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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의대생들과 학술 문화 교류해요 - AMSA

 AMSA(Asian Medical Students’ Association)는 아시아의대생연합으로,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영국 등 24개국이 참여하는 학생 주도의 비영리단체입니다. 이에 참가국인 저희 AMSA Korea는 1983년에 만들어졌고, 현재 9개의 회원학교와 1개의 준회원학교가 있으며 약 200명의 의대생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AMSA는 일년에 2번, 여름과 겨울에 있는 AMSC(AMSA Conference)에 참여하는 것을 주활동으로 합니다. AMSC는 각 나라마다 돌아가면서 주최하는 의대생들만의 컨퍼런스인데요, 약 일주일에 걸쳐 24개국 500여명의 의대생들이 함께 모여 강의와 토론, 관광, 문화체험 등을 하고, 각 참가국에서는 컨퍼런스 주제에 따른 Paper, Poster, Movie를준비해 발표합니다. 마지막밤에는 Farewell party를 하는데 이때 나라별 재미난 문화공연도 선보이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두 달에 한번 있는 정기총회와 MT, TC, 졸업생환송회 등의 행사 외에도 pre/post conference project를 구상하고 실행합니다. 지난 겨울에는 AMSC 주제였던 AIDS와 관련한 pre-conference project로 에이즈예방협회와 함께 명동에서 ‘AIDS의 날’ 행사를 주최했습니다. 이 날 행사는 회원학교 의대생들로부터 받은‘에이즈환자를 편
견없이 치료하겠다’는 선언문의 낭독으로 시작해,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 이벤트와 프리허그 등을 선보이며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AMSA는 방학 때 해외에 나가 다른 나라 의대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국내의 다른 학교 의대생들과의 우정도 만들 수 있는 동아리입니다. 그리고 AMSA만의 pre/post conference project는 어떤 동아리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함입니다.
 AMSA에 관해 궁금하신 분들은 AMSA 가톨릭·건국·고려·서울·성균관·연세·울산·이화·중앙·한양 학교회장들에게 문의 하거나, amsakorea@gmail.com으로 메일주세요♬

양세령/AMSA Korea회장
정리_ 정다솔 기자/중앙 <astronova@naver.com>
자유롭게 참여하는 그 곳, 서울역 노숙인 진료소

 금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문을 여는 서울역 노숙인 진료소는 어느덧 문을 연지 13년이 되었습니다. 1998년 IMF의 경제 위기 속에서 많은 실업자와 노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 이분들에게 약간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몇몇 의대생들과 인도주의의사협회 선생님들이 모여 진료소를 연 것이 시작이 되었지요. 초기 진료소는 을지로 지하도에 임시로 차려졌었는데, 2002년도에 노숙인 상설 진료소를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임시 진료소도 서울역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워진 상설 진료소가 ‘서울역 다시서기 센터’입니다.

 서울역 진료소는 보통 30~40명의 노숙인, 독거노인 등의 환자분이 오시고 15~2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서 운영됩니다. 임시 진료소에서 하는 일은 노숙인분들 줄세우기, 접수, 예진, 진료, 약 조제, 검약, 복약지도로 나눌 수 있구요. 진료는 현재 병원에 계신 의사선생님들이 해주시는데 인의협 소속의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나오고 계십니다. 진료 이외의 일은 모인 대학생들이 하고 있는데 주로 의대, 간호대, 약대 등 보건의료계열 학생들입니다. 물론 공대, 자연대 등 타과의 학생들도 있고,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오는 학생들도 있으며 방학 때에는 미국이나 호주 등 다른 나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오기도 합니다.

 서울역 진료소는 노숙인 분들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벗어나 참여하는 학생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예진을 보고 약을 조제하는 활동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 적용해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노숙인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의식주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등 그분들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주지요. 가끔 술에 잔뜩 취해서 오시는 분,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신 분들을 대하다 보면 다양한 사회의 이면을 접하게 되기도 합니다.
 진료소의 또다른 매력 중 하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진료활동을 마치면 그날 하루의 진료소 평가를 위해 뒷풀이를 합니다. 운영상 문제가 되었던 점을 토론하고 다음을 위해 좋은 의견을 나누는데 이것이 끝나면 여러 학교에서 모인 학생들이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음주도 하며 친분을 쌓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저희 진료소는 강제성이 없습니다. 한번 진료소를 나가게 되면 매주 금요일마다 나가야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담을 가질 수 있는데 서울역 진료소는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줘 참여를 본인의 의사에 맡깁니다. 다만 학기마다 운영위원회를 뽑아 운영진 학생들이 진료소가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진료소 물품과 약을 챙기고 모인 학생들을 적절히 배치하는일을하고있습니다.

