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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 장지역입니다.
이번 역에는 한의원이 있습니다.

- 지하철 역사 내 의원 설치, 그 과정 짚어보기

 

 

작년 10월, 서울시는 신선한 정책 하나를 발표했다. 서울시 일부 지하철역 내부에 병원, 의원 입점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병의원 이용의 편리성을 꾀하면서 동시에 지하철 안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할 시 빠른 초기대응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도라고 했다.

 

서울시 재정, 시민 만족 두 마리 토끼?
법적인 문제 산재해 있어

비록 표면적으로 좋은 이유를 내세웠지만 적자인 지하철 사업이나 서울시 재정에 보탬이 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서울 지하철 역사 위 역세권에 병의원이 없는 곳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응급의료와 관련한 주장은 별로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다만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서울시민 1천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지하철 역사 내 병의원 설치 관련 설문조사에서 92.6%가 긍정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특정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병의원은 법적으로 근린생활시설에만 위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지하철역은 그에 포함되지 않아 서울시 시행규칙을 고쳐야만 했다. 현재 병원은 허가제, 의원은 신고제로 운영되어 설치가 순조롭지만은 않다. 다만 약국의 경우 등록제로 유연하게 설치가 가능하다.
약국은 의료법에 따른 의료기관은 아니지만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른 보건의료기관에 해당한다. 현재 역사 내에 성업중인 약국이 있는 역은 2호선 성내역(서울아산병원), 잠실역, 건대입구역, 3호선 일원역(서울삼성병원), 3호선 남부터미널역, 고속터미널 역 등이다. 그 외 지하상가에서도 약국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인기가 좋아 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6호선 DMC역, 8호선 장지역 4개월간 두 차례 모두 유찰

서울도시철도공사는 먼저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8호선 장지역을 시험 무대로 내세웠다. 2016년 2월까지 진행된 1차 입찰에서 제시한 금액은 장지역 5년 임대 계약 조건으로 의원 4억 1500만원, 약국 2억 7500만원이었으나 모두 유찰됐다. 2016년 4월까지 2차 입찰을 진행하였으나 마찬가지로 둘 모두 유찰됐다.
결국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의원을 두 개로 분할한 뒤 각각을 50% 인하한 1억 1500만원, 약국 가격은 40% 인하한 1억 7천만 원에 공고를 냈고, 3차 입찰에서 의료기관 자리 한 곳이 낙찰되었다. (다른 약국, 의원 자리는 아직도 공석이다) 4월 당시에는 낙찰업종이 의원인지, 한의원인지를 밝히지 않았으나 5월 보도에서 한의원임이 밝혀졌다.
해당 한의원 낙찰가는 5년 1억 2600만원으로,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제시했던 금액보다 1100만원이 더 많다. 적어도 하나의 경쟁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해당 한의원은 준비과정을 거쳐 5월에 개원하게 됐다.

 

수많은 우려 속 첫 한의원 개원, 의사에게는 미뤄진 시한폭탄?

안정적으로 손님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지하철 역 내 의원이 왜 2차례나 유찰되었을까? 동료 의료인의 시선도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장지역, DMC역 모두 유동인구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덕택에 논쟁의 여지가 남은 정책이 유야무야 흘러가게 됐지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은 남아있다.
서울시 의사회에서는 서울시의 이 정책에 대해 내내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그 근거는 이렇다. 현재 서울과 경기도 내 의료기관이 이미 전국 의료기관의 50%에 달하는데 개선은 못할망정 의료서비스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규정을 내놓으면 어쩌겠냐는 것이다. 또한 밀폐된 공간에서 감염병에 대한 관리가 어렵다는 점, 먼지 등의 문제로 환자와 의료진의 건강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현재 입찰 자리에 한의원이 들어서게 되어 의사와 약사들 모두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을 얻게 되었지만, 서울도시철도공단에서는 장지역 사업이 잘 되게 되면 2단계로 5호선 14곳, 6호선 6곳, 7호선 10곳, 8호선 3곳에서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와 시민 건강, 의료서비스의 편중을 막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고민할 골든 타임은 지금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이준형 기자/가천
<bestofz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