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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대한 은유를 넘어 환자를 만나다.
HIV 감염인 인권연대의 강석주 대표님에게 듣는 환자 이야기

 
 
수전 손택은 일찍이 ‘은유로서의 질병’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환자들이 가장 깊이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다'라고 지적하면서 결핵 ? 암 ? 에이즈 를 포장하고 있는 메타포(metaphor)를 비판했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결코 책 속에 갇힌 표현이 아니다. 아직도 현실 속에는 자신들의 고통을 비하하는 고통에 힘겨워 하는 환자들이 있다. 환자로서의 권리 뿐 만 아니라 자신들의 질병에 덧대어진 은유와 편견에 투쟁하는 그들, 카노스 (HIV감염인인권연대)의 강석주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카노스의 탄생과 활동

 “카노스는 감염인들 스스로 인권을 얘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아래 만들어 졌어요. 비감염인인의 주도적인 인권운동이 아니라 감염인들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주체적으로 만들어진 단체인거죠.” 2002년에 만들어진 카노스는 현재 많은 비감염인 활동가와 감염인 활동가가 함께 활동하는 단체가 되었다. 카노스는 에이즈 환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꾸준히 벌여오고 있다. “2002년도부터 저희가 꾸준히 활동한 것이 동료감염인 상담사업이나 병원 동행, 치료 지원 같은 사업이에요. 동료감염인 상담 사업은 감염인들이 서로 상담해주는 사업이죠. 초기감염 시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스스로 (질병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그런 부분을 상담하고 함께 위로해주면서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이에요.” 치료지원은 의료 직종이나 복지 직종에 있으면서 카노스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감염인들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치료지원을 통해 감염인으로서 느끼는 어려움을 의료인의 입장에서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의료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병원에 함께 찾아가 도와주며 고가의 치료비가 나오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도 제시해 준단다. 
 카노스의 활동영역은 감염인을 지원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에이즈 감염인을 둘러싼 편견을 해소하는 문제에 가장 중점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년간 벌였던 후천성 면역 결핍 예방법이 대표적인 활동이다. “후천성 면역 결핍 예방법은 소위 에이즈 예방법이라고 해요. 이 예방법은 감염인들을 범죄자로 보고 감염인들에게 족쇄를 채우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담고 있었어요. 6개월마다 연락이 되어야 하는 등의 조항이 있었죠. 감염인들이 범죄자인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고 다만 질병에 걸린 것이다, 그러니 과도하게 관리받고 있는 부분이 해결되어야 한다.’ 이 법을 개정하기 위해 근 2년 동안 투쟁을 했어요.” 2년간의 노력 끝에 2008년 예방법이 개정되었다. 카노스는 민주노동당 현혜자 의원과 같이 법령을 내고, 국회 안에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의원들을 설득했다. 에이즈 예방은 감염인들을 통제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권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얻어지는 것임을 강조한 덕분이었다.

제약사의 횡포에 맞선 연대, 약가 인하 운동 

 카노스는 다른 환자 단체와 연대해 보편적인 환자 권리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환자들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한미FTA 문제라든지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 문제에 연대해서 같이 운동합니다. 특히 의약품 운동은 거대 제약사이다 보니까 사실 하나의 단체나 환자 그룹이 상대할 수 없잖아요.” 이런 연대의 일환으로 작년에 카노스는 백혈병 환우회와 함께 푸제온과 스프라이셀의 약가 인하 운동을 벌여왔다. 푸제온을 생산하는 로슈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에 등재된 약값이 너무 싸다는 이유로 지난 4년간 약 공급을 거부했다. 스프라이셀도 일 년 약값으로 4000-5000만원이라는 터무니 없는 가격을 제시했다. 이처럼 에이즈와 백혈병은 전혀 다른 질환이고 전혀 다른 치료제이지만 제약사의 공급 거부 이유는 너무나 닮아있었다. “백혈병 환자나 에이즈 환자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보험구조에서 이 약은 터무니없이 싸게 책정이 되었다. (제약사들은) 이런 논리로 약값을 올려받으려 한다는 거죠.” 약값을 둘러싼 제약사의 횡포는 고질적인 문제이기에 한 단체의 노력으로는 개선이 쉽지 않다고 한다. 더군다나 한 단체가 발언을 해 약 값을 낮추더라도 결국 하나의 치료제에 국한 된 것일 뿐 다른 환자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푸제온을 생산하는 로슈는 동정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무상공급을 결정했다. 하지만 무상공급은 한시적인 것이며 약 값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동정적 프로그램은 대부분 저개발 국가에서 임상 초기에 실시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무상 공급은 명분일 뿐 결국 제약사는 한국에 (약을) 팔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요.” 약가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기보다는 약을 계속 공급하지 않을 경우 회사에 쏟아질 윤리적인 비난과 도의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해 동정적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카노스의 입장을 명백했다. “저희는 로슈가 약가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왔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판매할 의향이 없다면 우리나라에서 특허권을 포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약사가 제약사의 노릇을 하지 못하고 치료제가 치료제의 노릇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치료제가 치료제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제약사가 특허권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환자가 먹을 수 있는 약값으로 약을 판매하든지. 저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한다고 봐요.” 현재 치료를 위해 푸제온이 필요한 환자들이 약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돈이 많은 일부 환자들은 희귀의약품센터에서 푸제온 미국 시판 가격을 모두 주고 직수입한다. 혹은 외국의 구호단체에 구호를 요청해서 비슷한 동정적 프로그램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매우 제한적인 프로그램이어서 현재까지 지원을 받은 환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환자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방법은 치료를 ‘포기’하는 거란다. 다른 치료제를 먹어가면서 내성이 생기겠지만 버티는 것이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항으로 남아있다.

