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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그대로, 사세요."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20년 전, 그 본과 시절에 알았더라면'의 주인공,

연세의대 의학교육학과, 정신과 전우택 교수를 만나다.

의대생들이 많이 드나드는 까페나 클럽, 또 의대생 블로그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글이 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20년 전, 그 본과 시절에 알았더라면'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류시화 시인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를 패러디한 형식으로 가볍지만, 진부하지 않고 따뜻하고 섬세한 배려와 충고로 가득하다. 그 시의 주인공을 만났다. 연세의대 교육학과 교수이자, 통일 문제라는 에 대해 17년째 연구중인, 정신과 교수 전우택 선생님이다.

국제화, 핵심화, 전문화: 의학교육의 세계적인 트렌드

교육학과도 아닌 의대에 의학교육학과라. 왜, 의학교육학인 걸까. 이에 처음엔 자신도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될 줄 몰랐다며 말문을 열었다. " 저는 정신과학으로 연구를 해왔지 의학교육에 대한 학위는 없는 사람이지만, 그저 학생들이 보다 좋은 교육,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수업을 받으면 좋겠다 하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교육전반에 관여를 하게 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은 의학교육학과이면서 정신과학 겸무교수가 되어버렸죠." 이어, 세계적인 의학교육의 트렌드로 세가지 흐름, 즉 국제화와 핵심화, 전문화를 들었다. "지금의 의대생들은 점차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는 외국환자를 보게 될 일이 많아지겠죠. 의료인력이 국경을 넘어서서 활동하게 될 거고, 그에 따른 준비가 필요할 겁니다. 또 점차 공부해야할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교육에 허용된 시간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꼭 알아야 할 것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전엔 의대교수라면 누구든 강의할 권리가 있었지만, 이제 교육할만한 훈련이 되고, 잘 교육된,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교수를 요구하게 되었죠."

불분명한 학습목표, 진로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된 학생들, 그리고 잘 가르치지 못하는 교수들.

그럼 지금의 문제는 무엇일까. " 첫째는 의과교육의 학습목표가 불분명하다는 겁니다. 1학년엔 뭘배우고, 2학년엔 뭘배우고 3학년 실습중엔 뭘 익히면 되는지, 또 전공의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직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아서, 학생들에게 지워지는 학습량이 불필요하게 과중하다는 것이죠." 전 교수는 이 문제가 교수입장에서 자기가 평생 공부해온 내용을 학생들이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이는 유감스럽지만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 두 번째는 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학생들이 너무 과중한 학습량에 떠밀려서 자기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진로에 대해 준비하거나 성취해 나가는게 너무 없다는 것이죠." 실제로 외국의 학생들은 관심분야를 정해서 일찌감치 관련학회에 참석도 하고, 논문을 쓰는 체험을 하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나서야 어떤 영역에서 활동할지를 고민하기 때문에 이미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셋째는 가르치는 교수들이 전문화 되어있지 않다는 점인데, 어떻게 도와줘야 학생들이 발전하는지에 대해 자기 경험 이상의 노하우도 지식도 없다는게 문제예요." 다시말해, 교수들이 잘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 그는 의대에 들어온 학생들이 강의 잘하는 분의 강의를 듣는 일이 드물다는 게 불행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해결방안을 묻자, "잘 가르치는 재능을 갖고 있는 분들을 교육에 활동할 수 있게 훈련시켜 놓아야 한다."며, 학생들도 "학교 등수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세상을 넓게 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 의과대학이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학교가 거의 없고, 있어도 부분적이기 때문에 학생입장에선 자신의 진로에 대해 훨씬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의대생, 그대로라는게 문제.

과거의 의대생들과 현재의 의대생들은 어떤 차이가 있냐는 말에 바로, "어떤 차이도 없다는게 문제"라며, 더 나아졌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7,80년대의 의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의대입학으로 모든 미래가 성취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선 의예과보다 의전원출신이 자기 진로에 대해 더 진지한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 힘든 의대생들, 절대 혼자 고민하지 마라."