 이런 서울역 노숙인 진료소는 관심있는 분들에게 언제든 열려있습니다. 한번 오고 두번 오다보면 이곳의 활동 그리고 새로 만난 친구들의 매력에 빠져 계속 오게 됩니다. 관심있는분들은 저희 클럽(homeless.cyworld.com)에 들어오시면 진료소가 어떤 곳이고 주마다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클럽에 공지된 운영진 연락처에 연락을 하면 진료소에 오는 방법, 진료소의 위치, 여는시간, 하게되는 일 등을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답니다. 관심 있는 모든 분을 환영합니다.~^^

신민아/서울역노숙인진료소 학생운영위원
정리_ 정다솔 기자/중앙 <astronova@naver.com>

다양한 시선으로 주고 받는 마음의 대화
정신과의사 정혜신 선생님과 나누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자신을 왜곡하는 일을 멈출 때,
그리고 실패를 경험한 후에도 자신을 탓하지 않을 때,
그럴 때, 인간은 비로소 온전히 혼자 서게 된다는 것이지요.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자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집중하고 어루만질 수 있는 게
진짜배기 독립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정혜신의「그림에세이」中


 쉽고도 명료하다. 그의 글 말이다. 그러나 그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정신과의사’ ‘칼럼니스트’ ‘강연자’ ‘심리분석연구소 대표’ 등 참 화려하고 다채롭다. 하지만 이 중 어느 옷을 걸치든 억지스러움 없이 담담히 자기 색채를 담아 전달할 줄 아는 그.
 ‘진짜배기’ 자신을 알고 행하는 것은 닦여진 길이 아니어도 웃으며 걷는 삶임을 마음의 언어로 전하는 정혜신선생님을 만나보았다.

정신과는 자기 색깔이 강한 진료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특별히 정신과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글쎄요, 사실 정신과를 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정신과가 그냥 무작정 좋았어요. 본과 2학년 방학 때 정신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우울증, 홧병 연구차 보길도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쫓아갔었어요. 병원 실습을 돌면서는 집에 갈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폐쇄병동에 남아있기도 했고요. 학생이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어요, 당시에는 그냥 환자들 곁에 있는 것이 좋았어요.

 침습적인 처치를 싫어하는 성격도 정신과를 택하는 데 한 몫 하지 않았나 해요. 본과 1학년 때 해부학 실습을 하고 한동안 살코기를 먹지 못 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심했거든요. 병원 실습을 나가고 인턴을 할 때에도 다른 친구들은 비교적 쉽게 하는 꿰매기 등의 상처치료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인턴 때에도 침습적인 처치를 하지 않으려고 지방병원에 파견 가는 것(간단한 시술만 하면 일과가 끝나므로 인턴들에겐 휴가나 마찬가지거든요)도 친구들에게 다 양보하고 그랬죠.

 정신과를 무척 하고 싶었지만 정신과 레지던트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당시 정신과를 희망하는 여학생이 12명이나 되었는데 여학생은 1명만 뽑겠다고 공언이 된 상태였고, 그나마 그 1명도 이미 내정된 상태였어요. 정신과를 지망하던 다른 여학생들이 다른 과로 전공을 돌리기 시작했죠. 하지만 전 막무가내로 끝까지 정신과를 고집했어요. 결국 전공의 시험을 통해 선발하기로 결정이 났고 전 마침내 정신과 레지던트가 되었지요.

 

중년 남성의 심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신 것으로 압니다. 흔히 다뤄지지 않는 분야인데, 어떻게 흥미를 갖게 되셨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에 대한 연인이 남성심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해요. 저희 아버지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어머니와 사별을 하시고 3남매를 혼자 키우셨어요. 아버지는 어렸을 적 의붓어머니 밑에서 배다른 동생과 살아야 했던 상처스러운 과거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당신 자식들에게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주지 않으려 하셨던 거 같아요. 외롭고 무척 힘드셨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아버지의 심리랄까, 그런 것에 항상 관심이 많았죠.

 본격적으로 남성심리는 연구하게 된 것은 1997 IMF 당시 대규모 실직사태를 경험하면서 직장에 남겨진 직장인들의 심리를 분석하기 시작하면서예요. 당시 사회적으로 실직자들에 대한 조명은 많았지만 정작 조직에 남겨진 이들은 실직을 피해간 운 좋은 사람이란 인식만 강했거든요. 그러나 제가 보기엔 수없이 해고당하는 동료들을 지켜봐야만 했던 그들의 심리문제도 만만치 않았어요.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존 이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한 삶을 되찾길 바랐지만 실제로는 결코 그러하지 못했던 것과 같았죠.

 사실 중년 남성은 정신과의 주요 고객이 아니에요. 정신과에는 어린 아이들이나 중년 여성이 많이 찾아오니까요, 어떻게 보면 정신과의 관심에서 벗어난 대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관심사에서 벗어난 중년 남성들을 정신과의 진료영역 안으로 새롭게 끌어들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들에게도 심리적 치유가 필요하거든요.

 

임상의사로 계시다가 마인드 프리즘이라는 심리분석연구소를 설립하셨는데요,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요?

 개인적인 심리분석과 면담을 통해 내담자가 더 나은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회사에요. 심리분석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기업의 CEO나 임원진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의사들처럼 개업의나 교수가 아닌 길을 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직장인들의 문제를 연구하다 보니 기업 내에서도 정신과 의사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 기업의 CEO나 임원진을 맡은 사람들은 밑에서부터 수많은 자격 검증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라온 사람들이에요, 보통 대단한 인텔리들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도 자신만의 문제를 갖고 있고, 기업 운영에 필요한 정신적인 부분을 관리하고 싶어합니다.