 



감염인과 환자, 이중고의 어려움

 환자 권리 운동에도 어려움은 있다. 바로 ‘환자들이 뭘 알겠어.’ 라는 주위사람들의 냉소적인 시선 때문이다. 게다가 에이즈 감염인의 경우 질병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덧붙여진다. “에이즈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심한 상황에서 감염인이 자발적 환자운동을 위해 나오기가 쉽지가 않아요. 거기다 제가 기사를 많이 올리는데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한다거나 기자회견에 나갔을 때 감염인을 일일이 방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들이 힘들죠. 알려지게 되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감염인들이 조직도 잘 안되고 어디 가서도 감염인이라고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부분이 아직까지 존재해요. 그럴 때마다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에요.” 이렇듯 카노스는 환자라는 어려움과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이중고에 처해있었다. 이런 이중고는 병원에서도 계속된다. 기자는 병원에서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 HIV감염인이 병원에 가서 의료진을 만날 때 불편을 느끼거나 특별히 차별을 받는다거나 환자로서의 권리가 침해받는다고 느끼실 때가 있나요?
 병원이라는 공간이 환자들에게 즐거운 공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한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해요. 에이즈 환자들에게는 병원이 특히 더 힘든 공간이에요. 병원에 가자마자 에이즈 감염인들은 숨이 막혀해요. 왜냐하면 내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혀야 되거든요. 외부에서는 밝히지 않아도 사회생활 하면서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병원이라는 공간은 들어가는 즉시 감염인이라는 것을 밝혀야 하니까요. 사람들이 진료 차트를 보고 깜짝깜짝 놀라고 별거 아닌 일에도 글러브를 이중으로 끼고 오는 일이 감염인에게는 상처거든요. 예방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설명도 없이, 또한 신체접촉도 없는 상황에서 에이즈가 공기로 전염되는 질환도 아닌데, 마스크에 방어복까지 만들어 입고 나오는 걸 보면 굉장히 힘들어요. 그리고 에이즈 환자이기 때문에 병원 내에서 무시하는 경우도 많이 있죠. 진료를 거부하거나 다른 환자와 차별하거나 수술이 지연되는 일이 병원에서 비일비재해요. 
      
 - 그렇다면 수술이 지연되거나, 진료를 거부하는 등의 권리 침해에 대해 환자들이 이의제기를 할 수는 없는 건가요?

우리나라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 관계에요. 의사가 약을 먹으세요. 이러면 무슨 약인지는 모르지만 ‘의사가 먹으라니까 난 죽지 않으려면 약을 먹어야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고 약을 먹죠. 그리고 의사가 이렇게 검사하세요. 이러면 고가의 치료나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하죠. 특히 에이즈를 진료하는 감염내과 의사가 우리나라에 70명 정도 밖에 없어요. 병원은 종합병원에만 개설되어 있죠. 그렇다보니 병원 선택의 폭이 좁아요. 그러니 하나의 의사를 잃는 것이 환자에게는 굉장히 손해에요. 실제로 병원을 옮기기도 어렵고, 병원 옮기려면 차트를 일일이 떼어가야 하고 예전 병원에서 알고 있던 시스템과는 다른 시스템에 새롭게 적응해야 하니 사실 병원 옮기기가 쉽지 않아요. 부당한 일을 당해도 의사들 사이에서 알려질까 두려워 이의제기도 잘 못해요. 이 의사가 나에게 처방을 안 하고 진료를 안 할까봐 두려움이 큰 거에요.

‘다른 환자와 동등한 진료를 바랍니다.’

 에이즈 감염인들이 가장 바라는 의사는 ‘편안한 의사’이다. 편안하다는 것은 병원에 방문했을 때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꼬리표가 느껴지지 않게 다른 환자와 동일한 처치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감염인들도 환자라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환자의 기본은 아픈 사람이잖아요. 아픈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정성껏 진료를 해주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질병을 질병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질병이 왜 생겼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사람을 자꾸 윤리적인 잣대로 평가하려는 태도들이 많아요. ‘저 사람은 에이즈 감염인이야. 뭐 하다가 저런 병에 걸렸을까. 더러워.’ 이런 식의 윤리적 잣대를 머릿속에 갖고 환자를 봤을 때 얼마나 좋은 치료가 나오겠어요. 윤리적 잣대를 대고 환자를 진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환자와 동등한, 환자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환자가 갖고 있는 고통을 함께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점만 해결된다면 저희는 더 이상 바라는 점이 없어요.” 에이즈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하지만 감염인들은 평생 들여야 하는 치료비와 약 값 게다가 사회적인 편견의 무게 때문에 치료를 힘들어 하고 있다. 그렇기에 환자의 치료 의지를 북돋아주는 의료진은 이들 감염인에게 최상의 동반자이다. “환자가 계속 치료를 받으려는 의지가 생기도록 심리적 지지를 해주는 의사가 좋아요. 힘들어서 에이즈 감염인들이 치료를 많이 포기하고 있거든요. 자존감을 세워주면서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게 하는 의료인이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강석주 대표는 의대생들이 환자에 감수성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 경제적인 안락함 때문에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분들이 많이 있잖아요. 저는 환자에 대한 기본적 예의라든지 따뜻한 감성 없이는 따뜻한 진료는 나올 수 없다고 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학생 때 환자들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학문적인 질병이나 처치가 아닌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환자와 함께 치료를 해가는 감성적 치료를 많이 익히셨으면 좋겠고, 그런 현장들을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예나 / 순천향
(lynar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