인터뷰 내내 학생들을 정말 잘 알고 있고,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던중, 정신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최근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는 의대생 자살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졌다. "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정신과 선생님들이 가까이 있으니 반드시 힘들 땐 만나서 상의하라" 고 조언했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해결하면 본인이든, 가족에게, 학교에 씻을수 없는 상처가 된다고 했다. " 우울증이라면 치료만 받으면 금방 좋아지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며, 약멱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회피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학생들이 자신들이 전공의 지원을 하는데에 나쁜기록으로 남을까봐 자기가 다니는 병원에서 약 타는것을 두려워한다는 것도 언급하며, 정신과 선생님과 상의하면 개업한 선생님들에게 처방받고 치료할 수 있다고도 했다. 덧붙여, " 대부분 주변과 연대가 약하거나 한번이상 유급하거나 극도로 내성적인 학생들이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기때문에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같고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30년 전, 다른 일에 너무 바빴던, 한 의대생.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20년 전에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그는 30년 전-그는 시를 쓴지 7년이 지났다며, 곧 '...30년 전에 알았더라면" 이라는 새 버전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과연 어떤 학생이었을까. "공부보단 할 일이 너무 많았던, 다른 일에 너무 바쁜 학생이었죠." CMF 기독교의 1기 회원이기도 한 그는 CMF 간사와 같은 6년을 보냈다고 했다. 매해 여름과 겨울마다 학생시절부터 전문의가 될 때까지 단한번도 거르지 않고, 진료봉사를 조직해서 떠났다며, 그런 훈련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도 가장 소중하고 친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서로 용서받기도하고 용서하기도 하고, 계획을 하고 공동으로 성취하고 함께 좌절하기도 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내가 할수 있는 이상의 것을 해 낼수 있다는 진리를 그 때 배웠다."는 것이다.

"꿈꾸는 그대로 살겠다는 용기를 가져라."

의사가 되고 나서, 의대생 때 상상했던 것과 다른 점은 무엇이냐는 말에, " 지금 바로 말한 그것"이라며, 차이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오해라고 한다. "내가 꿈꾸는 그대로 살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꿈과 현실이 다르다고 인식하는 순간 꿈은 멀어집니다. 슈바이처같이 살고싶다 생각했다면 정말 그렇게 살면 됩니다. 생각하면 생각한 그것대로 살수 있어요. 사실 별것 아닌데, 그런 용기를 감히 갖지 못해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죠.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의사는 절대 굶어 죽지 않는다는 게 의사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인데, 돈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고, 자기 인생에 대해 행복하게 사는 선택을 잘 못하는게 우리가 갖는 치명적인 문제에요. 의대에 입학하면서 소시민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고, 점점 더 소시민이하로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고, 심지어 자기자신조차도 부끄럽게 여기는 작은 의사가 되는 거죠."

꿈을 묻자, 단기적으로는 의학교육학과를 맡게 되고 학생부학장을 하면서 연대의대의 교육이 조금 더 나아지고 그 변화가 다른 학교에도 파급되어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한 단계 나아지는 좋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학자로 기억되고 싶다며, 북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생각해왔던 것이 정리되고 실질적으로 통일과 우리민족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연구와 책을 남길수 있었으면 한다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의대생들이 꿈을 가진 그대로 행동하길 바란다"고 했다. 우린 모두 평생 같이 일해야 할 사람들이라며, " 진짜 꿈이 있다면, 진로문제를 가지고 의미있는 고민을 하고있다면, (연대학생이 아니더라도)누구든 이메일로 연락을 해도 환영한다"며, 기사에 꼭 이메일 주소를 첨부해 달라며 웃는 얼굴에서, 백석의 시'고향'에 나오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던, 바로 그 의원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안지윤기자/관동

ajy1588@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