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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감동의 손을 잡고, 인사이드 아웃

- 감정과 기억에 대한 창의적 접근으로 큰 흥행 일으켜
기억 구슬 등은 실제 우리 몸의 기작과 유사하게 표현

 

 

 

 

‘감정’과 ‘기억’은 선후를 따지기 힘든 복잡한 관계이다. 우리는 현재 닥친 상황에 대해 나름의 느낌을 가진 채로 기억 속에 남긴다. 반대로 지금의 감정과 무관하게 과거의 기억만으로 인해 한없이 기뻐질 수도, 우울해질 수도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이야기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지난 7월 국내 개봉 후 누적관객 4,941,734명(08.30 기준)이라는 조용한 돌풍을 일으켰다. 열한 살 소녀 라일리가 성장하면서 그녀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다섯 가지의 감정 캐릭터들이 겪는 일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면 감정과 기억에 관한 몇 가지 궁금증들이 샘솟는다. 실제로 이 영화는 피트 닥터 감독의 열한 살짜리 딸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열한 살이 되면서 갑자기 말수가 적어지고 어두워진 딸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진 아버지의 작품인 것이다. 이런 내용을 생생히 담기 위해 닥터 감독은 저명한 심리학자인 파울 에크만, 대처 켈트너 박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의사와 심리학자가 본 ‘인사이드 아웃’은 어떨까.

인간의 감정과 행동이 영화에서처럼 하나의 부위에서 모두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몸에서 ‘감정 컨트롤 본부’에 가장 가까운 곳을 찾는다면 대뇌변연계(limbic system)라고 말할 수 있다. 대뇌변연계는 대뇌피질과 시상하부의 사이에 있는 영역이다. 감정과 감정 표출로서의 행동을 주재하는 기구로, 학습과 기억에도 관여한다.
변연계의 내부에는 다양한 구조가 있다. 해마(hippocampus)는 공간기억을 담당하고, 장기 기억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의 기억을 회상할 때 해마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들을 조합한다. 기억 구슬을 맨 처음 생산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해마의 끝에는 2개의 편도체(amygdala)가 있는데, 편도체는 사건적·자서전적 기억을 담당하고, 기억에 관련된 감정을 처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억 구슬이 특정한 감정의 색깔을 나타내게 하는 것이다. 완성된 기억 구슬은 본부에서 떨어진 수납장에 저장되듯이 해마 옆에 있는 측두엽에 저장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영화에서는 이러한 구슬들을 바탕으로 기억의 섬이 생기는데, 이 섬들은 라일리의 성격을 나타내는 상징적 접근에서 나온 장치로 과학적으로 봤을 때 실제로 존재하는 기관은 아니다. 이렇게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렸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정은 진짜 ‘기쁨, 슬픔, 화남(분노), 소심(공포), 까칠(혐오)’의 다섯 가지로 구분되어 있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아니다. 원래 에크만, 켈트너 박사와 닥터 감독의 상의 과정에서는 감정의 종류들을 더 다양하게 하려 했다고 한다. 최종 후보로 언급되었던 감정에는 다섯 가지 말고도 놀람(awe), 부끄러움(embarrassment), 자부심(pride) 등이 있었다. 특히 닥터 감독은 ‘놀람’을 넣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이들까지 상영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5~6개를 넘어가는 캐릭터 수로는 뚜렷한 메시지 전달과 원활한 전개가 힘들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최종 후보들 중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감정들인 다섯 가지가 채택된 것이다.
실제로 1872년 찰스 다윈은 저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에서 인간의 감정을 행복,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의 여섯 가지로 구분했다. 하지만, 켈트너 박사는 ScienceFriday와의 인터뷰에서 “감정의 종류를 다섯 가지로 정한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라일리가 열한 살이 아닌 열여덟 살 소녀였다면 감정들 중에 ‘사랑’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라고 유머러스하게 덧붙였다.

 

 

닥터 감독은 5년간 ‘인사이드 아웃’을 만든 후, 열여섯 살이 된 딸에게 완성된 영화를 맨 먼저 보여주었다. 영화를 본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딸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기억과 감정의 소중함을 직접적으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물속에 들어가면 당연하게 쉬던 숨을 쉴 수 없고, 우리는 그때서야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며 공기를 찾아 헤맨다.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가 공기처럼 늘 가지고 있던 기억과 감정의 소중함을 보여주면서, 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치원 기자/중앙
<1inamillion_@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