 사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정상이에요.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 범주에 들지 않는 환자들이죠. 하지만 기업체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격적으로는 정상이라고 해도 정신과적 상담을 받고 싶어하는 수요가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곳의 대표이사로서 선생님은 어떤 일을 맡고 계신가요?

 마인드 프리즘은 두 명의 대표이사가 운영하고 있는데 한 분은 경영을 전담해서 맡으시고 저는 정신과 의사로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있죠. 업무는 모두 분담되어 있어서 심리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분석하는 분이 있고, 회사 관리와 홍보를 맡는 분이 있고 하는 식인데, 저는 그 중 심리분석이 끝난 내담자와 일대일 개인상담 하는 것을 맡고 있어요.

 

마인드 프리즘을 세우지 않았으면 얻지 못했을 보람, 혹은 대표로서의 장점이 있는지요?

 물론 있죠. 앞에서 말했듯이 기업의 CEO들은 지적능력이 뛰어난 편이고, 보통 정신과 임상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보다 심리적 문제의 치유 속도가 훨씬 빨라요. 경과가 무척 좋은 거죠. 당연히 의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되요. 또한 이들은 조직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파급효과가 크다는 장점도 있어요. 일례로 네이버 지식인 개발을 하신 분의 심리분석을 맡은 적이 있는데요, 이 분이 심리분석을 받고 정말 좋았다고, 일반인들도 분석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지금 네이버와 함께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심리분석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칼럼에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에 대한 심리분석이 많은데요, 모두 직접 대면해서 쓰신 건가요?

 아니에요. 2000년부터 신동아, 한겨레 등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에 마침 유명인사들과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심리를 분석해서 써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저는 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직접 대면해 이야기를 하고선 내가 정신과 의사라는 이유로 이 사람의 심리는 이러이러하다고 풀어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재미도 없구요. 그래서 대신 그 사람의 말이나 글 등의 행적을 모아서 분석해보는 글쓰기를 하게 된 거에요. 그게 참 반응이 좋아서 독자 중에 어떤 분들은 자신의 글을 보내놓고 제 심리를 좀 분석해주십시오하시기도 했지요.(웃음)

 

세 자녀를 두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이자 대표로 활동하면서 1인 다역을 소화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어머니로서 일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저는 인생에 에누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거쳐야 할 힘든 일이 있으면 반드시 거쳐 가야지, 힘들다고 피하면 훗날 인생의 한 부분에 마이너스가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여성은 육아와 집안일 여기에 사회생활까지 멀티로 해내야 하기 때문에 인간적 깊이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지요. 그래서 같은 연령대의 남성에 비해 여성이 인간적으로 성숙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봐요. 중년 남성들에게 흔히 닥치는 심리적 문제(‘40대 남성의 성장통이라고 비유되는)도 이것의 연장선상이에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일수록 가정은 거의 돌보지 않고 일에만 빠져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중년이 되면서 점차 마이너스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죠.

 

주위에 의대생들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당부하시고 싶으신 말은?

 저는 의과대학 학생 시절에 꽤 불행했어요, 물론 정신과 의사가 되면서 행복해졌지만요. 의과대학 시절에는 다른 분야로 조금이라도 눈을 돌렸던 친구들은 모두 낙제를 당하곤 했어요. 때문에 저도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싶었지만 현실과 타협해 꾸역꾸역 시험보고 진급하는 그런 생활을 했죠.

 의과대학 교육과정이란 것이 어찌보면 6년 동안 사회나 인간, 문화 등에 대한 흥미를 모두 거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낙오당하지 않기 위해 많은 의대생들이 의학 밖에 모르는, 인간적 성숙이 결여된 인간이 되고 말지요. 그래서 전 의대생들이 의과대학 생활이 성숙면에서 볼 때 비정상적인 과정이라는 생각만이라도 했으면 해요. 이런 생각이 나중에 의사가 되었을 때 자신의 시야를 넓히는 활동을 찾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거든요.

 
인터뷰 준비·진행_ 안지윤/관동, 이예나/순천향
정리·사진 _ 정다솔 기자/중앙
<
astronova@naver.com>
·················· 약력
- 現마인드프리즘(주) 대표
- 前<마음과 마음 신경정신과> 원장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1998년,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직장인들의
 심리적 공황상태를 연구한 [ADD 증후군]을 국내 최초로 제기
·················· 저서
- 정혜신의 그림에세이‘마음 미술관’(2007)
- 삼색공감 (2006)
- 사람 VS 사람 (2005)
- 남자 VS 남자 (2001)
- 불안한 시대로부터의 탈출 (1999)
·················· 칼럼
-「 한겨레신문」‘정혜신칼럼’
: 2003. 01 ~ 2007. 02
-「 시사저널」‘정혜신의 정신탐험’
: 2002. 03 ~ 2004. 05
-「 월간 신동아」‘정혜신의 인간탐구’
: 2000. 08 ~ 200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