 시간제가 아니다 보니 발생한 문제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의사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봐요. 요즘은 인터넷만 찾아봐도 의학적 지식이 얼마나 무궁무진하게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사라는 직업이 필요 없어지진 않거든요. 의사는 그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도 하지만 그 지식에 의한 효과를 최대한으로 올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 시너지효과를 내는 가교역할로 음악을 선택한 거죠. 우리 악단이 지향하는 바도 그런 맥락에 속해요. 좀 더 환자와 의사가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할 수 있게끔 이끌어 주고 치료 효과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그런 악단, 그런 음악이 병원에 있다면 환자의 입장에서 병원이라는 곳이 좀 더 오고 싶은 장소가 되지 않을까요?”

- 마지막으로 학업으로 힘들어 하는 의대생에게 음악 몇 곡 추천해주세요!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이 있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재즈로 몇 곡 추천하자면 Wynton Marsalls의 ‘The very thought of you’, 트럼펫티스트 Chris Botti의 ‘In the wee small hours’(feat. Sting) 정도? 그리고 클래식 중에선 음악의 아버지 바하의 ‘파르티타(Partita)’를 빼놓을 수 없네요.”

이선민 기자/을지
<god0763@e-mednews.com>

- 『Clinical Road Map of Internal Medicine』의 저자 조재형 교수님을 만나다 -

현재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육은 이른바 ‘서양의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일까, ‘Grey's anatomy’와 ‘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을 비롯하여 기초과목에서 임상과목까지 ‘교과서’로 추앙받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 영국이나 미국에서 물 건너온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져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내과학 책이 있다. 바로 그림과 알고리즘이 책의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Clinical Road Map of Internal Medicine (이하 로드맵)’ 이 주인공! 본과 4학년 시절부터 불철주야 한국교과서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신 가톨릭 대학교 내분비 내과의 조재형 교수님을 만나 책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부터 내용까지를 들어보았다.

90년대 후반에 국가고시에서 합격률이 60%대까지 떨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이로 인해 각 학교에선 국가고시를 상대로한 ‘족집게 강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조 교수님은 이때 본과4학년 시절이었고 이 ‘족집게 강의’에서 들은 엑기스 내용과 칠판 필기방법을 응용하여 노트를 정리하였고 이에 대하여 동기들에게 폭발적 반응을 듣다보니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어, 이거 책으로 내도되겠다!’ 국가고시 합격 후 책을 출판하기 위해 여러 출판사를 돌아다녔지만 학생의 노트를 쉽게 출판하기는 어려웠다. 그 후에 수련의를 거쳐 바쁜 시간들을 보내다 군 복무를 하게 되고 여유시간이 조금씩 생겨나니 다시 책을 출간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학창시절부터 유난히 친했던 동기 주지현, 장정원교수님과 함께 지금 이때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되어 다시 책을 다듬는 작업을 시작했었다. 이 세명이 모여 2만장이 넘는 슬라이드를 스캔하고 그들 스스로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도 배워 그림들을 다듬고 하는 막노동 끝에 드디어 2004년 1판이 발행되었다. 당시 소프트커버판을 포함하여 해리슨다음으로 많이 팔린 내과학 책이었다고 한다. 몽골 울란바토르의대 교수가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이 책을 국가 보조로 출간하겠다고 요청했던 것과 인도의 한 출판사에서도 인도번역판 출간을 권유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여기까지가 아니었다. 이 세명의 저자가 로드맵을 출판하면서 세웠던 두 가지 목표는 다름아닌  아마존닷컴에 책을 올리는 것과 하버드 의대생들이 이 책을 보면서 공부하게 되는 것! 이것을 충족하기 전까진 그들은 만족할 수 없었다. 이후 2년 뒤 이들의 노력을 지켜봐왔고 꿈을 잘 알고 있는 출판사의 편집장이 다시 한번 세계를 겨냥해 보자고 하며 로드맵 2판 제의를 해 왔다. 좀 더 양질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메디컬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를 교육하기도 하는조교수님의 색다른 노력과 책의 커버를 담당한 동양화 화가부터 본과4학년 학생까지의 총 120명의 도움을 바탕으로 4년 만에 새로운 2판이 나왔다. 문제풀이도 첨가되었고 외국 유수의 교과서와 비교해도 자랑스럽다는 주변의 반응을 등에 업고 그들의 첫 번째 목표였던 아마존닷컴에의 등록을 당당히 성사시켰다.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 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이제 두 번째 목표를 향해 유수 해외 출판사와 계약의사를 타진 중이다.

