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2009년, 국민들은 총 16조원의 건강보험금을 모았다. 사업자들은 여기에 10조원을 보탰다. 정부는 3조 7천억 원의 예산도 모자라, 담배에 부과되는 건강증진기금 1조원까지 건강보험금으로 돌렸다. 회사와 국가가 건강보험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부담하는 우수한 건강보험 시스템. 게다가 지난 달 7일에는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과 WHO등이 공동 주최한 ‘2010 건강보험 국제연수과정’이 열려, 22개 국가가 한국 건강 보험의 우수성을 배우러 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공단은 32억 원의 적자가 났음을 공표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 8월까지의 적자는 2965억 원, 올해 예상 적자는 1조원을 훨씬 웃돈다. 연세대 서승환 교수 등이 진행한 연구에서 전망한 2030년 적자는 최소 22조원, 최대 66조원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무엇이 문제일까? 그 원인들을 하나씩 짚어보자.

▲ 적게 벌고 많이 쓰는 경영철학?

네덜란드 직장인의 경우 봉급의 20.5%를 건강보험금으로 납부한다. 독일과 프랑스도 각 14.2%와 13.5%로, OECD 국가들은 봉급의 약 15%를 건강보험금으로 납부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봉급의 5.33%에 불과한 ‘저보험료’를 낸다. WHO의 보건재정 전문가 잉케 마타우어 박사는 한국의 건강보험료율이 심각하게 낮으며, 이로 인해 보장성 확대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한국 의료보험의 보장성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보험적용 범위 확대’는 선거 공약의 단골 메뉴였고, 지난해에도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3년까지 3조원이 넘는 규모의 보장성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개발연구원 윤희숙 연구위원은 “정부가 특정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보장성 확대에 나서고 있다.”며 비난했다.

▲ 의약분업은 조제료를 남기고

한 환자가 정기적으로 고혈압 진단을 받는 과정을 보자. 의사는 진단 후 고혈압 약 ‘테놀민’을 1달간 복용하도록 처방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수가는 8780원이다. 그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발을 디디는 순간, 1970원이 계산된다. 환자의 방문 시마다 기본 조제 기술료 740원, 복약 지도료 680원, 약국 관리비 550원이 청구되는 것이다. 그리고 약 가격으로 8430원, 행위가로 5470원, 약품 관리료로 1940원이 더 부가된다. 총 17810원, 약 가격을 빼더라도 의사의 수가보다 높은 9380원이다. 게다가 고혈압 환자는 90% 이상이 재진이지만, 약국의 처방에는 재진시에도 늘 같은 금액을 청구한다. 혹, 심야 요금이 적용된다면 총 19890원이 청구된다.
2000년에만 해도 3896억 원에 불과하던 조제료는 의약분업 후인 2001년 1조 4349억 원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고, 지난 2009년까지 약품비를 제외한 조제료만으로 18조 4324억 원이 나갔다. 이러한 내용을 트워터에 올린 황상준 씨는 “약사 손은 다이아몬드 손인가”라며 혹평했고, 대한의사협회 또한 조제료의 급속한 증가가 건강보험 적자의 주원인이라 지적했다.

▲ 건보는 통합, 책임감은 분산

의약분업과 같은 시기에 일어났던 또 다른 큰 일이 있으니, 바로 ‘건강보험 통합’. 지역 혹은 회사 등의 단위로 건강보험금을 관리하던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통합한 것이다. 분산된 돈을 모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던 공단의 계산이었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지역 혹은 회사의 건강보험금이 적자가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기가 힘들었다.
그 결과, 보험료 미수금액1)과 부당지급액2)은 매년 증가추세를 보였다. 소송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미수금액의 경우, 2009년 미수금액은 300억원, 2010년 7월 말까지의 미수금액은 268억 원에 이른다. 부당지급액의 증가는 의료보험 지급 이전에 꼼꼼히 따져 보지 않은 이유가 큰데, 2009년 부당지급액은 2097억 원이었으며 올해는 2100억 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 노병(老病)은 죽지 않는다?

급속히 발전한 한국의 의료 속에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OECD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건강수명’의 경우 여전히 선진국과의 격차가 크다. 게다가 한국의 고령화 현상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신영석 연구위원은 고령화가 건강보험 재정을 급속도로 악화시킬 것이라 전망했다. 2009년의 경우 65세 이상의 인구가 건강보험 재정의 약 30%를 사용했으며, 전 인구의 15%이상이 65세가 되는 2020년의 경우 43%를 사용할 것이라 예측했다.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

건강 보험제도와 조제료, 그리고 보장성

의료보험에 가입된 경우, 의료 기관에 치료비를 지불할 때 일부를 공단에서 지급한다. 예를 들어 환자 부담률이 40%인데 병원에 10000원을 내야 한다면, 환자는 4000원만 내면 되고 남은 6000원은 공단으로부터 병원에 지급된다. 약국의 경우에도 환자가 돈의 일부를 내고, 나머지는 조제료 형태로 공단이 약국에 지급한다. 한편, 일부 치료행위에 대해서는 공단이 부담하지 않고 환자가 대부분을 부담하는데, 이러한 ‘비보험’ 항목을 줄이는 것이 ‘의료보험 보장성 확대’이다.

1) 미수금액 : 폭행이나 상해 등의 피해자를 치료하는 경우, ‘구상금’이라는 형태로 의료비를 미리 지급하고 가해자에게 그 돈을 청구한다. 하지만 가해자가 그 돈을 내지 않는 경우 미수금액으로 남는다.
2) 부당지급액 : 보험혜택을 받지 않아야 하는 환자가 보험혜택을 받았을 때 지급된 돈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