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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위한 BIG ISSUE

76호(2010.8.30.)/문화생활 2010. 9. 4. 20:37 Posted by mednews
노숙자들의 자립을 위한 글로벌 잡지, 한국에 상륙하다


8월 초 서울의 한 대학 정문 앞, 빨간 모자를 쓴 한 남자가 서 있다. 잡지를 손에 들고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웃고 있는 남자, 정체가 무엇일까? 그 표지 위에는 The Big Issue Korea라고 쓰여져 있는데..

40여쪽 되는 분량의 얇은 잡지인 빅 이슈 코리아. 얼핏 보면 평범한 월간지 같지만 다른 엔터테인먼트 잡지와는 다르게 판매원들이 노숙인이라는 것에 이 잡지의 특색이 있다. 홈리스들의 자립성을 되찾아주는 것을 판매목적으로 하는 글로벌 잡지 ‘빅 이슈’가 2010년 7월 5일, 한국에서 ‘빅 이슈 코리아(The Big Issue Korea)’라는 이름으로 창간호를 출판하였다.

Working, Not Begging/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고 있습니다.

‘빅 이슈(The Big Issue)’는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매체로, 노숙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창간된 대중문화잡지이다. 홈리스 출신인 존 버드(John Bird)와 더 바디샵의 공동창립자인 고든 로딕(Gordon Roddick)이 만든 이 잡지는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5개국에서 출간되고 있으며, 노숙인들이 구걸을 하는 대신 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으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에 발행의 목적이 있다. 자선단체가 아니라 잡지 발행을 통해 자체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이를 재투자하여 사회적 혜택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특수한 목적을 가진 잡지인 만큼 운영 방식도 독특하고 체계적이다. 빅 이슈 코리아의 방식을 예로 설명하자면, 판매자로 일할 의지가 있는 노숙인들은 면접과 교육과정을 거친 후 10권의 잡지를 처음에는 무료로 제공받는다. ‘빅판’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한 권에 3,000원씩 받고 잡지를 판매하면 30,000의 수익을 얻게 되고, 이를 원금으로 하여 잡지를 권당 1,400원에 구입하여 다시 판매한다. 그러면 한 권당 1,600원의 수익이 남게 되고, 이렇게 잡지 판매로 얻어지는 이익은 모두 판매자에게 돌아가는데, 대신 하루 수익의 50% 이상을 반드시 저축하여야 한다.

처음에는 임시빅판으로 일하다가 15일 이상 꾸준히 매상을 올리면 정식 빅판이 되어 고정 판매처를 지정받게 된다. 위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이 일한 만큼 이윤이 남기 때문에 동기 부여가 되어 더욱 열심히 잡지를 판매하게 된다. 정식 빅판이 되면 처음 6개월 동안은 빅 이슈 코리아측에서 고시원 등의 숙소를 제공하고, 300만원을 저축하는데 성공하면 임대주택을 제공한다. 또한 개인이 원할 경우 취업과 창업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잡지를 파는 것은 간단한 업무지만 이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그 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경제적인 자립성을 되찾아 사회의 일원으로 재합류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빅 이슈는 자립을 도울 뿐만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숙소, 건강, 사회 일원으로의 합류까지 모두 도와주는 통합적인 자립지원사업이다.

빅 이슈, 한국에 오다

한국판인 빅 이슈 코리아는 일본, 타이완에 이어 아시아 지역에서 3번째로 출간된 빅 이슈로, 다른 국가들에서와는 다르게 일반 시민들이 만든 온라인 카페에서 시작하였다. 홈리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우리나라에도 영국의 빅 이슈와 같은 매체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13년동안 노숙인들을 돕는 활동을 해온 비영리민간단체 ‘거리형 천국’과 손잡고 ‘빅 이슈 코리아’를 창간하였다. 창간 준비 단계에서 ‘서울형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어 서울시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창간호를 총 3만부 발행하였으며 현재 두 번째 호인 8월호가 신촌, 광화문, 강남, 여의도, 목동 등 서울 30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노숙인을 위해 각자의 재능을 나누다

잡지 판매량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콘텐츠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가진 빅 이슈라도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사람들이 사서 읽지 않을 것이다. 외국의 빅 이슈는 사회적 인사들이 각자의 재능과 영향력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폴 매카트니, 마돈나, 데이비드 베컴, 레이디 가가 등 유명인사들이 무상으로 표지모델을 자청하였으며, 아멜리아 노통브, 조앤 K. 롤링 같은 작가들이 무료로 글을 기고하였다. 또 의사, 기자, 교사 등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원들이 기사를 제공하고, 시간과 체력이 되는 사람들은 봉사로 참여하여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고 있다. 한국판도 예외는 아니어서, 국제 광고제에서 40여개의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광고기획자 이제석씨가 50호까지 표지디자인을 무상으로 담당하기로 해 화제를 모았다. 현재 2호까지 발간된 잡지 속에는 얼마 전 내한한 안젤리나 졸리 인터뷰,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유명한 조니 뎁 기사, 최근 개봉한 트와일라잇 시리즈 ‘이클립스’ 기사, 요리 레시피, 유행 패션 정보 등 젊은 층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사들이 실려있다.

잡지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인 존 버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들의 자활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등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잡지를 자랑스럽게 판매하는 홈리스와 즐겁게 사서 읽는 독자들이 만나는 것이 그러한 동등한 관계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단순한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노숙인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가짐으로써 남들과 동등하게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빅 이슈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영국 빅판의 ID카드에 적혀있는 ‘Working Not Begging’이라는 문구가 그것을 말하고 있다.

문서영 기자 / 을지

<celeste@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