처음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로드맵을 읽어 보았을 때에는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과 노력들보다는 세련되고 한눈에 들어오는 편집방식이 흥미로웠다.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Part 1 부분엔 문장 없이 거의 모든 부분이 플로우차트, 표, 그림등으로 채워져 있어 가독성이 상당히 좋다. 명화와 질병을 접목시킨 점도 재밌었다. 이런 구성 하나하나가 그냥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학생 때부터 갈고 닦아온 노력과 노하우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말씀하시는 조재형 교수님의 모토는 ‘미쳐야 미친다.’이다. 의대생 대부분이 본과에 진급해 내과학을 막연히 접하는 시기엔 해리슨 정독을 통해 영어와 의학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꿈을 꾸지만, 실제 수업이 진행되고 나면 넘쳐나는 족보와 끝없는 야마 외우기에 급급해 해리슨을 원서로 멋있게 보는 로망은 점차 희미해져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노트로 책을 내야겠다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힘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재형 교수님은 같이 미쳐 주었던 친구였노라고 말씀하셨다. 맹목적임 암기에 시들어 갈 지라도 , 쏟아지는 시험에 척추가 마비될지라도 서로의 목표를 기꺼이 위하여 미쳐주며 소중한 꿈을 잊지 않고 나아갈 의대생이 있을거라고 믿는다. 그들이 만들어 낼 새로운 한국판 의학 교과서를 희망하며 건투를 빈다.   

김지은 기자/가톨릭
<jieunapple@e-mednews.com>

故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룬 영화, '울지마, 톤즈'

아들을 잃은 85세 노모가 슬프게 운다. 48세, 젊은 나이에 어머니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못난 아들. 하지만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향기는 진하게 남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영화 ‘울지마, 톤즈’는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의사에서 신부로
이태석의 의대 진학은 10남매를 키우며 고생한 홀어머니에게 탈출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태석은 인턴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하느님에게 끌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며 사제가 되기로 한다. 신학교를 졸업 후 사제서품을 받은 이태석 신부는 또 한번 놀라운 결심을 한다. 한국인 사제로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근무를 자청한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황폐해진 땅 수단, 그 중에서도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남부 수단으로 떠난다.
2001년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이끌려 오랜 내전과 전염병으로 병든 땅, 남수단 ‘톤즈’에 온 이태석 신부는 지역의 유일한 의사로써 병원을 세우고 직접 아픈 이들을 돌보기 시작한다. 그가 세운 ‘돈보스크 병원’은 금새 유명세를 탔다. 매일 300명에 가까운 환자를 보는 강행군이었지만, 결코 한밤 중 이라고 병원에 찾아온 환자를 돌려보내는 일은 없었다. 그는 진료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직접 한센인 마을을 찾아가 진료를 하고 지하수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펌프를 만들고, 한센인들의 발에 맞춘 신발을 만들어 주었다.

학교를 세우다
“예수님이 이 곳에 오신다면 성당을 먼저 지을까 학교를 먼저 지을까 생각해보았다. 예수님이라면 필히 학교를 먼저 지었을 것이다.” 소년병으로 차출되어 연필보다는 총을 먼저 손에 드는 아이들이 가난과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교육이 절실했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그는 돈보스코 학교를 건립한다. 톤즈 유일의 밴드, 35인조 브라스 밴드도 그의 작품이다. 자신이 그랬듯이, 아이들에게 음악이라는 친구를 선물해 전쟁으로 상처받은 마음에 희망을 선물하고자 했다.
열정적으로 일하던 그의 몸에 점점 한계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휴가 차 한국에 들러 우연히 시행한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암세포는 이미 간까지 전이되어 있어 여명이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톤즈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지난 1월 14일 선종했다.

2010년, 멈춰버린 톤즈의 시계
영화의 제작진이 방문한 톤즈의 시계는 2008년 이태석 신부가 떠나왔던 그 시간에 멈춰있었다. 의사가 없는 돈보스코 병원의 진료실은 텅 비어 있었고,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이었던 쫄리 신부님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었다. 지휘자가 빠진 브라스 밴드는 더 이상 연주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 2월, 이태석 신부를 추모하기 위해 브라스 밴드가 다시 뭉쳤다. 지휘자는 없어도 아이들은 선배가 후배에게 가르쳐 주며 연주를 준비했다.
영화의 마지막, 브라스 밴드가 그를 추모하면서 마을을 행진한다. 환하게 웃는 이태석 신부의 사진과는 달리 톤즈의 사람들은 오열했다. 그렇게 노모의 눈물로 시작한 영화는 저 먼 아프리카 땅, 톤즈 사람들의 눈물이 되어 끝을 맺었다.
“신부가 아니어도 의술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까지 갔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 마지막으로 10남매를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다.”
-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中에서

이예나 기자/순천향
<lyna@e-mednews.com>

9월 개봉한 영화 ‘울지마, 톤즈’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6만 관객을 돌파했다. 몇몇 극장에서만 개봉했으나 이제는 전국 54개 극장으로 확대되어 상영 중이다. 상영관은 홈페이지 www.dontcryformesudan.com 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리슨, 사비스톤, 가이튼... 의대생이라면 누구나 봐야 하는 교과서들의 제목을 장식한 이 분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의대생신문에서는 올 해 6회에 걸쳐 의학교과서의 저자들의 생애와 업적을 파헤칩니다. 가이톤, 해리슨, 홍창의, 그래이에 이은 다섯 번째 순서는 눈이 호강하는 책 ‘네터 컬렉션’의 저자, 프랑크 네터입니다.

