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속 편하고 몸 편한 연구실 생활을 접고 아프리카로 날아간 기생충학자가 있다. 그 주인공은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의 정준호 씨. byontae라는 아이디로 유명한 과학블로거이기도 한 그가 아프리카대륙의 남동부, 스와질랜드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한 약력과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영국의 University of Bath에서 분자세포생물학을 전공하고 London School of Hygiene and Tropical Medicine에서 기생충학석사를 마친 정준호라고 합니다. 그냥 기생충이 좋아서 무작정 아프리카로 떠나와 지금은 스와질랜드에서 기생충 유병률 조사와 현지 클리닉 의료보조를 하고 있습니다. 기생충 오타쿠라 불러주실 때가 가장 기쁜, 그런 사람입니다.
-기생충학을 전공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공자로서 느끼는 기생충학의 학문적인 매력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기생충이란 생물에 처음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학부 때 영국건강보호국에서 나온 분의 강의를 듣게 되면서였습니다. 이전에 박테리아나 관련 감염성 질환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를 보다 포괄적으로 공부 할 수 있는 기생충이라는 생물의 매력이 참으로 대단하더군요. 처음에 기생충학을 전공하겠다고 학부 담당 교수님과 상의를 했을 때는 왜 그런 사양학문을 전공으로 삼겠냐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기생충에 대한 오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기생충학 이라 하면 단순히 회충, 촌충 같은 선충들이나 말라리아 같은 원충들, 혹은 벼룩이나 모기 같은 체외기생충들만 다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기생(parasitism)을 포괄적으로 본다면 거의 대부분의 병원체들이 기생형 생활을 하고 있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기생충은 진화를 주도하고 성 발생을 유도한 중요한 생물이며, 최근에는 위생가설을 통해 단순히 기생충에 의한 감염질환 뿐만 아니라 숙주와의 면역반응을 통해 의학적 사용법을 연구하는 분야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 NGO 단체의 일원으로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떠나셨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단체이고, 또 그런 방법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재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모임이라는 NGO에 파견 나와 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기생충 연구를 위해 현장으로 나가는 일은 연구자로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생충 질환을 단순히 교과서를 통해 피상적으로 공부하기 보다는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현장에서의 경험 또한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구요. 단순한 진단장비조차 없는데다 자본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에 나와 연구를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제너럴닥터 분들과 헬스로그의 필진 분들, 또 충북대 기생충학교실 분들, 질병관리본부 분들이 장비와 제반 지식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셔서 현미경과 같은 기본적인 장비를 마련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너럴닥터에서는 트리파노소마 커피를 통해 수익금 전액을 지원해 주시기도 하셨구요. 이렇게 하나하나 준비해 가는 과정 또한 큰 경험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 아프리카에서의 계획하신 여정의 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진행하시는 기생충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 어려운 점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또 그동안 느끼신 의료봉사활동에 대한 소감은 어떠십니까? 활동 중 있었던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세요.
현재 클리닉 주변에 있는 학교들을 대상으로 채변 및 기생충 검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약 600여명의 학생들 채변검사를 했는데요, 감염률은 약 25% 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여기서 채집한 샘플들은 이제 한국에서는 비교적 찾기 힘든 기생충들이라 현재 충북대 기생충학교실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생충자원은행으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흔히 아프리카에서 의료지원을 한다고 하면 말라리아 같은 열대질환들을 흔히 보게될거라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 어디나 흔한 질병들은 감기, 설사, 소화불량, 가벼운 외상 같은 질환들입니다. 장비 부족으로 응급환자를 볼 수도 없어서 시골 보건소 같은 느낌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단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환자 한분한분의 병력,가족력을 꼼꼼이 물어가며 인간적 유대를 쌓고, 고맙다며 집에서 키운 고구마나 아보카도, 구아바 같은 것을 들고와 먹으라 손에 쥐어주시는게 제일 즐거운 순간입니다.
-아프리카의 무서운 질병이라면 흔히 '에이즈'를 떠올리고 단번에 기생충질환을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 것 같습니다. 현황은 어떤지, 그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떠한 특정한 형태의 보건정책이 실현되고 있는 것인지, 또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현재 스와질랜드는 세계에서 HIV 감염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성인 중 약 40%가량이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HIV 감염이 가장 당면 과제임은 부정할 수 없지요. 하지만 단순히 사망률 기준으로 보지 않고 삶의 질의 측면에서 본다면 기생충 질환 역시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충이나 회충 같은 장내 선충의 감염자는 현재 20억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흔한 질병이지요. 하지만 장내 기생충으로 당장 사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무시되고 있습니다. 여기 학생들의 감염률은 지금 25% 가량 되니 절대 적은 수치는 아니지요. 그나마 학교들을 기준으로 대량약물투여(MDA)을 통해 관리가 되어 이정도 수준이니 꾸준히 투약을 하지 않는 성인들의 감염률은 더 높을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지에서도 이제야 감염자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의료인력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HIV 감염자 확인으로도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때문에 채변검사를 통한 기생충 감염자 확인 보다는 대변에 기생충이 나온 사람들만을 클리닉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요. 사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의료인력의 절대 부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스와지 인구가 100만 가량인데 의사는 170명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체계적인 보건정책이 수립되더라도 그를 진행할만한 의료인력이 부족하니 장기적으로 어떤 계획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지요. 궁극적인 해결책은 현지에서 진단을 할 수 있는 전문가나 간호사 같은 양질의 의료인력을 배출해 낼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것이겠습니다. 아마 단시간 내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의과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하고 싶은 말이 혹시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한국에서는 이제 의대에서 기생충학이 1학점짜리 과목이라 들었습니다. 기생충학을 전공하고 기생충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비록 임상적 중요성은 줄어들었다해도, 향후 기생충이 가지는 가능성은 무궁무진 하거든요. 그런면에서 많은 분들이 조금 더 기생충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기생충학이 단순히 충란 모양외우는 과목이 아니라 다른 매력도 충분히 많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끝으로 아프리카에서의 활동이 끝난 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일단 아프리카에서의 기생충질환과 열대의학에 대한 책도 집필하고 이에 대한 저변과 인식이 없는 한국에 열심히 알리는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학 공부를 좀 더 해서 보다 체계적인 의료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돌아오면 더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배출되는 양질의 의료인력, 그러니까 이 신문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이 조금의 시간을 투자해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구현담 기자 /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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