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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다빈치 프로젝트_1

67호/2009 연재 2009. 7. 19. 01:32 Posted by mednews
 다빈치 프로젝트

견갑골의 형태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종속이론'이라고 하면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느끼는 우리들. 호염기성구보다 호중성구가 훨씬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실물 무역량보다 금융자본 이동양이 천 배 가까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한 우리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낯설어 하고, 모르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요? 그래서 올해 의대생신문에서는 연중기획으로 '의학과 인문사회학 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6권의 책을 선정해 연구모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통섭'이 시대의 유행이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지만 2만 의대생 모두가 해리슨과 루이 알튀세르에 대해서, 로빈슨과 미셸 푸코에 대해서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하며 2009년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현대 자본주의와 보건의료> _비센트 나바로

 
1970년 대 말 근대 자본주의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빠집니다. 그때까지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던 케인즈주의가 더 이상 통용되는 않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출현이죠. 실물경제가 가라앉으면서 서민들의 불만은 폭발했고, 사회적 반작용의 결과로 보수주의 정당들이 서구 주요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집권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인 하이에크를 열렬히 신봉하던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경제 살리기'라는 한 마디로 총리와 대통령에 당선된 그들은 곧 케인즈주의를 폐기처분하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막이 올랐음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거시경제지표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오히려 더욱 더 큰 불안을 떠안게 되죠. 고용불안이 증대되고 복지예산이 드라마틱하게 삭감되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시위가 일어났던 시기도 바로 이 시기죠.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착각

존스홉킨스대학의 의료사회학 교수인 비센트 나바로의 <현대 자본주의와 보건의료>는 이러한 시대 배경에서 나온 책입니다. 당대 보건의료의 위기상황이 바로 당대 자본주의의 위기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지요. 마르크스주의자인 저자는 당시의 자본주의를 계급론적으로 해석하고 보건의료의 구조 역시 이러한 계급론에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계급론을 바탕으로 보건의료를 해석하는 이유는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사들이 착각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저자가 남 달리 날카롭게 바라본 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의사는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현실이죠.

실제로 서구사회에서 의료와 관련된 입법을 주도하는 이들은 의사단체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은 보험회사였고, 그 다음이 제약회사, 그 다음이 보건당국, 그리고 그 다음이 의료계였습니다. 이는 지금 이곳의 상황과도 별반 다르지 않죠. 다만 우리나라는 국민보험이 시행되는 까닭에 보건당국과 관료들이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 의사협회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합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본력을 가진 자본가계층이 아니라 의료노동을 행사하는 노동자계층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착각을 하게 되었는가?

그럼에도 왜 의사들은 자신을 소자본가(쁘띠부르주아)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었을까요? 저자는 이를 근대의학교육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체계적인 의학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던 20세기 초 미국의 연방정부는 '플렉스너 보고서'라는 논문을 통해 당대까지 경험과 관습으로만 이어져 오던 전근대적인 의학교육을 과학과 합리주의에 기반한 근거중심 의학교육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전국 각지에 만연했던 비전문적인 의료학교를 다수 정리하고 소수의 의과대학만 남기는 등의 일대혁신을 단행합니다. 그때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의예과와 의학과 교육이며 당시에 시도된 다수의 혁신적인 교육 내용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의학교육이 전문성에 천착하게 된 것이죠. 언뜻 보면 전문가를 배출하는 전문적인 교육이 가장 합리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극도로 실용성을 강조하고 분업화, 파편화된 의학교육은 의대생이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이 되었을 때 사회 현상을 도외시하고 탈정치화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죠. 간단히 생각해봐도,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저자의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한국처럼 여전히 플렉스너식 전통의료교육 체계를 따르는 국가의 의과대학교육과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역시 의학교육을 전문화, 분업화함으로 의대생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인식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종사하는 것에 대해서 폭넓은 관점을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며, 전문화와 분업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임에 따라 사회에서 계급관계를 재생산하고 위계질서를 정당화하게 됩니다. 이런 계급화는 의사-간호사 간에 극명하며, 의사-의대생, 의사-의사, 심지어 의대생 내에서도 계급관계를 고착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단하게 짜인 질서와 전문화에 대한 강요는 의학교육 과정 안에서 살고 있는 학생들의 창조적 가능성을 박탈하게 되는 것이죠.