의학계의 미켈란젤로, 프랑크 네터

예술계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있다면 의학계에는 프랑크 네터의 네터 컬렉션(The Netter Collec-tion)이 있다. 처음에 시바(CIBA) 컬렉션으로 출판되었다가 판권이 ELISIVER로 넘어가면서 이름이 바뀌었는데, 13권으로 시작했던 컬렉션이 이제는 수십권에 달한다. 또한 온라인 버전, 3D 버전, 스마트폰 어플 등 계속해서 다양한 컨텐츠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의사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환상적인 그림 실력을 갖춘 저자, 프랑크 네터(Frank Netter)에 대해 알아보았다.

미술가 or 의사?

1906년 뉴욕에서 태어난 프랑크 네터(1906-1991)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보였다. 뉴욕 대에 다닐 때에도 오후에는 만사 다 제쳐두고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 미술을 배우러 다녔다. 당연히 학교 성적은 점점 곤두박질쳤고 결국 부모님께 미술공부를 하고 있다고 사실대로 말씀 드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미술가라면 그저 방탕한 생활을 해대는 방랑자들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노발대발하시며 의사 같이 존경받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하지만 네터는 어떠한 설득도 완강히 뿌리치고 미술가의 길을 선택했다.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꽤 성공적인 상업 미술가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을 끝까지 모른 체하며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결국 몇 년 못가서 어머니 소원대로 뉴욕대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입학 후에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남들이 부리나케 필기를 해댈 때 그는 강의내용을 그림으로 쓱싹 스케치하곤 했다. 한 눈에 들어오는 그림 정리가 동기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교수님들께도 알려졌고, 그때부터 강의 자료나 교과서 삽화 일을 도우면서 용돈을 벌기도 했다.
1931년 의과대학 졸업 후, 벨뷰 병원(bellevue)에서 인턴을 수료하고 맨하튼에서 외과의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1933년, 당시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상황이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었다. 따라서 부수적으로 삽화 알바를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림 다섯 폭에 $1500을 요구한 일에 $7500를 받게 되면서 (그림 하나당 $1500으로 쳐준 것이다!) 그때부터 아예 임상의사로서의 직업을 그만두고 전업 의학전문 삽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미술가 and 의사!

1938년 제약회사 시바(CIBA, 1997년 합병되어 현재는 세계 1위 제약회사 노바티스)에 고용되어 회사 홍보용 그림들을 그리게 된다. 첫 작품은 화일을 심장 모양으로 자르고 그 위에 그린 것이었는데, 많은 의사들이 홍보문구를 빼고 제작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다른 장기들에 대한 호응도도 마찬가지였다.
치솟는 인기에 힘입어 13권짜리 시바 컬렉션을 편찬하게 되었다. 총 4,000개가 넘는 그림이 삽입되었으며 인체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조직학 등을 각각 계통 별로 정리되어있다. 의학계의 큰 센세이션이었으며 1988년 뉴욕 타임즈가 ‘전세계 대부분의 해부학 교수들 다 합쳐놓은 것보다 의학교육에 더 많이 기여한 회가’라고 했을 정도로 수많은 기관, 평론가, 독자들에게 칭송받는 책으로 꼽히고 있다.
꼽을 수 없이 많은 표창과 영예 뒤에는 그만큼 쏟아 부은 노력이 있었다. 네터는 심혈을 기울여 시바 컬렉션을 완성하였고 집필 도중에 수많은 전문의들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을 지식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료 수집을 위한 여행도 수없이 다녔다. 1980년 초 세계 최초 심장 이식 수술을 참관하고 그 모든 과정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물론, CT 스캔이나 MRI 같은 첨단 영상의학 자료들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 책의 큰 특징은 환자들의 표정, 안색, 몸짓 등에서 개개인의 인격이 묻어날 정도로 사실적이라는 점이다. 사람의 다양성을 조금이라도 표현하고자하는 노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우리가 고장 난 텔레비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를 대할 때 하나의 독립적인 사고력 퀴즈로 보지 않고 환자 개인이 겪고 있는 복합적인 어려움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의사의 길을 포기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의학의 모든 분야를 다 어우르는 전공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물보다도 사진보다도 더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유져 프렌들리한, 네터 컬렉션이야말로 진정으로 이 시대의 최고 학습서라고 생각한다. 의학이 제아무리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나간다 해도 미켈란젤로의 전지창조가 반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랑받듯이 네터가 남긴 4,000여종의 걸작들도 고이고이 만년야마로 내려올 것이다.

