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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폭행의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의 전공의들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 위한 “전공의특별법” 제정

 

지난 9월,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내과 전공의 1년차가 투신했다. 정확한 사인은 나오지 않은 가운데, 그의 지인은 그가 “평소에 운동 좋아하고 성격 쾌활하고 공부 열심히 한 친구”라며 “지난 여름에 만났을 때 진짜 힘들다고 한번 하소연하긴 했었는데 그걸로 자살한다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하여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는 “최근 출산 휴가 등으로 인한 인력 공백 문제가 있었고, 상위 연차 슈퍼바이저가 없이 근무함에 따라 고인이 업무를 힘들어 했다”는 동료들의 진술을 전하며 “한 사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의료의 미래인 젊은 의사에게 일어난 비극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전공의특별법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발언했다.
비슷한 사건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마취과 전공의가 돌연사 했던 것. 이와 같은 전공의 사망사건들으로 인해 “전공의의 근무환경”에 자연스레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한 근무시간은 주당 40시간 근무 + 연장근로 주당 12시간이지만 휴일근로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 9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일주일 최대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하는 법안이 정기국회에서 추진됐다.
그런데 유난히 전공의의 근로시간을 주당 80시간이하로 제한하겠다는 “전공의특별법”이 따로 추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전공의는 ‘보통’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공의는 굳이 정의내리자면 “수련받는” 근로자이다. 외국의 경우 미국은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유럽은 48시간으로 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법에는 이러한 피교육자이면서 근로자인 근무자들을 위한 내용이 명시되어있지 않다.
법으로 규제할 만한 조항이 없다보니 대다수의 수련병원은 “수련(교육)시간”을 핑계로 전공의들을 연장근로 12시간 이외에도 수십 시간이나 더 근무시키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병원협회(회장 김윤수, 이하 병협)에서 지난 8월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현행 전공의 1인당 주당 평균 91.8시간씩 수련받고 있음을 인정했다. 또한 이는 인턴의 수련시간은 반영되지 않은 것인데, 2010년 대한전공의협회(이하 대전협)에서 조사한 설문자료에 따르면 인턴의 주당 평균 수련근무시간은 137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특별법에 대해 병협은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과 관련하여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필요성에는 적극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특별법 제정 시 필연적으로 수반될 대체인력 및 추가인력에 대한 비용보상 방안이 고려되지 않을 경우 병원들이 감내하기 어려우며, 진료공백 사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전협은 전공의 수련근로시간을 주당 80시간 (교육적 인정 필요 시 추가 8시간) 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전공의특별법을 반드시 추진해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대전협(회장 장성인)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의료계 내부에는 전공의 특별법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법은 현재 전공의의 인권뿐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전공의가 의술을 펼칠 미래 사회와 그 대상이 될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우려에 대한 부분도 조언과 도움으로 받아들여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법 제정을 이루어 내겠다”고 약속했다.
보건복지부는 병협, 의학회, 대전협 등과 주당 최대 수련시간(4주 평균 80 시간+교육 목적 위해 8시간 연장 가능), 최대연속 수련시간(36시간 초과 금지, 응급상황시 40시간까지) 등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핵심항목에 대해 합의하고, 수련환경 개선에 따른 의료현장 인력 부족 예방을 위해 대체인력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TF를 운영해 금년 중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각종 폭행의 사각지대에 놓인
전공의들

 

지난 7월 11일, 부산지역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환자 보호자가 전공의에게 폭언을 퍼붓고 폭행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보호자가 부인의 소변검사 처방을 요구했으나, 전공의가 절차상 맞지 않는다며 거절하자, 보호자는 수차례 폭언을 하며 전공의에게 위협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가운데 전공의는 폭력적인 환자 및 보호자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전공의에 대한 폭력은 교수나 윗년차 전공의들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2007년 아주대 의료원, 2008년 서울대병원과 전남대병원, 2012년 을지대병원 등 수련병원에서도 전공의 폭행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대전협에서 공개한 전공의 631명을 대상으로 한 폭언 및 폭행 경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련 받는 동안 직접 혹은 간접적인 폭언 및 폭행 경험 여부를 묻는 질문에 무려 45.01%의 응답자가 ‘있다’라고 답했다. 폭언 및 폭행을 행한 대상으로는 상급전공의가 39.1%로 가장 많았고 교수가 27.9%, 환자의 보호자가 21.5%, 환자가 10.3%로 뒤를 이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0년 제18대 국회에서 전현희 의원이 ‘폭행방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었으나,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대전협은 빈번하게 제기되는 폭행 민원에 관련하여 “환자의 가장 가까이 있는 의사가 바로 전공의다. 더 이상 이들이 맞고 욕먹고, 심지어 그에 대한 인간적인 사과와 보상조차 받지 못하게 강요받게 놔 둘 수 없다. 대전협은 앞으로 폭행 사건에 대하여 단호하게 법적 대응을 하고, ‘폭행사건 대응지침’을 만들어 전공의의 인권과 사회의 정의 실현을 도울 것이다”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강상준 기자/서남
<myidealis@e-med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