저자는 이런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의학교육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전반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영어권 국가에서는 제국주의 시대의 수탈과 같은 형태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의사나 간호사를 배출하는 데 드는 금액이 100억 유로가 든다고 하면, 남아공처럼 영어권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30억 유로가 든다고 칩시다. 다수의 아프리카계 보건의료인은 더 나은 조건을 따라 영국으로 유입되는데 영국은 제도적으로 이를 장려합니다. 그렇다면 국가적으로 70억 유로의 잉여가치를 제 3세계로부터 수탈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죠. 보건의료시장을 포함해 노동시장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은 고급 인력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고스란히 부유한 국가로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제 3세계가 가지는 문제점을 고착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착각을 넘어, 의료계 바깥과 함께하기 위하여

이런 현대 보건의료의 위기에 대해서 저자가 소개하는 대안은 다소 촌스럽습니다. 보건의료의 위기가 타개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관점에서 저자가 내놓는 대안은 대체로 사회주의 이론서적에서 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급진적이고, 어떻게 보면 현실성이 너무 적어 공상에 가까운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30년 전의 곰팡이 냄새가 나는 이 책에서도 우리는 분명히 몇 가지 배울 점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환자 한 명 데리고 30분 동안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 하다가 귀 한 번 딱 보고 '아무 이상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몇 십 달러를 받는 미국과 같은 극도의 자본주의 의료사회가 부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서 의료가 극도로 상품화된 시대에 '노동자'인 의사 역시 그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 예가 사소한 의료사고 한 번에 길바닥으로 몰리는 미국의 의사들입니다.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는 것과 누구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죠.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가 밥을 벌어 먹어야하는 의료계는 결코 동떨어진 세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료계는 사회의 한 부분이죠. 우리가 유급의 중압감 속에서 야마와 PPT를 들고 순응하는 법에만 익숙해질 때, 그래서 강의실 바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무지해지고 무심해질 때, 과연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가장 원초적인 우리의 대의가 희미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언제든 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누구나 잘 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다음에는 미셸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을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 '다빈치 프로젝트'는 과학과 철학의 예술적 조화를 이끌어냈던 레오다르도 다빈치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다빈치 프로젝트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현재 비센트 나바로의 <현대 자본주의와 보건의료>는 절판된 지 꽤 오래된 상태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의대생신문 홈페이지(www.e-mednews.com)의 스터디게시판에서 다운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포럼 참가자 - 노해준(가톨릭), 유재호(성균관), 이현석(영남), 정다솔(중앙) 기자
포럼 일시 및 장소 - 2009년 1월 29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


이현석 기자 / 영남
<vandalit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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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각양각색 doctors_1

67호/2009 연재 2009. 7. 19. 00:14 Posted by mednews

각양각색 doctors
의대, 혹은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후 대부분이 임상의로서의 길을 걷는 우리나라 의료현실은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일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해 3000명이 넘는 의사가 쏟아지는 21세기의 의료사회는 의사들이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의대생신문사에서는 보다 용기 있고 소신 있는 길을 걷고 계신 선생님들과의 인터뷰를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가슴으로 차오를 때 까지 기다리세요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와의 만남


기사 끝에 달린 바이라인이 조금 특별한 기자가 있다. 단순히 XX부가 아닌 의학전문기자김철중 씨는 의사출신 기자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했고, 영상의학과 전문의로 임상강사 2년의 경력도 있으며 의학박사학위도 가지고 있다. 중재적(intervention) 시술전공이었던 그는 지금 병원이 아닌 조선일보사의 기자로서 일하고 있다. 지난 2월 11일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처음에 눈을 마주치지 않으셔서 낯을 많이 가리시는가 싶었지만, 곧 유창한 말솜씨로 인터뷰 내내 쉬지 않고 흥미진진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의대를 처음에 어떻게 가게 됐나.

 
적성 검사에서도 제1적성이 소설가라고 나왔을 정도로 문과 적성이었는데, 불행히도 수학을 잘했다. 고1 담임선생님말씀이 수학을 잘하면 이과를 가야 한다고 해서 성적 맞춰서 간 것이 고대 의대였다.

의대생활은 어땠나.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고등학교 생활이 끝나니까 너무 신나서 머리도 어깨까지 기르고 도서관에서 소설책 읽고 술 마시고 놀았다. 그러다보니 예과3년 본과 5년 8년을 다녔다. 적절히 1년씩 배분해서 8년 다녔다. 의과대학은 성적에 따라 인격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지 않나. PK실습을 도는데 내가 성적이 안 좋으니, 인턴인 예과친구들이 날 우습게 보기에 공부를 시작했고 본과 1,2학년은 뒤에서 등수를 세고, 3,4학년은 앞에서 등수를 세서 중간으로 졸업을 했다.