문정민 기자/중앙
<moon_jm@e-mednews.com>

2010 광주 비엔날레 <만인보>전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날도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고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파란 하늘과 함께 가을이 돌아왔다. 무더운 날씨에 밖으로 나가기도 두려웠던 과거는 접어두고 쾌청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예술의 세계로 꿈같은 일탈을 해보는 건 어떨까. 
지금 전라남도 광주에선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광주비엔날레’가 한창이다. 이번 2010 광주비엔날레의 주제어는 바로 <만인보-1000Lives>. 이 주제어는 고은 시인이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여한 혐의로 투옥생활을 하던 중에 쓴 연작시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4000여개의 시로 구성된 이 작품 속에는 시인이 살아오면서 현실에서건 문학에서건 역사 속에서건 그가 마주쳤던 모든 인물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번 <만인보>전에서는 현대인들이 광적으로 갈구하며 생산하고 소비하는 이미지, 그 중에서도 특히 인물에 초점을 맞춘 예술작품들이 주제의 맥을 관통하고 있다.
전시회는 비엔날레관, 광주 시립 미술관 그리고 광주 시립 민속 박물관에서 각각 펼쳐지고 있다. 먼저 주전시관인 비엔날레관에서는 5개의 전시실이 따로 또 같이 이미지에 대한 화려한 변주곡을 울리고 있다. 제 1 전시실은 사진을 이용한 여러 가지 시도를 보여주며, 이미지의 재활용 혹은 차용을 통한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고찰을 이야기하고 있다. 산야 이베코비츠의 <바리케이드 위에서>(2010)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기존의 도상학적 틀에서 벗어난 초상사진-인물의 눈이 감긴-을 통해 새로운 형식으로 기리고 있다. 또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사진작가 워커 에반스의 대표작들과 신세대 사진작가 셰리 레빈이 똑같은 그 대표작을 다시 찍어 나란히 전시해 놓은 것도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며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제 2 전시실은 실험적인 테크놀로지에 매료된 아티스트들이 추구하는 이미지들과 환영, 혼돈을 심도 있게 나타내는 드로잉과 콜라주※, 비디오 작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카르슈텐 휠러는 어두운 방안에 적외선 카메라(cctv)와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고 제이콥 케세이는 캔버스에 은도금 작업을 했다. 이들은 관람객 스스로가 작품의 주인공이 되게 함으로써 전시관 내에 존재하는 ‘나 자신’을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또 아르쿠르 즈미예브스키는 청각 장애인 학생들에게 합창을 시키고 시각 장애인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는 영상을 찍어 예술계에 큰 논란거리를 낳았는데 이는 과연 이러한 작업들이 창조적인 이미지를 갈구하는 행위를 넘어서 일종의 폭력으로까지 변질되는 것은 아닌가 고찰해보게 한다. 
이제 옆 건물로 넘어가 제 3 전시실로 들어가면 전쟁과 압제의 비극적이고 처절한 장면들이 예술로 승화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올해 광주 비엔날레 총 예술 감독을 맡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복합적인 이미지’ 라고 말한 바 있는 <뚜얼슬랭 수용소 초상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한다. 1975년부터 약 5년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일어난 끔찍한 대학살의 희생양이 된 이들의 마지막 기록. 이 기록과 예술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작품은 우리에게 증오라는 감정이 얼마나 허공에 쏜 화살과도 같은 허무하고도 위험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거대한 오브제들과 아카이브※를 연상시키는 작품들로 시각적인 흥미를 돋우는 제 4 전시관은 ‘은유’로서의 이미지를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눈에 관람객의 발길을 이끄는 이데사 헨델레스의 <테디베어 프로젝트>(2002)에서는 테디베어와 관련된 사진 3천 여 장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따뜻한 노스텔지어로서의 은유로 작용한다.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검열을 피해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헤르만 글뢰크너는 언젠가는 큰 오브제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작고 보잘 것 없는 재료들로 아쌍블라주※를 제작했다. 하얀 테이블 위에 전시된 그 작은 오브제들이 내뿜는 아우라에는 그 시절에 어떠한 압제에도 꺼지지 않았던 작가의 열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저우 샤오 후의 기발한 비디오 아트가 상영되고 있는 제 5전시관까지 관람을 다 했다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생각이 트이고 눈이 뜨이는 창작물들의 향연이 막을 내린 것에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아쉬워하기 전에 비엔날레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광주 시립 미술관과 광주 시립 민속 박물관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 보자. 광주 시립 미술관에서는 그동안 쉬이 접할 수 없었던 앤디워홀이 모아둔 잡동사니와 기념품들을 볼 수 있고 사진을 좋아하는 이라면 관심 있게 볼만한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의 1000장에 달하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디저트’라는 컨셉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기발한 전시회도 마련되어 있다.  
아직도 예술을 그저 감상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야 있을까 만은 이번 2010 광주 비엔날레에서도 관람객은 직접 예술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도 있고 그저 그 존재 자체로도 예술이 될 수 도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신발을 벗고 거대한 방수천 속으로 기어 들어가 대형 사진을 보며 사진 속 인물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고 셀프 포토샷을 찍은 후 전시실 벽에 걸어 관람객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작품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또한 광주 지역 대학생 예술인 창작집단 ‘잉여인간 프로젝트’가 무료로 그려주는 초상화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쏠쏠한 재미까지 있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상에 앉아 똑같은 책을 보며 똑같은 지식을 흡수하고... 사실 어찌 보면 우리는 참 비인간적인 일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일상 속에서도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달콤한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그 디저트 속에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시공간에서 세상속의 질서와 혼돈에 항거하고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들의 활화산과도 같은 혼이 녹아있다. 그 맛은 깊고 진하여 길을 걷다가도 문득 생각날 듯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맛이었다.

