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자살보도 권고기준 2.0, 무엇이 달라졌나

 

 

지난달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2013 자살 예방의 날’ 행사에서 당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을 발표했다. 행사가 있었던 9월 10일은 세계보건기구(이하 WHO)가 제정한 ‘세계 자살 방지의 날’이다. 2003년 WHO는 이 ‘세계 자살 방지의 날’을 선포하며 자살자 증가의 원인으로 ‘베르테르 효과’를 꼽았다. 이에 WHO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설정할 것을 제안했고, 우리나라도 이 흐름에 따라 2004년 처음으로 ‘자살보도 권고기준 1.0’을 발표했다.

 

2004년 1.0, 2013년 2.0 발표
항목은 더 간결하고 명확하게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의 항목은 총 9가지로, 1.0의 6가지에 비하여 항목은 3개가 늘었지만 그 내용은 더 간결해졌다. 항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언론은 자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제하고 선정적인 표현을 피해야 합니다. △자살과 관련된 상세한 내용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자살보도에서는 유가족 등 주변사람들을 배려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어떠한 미화나 합리화도 피해야 합니다.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수단으로 자살보도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알려야 합니다. △자살 예방에 관한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인터넷에서 자살 보도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두 문장 이상으로 구성되었던 1.0의 항목들과 달리 2.0은 각 항목이 단 하나의 문장으로만 구성된 것이 눈에 띈다. 최근 일반인 대상 CPR의 교육이 흉부 압박 하나만으로 단순화된 것처럼, 최대한 간결하게 꼭 필요한 사항을 전달한다는 최신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1.0의 주요 내용인 (1) 유족의 사생활 보호, (2) 자살 경위에 대한 상세한 보도를 자제할 것, (3) 자살을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 (4) 자살을 미화하지 않을 것 등은 2.0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추가로 2.0에서는 ‘자살’이라는 단어 자체의 사용을 줄일 것을 요구한 점이 인상적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는 최근 드라마 ‘모래시계’의 故김종학 PD 사건을 예로 들며 ‘김종학 PD 고시텔서 자살’을 나쁜 예로, “‘드라마 거장’ 김종학의 모래시계 멈추다”를 좋은 예로 들었다.

 

‘소극적’ 1.0 → ‘적극적’ 2.0
의료인의 역할 더욱 부각돼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보도 자제를 중시했던, 소극적이라고 볼 수 있었던 1.0의 항목들이 2.0에서 언론의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1) 자살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를 알릴 것, (2) 자살 예방에 대한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것 등의 항목이 있다. 이 부분에서는 의료 전문인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살 미수시 신체에 남을 수 있는 뇌 손상, 신체 마비 등의 후유증, 그리고 자살에 대한 잘못된 정신과적 상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6년 만에 자살률 ‘하향세’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OECD 1위

 

2006년 인구 10만 명 당 21.8명이었던 자살률은 2011년 31.7명까지 계속 증가하기만 했지만, 일부 치명적 농약의 판매 중지, 자살 보도 권고기준 발표, 그리고 유명인, 연예인 자살의 감소로 인하여 2012년 자살률은 28.1명을 기록, 6년 만에 최초로 하향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2013년 故김종학 PD, 남성연대 故성재기 대표 등의 자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등 이슈가 될 만한 사건들이 많아 전망은 밝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낮아진 자살률로도 한국의 자살률은 여전히 OECD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돌발적인 자살 이어질수록 언론인,
의료인 역할 중요해져

 

유명인,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모방 자살이 많아진다는 연구결과는 많이 나와 있다. 문제는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숨을 끊는 것은 그들이지만 그들의 선택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은 언론인이다. 같은 질병이라도 의사가 어떻게 말을 건네는가에 따라 환자의 예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언론인의 표현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운명을 달리 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이번에 발표된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은 언론인들에게는 펜으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언론의 기본 자세를 성찰할 기회가, 의료인들에게는 자살의 부정적 효과를 과학적으로 알려 사회에 대한 스스로의 책무를 다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준형 수습기자/가천
<bestofzone@gmail.com>

 

<자살보도 권고기준 1.0>

1. 언론은 자살 보도에서 자살자와 그 유족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중요한 인물의 자살과 같은 공공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 아닌 경우에는 자살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야 합니다.
2. 언론은 자살자의 이름과 사진, 자살 장소 및 자살 방법, 자살까지의 자세한 경위를 묘사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자살 등과 같이 공공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에 그러한 묘사가 사건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경우는 예외입니다.
3. 언론은 충분하지 않은 정보로 자살동기를 판단하는 보도를 하거나, 자살동기를 단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됩니다.
4. 언론은 자살을 영웅시 혹은 미화하거나 삶의 고통을 해결하고 방법으로 오해하도록 보도해서는 곤란합니다.
5. 언론이 자살 현상에 대해 보도할 때에는 확실한 자료와 출처를 인용하며, 통계 수치는 주의 깊고 정확하게 해석해야 하고, 충분한 근거 없이 일반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6. 언론은 자살 사건의 보도 여부, 편집, 보도 방식과 보도 내용은 유일하게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입각해서 결정하며,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자살 사건을 다루어서는 안됩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2.0>

1. 언론은 자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2.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제하고 선정적 표현을 피해야 합니다.
3. 자살과 관련된 상세 내용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4. 자살 보도에서는 유가족 등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5.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어떠한 미화나 합리화도 피해야 합니다.
6.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수단으로 자살 보도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7.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알려야 합니다.
8. 자살 예방에 관한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9. 인터넷에서의 자살 보도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