영상의학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원래 퀴즈를 좋아해서 맞히고 풀고 이런 것이 재미있었다. 병원에서 필름을 복도에 붙여놓고 퀴즈를 내면 의사나 학생이 진단명을 응모하는 것이 있었는데, 제일 많이 맞춰서 상을 받기도 했다. 또 의료계에서 가장 기술적인 분야가 제일 빨리 발전할 것이다 싶었고, 그게 영상의학과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의학과는 대표적인 서비스파트인데, 환자를 보지 않는다는 게 아쉽지는 않았나.

쉬운 선택은 아니지만 중재적(intervention) 시술을 했기 때문에 매일 환자는 봤다. 원래 만지고 조작하는 걸 좋아하고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원했기 때문에 (나의 성격과) 딱 맞았다. 아주 재밌게 했다. 머리도 써가면서.

그럼 그때까지도 기자의 길은 전혀 염두에 없었던 것인가.

전혀. 누구나 그렇듯 의대 교수를 꿈꿨다. 큰 계기가 있었는데 3년차에 미국에서 방사선과학회가 있었다. 워낙 유명하고 큰 학회였다. 재미삼아 연구하고 있던 것을 영어로 응모요령대로 써서 보냈는데 편지가 왔다. 와서 발표하라고. 우리병원 스텝들도 거기에서 발표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일개 레지던트가 처음으로 국제학회에서 발표를 한 것이다. 처음으로 해외에 그것도 미국에 시카고로 갔다. 그때 글로벌에 눈을 떴다. 인식의 전환이었다. 그 이후 국제학회에서 레지던트 때 2번, 군의관 때 2번, 일본, 베이징, 홍콩 등 (발표를 핑계 삼아) 여기저기 가보게 됐지. 인식이 확대되던 차에 군의관 시절이었는데 어느 순간 언론대학원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렸을 때부터 신문을 매일 한 두 시간씩 그저 좋아서 읽곤 했었다. 해부학 시험 날 아침에도 읽을 정도였다. 한번 신문방송학을 공부해보자 싶어서 언론대학원을 찾아갔다. 반은 특수직을 인터뷰만으로 뽑는데 처음 갔을 때엔 의사가 온 건 처음이라고, 아마 재미삼아 왔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거절하더라. 6개월 뒤에 다시 오면 생각해 보겠다기에 반년 후 다시 찾아갔더니 수석입학을 했다. 인터뷰만으로! 이제까진 장학금 면제였는데, 입학금 면제로! 내 인생의 앞날을 예견하는 큰 징조였던 것 같다. 의학을 할 땐 장학금 한번 못타봤는데 말이다. 그러던 중 임상강사(fellow과정) 끝날 때 쯤 IMF경제위기 때문에 모든 staff 채용이 동결됐고, 무급일 수도 있는 임상강사과정을 더 하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건 아니다싶고, 신문사 가자 싶더라.

특별히 조선일보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썼던 글들, 자기소개서, 이력서를 신방과 교수님한테 언론사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신기하게 네 군데 중 세 군데서 전화가 왔다. 인터뷰하자고. 그중 SBS와 조선일보는 계약을 하자고 했는데, 친구들 말이 네 얼굴로 방송가면 못 큰다는 것 아닌가. "야야 숨어서 글이나 써."하더라. (웃음.) 사실 방송은 핫 미디어이고 활동적이지만, 신문은 분석적인 콜드 미디어가 아닌가. 내 스타일은 콜드미디어였다. 그래서 조선일보로 갔다.

기사방향이 최근에 바뀌었는데 원래 원하던 방향인가.

2년 정도 된 것 같다. 건강정보도 쉽게 풀어 재미나게 쓰면 나름의 의미가 있긴 한데 기자로서 느끼기에는 별로 매력이 없는 것 같다. 누구나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의료제도나 환경에 대해서 써야 의학전문기자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학전문기자 일상은 어떠한가.

아홉시쯤 출근해서, 보고할 것 있으면 보고하고, 취재하고 만날 사람 있으면 만나고, 기사도 쓰고. 일이 없는 날은 외부 원고를 쓰거나 취재거리를 찾아 인터넷 조사도 한다.

다른 기자들과는 많이 다른가?

(일반 기자들은) 매일 보고하고 써야 하는 것이 아주 많다. 나한테는 (상부에서) 뭐라고 하지 않는다. 고정칼럼은 있지만, (그 외의 칼럼은) 쓰고 싶을 때 쓴다.