+) 2010 광주 비엔날레는 11월 7일까지 광주 비엔날레관에서 열린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참조.

이선민 기자/을지
<god0763@e-mednews.com>

※ 콜라주 : 풀로 붙인다는 뜻으로 1912년경 입체파 화가들이 유화의 한 부분에 신문지나 벽지 등의 인쇄물을 풀로 붙인 기법에서 유래.
※ 아카이브 : 특정 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아둔 일종의 정보창고.
※ 아쌍블라주 : (미술에서) 일상용품 따위를 조합시키는 기법 또는 그러한 작품.

OECD(경제개발협력기구)는 지난 8월 초, 보고서를 내고 우리나라의 의료비 지출 및 과잉진료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의료지출을 억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OECD는 ‘한국보건의료 현황 및 개혁방안’ 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인구 고령화 및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고 진단하고 “이를 억제할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비 급증과 과잉진료

OECD가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1997~2007년 사이 일인당 의료비 지출 증가율은 OECD  33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최고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연평균 일인당 의료비 지출 증가율이 8.7%에 달해 OECD 평균인 4.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고가약물 처방의 확대로 인한 약제비 지출의 증가, 인구 고령화, 상대적으로 긴 재원일수 등을 들었다. 한편 보건의료 제공자들을 위한 지불제도인 행위별 수가제는 이윤추구의 목적으로 불필요한 치료를 받도록 유인함으로써 과잉진료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국가 중 최하위인 1.7명에 그쳤으나, 의사 1인당 수진 횟수는 OECD 평균의 3배 이상을 기록해 제일 높은 수준이었다. 의사수가 적은데 반해 진료건수가 많다는 것은 과잉진료로 인해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OECD가 제시한 대책들

OECD는 의료비 지출과 과잉진료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효율성 개선을 통한 의료비지출 통제, 의약품 비용의 절감, 보건의료의 접근성 보장, 의료수가 조정 등을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또 의료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경쟁을 촉진시키고, 투자자 소유의 병원은 인수합병을 허용하며 현재 낮은 수준의 의사 수를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OECD는 의료비지출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병원에서 포괄수가제도 사용을 확대해 환자들의 재원일수를 줄이고, 인두제 도입하여 의사의 1인당 수진 횟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실제 정부가 1997년 5개 질병에 대해 포괄수가제도를 시행한 결과 의료비용이 14%, 재원일수가 6%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장기요양 서비스를 병원이 아닌 가정 및 장기요양 시설에서 하도록 하고 장기요양의 충분한 수용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약제비 절감을 위해서는 복제약의 효과적인 사용과 가격 인하 및 일반의약품의 약국판매 규제 완화를 대표적인 보완책으로 내놓았다. 또 본인부담금을 덜어주고 저소득 가구 및 환자본인부담금 상한선을 통해 환자들이 적절한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하며, 특정 의료전문분야의 부족현상 완화를 위한 의료수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도 지목했다.

염승돈 기자/인하
<youmsd@e-mednews.com>


·포괄수가제 :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에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표준화된 진료비를 보험자가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제도다. 진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더 많은 보험수가를 지급하는 행위별수가제의 상대적인 개념이다.
·인두제 : 의사의 하루 진료건수를 제한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불이익을 줌으로써 진료의 질을 유지하려는 제도.국민건강보험은 하루 75건을 기준으로 이를 초과하면 정상 보험수가의 일정률을 삭감해 차등 지급하고 있다.

2009년, 국민들은 총 16조원의 건강보험금을 모았다. 사업자들은 여기에 10조원을 보탰다. 정부는 3조 7천억 원의 예산도 모자라, 담배에 부과되는 건강증진기금 1조원까지 건강보험금으로 돌렸다. 회사와 국가가 건강보험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부담하는 우수한 건강보험 시스템. 게다가 지난 달 7일에는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과 WHO등이 공동 주최한 ‘2010 건강보험 국제연수과정’이 열려, 22개 국가가 한국 건강 보험의 우수성을 배우러 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공단은 32억 원의 적자가 났음을 공표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 8월까지의 적자는 2965억 원, 올해 예상 적자는 1조원을 훨씬 웃돈다. 연세대 서승환 교수 등이 진행한 연구에서 전망한 2030년 적자는 최소 22조원, 최대 66조원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무엇이 문제일까? 그 원인들을 하나씩 짚어보자.

▲ 적게 벌고 많이 쓰는 경영철학?

