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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총액계약제 이대로 강행?

“병원의 진료 수준만 떨어질 것”... 의료계 강력 반발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의 정형근 이사장이 오는 2012년을 목표로 이른바 ‘총액계약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건보공단 주최로 열린 지난 3월 26일 조찬세미나에서, 정 이사장은 ‘현행 수가제는 공급자 입장에서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할 유인을 부여해 질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제도지만 의료의 유인수요를 창출한다는 점이 치명적 단점’ 이라면서 현 건강보험 제도를 개편하려는 뜻을 내비쳤다.
 이어 그는 ‘총액계약제로 갈 경우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치료를 적절한 선에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절감에도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 총액계약제를 도입할 것을 시사했다.

총액계약제란?

 한국은 현재 건강보험 제도로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인이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후에, 각 의료행위마다 정해진 의료 수가를 건보공단에서 의사에게 지불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감기 환자 한 명을 진료할 때 환자는 의사에게 3천 원 정도만 내면 된다. 그러나 기본 상담, X-ray 촬영, 주사제 투약, 처방전 발행 등 환자가 받은 의료행위에는 각각 수가(가격)가 정해져 있다. 이 비용은 나중에 건보공단에서 의사에게 지급한다.
 총액계약제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일정액의 금액이 의료인에게 먼저 지급된다는 점에서 행위별 수가제와 차이가 있다. 총액계약제 하에서는 의료인은 선 지급된 금액만을 가지고 환자들을 치료해야 한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지금에 비해 건강보험 재정이 건전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전망이다. 의료인의 과잉 진료가 건보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총액계약제의 문제는?

 그러나 의료인들은 건보공단의 주장이 현실과는 다르다고 비판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의료수가는 평균적으로 원가의 90% 이하이다. 즉 과잉진료를 해도 의사가 이득을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총액계약제를 도입하면 병원에서 정상적인 진료행위가 침해당할 위험도 있다. 환자 수에 따라 계산된 진료수준이라는 것이 이상적인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이며, 실제로 내원하는 환자 수와 처치에는 변동이 있을 수 있는데 총액계약제는 이런 점을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의 원가에도 못 미치는 현행 수가를 기준으로 총액계약제가 실시되게 된다면 그것 또한 병원에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무리하게 총액계약제를 도입한 대만의 경우 개원가의 절반 가량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의료계의 반응

 의료업 종사자들은 이런 이유를 들어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의사로 하여금 최선의 진료를 행할 수 없게 함으로써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건강보험제도를 파탄에 이르게 하는 총액계약제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이라고 밝혀 총액계약제는 절대로 실시되서는 안 되는 제도라고 못 박았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가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함에 있어 정부가 담당해야 할 보험자로서의 역할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대행기관일 뿐이다’라면서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와의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언론에 총액계약제의 실시 의지와 시기까지 흘린 것에 대해 경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관련 업무를 맡은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으며 총액계약제는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로 앞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할 것’ 이라며 말을 아꼈다.

황인성 수습기자/연세
<gunter@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