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가족을 진료할 수 있을까?
우리 주변에는 가족 중에 의사가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보통 ‘아파도 집에서 다 해결할 수 있으니 좋겠다.’ 라든지 ‘그 집은 누가 아파도 걱정 없겠다.’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물론 가벼운 감기나 몸살 정도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족이 외과적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큰 병에 걸렸거나 심각한 질환에 걸린 경우에도 그럴까. 그런 경우에도 의사는 자신의 가족을 치료하거나 수술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의사가 가족을 진료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제약이 있을까?
원칙적으로는 진료 및 치료에 제한 없어...
하지만 수술은 피해
사실 의사가 본인이나 가족을 진료하거나 수술하는 등에 있어 법적으로는 어떠한 제한이나 규제도 없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의사가 가족을 진료할 때 감기를 비롯해 가벼운 질병은 직접 진료하더라도 외과적인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본인보다는 다른 동료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실제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전문의들도 대부분 심리적인 부담감 등으로 인해 자신의 가족을 수술하는 것은 꺼린다고 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족을 수술하는 것은 최대한 피한다. 다른 의사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며 실제 의사가 자신의 가족을 직접 수술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밝혔다.
의사에게 아는 사람은 부담스러워...VIP증후군
이와 관련해서 ‘VIP 증후군(VIP syndrome)’ 이라는 것이 있다. 유명한 사람이나 의사 본인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환자를 수술하거나 치료할 때 의사가 긴장하여 의외의 실수로 인해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를 말한다. 의사가 자신의 가족인 환자를 잘 치료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에 시달리면 의학적으로 냉정한 판단이 어려워지고, 판단력이 흐려지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수술을 할 때 장기적으로 질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수술을 집도하다가 수술시간이 길어지면 과출혈을 비롯한 출혈문제와 수술 중 감염 등으로 인해 환자가 수술 후 회복이 느리다거나 기타 합병증을 앓을 수 있다. 이러한 VIP 증후군은 외과적인 수술에서 많이 나타나고, 그 밖에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정신과 영역에서도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의사가 본인을 진료하게 되는 경우에도 문제가 생긴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진료나 처방에 있어 무시하거나 넘기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또, 본인에게 힘들거나 귀찮으면 치료를 빼먹기도 한다. 이 경우에 의사의 질병이 악화되거나 개선이 더뎌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의사는 본인이 직접 진료하기도
하지만 모든 의사가 가족을 진료, 치료하는 것을 기피하는 것만은 아니다. 제도적으로 규제된 사항이 아닌 만큼 일부 의사들은 자신이 수술을 비롯해 모든 치료 과정을 직접 집도하기도 한다. 다른 대학병원의 교수는 ‘가족이라도 직접 수술한다. 다른 의사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수술하는 편이 마음이 놓인다.’며 모든 의사가 가족을 수술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의 모 안과에서는 병원 원장 의사가 가족을 직접 수술했다는 사실을 광고로 내걸은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가족을 진료 및 치료(특히 수술)하는 데 있어 본인이 직접 할 것이냐의 문제는 개인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과도한 책임감과 부담감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의사는 본인이 직접 집도하는 것을 꺼린다.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고 했던가, 가족이기에 쏟는 큰 정성과 주의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기에 의사들이 쉽사리 자신의 가족을 진료하지 못하는 셈이다.
조영탁 수습기자/울산
<pokytjo@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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