네덜란드 직장인의 경우 봉급의 20.5%를 건강보험금으로 납부한다. 독일과 프랑스도 각 14.2%와 13.5%로, OECD 국가들은 봉급의 약 15%를 건강보험금으로 납부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봉급의 5.33%에 불과한 ‘저보험료’를 낸다. WHO의 보건재정 전문가 잉케 마타우어 박사는 한국의 건강보험료율이 심각하게 낮으며, 이로 인해 보장성 확대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한국 의료보험의 보장성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보험적용 범위 확대’는 선거 공약의 단골 메뉴였고, 지난해에도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3년까지 3조원이 넘는 규모의 보장성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개발연구원 윤희숙 연구위원은 “정부가 특정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보장성 확대에 나서고 있다.”며 비난했다.

▲ 의약분업은 조제료를 남기고

한 환자가 정기적으로 고혈압 진단을 받는 과정을 보자. 의사는 진단 후 고혈압 약 ‘테놀민’을 1달간 복용하도록 처방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수가는 8780원이다. 그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발을 디디는 순간, 1970원이 계산된다. 환자의 방문 시마다 기본 조제 기술료 740원, 복약 지도료 680원, 약국 관리비 550원이 청구되는 것이다. 그리고 약 가격으로 8430원, 행위가로 5470원, 약품 관리료로 1940원이 더 부가된다. 총 17810원, 약 가격을 빼더라도 의사의 수가보다 높은 9380원이다. 게다가 고혈압 환자는 90% 이상이 재진이지만, 약국의 처방에는 재진시에도 늘 같은 금액을 청구한다. 혹, 심야 요금이 적용된다면 총 19890원이 청구된다.
2000년에만 해도 3896억 원에 불과하던 조제료는 의약분업 후인 2001년 1조 4349억 원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고, 지난 2009년까지 약품비를 제외한 조제료만으로 18조 4324억 원이 나갔다. 이러한 내용을 트워터에 올린 황상준 씨는 “약사 손은 다이아몬드 손인가”라며 혹평했고, 대한의사협회 또한 조제료의 급속한 증가가 건강보험 적자의 주원인이라 지적했다.

▲ 건보는 통합, 책임감은 분산

의약분업과 같은 시기에 일어났던 또 다른 큰 일이 있으니, 바로 ‘건강보험 통합’. 지역 혹은 회사 등의 단위로 건강보험금을 관리하던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통합한 것이다. 분산된 돈을 모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던 공단의 계산이었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지역 혹은 회사의 건강보험금이 적자가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기가 힘들었다.
그 결과, 보험료 미수금액1)과 부당지급액2)은 매년 증가추세를 보였다. 소송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미수금액의 경우, 2009년 미수금액은 300억원, 2010년 7월 말까지의 미수금액은 268억 원에 이른다. 부당지급액의 증가는 의료보험 지급 이전에 꼼꼼히 따져 보지 않은 이유가 큰데, 2009년 부당지급액은 2097억 원이었으며 올해는 2100억 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 노병(老病)은 죽지 않는다?

급속히 발전한 한국의 의료 속에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OECD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건강수명’의 경우 여전히 선진국과의 격차가 크다. 게다가 한국의 고령화 현상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신영석 연구위원은 고령화가 건강보험 재정을 급속도로 악화시킬 것이라 전망했다. 2009년의 경우 65세 이상의 인구가 건강보험 재정의 약 30%를 사용했으며, 전 인구의 15%이상이 65세가 되는 2020년의 경우 43%를 사용할 것이라 예측했다.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

건강 보험제도와 조제료, 그리고 보장성

의료보험에 가입된 경우, 의료 기관에 치료비를 지불할 때 일부를 공단에서 지급한다. 예를 들어 환자 부담률이 40%인데 병원에 10000원을 내야 한다면, 환자는 4000원만 내면 되고 남은 6000원은 공단으로부터 병원에 지급된다. 약국의 경우에도 환자가 돈의 일부를 내고, 나머지는 조제료 형태로 공단이 약국에 지급한다. 한편, 일부 치료행위에 대해서는 공단이 부담하지 않고 환자가 대부분을 부담하는데, 이러한 ‘비보험’ 항목을 줄이는 것이 ‘의료보험 보장성 확대’이다.