의학전문기자라는 직업의 우리나라에서의 비전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지금 아홉 명 인데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싶다. 의사가 임상의를 하지 않고 기자를 한다면 그를 보상하는 수준의 영향력과 적정한 임금을 제공할만한 수준의 매체는 몇 개 없지 않은가. (방송사 3사와 메이저 신문사까지) 일곱 개 정도 매체에 두 명씩 있는 것이 최대치라면 지금의 두 배정도? 100퍼센트 성장.

수적으로 만이 아니라 사회적인식이나 영향력이 지금보다 증가하지 않겠나.

그렇다. 너무나 원칙론적인 얘기지만, 사람들이 신문에서 얻던 정보를 인터넷으로 얻는데 산만하고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공신력 있는 매체 (신문 혹은 방송사)에서 주는 정보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의사도 이제 미디어상품이 되었고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전문가이기에 일정한 역할을 인정받게 되었고 이런 면에서 할 만하지 싶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나 사명이 있는가.

왜 싱가포르가 의료강국으로 됐나하는 내용으로 일면 톱을 3일 동안 쓴 적이 있는데 대단한 반향이 있었다. 영리병원이란 게 있구나, 의료가 산업이구나, 키워야겠구나 하는.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의 프라이드는 그렇게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에 있다. (의대생들의 외과 기피 현상에 대해) 1면에 '간호사가 메스 잡았다' 고 기사를 쓰니 국회에서 공청회하고, 수가를 올리겠다고 하지 않나. 한번 '팍!'하고 지르는 그 맛으로 한다. 미디어는 이슈를 붐 업 시키는 거다. 해결책은 관리직이나 교수직이 제시 하는 거고.

의학전문기자에게 요구되는 적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첫 번째 조건이 의학에 적성이 없다는 것.(웃음.) 두 번째는 앉아서 책보는 스타일보다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 세 번째는 문제에 대해 약간은 할 말이 좀 있는 사람. 너무는 말고 약간은 흥분을 해야 한다. 문제에 대해 흥미를 보이는 사람 말이다.

의학전문기자에게 전문의 수련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전문의를 하라고 하고 싶다. 인생에 퇴로는 있어야 하지 않나. 일단 대한민국사회는 전문의를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의학전문기자라고 쓰려면 전문의여야 한다는 거다. 또 (언론사에서 일을) 그만두면 퇴로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항상 자신감이 떨어지게 될 거고, 또 수련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친구들 보면 아무래도 (당직 등 업무상으로) 너무 고생하는 것 같다. 너무 일찍 한 거다.

의사를 보는 인식이 예전과 다르다.
사람들이 의학정보를 많이 접해서 만이 아니라 의사들의 문제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지식정보화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적응이 느렸다고 본다. 어느 나라든지 프로페셔널리즘(전문 직업에 대한 의식)의 위기는 있기 마련이다. 난 엔트로피법칙을 철학적으로 인용하고 싶은데, 모든 게 안정적 상태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니, 의사 환자, 정부의 삼각관계에서 과거엔 의사의 권익이 강한 불안정상태였으니까 안정한 상태를 향해 갈 수밖에. 당연한 변화라 생각한다. 정보는 공유되고 있고, 결정은 환자의 자기 결정력으로 옮겨 가고 있으니 의사들의 권위가 없어지고 계약적인 관계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거나 윤리적인 측면을 통해 좀 더 우호적인 관계로 변해야할 텐데 의료계파업 등으로 인해 비우호적으로 간 게 안타깝다. 프로페셔널리즘의 위기는 지식보다 윤리의식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가 철저한 직업적 직무수행능력과 윤리의식, 직무체계를 넘볼 수 없게. 지금의 의사들은 직업적 트레이닝을 잘 받고 있으니까 잘 해결해 나갈 거라 생각한다.

                                         ▲ 본지 안지윤 기자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

후배들한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지.

 (흔히들) 머리로만 고민하려고 하는데 가슴으로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고 싶다. (닥치기도 전에) 머리로만 하는 고민을 하지 말고 기다리다보면 어느 순간 차오르게 되어있다. 차오를 때 넘치는 걸 갖고 결정해야 된다. 그렇게 때가 돼서 하면 설사 잘못되어도 후회가 없어. 또 일단 저지르라는 것. 모든 인간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기 때문에 저지르고 나면 이걸 괜히 했다는 생각보다 안했으면 몰랐을 뻔 했는데 새로 경험을 했구나하고 오히려 후회하지 않을 거다.


안지윤 기자 / 관동
<ajy1588@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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