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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남기고 떠난 그를 그리며

 

 

 

지난 8월 1일, 철원 길병원으로 파견을 나간 인천 길병원 소속의 한 인턴은 경기도 의정부의 병원으로 응급환자를 이송한 뒤 구급차를 타고 철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복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졌다. 인천 본 병원으로 복귀하기 불과 이틀 전의 일이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지만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하여 대체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죽는 순간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서 무엇인가를 해내려 아등바등 애쓰게 된다. 자신이 죽은 후를 설계하고 살아가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본능적인 공포와 허무감은 그런 사치를 허락하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하느님의 입을 통해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기에 우리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톨스토이의 답은 이렇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능력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이미 가지고 있지만, 마치 가지지 못한 것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가끔은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항상 선하고 빛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 줄 알고, 타인의 아픔을 나눌 줄 안다. 악의나 미움이 넘치는 세상에서도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사랑이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를 당한 인턴의 부모님은 장기기증을 결정했고, 지난 8월 26일 심장, 간, 양쪽 신장, 췌도를 5명에게 나눠줘 새 생명을 주고 해당 인턴은 영면했다. 뇌사에 빠진지 25일만의 일이다.
팍팍한 병원 생활이나 시험에 잠도 제대로 자기 힘든 의사와 의대생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가끔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혐오의 시대에 처음 의학의 문을 두드릴 때의 그 박애는 어디로 가고 타인의 흠집 찾기가 유일한 취미가 되기도 한다.
마음속에 나쁜 감정이 가득 들어찰 때면 어김없이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 마음을 바로잡게 된다. 떠나셔서 내 마음 같은 것을 바로잡게 하시는 것보다는 살아계신 것이 더 기쁜 소식이 되겠지만, 떠난 사람은 말이 없고 사라진 이를 추모하는 방식은 온전히 살아있는 사람의 몫이다. 많은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전해지기를, 선배님의 심장이 오래도록 뛸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준형 기자/가천
<bestofz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