1) 미수금액 : 폭행이나 상해 등의 피해자를 치료하는 경우, ‘구상금’이라는 형태로 의료비를 미리 지급하고 가해자에게 그 돈을 청구한다. 하지만 가해자가 그 돈을 내지 않는 경우 미수금액으로 남는다.
2) 부당지급액 : 보험혜택을 받지 않아야 하는 환자가 보험혜택을 받았을 때 지급된 돈을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30일 전공의 제도를 총체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는 인턴기간의 축소 혹은 폐지 그리고 분과별 수련의 기간의 조절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대한의학회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연말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대한의학회는 지난 8월 20일 약 6개월에 걸쳐 진행된 '전문의제도 개선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대한의학회는 인턴 축소 혹은 폐지에 따른 진료능력 저하를 막기 위핸 대안으로 ▲전문의형(미국 모델) : 의대 졸업 후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전문의 과정 중 일정기간(1~3년)을 이수하면 진료면허 부여 ▲공통과정형(일본 모델) : 의사면허 취득 후 2년 간 공통과정을 거치면 진료면허를 주고 이후 3~4년의 전문의 과정을 거쳐야 함 ▲전문의/진료의 혼합형 : 의대 졸업 후 의사면허를 따면 전문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거나 2년 간 진료의사 과정 이수 후 진료면허 획득 등의 세 가지를 제시했다. 한편, 전공과목 수련의 이상적인는 모델로 유관과목의 공통수련과정 2년과 전문과목 수련과정 2년과 세부전문 수련과정 2년 등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인턴제도의 역사는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처음 실시했던 이 제도는 지금과는 그 방식이 다소 달랐다. 처음 1년동안에는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각 분과를 돌며 수련했지만, 그 다음 1년은 한 과에서만 수련을 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무려 한세기가 지나면서도 인턴제도는 그 효용가치를 인정받아 조금씩 제도적으로 정착해가면서, 전공의가 되기 위한 의과대학 졸업생들의 필수적 코스가 되고 있다. 즉 인턴제도는 학부기간의 임상 교육과 달리 의사로서 직접 진료를 하면서 여러 진료영역에 대해 배우고, 병원 생활에 적응하며 여러 과를 체험하며 향후 진로를 결정할수 있다는 장점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병원은 이러한 인턴 및 레지던트 제도를 통해 비교적 낮은 급여로 순종적이며 일정 기한이 지나면 퇴직하는 고급 인력을 사용할 수도 있기에 병원 입장에서도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그렇다면 현행 인턴제도가 문제시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로, 인턴제도의 불합리한 운영으로 수련의 질이 저하된다는 지적이다. 인턴의 수련기준이 자리잡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 수련 내용은 병원이나 과별로 다른데다가 의국의 잡무도 인턴이 상당부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빈번한 폭력, 근무시간에 대한 불명확한 기준 및 급여 등 부적절한 처우는 여전히 종종 표출되는 문제이다.
둘째, 지난해부터 개정된 의사고시를 고려했을때 인턴제도가 불필요 해졌다는 점이다. 작년부터는 의사면허 국가고시에 일차적인 진료능력을 평가하는 실기시험인 CPX와 여러 임상 술기들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OSCE가 추가되었다. 따라서 그 전에 비해 졸업생들의 임상적 능력이 어느정도 보장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학전문대학원의 도입으로 전공의 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개편이 필요해졌다는 지적이다. 학부4년, 의전원 4년, 5년의 수련기간, 남성의 경우 군문제가 더해진다면 최소 삼십대 중반은 되어야 전문의가 되는것이다. 의사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실제적 시기가 지나치게 늦추어지는 것은 의료 전반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인턴제도가 폐지된다면 이를 대체할수 있는 수단으로 크게 세가지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먼저 PA(physical assistant)로 이는 의사 업무를 보조하는 인력인 PA를 고용하는 제도이다. PA 제도는 지금도 흉부외과등 일부 지원자가 많지 않은 기피과에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PA는 다소 숙련도가 떨어져 일정기간 수련을 이수해야 술부 봉합이나 위관 교체등의 시술이 가능하기에 이들을 육성하는 것이 다소 힘들것이며, 혹여나 이들이 수준 이상의 업무를 부여받을 시에는 불법 의료행위의 가능성도 있어 다소 제도적으로 미비하다.
이를 보완한 제도가 NP(Nurse Practitioner) 제도이다. 이는 기존의 PA제도의 맹점을 보완한 것으로 이들 NP는 PA들 중 일정 정도 이상의 술기를 습득하고 검증받은 이들을 뜻한다.만약 이들의 업무를 제도적으로 정확히 규정한다면 지금 인턴이 맡고 있는 업무의 상당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 즉 수술보조나 설명보조등을 NP에게 위임하고 나머지의 업무를 레지던트가 맡는다면 제도가 바뀜에 따라 발생하는 인력공급 부족을 어느정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몇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NP를 고용할 시에는 기존 인턴의 1.5~2배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또한 병원에 순응적인 인턴에 비해 NP의 경우 연장근무 시에 근로기준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병원의 입장에서는 난색을 표할수 밖에 없다. 그리고 기존 전공의들과의 갈등 역시 예상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련 과정에서의 문제를 다른 나라들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을까? 미국의 경우 서브인턴제도를 운영하며, 학부 과정을 마친 후 일부과를 제외하고는 바로 레지던트 과정에 입문하는 식이다. 일본의 경우 1968년 이후 인턴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임상연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기초적 1차 진료 능력을 위한것으로 2004년 부터 2년 과정을 거쳐야 독립적인 진료가 가능하다. 독일 역시 2003년에 우리와 같은 인턴제도의 문제점 (과도한 노동,박봉 등) 때문에 인턴제도를 폐지한 바 있다. 영국은 의대 졸업 후 내과계 및 외과계 수련을 6개월씩 1년간 의무 수련을 거쳐 GMC(General Medical Council)로 승인해준다. 그 후 일반의로 3년의 수련기간을 갖고, 전공 분야에 따라 5~6년 추가되는 등 보통 전문의로 3년의 전문 과목을 수련한다.

