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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산부인과 의사가 필요한 이유

 

 

올 2월, 강원도 인제군에서 임신 7개월의 여군 이신애 중위(28)가 조산(早産) 끝에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주 사인은 임신중독증으로 인한 뇌출혈. 조사 결과 이 중위는 만삭의 몸으로 하루 12시간 넘게 과로했으며, 평소 임신성 고혈압을 앓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의사들은 이 중위가 산부인과에서 기초적인 산전관리만 받았더라도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군의관 2,000명 중
산부인과 전문의 5명뿐

 

전국 16개 국군병원 중 산부인과가 설치되어 있는 병원은 5개에 불과하며 그나마 서울, 대전 등 대도시에 위치한 병원에 한정돼있다. 2,000명에 달하는 군의관 중 산부인과 전문의는 5명뿐이며 강원도 내에 위치한 4개의 국군병원에는 산부인과 군의관이 없다. 군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66개 민간병원과 의료협력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군 위수지역(군인이 복무 시 주둔하는 지역) 대부분이 외져 의료 취약 지구인 곳이 많아 의료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중위가 근무하던 강원도 인제군의 경우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 자체가 없다. 따라서 국군병원 이용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민간 산부인과도 군 위수지역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진료가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여군 의료에 대한 인식 부족 …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사후에도 과로 인정하지 않으려해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이 중위가 속한 대대의 인사이동이 이뤄지면서, 업무량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후임자도 없는 상태에서 오전 7시에 출근해 밤 11시가 넘어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분만이 임박하여 통증이 심해졌을 때, 이 중위는 우선 한 시간 거리의 속초에 위치한 작은 병원을 거쳤으나 적절한 치료가 불가능해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춘천까지 이동해야 했고, 조치는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중위는 679g의 남자아이 봄봄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군 당국의 여군 의료에 대한 부족한 인식은 사후 처리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육군본부는 이 중위의 죽음을 “군 복무와 사망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순직이 아닌 ‘일반 사망’으로 결정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대째 군인의 길을 걷던 이 중위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잊혀지는 듯 했던 이 사건은 언론보도에 이어 권익위가 과로로 인한 순직으로 인정할 것을 군에 권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육군본부는 재심의 회의를 열어 이 중위의 순직을 인정하기로 결정했고, 국립묘지에 안장하기로 했다.

 

전국적인 ‘분만취약지’ 48곳…
대부분 외진 곳에 위치한 군
시설로 인해 현실적 해결 어려움

 

책임은 과연 군 당국에만 있는 것일까. 2012년 이루어진 조사에 의하면 사고가 발생한 강원도 인제군 같이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가 한 곳도 없는 시,군,구는 55개에 달한다. 그 중 48곳은 분만이 가능한 병원에 가려면 차를 타고 1시간 이상 이동해야하는 ‘분만취약지’로 분류됐다. 이런 현실은 바로 산모 사망 등의 부작용으로 연결된다. 2007-2008년 강원지역의 산모사망률은 10만 명 당 34.6명으로 중국, 우즈베키스탄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이후 이 중위를 분만취약지에 복무하게 한 군 지휘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으나, 국방부는 대부분의 군 시설이 분만취약지에 위치해 있어 현실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산부인과 기피 현상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돼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는 산부인과 전문의 부족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2013년 전국 대학병원 산부인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78%에 그쳤다. 의사들이 날로 근무조건이 악화되는 산부인과의 지원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이에 대한 국가의 시정노력은 전무한 상태다. 정부는 사고 이후 산부인과 군의관 확충, 산부인과 공중보건의의 군 위수지역 배치 등의 재발방지책을 마련했으나 산부인과 전문의의 배출이 부족한 현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
여군 1세대인 피우진 예비역 육군 중령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모성 보호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의무’라며 여군이 여성으로서 적절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촉구했다. 현재 3군내의 여군은 8300명에 이르고, 국방부는 여군의 비율을 현재보다 높일 계획이다. 그러나 산부인과에 기피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면 피 중령의 주장은 공허한 외침이 될 공산이 크다. 

 

박형수 기자/아주
<peter10cjsw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