민태홍 기자/순천향
<minth@e-mednews.com>

“과잉 진료 통제” vs “최선의 진료 보장”

올 하반기 의료계를 뜨겁게 달굴 이슈 중 하나는 ‘총액계약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29일 하반기 건강보험 수가 협상이 시작되면서 총액계약제 전환 논의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정형근 이사장은 올해 3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2012년까지 총액계약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의에 불을 지폈고 가입자 단체는 적극 환영, 의료계는 강한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지난 달 15일 민주당이 총액계약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논의가 의료계를 넘어 주요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총액계약제? 행위별수가제?

진료비 지불 방법은 통상적으로 지불단위에 따라 행위별수가제, 포괄수가제, 인두제, 총액예산제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행위별수가제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시행하는 제도로 서비스 항목별로 가격을 매겨서 보상하는 방식이다. 한편 총액계약제는 정부나 보험자와 의료기관이 미리 계약을 통해 일정기간 의료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총액으로 결정한 뒤 이를 의료기관에 보상하는 방식이다.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의료제공자는 제공한 모든 서비스에 대해서 지불을 받지만, 총액계약제에서는 환례 수가 증가하거나, 등록 환자수가 늘어나더라도 일정금액밖에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미래에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행위별수가제 하에서는 전적으로 보험자가 모든 위험을 떠안게 되지만, 총액예산제는 의료제공자가 모든 위험을 감수한다. 이처럼 위험 부담의 주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의료제공자는 행위별수가제를, 반대로 보험자는 총액예산제를 선호하게 된다.

왜, 지금, 총액계약제인가?

건강보험공단은 올해 1~8월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2965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재정 불안은 곧 건강보험 체제 자체를 흔들 수 있고, 보장성 약화로 이어져 의료 안전망을 취약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 국고 지원 확대, 건강보험료 인상 등의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현행 지불 제도의의 개선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는 의료 공급자가 소득 증가를 위해 불필요한 검사를 하거나 외래 방문 횟수를 늘리는 등 의료서비스를 과잉 공급하거나, 비급여 의료서비스의 제공량을 늘리려는 강력한 유인이 존재한다. 또 치료 효과가 높은 의료서비스보다는 높은 이윤을 보장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경제적 유인을 가지게 되고, 이는 나아가 진료과목별 의사 수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의사들의 전문 과목 선택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지불제도를 개편하여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 팽창이 해소되면 의료비가 적정화되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또한 확보되어, 급여 수가 인상과 급여 범위 확대도 꾀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불제도 개편으로 공급자의 적정 수가 보장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료계 ‘절대 불가’

한편 의료계는 이번 사안에 대해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총액계약제는 비용절감의 유인을 가지기 때문에 의사가 최소한의 처방만 하게 하여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행위별수가제와 달리 총액계약제 하에서는 첨단 의학기술을 도입하려는 동기가 저하되기 때문에 의학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건보 정형근 이사장은 다양한 인센티브와 모니터링을 하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독일 등의 사례를 보면 의료 서비스 질이 저하됐다는 연구는 없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불제도 개편과 함께 지불 수준(수가) 향상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의료 서비스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 의료계는 특히 원가보전률이 90%에도 못 미치도록 책정되어 있는 불합리한 수가 체계를 개선하지 않은 채 총액계약제를 논의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개원가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라며 이번 총액계약제 논의에 대해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정책’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한편 일부 공급자 측은 총액계약제 논의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지불제도 개편 이전에 의료전달체계 확립, 보험료의 적정수준 인상, 국고보조 확대 등을 우선 해결할 것을 주문했다.

외국의 사례는?

행위별 수가제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독일의 경우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총액계약제를, 병원급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포괄수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도 행위별수가제와 총액예산제를 병용, 미국 역시 행위별수가제와 포괄수가제를 병용한다.
아시아 국가 중 총액계약제를 적용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대만이다. 대만은 1995년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실시하면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행위별수가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재정 적자가 심각해지면서 총액계약제를 도입했고 재정 안정성을 확보했다. 현재 대만의 건보 보장률은 85%, 국민의 의료 이용 만족도는 80%에 이른다. 현재 우리나라 건보공단은 이런 대만의 성공 사례를 총액계약제 추진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성공 뒤에는 의료 공급자들의 희생이 강요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총액계약제가 도입되는 과정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공급자 단체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다. 대만의 사회적 합의가 반쪽짜리 사회적 합의였다는 비난을 받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함께 맺는 합의 계약제로

총액계약제 문제로 보험자와 가입자, 그리고 공급자는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첨예한 의견차를 드러내 논의가 앞으로도 난항을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수가를 정상화 하는 동시에 합리적인 지불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서로 간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열려있다. 서울대 이진석 교수는 건강보험 가입자 포럼에서 "건강보험제도를 구성하는 이해당사자간 힘의 관계가 맞선 상태에서 일방의 주장만을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현재 제도 유지를 답습만 하게 된다"며 합의를 통해 접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전진한 기자/대구가톨릭
<redpill@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